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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47화 (147/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47화

사도 알렉스(4)

“으윽…….”

고통을 참는 듯한 신음소리가 곁에서 들려와, 알렉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사벨을 돌아보았다.

“이사벨. 괜찮습니까?”

“무, 문제없습니다. 살짝 속이 좋지 않아졌을 뿐입니다. 후우, 여긴 굉장히 기분 나쁜 공간이군요.”

알렉스는 대답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각적으로도 썩 보기 아름다운 환경은 아니지만 그건 둘째치고라도, 마계화 지역 안에 가득한 흑마력은 악마가 아니고서야 견딜 수 없는 지독한 수준이다.

미리 성법으로 육체와 정신을 보호하며 진입했음에도, 대부분의 아군들이 현기증으로 휘청거리거나 헛구역질을 하는 등의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게임에서야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배경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현실이 되니 확실히 인간은 머무르는 것조차 어려운 환경이네.’

수백 명의 성기사와 사제들 중에서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은, 일반적인 성직자들보다 훨씬 강대한 신성력을 몸에 지닌 알렉스가 유일했다.

“다들 정신을 똑바로 차리시오!”

큰 소리로 외친 알렉스는 이내 어느 한 방향을 향해 방패를 힘껏 집어던졌다.

[실드 부메랑]

스킬의 효과로 위력에 보정을 받은 방패가 바람을 가르며 탄환처럼 쏘아져 날아갔다.

꿈틀거리며 다가오던 촉수 덩어리가 방패에 부딪혀 갈기갈기 찢겨 흩어진다.

하급 악마 한 마리를 문자 그대로 분쇄해 버린 알렉스는, 회수기능을 발동해 집어 던진 방패를 손으로 되돌렸다.

하급에 불과한 수준이라지만 마계화의 영향으로 한층 더 강화된 악마를 단숨에 격퇴하는 공격.

마스터 레벨까지 투자한 알렉스의 방패 던지기는, 이제는 주력 스킬이라 부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 조금씩이나마 레벨을 올려 얻은 포인트로, 실드 마스터리 스킬을 마스터한 효과이기도 하다.

[실드 마스터리 Lv 10(Max)]

단순히 방어뿐 아니라 방패를 활용한 모든 행위에 보정을 주는 스킬이기에, 실드 부메랑의 위력 향상에도 적잖은 효과를 더해주는 것이었다.

다가오던 하급 악마 한 마리를 제거한 알렉스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어째 공간이 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사방이 뻥 뚫린 넓은 평지를 예상했는데, 일행들이 넘어온 장소는 하나의 길로 길게 이어진 넓은 통로의 형태를 한 공간이었다.

장정 백 명이 나란히 서도 될 정도로 커다란 폭의 통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전 방위가 모두 개방되어 있진 않은 폐쇄된 공간이었다.

덕분에 가야 할 방향이 명확하긴 한데, 이 사실을 반겨야 하는 게 맞는 건지는 알렉스도 쉬이 판단이 서질 않았다.

‘며칠을 한참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공간이라면 길을 잃을 걱정은 없겠네. 예상보다 모여 있는 악마의 수가 적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며, 알렉스는 천천히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알렉스가 혼자 주변을 조사하는 동안 바뀐 환경에 차츰 적응해가던 다른 성직자들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부랴부랴 그의 뒤를 따랐다.

규칙적인 발소리가 거대한 통로 안으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선두에 서서 나아가던 알렉스는, 점차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뭐야? 뭐가 이리 나오는 게 없어?’

거의 3시간가량을 행군할 동안 튀어나온 적이라고는 하급 악마 6마리가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동시에 출몰한 게 아니고 한 마리씩 띄엄띄엄 나타났기에, 아군이 입은 피해라고 할 만한 것도 전혀 없었다.

곧게 뻗어 있던 통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구불구불한 형태가 되어 시야를 확보하는 데에 지장을 주었는데, 조심하며 이동하는 게 헛짓거리로 느껴질 만큼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혹시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

게임에서 얻은 지식과 현실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니, 어쩌면 마계화 현상의 위험도 역시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통로의 맞은편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감지되었다.

캬아악-!

“윽.”

