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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45화 (145/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45화

사도 알렉스(2)

영주성에 돌아오자마자 목욕 후 말끔한 복장으로 차려입은 알렉스는, 곧바로 이사벨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외부로 나가 있다가 돌아온 주군에게 인사 및 그간의 영지운영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자 가신들이 찾아왔지만, 당장은 그런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길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대신 손짓 한 번으로 전부 돌려보냈다.

“자네 왔는가?”

“아, 어르…… 신……?”

하지만 개중에는 마냥 가볍게 물릴 수 없는 인물도 있었으니, 이사벨의 조부인 슈테판이 그러했다.

한데 간만에 마주친 슈테판의 패션 스타일이 심상치 않았다.

“크흠. 뭘 그리 뚫어지게 보는가?”

당황하며 말을 흐리는 알렉스의 흔들리는 시선에, 슈테판은 헛기침을 하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알록달록한 색실을 수염과 머리에 이리저리 묶고 기묘한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은, 좋게 말해도 서커스단의 광대를 데려다 논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차림이었다.

“엘이 나만 보면 울음을 터뜨려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아보기도 힘들다네.”

“아하. 이해했습니다.”

엘은 알렉스의 딸 에리카의 애칭이다.

가문의 웃어른이라 할 수 있는 슈테판이 저렇게 광인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꽤나 체면을 깎아 먹는 일이었지만, 증손녀에게 보이는 그의 애정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이 가세나.”

“아, 네.”

나란히 걷고 싶진 않은 생김새지만, 목적지가 같은데 따로 움직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알렉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슈테판과 함께 이사벨의 방으로 향했다.

“알렉스!”

안쪽으로 기별을 넣기도 전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이사벨이 뛰어나온다.

애엄마가 된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이사벨은 과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외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알렉스가 영지를 떠나기 전과 비교해도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많은 부분에서 크게 달라진다고 하던데, 이사벨은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할 만한 신체를 가져서 그런지 전혀 바뀐 것이 없다.

물컹.

‘엇, 아니구나.’

팔을 벌리고 덮쳐오는 이사벨을 꼭 안아 든 알렉스는, 자신의 생각을 약간 수정했다.

원래도 큰 편이었던 신체 일부의 사이즈가 한층 묵직해진 걸 보니, 바뀐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젖먹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으니 흉부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진한 포옹과 입맞춤으로 그간의 그리움을 지우던 알렉스는, 동행한 슈테판이 생각나 곁눈질로 그의 모습을 살폈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지만 처조부 앞에서 쪽쪽거리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않나.

“아이고 내 새끼이잇-! 여기 할아버지가 왔지요! 우룰루렐레!”

‘…….’

그러나 슈테판은 두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미 열린 방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아기침대 앞에서 옷에 매단 방울을 짤랑거리며 폴짝폴짝 뛰는 모습은, 체통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네요. 이제 한동안은 나가지 않고 이사벨과 에리카의 곁에 있을 생각입니다.”

“앗! 정말입니까? 거짓말이면 화낼 겁니다.”

“그럼요. 그런데 제가 온 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딱 맞춰서 나온 겁니까?”

노크도 하기 전에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던 그녀의 행동을 떠올리며 질문하자, 이사벨은 코를 살짝 찡긋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냥 왠지 그립고 반가운…… 그런 느낌이 왔습니다.”

“하핫! 못 본 새에 감이 엄청 예민해졌나 보네요.”

이사벨과 가볍게 회포를 푼 알렉스는, 걸음을 옮겨 에리카가 누워 있는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태어난 지가 이제 겨우 일 년이 된 아기.

어딘가 심통한 표정으로 증조부의 재롱(?)을 보고 있던 에리카가,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자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당연한 소리지만 여전히 작네.’

영지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지가 대략 한 달 정도.

그사이에 아이가 변해봐야 얼마나 변했겠나.

아이는 여전히 그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기준에서고 애 입장에선 긴 시간일 텐데. 이전에도 오랫동안 자주 자리를 비웠으니, 내가 아빠인지 알아보기는 하려나.’

알렉스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에리카.”

“뱌아-”

자신을 그리고 이사벨을 조금씩 닮은 듯한 작은 생명체가, 꼼지락거리며 손을 뻗는다.

걱정과 달리 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듯, 아기는 명확한 단어가 되지는 못한 소리를 내며 웃음을 지었다.

살짝 감동을 받은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에리카를 안아 들었다.

출산 직후 아이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던 시기에는, 사실 자신이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영 실감이 나질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반기는 아이의 몸짓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한 게 진짜로 아빠가 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깟 레벨 업이 뭐라고…….’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반쯤 신격화하고 영지가 급격히 덩치를 불리는 동안.

특별한 일이 없다고 이대로 성장을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감이 들어, 아이가 태어났음에도 가족의 곁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바깥을 나돌아다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뭘 그리 쫓기듯이 사냥에 몰두했나 싶기도 하다.

“끄응! 이 할애비가 그렇게 애를 쓸 때는 매번 뚱한 반응만 보이더니…….”

곁에 있던 슈테판이 방긋거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에리카를 서운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이래서 자식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는 말이…….”

“아니, 어르신. 제 새낀데요.”

“에잇! 시끄럽네!”

못마땅해하는 슈테판을 보며 피식 실소를 흘린 알렉스는, 그에게 에리카를 안겨주고 돌아섰다.

