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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49화 (149/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49화

사도 알렉스(6)

“이야아아아-악!”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악을 지르며, 이사벨이 악마군주를 향해 다시금 달려든다.

넋을 놓고 있던 알렉스는 흠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 검을 고쳐 잡았다.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이지만 반드시 이겨내야만 한다.

“아무리 발악해 봐야 소용없는 짓이란 걸 깨닫지 못하는 건가.”

달려드는 이사벨을 마주하며 악마군주가 팔을 움직였다.

손짓 한 번으로 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악마군주의 공격이 이사벨을 향한다.

[고결한 헌신]

[굳건한 태세]

[천상의 가호]

악마군주와 이사벨이 충돌하기 직전에, 정신을 차린 알렉스가 반사적으로 필요한 스킬들을 사용했다.

헌신 스킬의 효과 덕분에 이사벨이 아닌 알렉스에게로 충격이 전해진다.

“그읏…….”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방어 스킬들을 사용해 데미지를 최소화했음에도, 전신을 쥐어짜는 듯한 압력이 알렉스의 몸에 전달되었다.

가슴께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느낌을 보아하니, 살이 터져 핏물이 줄줄 새어나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한 고통이다.

알렉스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며, 악마군주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이사벨의 모습을 주시했다.

측면 하단에서 시작해 대각선으로 휘둘러진 폴액스의 날이, 악마군주의 늑골을 깨부수며 놈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인간이었다면 치명상이었을 상처.

하지만 겉모습은 인간을 닮은 형상을 하고 있어도 본질은 완전히 다른 존재인 악마군주는, 몸뚱이에 박힌 폴액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 그다지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호오? 두 번이나 공격을 허용할 생각은 없었거늘. 역시 제법 신기한 인간이로군.”

공격을 성공시킨 것은 이사벨이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 알렉스라는 걸 눈치챘는지, 악마군주는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뭘 처웃고 지랄이야!”

“이야압-!”

통증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진 알렉스가 악마군주의 얼굴을 향해 방패를 집어 던졌다.

그와 동시에 이사벨 역시 폴액스를 잡아 뽑으며, 놈에게 재차 타격을 가하기 위해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켰다.

부아아악!

방패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와 공간을 찢어발길 듯이 폴액스를 휘두르는 소리가 겹치며, 무시무시한 하모니를 이루어낸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악마군주는 한 손으로 알렉스의 방패를, 남은 한 손으로는 이사벨이 휘두른 폴액스의 날을 잡아냈다.

‘이런 미친…….’

알렉스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진다.

방패는 그렇다 쳐도 전력을 다한 이사벨의 공격이 어찌 저리 쉽게 막힐 수 있단 말인가.

상급 악마까지도 반으로 가르고 다진 고기로 만들어 격살한 전적이 있는 게 이사벨의 괴력이다.

아무리 군주급의 악마가 그보다 윗줄의 존재라지만, 이사벨의 공격을 저렇게 간단히 받아내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그래도 조금 뒤, 알렉스는 일말의 희망이 생겨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참. 힘 하나만 놓고 보면 차마 버러지라고 경시할 수 없는 인간이로구나.”

이사벨의 폴액스를 붙잡고 잠시 힘겨루기를 하는 듯하던 악마군주의 팔이, 살얼음을 짓밟은 것처럼 쩌저적 갈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지만 이렇게까지 손상을 입을 줄이야. 슬프게도 이곳에서 회복해야 하는 기간이 더 늘어나게 생겼군.”

팔이 떨어져나간 어깨 부위에서 실처럼 가느다란 촉수들이 꼬물거리며 기어 나와, 부서진 육신을 재생하기 위해 서로 뒤엉키며 형체를 이루어낸다.

반으로 쪼개진 머리를 단숨에 되돌렸던 것과는 달리, 느릿느릿하게 회복이 되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본 알렉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사벨의 공격을 가뿐히 막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어느 정도 타격을 입긴 한 거야.’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희망을 발견한 알렉스가 회수기능을 발동해 방패를 되돌리며 악마군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실드 차지]

[격노의 응징]

[심판의 일격]

이사벨에게 최대한 많은 공격 기회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알렉스는 악마군주에게 몸을 부딪치며 놈의 관심을 자신에게 붙잡아두기 위해서 온힘을 다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전력을 다한 알렉스와 이사벨의 협공을 받아내던 악마군주가 입을 열었다.