그것은 크기가 10미터는 가뿐이 넘어 보이는, 다리가 많고 길쭉한 벌레의 형태를 한 악마였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리마와 닮았다고 할까.

불규칙한 형태로 몸뚱이 양옆에 자라난 촉수들을 다리 삼아 움직이며, 혐오감을 유발하는 몸짓으로 다가오는 악마.

알렉스는 방패를 앞세우고 스킬을 사용하며 달려드는 놈과의 충돌에 대비했다.

[굳건한 태세]

[광휘의 방패]

신성력을 펼쳐 만든 빛의 장벽이, 일행들을 덮쳐오는 거대한 벌레 악마의 습격을 차단했다.

쿠웅!

키에엑-!

돌진을 저지당한 악마가 신경질적으로 괴성을 내지르며 온몸을 꿈틀거린다.

잠시 긴장했던 알렉스가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그리 강하진 않군. 간신히 중급 수준에 도달한 녀석 같은데?’

덩치가 있다 보니 무게감이 상당하긴 했지만, 방어스킬을 펼쳐 단단한 철벽이 된 알렉스가 밀려날 정도는 아니었다.

“주의 분노를 받으라!”

“예루스시여, 당신의 적을 응징하소서!”

구마계 성법을 구사할 수 있는 일부 사제들이, 알렉스가 붙잡아두고 있는 악마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캬악!

몸을 태우는 신성력에 고통을 느끼고 분노한 악마가, 긴 몸뚱이의 장점을 살려 알렉스의 방패 벽을 타고 넘으려던 순간.

부아앙!

공간 자체를 찢어버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이사벨의 폴액스가 놈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강력한 참격이 악마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 버린다.

악마라는 것들이 머리가 갈라진다고 즉사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이사벨의 공격에는 인간의 힘이라 여기긴 어려운 괴력이 실려 있다.

머리부터 몸의 삼분의 일 가량까지가 무참하게 갈가리 찢겨지며, 악마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야 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아직 살아 있는 촉수들이, 놈의 남은 몸뚱이에서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물론 그렇게 기어 나온 찌꺼기들 역시도, 사제들의 신성력에 태워지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상극의 힘을 다룬다 해도 평범한 성직자들이라면 중급 악마를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알렉스와 이사벨에 더해 수백의 성직자들이 함께 있다 보니 매우 손쉬운 전투였다.

“슬슬 제대로 된 놈들이 튀어나오는 모양이군.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마시오.”

“지나온 길이라고 안심할 수 없으니, 뒤쪽에 대한 경계도 신경 쓰도록 하도록.”

전투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중급 악마가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한 알렉스는, 마계화 지역에 깊숙이 진입할수록 점점 더 강한 적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아군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통로를 지나올수록 공간 전체에서 느껴지는 마기도 점점 짙어지고 있으니, 충분히 합리적인 예측이었다.

하지만 그런 경고가 무색하게도, 일행들의 앞길에는 또 다시 하급 수준의 잔챙이들만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마계화 지역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5시간째.

별다른 위기 없이 행군만을 지속한 알렉스는, 슬슬 긴장감이 무뎌지는 것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경계심을 날카롭게 유지한 채 이렇게 긴 시간을 움직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본 알렉스는 제대로 된 전투가 없었음에도 일행들의 얼굴에 적잖은 피로감이 감돌고 있음을 확인했다.

‘서둘러야 할 일인 건 맞지만 너무 강행군을 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잠시 휴식을 취하긴 해야겠군.’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어 정지명령을 지시하려던 알렉스는, 전방을 보고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삼면을 막아선 벽.

막다른 길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이걸로 끝이라고?’

고작 중급 악마 한 마리에 하급 악마 몇 마리를 잡은 것으로 마계화 지역의 토벌이 끝나다니.

예상과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바이로크 교구의 성직자들은? 그들을 사라지게 만든 원흉이 분명 여기에 있어야 할 텐데?’

자잘한 중, 하급 악마의 수야 아무래도 좋다고 쳐도, 상급 수준의 악마 한 마리 정도는 있어야 이치에 맞다.

사방에 들어찬 흑마력이 안개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렇게 짙은데, 어찌 나타나는 적들의 양과 질이 겨우 이정도란 말인가.