소매를 잡아끄는 이사벨의 손길 때문이었다.

“알렉스. 할 말이…….”

“아, 그래요.”

증손녀를 안아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얼굴을 활짝 편 슈테판을 뒤로하고, 알렉스는 이사벨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알렉스.”

“네. 듣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게 그냥 해본 소리는 아니겠지요?”

“음? 아, 외출을 삼가겠다는 이야기 말입니까? 그럼요. 그동안 못다 한 남편 노릇을 해야겠구나 싶더군요. 물론 아빠 노릇도 해야겠고 말이죠.”

“흐응. 그렇습니까?”

콧소리를 내며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인 이사벨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러고 보니 별생각 없이 뒤를 따라 도착한 장소가, 이사벨의 침실 안쪽이었다.

‘……엇?’

“알렉스의 뜻을 존중하기에 그동안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많이 서운했습니다. 매번 그렇게 자리를 비우고…… 이런 걸 생과부나 다름없는 처지라고 하던가요?”

“아, 그…… 미안해요.”

“말뿐인 사과는 받지 않습니다. 애정확인이 필요하겠네요.”

눈을 빛내며 암사자 같은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이사벨을 보며, 알렉스는 등 뒤로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낳은 여인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미모의 이사벨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부인이다.

다만 침실에서의 이사벨은 그로서도 조금 무섭게 여겨지는 면이 있었다.

둘만의 은밀한 시간 속에선 이사벨의 성격이 굉장히 과격해진다고 해야 할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질 수도 있다.

격렬한 흥분 속에선 힘 조절이 어려울 수밖에 없기에.

에리카가 생기기 전에는 매번 침대가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나서, 아예 내구력 강화가 걸린 아티팩트 침대까지 만들어야 했다.

스킬을 쓰지 않고는 버티기도 어려운 잠자리이니, 사실상 전투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에 충실하겠다고 하셨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요즘 자기 힘으로 일어나 걷기 시작하는 에리카를 보고 있으면, 슬슬 둘째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뭐…… 좋죠, 둘째. 저도 아이는 둘 정도는 있는 게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앗! 둘째는 지나가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고, 한 일곱이나 여덟째까지는 괜찮지 않나 계획하고 있었는데요.”

“어헛!?”

아무래도 많이 힘을 내야 할 듯싶었다.

그래도 튼튼하기로는 세계 제일인 자신인지라, 침실에선 자제력이 사라져버리는 이사벨의 괴력에도 망가지지 않고 버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사벨에게 붙잡힌 알렉스는 그녀의 자녀계획에는 조금 걱정이 생겼지만, 결국 그가 감당해야 할 시련이라 여기고 얌전히 침대 위로 끌려갔다.

슬픈 사실이지만 어차피 근력으로는 당해낼 방법이 없으니, 운명에 순응해야 했다.

* * *

대도시로 거듭난 루발랑은 현재 거대한 축제가 열려 연일 시끄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신의 사도이자 은총을 내리는 손길이라 알려진 동부의 대영주.

이곳 영토의 주인인 알렉스의 두 번째 자식이 태어난 경사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첫째이자 장녀인 에리카의 탄생 때도 축제가 열리긴 했지만, 이번의 축제는 의미가 달랐다.

알렉스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아들의 탄생이었기에.

장자계승을 원칙으로 하는 이곳 세상에서, 첫아들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별생각이 없긴 한데.’

나이 한 살을 더 먹어 23세가 된 알렉스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축하의 표시를 받아들이며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아직 한참 젊은 나이인 그는, 자식에게 영지를 물려줄 때 고려해야 할 사정들 따위는 딱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나저나 참 온갖 곳에서 선물을 많이도 보내오네.’

영지 근처에 자리 잡은 귀족들은 물론이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각국의 가문들에서 선물을 보내온다.

하나같이 친분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인데,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보니 이런 선물 공세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긴 했다.

“영주님! 어디 계십니까-!”

“음?”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소리와 자신을 찾아 부르는 목소리에, 응접실에 쌓인 선물들을 구경하던 알렉스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가신이 크게 늘어난 뒤로 전문적인 행정업무에서 물러나, 영주성을 관리하는 집사가 된 헥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헥터. 그러다 숨넘어가겠군. 무슨 일인가?”

“엇! 여기 계셨군요. 교황청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알렉스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진다.

다른 이라면 교황청의 연락에 흥분을 할 수도 있지만, 알렉스라는 인물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헥터가 고작 그런 일로 저리 난리를 피울 리가 없었다.

무언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 전해져온 게 분명했다.

“……바로 가지.”

“예엡!”

그리고 그런 알렉스의 예상대로, 교황과 직접 통신을 연결한 그는 아주 심상치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악마? 확실합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수준 낮은 악마의 흔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알렉스 님이 직접 나서주셔야 할 듯하여…….

“어째 너무 조용하다 싶긴 했는데.”

성전 이후로 더 이상 대륙 어디에서도 암흑교의 잔당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그들이 완전히 멸절되지 않고 어딘가에 숨어 있으리라 생각하긴 했다.

악마와 관련된 일이라면 암흑교가 연관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그런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한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느슨해진 신경을 대번에 긴장시키는 소식에, 알렉스는 허리에 찬 성검의 손잡이를 매만지며 교황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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