“헛된 희망을 품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슬슬 지루해지는구나. 더 이상 휴식기가 길어지는 것도 달갑지 않으니,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겠노라.”

알렉스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공간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다.

“커, 그흑…….”

삐이이-

알렉스는 귓가에 울리는 이명을 들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내리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뭐가…… 무슨 일이…….’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일어설 수가 없었다.

간신이 고개만을 들어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자, 육신의 여러 부위에서 살점이 떨어져나가 걸레짝처럼 변한 악마군주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스스로의 몸을 망가뜨릴 정도로 무언가 강력한 마법을 쓴 모양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이사벨의 움직임이 보인다.

폭발에 휩쓸려 튕겨져 나갔지만, 헌신 스킬의 효과 덕분에 부상을 입진 않은 모습.

“웨엑!”

거기까지 확인한 알렉스는 밀려오는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피가 섞여 붉은색을 띤 위액을 토해냈다.

자신에게 가해진 충격에 더해 이사벨이 입어야 했던 피해까지 대신 받아낸 덕분에, 몸의 상태가 만신창이란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속을 한번 게워내고 숨을 몰아쉰 알렉스가 다시 머리를 세웠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자신도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부상이 심각하긴 했지만, 악마군주 역시 저렇게 육신에 과한 부담을 줄 정도로 큰 기술을 사용한 직후다.

시간이 지나면 악마 특유의 재생력으로 몸을 회복할 수 있겠지만, 그전에 조금만 더 타격을 입힌다면 놈을 격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폴액스를 어깨 위로 치켜든 이사벨이 악마군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지직.

괴력을 담은 폴액스가 살점을 찢고 뼈를 부수며 악마군주의 몸을 파고든다.

“큭, 끈질기다!”

제법 신기하긴 하지만 그래 봐야 진심을 다한 힘에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악마군주는, 멀쩡한 모습으로 공격을 해오는 이사벨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그렇지 않아도 온전한 상태가 아닌 지금, 이 이상 피해를 입게 되면 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었다.

느긋한 태도를 벗어던지고 이를 드러내며 분노한 악마군주가, 반격을 위해 손을 뻗었다.

집중력이 최고조로 끌어올려진 탓일까?

이사벨과 악마군주의 움직임이 알렉스의 눈에 슬로우모션처럼 느릿하게 담겨왔다.

이사벨의 육신을 산산이 파괴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쏘아진 화살 같은 기세로 내찔러가는 악마군주의 손아귀.

피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함성을 지르며, 상대를 향해 재차 무기를 휘두르는 이사벨.

서로를 향한 저들의 맹렬한 공격이 거의 동시에 부딪치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순간.

알렉스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이사벨 대신 받아내게 될 데미지를, 거의 한계에 가까운 부상을 당한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세상을 구하고 죽는 건가. 거 아주 X같이도 영웅적인 업적으로 기록되겠네.’

과연 저 한방으로 악마군주를 죽일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지금은 이사벨의 공격력을 믿고 놈이 쓰러지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렉스는 자신의 희생을 받아들였다.

더럽게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지킬 방법이 이것뿐인데.

‘만약 이번 한번으로 죽이지 못한다 해도 분명 치명타가 되긴 할 테니, 이사벨이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줄 거야.’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사벨이라면 저 빌어먹을 악마 놈에게 종말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내 커다란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알렉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사벨의 폴액스가 악마군주의 몸에 대각선으로 깊게 틀어박혀, 놈을 아예 두 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알렉스의 눈길은 악마군주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어째서?’

갑옷이 박살 나며 악마군주의 손에 복부를 관통당한 이사벨의 모습에, 알렉스의 눈 속으로 선명하게 새겨진다.

피해를 전달해줘야 할 스킬의 효과가 발동하지 않았다.