흠칫.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워하던 알렉스는, 감각이 보내오는 경고에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이런! 위였나?’

내내 주변이 어두워서 곧바로 눈치 채지 못했는데, 어느새 천장이 사라지고 머리 위쪽으로 뻥 뚫린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은 벽이 위를 향해 길게 이어진다.

어둠 때문에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지만, 상당한 높이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바로 그 위쪽의 공간으로부터, 알렉스의 감각이 위험을 느끼게 만든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산사태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돌과 흙더미 대신 악마들이 쏟아진다는 점만 다를 뿐.

“위험, 에이 썅!”

아군들에게 위험을 알리려던 알렉스가 경고성을 삼키고 대신 욕설을 내뱉었다.

이어서 그의 몸을 중심으로 강렬한 신성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적들의 기습에 대처하기엔 늦었으니, 방어 대신 공격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마침 그에겐 강력한 광역 공격스킬이 있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도 했다.

[디바인 크로스]

십자 형태를 지닌 거대한 신성력의 폭발이 발생하며, 사람들의 머리위로 쏟아지던 악마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오오…….”

“이것이 사도님의 성법인가.”

“과연, 대단하시구나!”

한발 늦게 적을 발견하고 대응하려던 사제와 성기사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풀고 알렉스를 칭송한다.

몇몇 사제들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신을 찬양하는 과한 리액션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중심에 서서, 알렉스는 성검을 늘어뜨린 채 어두운 안색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90]

잔챙이라 해도 많은 수의 악마를 해치운 덕분인지 레벨 업 알림이 떠올랐지만, 알렉스는 생각에 잠겨 있느라 거기에 신경쓸 새가 없었다.

‘수가 적었던 게 아니라 여기에 전부 모여 있던 건가.’

워낙 한순간의 일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알렉스는 그에 걸맞은 동체시력으로 떨어지는 적들의 수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방금 전의 무리에서 하급 악마가 대강 오십여 마리 정도.

그리고 세 마리 정도는 중급 악마로 짐작되는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스킬 한 방에 싹 쓸려 나가긴 했지만, 마냥 좋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마스터 레벨의 디바인 크로스가 중급 악마도 소멸시킬 정도인 것은 다행이긴 한데…….’

지난 3년간 올린 4개의 레벨로, 알렉스는 실드 마스터리와 천상의 가호, 실드 부메랑과 디바인 크로스에 각각 포인트를 투자해 두었었다.

5레벨로 마스터 레벨이 된 디바인 크로스의 위력은 과거보다 더욱 강력해졌고, 마침 공간 자체가 비좁아 폭발의 위력이 극대화 되었기에 악마들을 깔끔하게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다만 그렇게 강력한 한 방을 한동안 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알렉스는 현재의 상황을 썩 만족스럽게 여기기 어려웠다.

‘저 위쪽 어딘가에 상급 악마가 반드시 존재할 텐데. 게다가 잔챙이들의 수가 이 정도라면, 처음의 예상대로 상급 악마 또한 두 마리 이상일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해.’

비장의 카드라 할 수 있는 디바인 크로스의 파괴력은 상급 악마에게도 통용되는 위력이니, 위급한 상황이었다지만 이렇게 기회를 소비해 버린 것이 아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저 위쪽의 조사는 뒤로 미루고 잠시 물러날까?’

게임 속에서 디바인 크로스의 쿨타임은 길다고 해봐야 몇 분에 불과했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반나절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안전을 생각하면 강행군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조금 지체하는 편이 낫긴 할 터.

마침 그렇지 않아도 휴식을 취할까 생각하던 차였으니, 지금은 일단 물러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 여겨졌다.

‘시간이 촉박하거나 몸을 뺄 수 없는 처지라면 모를까, 재정비를 하고 돌아올 수 있다면 굳이 무리하게 나아갈 이유는 없겠지.’

생각을 마친 알렉스는 성직자들에게 일시적 후퇴를 명령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알렉스의 시선이 어느 한쪽으로 고정되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아…… 으윽…….’

알렉스의 동공이 격한 떨림을 보였다.

끔찍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 무언가가, 언제 스며들었는지도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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