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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44화 (144/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44화

사도 알렉스

타인의 신성력에 대한 잠재력을 개화시키는 힘.

알렉스가 새롭게 얻게 된 능력에 대한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교단 전체를 강타했다.

단순히 특별한 성법이 아니라 기적이라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능력이다.

이미 이전부터 그를 사도라고 여기고 있었던 교황은, 공식적으로 알렉스를 신의 사도로 인정하노라 공표했다.

그동안은 알렉스의 요청이 있었기에 쉬쉬하던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교황의 말로도 논란을 잠재우지 못할 정도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런 기적을 행사하는 인물을 그저 남들보다 뛰어날 뿐인 팔라딘이라 우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성전의 영웅이란 타이틀로 유명세가 퍼지고 있던 알렉스의 이름은, 이내 교단을 넘어 대륙 전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교단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던 사도의 등장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영지에 사람이 너무 몰려서 머리가 어지럽네.’

사도의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무력으로 출세하기엔 실력이 어정쩡한 견습기사 수준의 인물들이 대거 몰렸다.

알렉스의 눈에 들기만 하면 팔라딘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품고 찾아온 것이다.

거기에 단순히 신의 기적을 체험 혹은 목격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진 않았다.

신의 은총을 선사해 주는 사도, 그런 사도가 다스리는 영지.

알렉스가 기거하는 도시 루발랑은 외부에선 아예 성지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불릴 지경이었다.

‘이게 사실 그렇게까지 대단한 능력은 아닌데. 아니, 대단한 건 맞긴 하지만…… 끄응! 모르겠군.’

신성력의 각성.

확실히 엄청난 능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처럼 마냥 대단하기만 한 일은 또 아니다.

몇 번 실험해 본 결과, 이 각성이라는 것이 재능이 없는 이에겐 결국 통용되지 않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

모르덴을 비롯하여 몇몇 수련생들은, 알렉스의 손을 거쳐 성법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정식 팔라딘의 수준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것은 원래부터 최소한의 재능이 갖춰져 있는 수련생들이기에 가능했던 일.

처음부터 잠재력을 갖춘 자들만 재능을 개화할 수 있는 것이니, 알렉스가 해준 것은 사실상 약간의 시간 단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가만히 둬도 결국엔 신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될 인재들.

‘물론 그 몇 년분의 시간 단축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이득이긴 하지. 일반인이라고 아예 성검의 기능이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혹시나 싶어 휘하의 평범한 병사들에게도 성검의 기능을 사용해봤지만, 유의미한 수준으로 신성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바꿔 말하자면, 극히 일부는 제대로 된 신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다.

본인들의 재능을 몰라 교단에 투신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그들 역시 팔라딘 수련생들처럼 어느 정도의 잠재력을 타고났기에 벌어진 일일 것이었다.

“영주님. 오후의 알현 시간입니다.”

“쓰읍. 지겨워 죽겠네.”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알렉스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 탓에, 아예 일과 중에 그런 방문자들을 응대하는 스케줄을 따로 만들어놓았다.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찾아온 이들을 무시할 순 없었다.

예의의 문제를 떠나서, 본인에게도 이득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

실험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기능을 써보긴 했지만, 성검의 인도 이후 알렉스는 상대가 신성력에 대한 잠재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대강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대기 중인 방문자들을 멀리서 쓱 둘러본 알렉스는, 재능이 있어 보이는 자들을 따로 골라내 시종에게 알려주었다.

지시를 받은 시종은 알렉스가 선택한 인원들에 대해서만 알현요청을 받아주고, 나머지들은 그대로 돌려보냈다.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실망하며 돌아가거나 화를 내며 항의했지만, 알렉스는 쭉정이들에게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기에 그들은 세간에서 소위 말하는 ‘성스러운 은총’을 경험하지 못하고 떠나가야만 했다.

반대로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고, 눈물을 흘리며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인재에 대한 욕심이 있던 알렉스는 능력을 사용하는 대가로 그들의 충성서약을 받아냈다.

덕분에 그의 영지엔 기사급의 실력자들이 수두룩하게 쌓여갔다.

무력을 갖추지 못한 이는 그렇지 않아도 행정요원이 부족했기에 관리로 등용해 써먹었고, 그마저도 맞지 않는 자들에겐 충성 대신 적당히 성의 표시를 받아서 주머니를 든든하게 채웠다.

유동인원이 폭증하고 인재와 자산이 늘어나니, 알렉스의 영지는 자연스럽게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우려했던 교단과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알렉스에 의해 신성력을 각성한 이들은 루발랑 교구에 이름을 올리고 서품을 받으라는 언급만 있었을 뿐.

그들을 가신으로 삼아 사적으로 부리는 것에 대해선 터치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어차피 정식으로 알렉스를 신의 사도로 인정하기도 했고, 괜히 그와 의견충돌을 일으킬만한 트러블은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가 느껴졌다.

‘당분간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도 아무 문제 없겠군.’

교황을 등에 업는 정도를 넘어 교단의 꼭대기에 올라선 것이나 다름없게 된 알렉스.

그의 영향력은 이제는 세상을 뒤흔들 수준이 되어버렸다.

* * *

쐐애액-!

바람을 찢으며 날아간 방패가 마수의 두개골을 부수고 들어간다.

“이게 마지막인가.”

“옛, 영주님. 이 근처에서는 더 이상 몬스터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기사의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렉스는 손을 뻗어 방금 던진 방패를 회수했다.

수십 미터를 날아간 방패가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어 그의 손으로 돌아온다.