“어, 째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다시금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사실 이유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고결한 헌신은 타인을 대상으로 사용되는 스킬이기에, 본인뿐 아니라 적용된 대상자의 의지로도 취소가 가능하기도 하다.

알렉스가 한 번 더 대신 피해를 입게 되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이사벨 역시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이사벨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공격을, 본인 스스로가 감내하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으지직.

몸에서 내지르는 비명을 무시하며, 알렉스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끔찍한 통증이 뒤따랐지만, 머릿속에 하얗게 비어버린 알렉스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사벨…….’

상반신만 남은 악마군주의 손에 꿰여 피를 흘리고 있던 이사벨이, 알렉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마주쳤다.

고통으로 바르르 떨리는 작은 입이 벌어지며, 몇 마디 단어들 전하기 위해 힘겹게 움직였다.

그러나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알렉스는, 그녀의 노력을 제대로 인식할 수조차 없었다.

이사벨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난 후에야, 움찔하며 몸을 떤 알렉스는 간신히 정신을 되찾고 입을 뻐끔거렸다.

“아, 아…….”

어떤 말로도 형용하지 못할 깊은 상실감이 알렉스의 마음을 잠식했다.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부끄럽구나. 고작 인간 두 마리 때문에 이런 꼴이 되어버리다니.”

들려오는 목소리에, 알렉스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쓰러진 이사벨의 몸에서 손을 빼낸 악마군주의 상반신을 향해, 잘려나간 하반신이 촉수를 뿜어내며 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사벨의 마지막 공격은 분명 놈에게 큰 타격을 입혔지만, 목숨을 끊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몸이 반 토막 난 정도로는 악마군주를 잡아낼 수 없었다.

인간과 흡사한 형체를 갖춘 고위급의 악마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머리나 심장 등이 급소가 되긴 하지만, 그것들을 파괴했다고 해서 즉사에 이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지는 치명상을 입어도, 악마 특유의 재생력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그래도…… 저 상태로 심장을 파괴한다면,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 흐, 크흐흐…….’

반사적으로 놈을 죽일 방법에 대해 떠올리던 알렉스는, 이런 것들이 다 부질없는 생각임을 자각하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제 와서 누가 놈에게 더 타격을 입힐 수 있겠는가.

몸속이 다 으스러진 것 같은 부상으로 일어서기도 어려운 자신이? 아니면 배에 구멍이 뚫려 죽어가고 있는 이사벨이?

알렉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전의를 잃고 바닥에 엎드려 무의미한 기도문만을 내뱉고 있는 성직자들의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아아, 신이시여…….”

“사도께서도 당해내지 못하는 괴물이라니…….”

성기사와 사제들이 아직 몇 백 명이나 남아 있지만, 어느 한명도 자신과 이사벨처럼 싸우려드는 이가 없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알렉스의 마음속에서, 불현듯 증오의 감정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차라리 저것들을 미끼로 던져줬다면…… 쓸모없는 인간들 따위 다 죽어버리더라도, 이사벨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부여할 수 있었다면……!’

무기력한 모습들을 마주하자니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알렉스의 마음속으로 악마군주의 달콤한 속삭임이 슬며시 파고들었다.

-흥미로운 인간아. 찌꺼기만 남은 신의 이름 따위는 버리고 나에게 복종하라. 내 이 대륙을 악마족의 세상으로 만들고 모든 인간들을 가축으로 삼을 것이나, 너만은 권좌의 옆에 두고 중히 여기도록 하겠노라.

타락을 종용하는 악마군주의 유혹에, 알렉스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금 놈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이 암컷이 신경 쓰이더냐? 원한다면 곧바로 치료해줄 수도 있다. 내게 복종을 맹세하기만 하라. 그대를 다른 악마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지배하는 강력한 권세를 지닌 마름으로 삼겠노라.

“…….”

이사벨을 살리고 자신도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 말을 따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알게 뭔가?

이런 형편없고 덜떨어진 인간들 따위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바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이기는 한 건지도 의문이다.

거절하면 어차피 남는 것은 멸망과 죽음뿐이다.

알렉스의 마음이 악마군주의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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