익숙하다 못해 이제는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로 여겨지는 이 아티팩트 방패는, 더 이상 마력을 충전해야만 회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이 아니게 되었다.

마력 대신 신성력으로 소모자원을 치환할 수 있는 술식을 개발해 넣은 덕분이다.

아티팩트와 성유물의 차이를 연구하고 싶다는 슈테판에게 다량의 예산을 지원해 준 결과물이었다.

‘돈은 많이 잡아먹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겐 도움이 되었지.’

공간전이를 통한 회수 기능 덕분에 이제는 마음 놓고 방패를 마구 던져도 된다.

실드 부메랑은 공격능력이 부족했던 그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스킬이기에, 아예 포인트를 투자해 마스터 레벨까지 올려 버렸다.

[실드 부메랑 Lv 3(Max)]

어차피 3레벨로 마스터할 수 있는 스킬이라 그다지 부담이 없기도 했다.

교황이 알렉스의 사도위를 공표하고 난 뒤로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영지의 일은 이제 가신들에게 맡겨두면 알아서 잘 흘러갔기에, 알렉스는 동부를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일에 그간의 시간을 투자했다.

암흑교에 의해 더럽혀진 동부의 안정화를 위해 성전의 영웅이자 신의 사도인 알렉스가 앞장서서 토벌을 진행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웠기에, 경험치와 더불어 사람들의 인망은 덤으로 따라 들어왔다.

급격히 발전을 이룬 알렉스의 영지와 달리 동부의 다른 영지들은 여전히 자연발생하는 언데드나 마수들에게 골머리를 앓고 있어, 알렉스의 사냥에 그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그의 이름을 칭송했다.

‘쯧. 이제는 사냥할 몬스터가 거의 없어서 레벨을 올리기도 어렵네.’

방패에 묻은 피를 닦아낸 알렉스는 불만족스러운 심기를 내비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알렉스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을 정도였지만, 그가 가진 힘의 근간인 성기사 레벨은 2년이나 지났음에도 큰 변동이 없었다.

[알렉스 Lv 89]

습관적으로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한 알렉스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이전보다 레벨이 오르기는 올랐지만, 시간 대비를 생각하면 만족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2년 동안 겨우 5레벨이라니. 경험치가 점점 줄어드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평생 가도 만렙을 못 찍을지도 모르겠는데.’

대대적인 토벌이라고는 하지만 알렉스가 2년간 사냥한 녀석들은 대부분 평기사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들.

잡아봐야 경험치가 병아리 눈물만큼 오르는 수준이니, 사실 5레벨이나 올린 것도 용했다.

질이 떨어지는 대신 물량으로 경험치를 채운 것이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반복된 토벌로 몬스터들의 씨가 말라서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마기로 물든 땅도 그간의 정화작업으로 차츰 정상화되고 있었기에, 마수들의 자연발생 현상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

이 세계에서 눈을 뜨고 난 지 4년 차가 된 알렉스다.

처음 시작할 당시 그의 레벨이 10이었으니, 앞서의 2년 동안 74번의 레벨 업을 경험했고 이후의 2년 동안 5번의 레벨 업을 겪은 것.

이제 22살의 나이이니 아직 미래가 창창하지만, 그런 커다란 차이를 생각하면 평생 만렙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그가 기억하는 게임의 최고레벨은 99레벨.

앞으로 고작 10단계가 남았을 뿐이지만 더뎌지는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나중에는 레벨 하나 올리는데 몇 년을 투자해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사실 이제는 딱히 위험한 일도 없으니, 레벨이야 더 올리지 않아도 별로 상관없겠다만…….’

오를 여지가 남아 있는 이상 끝장을 보지 않으면 영 신경이 쓰이는 게이머의 본능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만 무시한다면, 레벨을 더 올리지 않아도 문제는 없었다.

대륙의 변경을 뒤져 전설적인 몬스터를 발견해 싸우거나, 다시금 암흑교가 나타나 악마를 불러내지 않는 이상.

이젠 대륙에서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굳이 더 강해지고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잘 모르겠네. 내 앞날은 이제 아무런 위기 없이 순탄하기만 한 건가? 어떻게 살아야 맞는 건지…….’

“저, 영주님? 명령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알렉스는 상념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렸다.

지시를 기다리는 부하 기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영지를 떠나 토벌을 나설 때마다 한 달 이상은 이슬을 맞으며 생활하다 보니, 다들 나름대로 관리를 한다지만 하나같이 지저분한 모습이다.

부하들의 초췌한 외견을 둘러보던 알렉스는, 문득 영지에 두고 온 누군가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지.”

“예? 아! 복귀입니까?”

“그래. 어차피 더 돌아다녀 봐야 사냥감을 찾기도 어려울 테니.”

“옙! 서둘러 준비하겠습니다!”

예정보다 조금 이른 복귀에 신이 나서 움직이는 부하들을 바라보며, 알렉스는 머릿속으로 영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반려의 얼굴을 떠올렸다.

언제나 함께하며 곁을 지켜주었던 이사벨.

두고 올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이번 토벌행에는 그녀가 따라오지 못했었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태어난 애정의 결실 때문이다.

‘바깥을 나돌아다니는 건 이쯤하고 이제는 그냥 영지에 붙어 있을까? 그래, 레벨 업은 더 이상 크게 중요한 요소도 아니지. 영지의 운영은 밑의 사람들이 잘해내고 있고, 나는 평범하게 가장으로서의 생활에 충실하면 되는 거잖아.’

자신과 이사벨의 아이.

꼬물거리는 그 작은 몸짓을 떠올린 알렉스의 입매가 느슨하게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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