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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43화 (143/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43화

성검의 비밀(2)

“교구의 운영에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아무래도 아직은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영주님께서 이리 신경 써주신 덕분에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허허!”

알렉스의 신전 방문 소식에 평소에는 엉덩이가 무거운 교구장이 곧장 달려 나와 그를 응대했다.

교구의 최고책임자는 기본적으로 주교급의 품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고위사제들은 은근히 콧대가 높아 어지간한 신분이 아니면 쉽게 만나주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같은 교단의 식구이자 교구가 위치한 영지의 주인인 알렉스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

하지만 그렇게 프리패스를 가진 알렉스라 해도, 모든 계획이 뜻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행정업무를 도울 사제를 내어줄 수 없냐는 요청에, 교구장은 난색을 표하며 거부의 의사를 보였다.

“으음. 그 부분에 대해선 바로 긍정적인 대답을 드리기 어렵군요.”

“대충 단기파견의 형식으로 처리하면 안 되겠습니까? 사제 몇 분을 교대로 보내 영지의 일을 좀 도와준다면 크게 도움이 될 텐데…….”

“글쎄요…… 지금이 전시상황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주교령이라는 영지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그렇게 사제들을 차출하는 것은 제 직책과 권한과는 또 별개의 일인지라.”

성직자의 본분에 걸맞은 도움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알렉스가 말하는 방식의 협조는 어렵다는 것의 교구장의 의견이었다.

결국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알렉스는 별 소득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쩝! 어쩔 수 없지.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성기사단이나 둘러보고 갈까.’

단장이 된 이사벨을 통해 팔라딘과 수련생들의 활동에 은근히 관여하는 것으로, 알렉스는 그들에게 영지의 방위체계 한 축을 맡겨두고 있다.

그런데 그간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그들과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아직 없었기에, 이참에 루빌랑 교구의 전력이 어느 정도쯤 되는지 파악할 겸 인사나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벨에게 매번 보고를 받긴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그래도 더 정확하지 않겠는가.

“어엇! 알렉스 님이다!”

“저분이 우리 교단의 가장 강력한 검이시라는……!”

“엄청난 성법들을 다루신다고 들었어!”

“팔라딘 중에서도 제일 뛰어난 분이시니 당연하겠지!”

알렉스가 얼굴을 비추자, 훈련에 집중하고 있던 그를 알아본 수련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사실 체격은 탄탄하지만 외모는 평범한 편이기에, 알렉스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유명세는 엄청나지만 톡 튀는 외형이 아니다 보니, 그저 차림새를 보고 ‘아, 기사구나’ 하는 정도.

그렇지만 말을 타고 돌아다니면 마주치는 사람 모두가, 대륙 전체에 소문이 퍼지고 있는 성전의 영웅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전신에 화려한 금빛 털을 자라는 비범한 생김새의 킹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기 때문.

‘굳이 자기소개를 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긴 하네.’

말에서 내린 알렉스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주목하는 수련생들에게 다가갔다.

대부분이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나이대의 청년들.

평균으로 따지면 오히려 알렉스보다 나이가 많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숭배에 가까운 존경심을 담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세운 업적들이 워낙 엄청나다 보니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는 생각보단, 아예 하늘 위의 다른 존재처럼 여기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다.

‘음?’

그래도 그중에 한 명, 호승심이 느껴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는 이도 하나 있었다.

어떤 불손한 생각을 품어서라기보다는, 알렉스를 본인이 도달해야 할 목표쯤으로 여기는 듯한 기색이다.

‘뭐, 꿈은 크게 가지는 편이 좋긴 하지.’

알렉스는 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했다.

아직은 여러모로 부족한 수련생들과 달리, 안정감이 느껴지는 신성력과 오랜 시간 무술을 단련한 흔적이 엿보이는 움직임.

수련생들을 지도하던 교관 중 한 사람이었다.

“소문이 자자하신 알렉스 경을 이제야 뵙는군요. 인사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이곳 교구로 발령받은 마이튼이라 합니다.”

“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경험 많으신 팔라딘 선배님들이 오신 덕분에 이사벨 경이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흐허허! 저 같은 늙은이가 도움이 되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 젊은 단장께서 과찬을 하신 모양이군요.”

“제가 최근에 좀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시간을 내지 못해, 우리 영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분들을 오늘에서야 만나보는군요.”

“공사가 다망하실 테니 당연한 일입니다.”

교단에서 보내준 은퇴 직전의 노기사 두 명.

이사벨에게 듣기로는 교관으로 아주 적격이라던데, 나이가 많은 만큼 다양한 경험을 쌓았을 테니 수련생들을 가르치기 적합한 인재이긴 할 것 같았다.

그와 잡담을 나누던 알렉스는, 잠깐 참관하다가 떠날 테니 훈련을 계속하라 말하고는 이야기를 마쳤다.

‘흐음. 딱히 특출나게 돋보이는 사람은 없네.’

훈련을 잠시 지켜보던 알렉스는 이윽고 고만고만한 수준의 수련생들에게서 눈을 떼었다.

게임의 시스템이 적용되는 자신이나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이사벨이 특이한 것이지, 역시나 다들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적당한 실력을 갖췄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사제들의 협력을 받고자 했던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적당히 기분전환은 되었기에, 알렉스는 슬슬 영주성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돌리려 했다.

바로 그때, 기묘한 감각이 알렉스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으읏!?’

움찔하며 멈춰선 알렉스의 시선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몸을 자극하는 이상현상의 근원지가 그곳임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

성검의 손잡이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성유물이 쌓여 있던 동굴에서의 일 이후.

알페리온엔 신성력 계통의 성질임은 분명하지만,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담기게 되었었다.

성검의 능력이 강화된 건가 싶어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긴 했지만, 알렉스는 아직까지 알페리온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알페리온의 칼자루를 손에 쥔 알렉스가 탄성을 터뜨렸다.

기현상을 벌이는 성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무언가 번뜩이는 영감 같은 것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알렉스는 다급히 수련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마이튼을 다시 불렀다.

“으음? 무언가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십니까?”

“훈련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잠깐 수련생 중에 아무나…… 아, 저 친구가 좋겠군요.”

알렉스는 아까 본 눈빛이 살아있던 수련생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지켜본 바로는 다들 비슷비슷한 실력이긴 하지만, 그나마 그가 수련생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자로 보였다.

“저 친구를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모르덴 생도 말입니까? 그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다른 이도 아닌 알렉스의 요청이기에, 마이튼은 의아해하면서도 그가 지목한 수련생을 불러들였다.

“그에게서 뭔가를 보신 겁니까? 확실히 여기 있는 녀석들 중에서 가장 검술이 뛰어난 녀석이긴 하지요. 검술 재능의 반만큼이라도 신성력에 재능이 있었다면, 곧바로 정식 팔라딘이 될 수 있을 텐데. 성법의 활용 쪽으로는 발전이 더뎌 과연 언제쯤 팔라딘이 될 수는 있을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있는 생도입니다.”

옆에서 길게 말을 늘어놓는 마이튼에게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며, 알렉스는 다가오는 모르덴을 바라보았다.

“부, 부르셨습니까? 교관님.”

몸은 교관을 향해있지만 시선은 알렉스의 근처를 맴돈다.

멀리 있을 땐 제법 호기로운 눈빛이었으나 막상 가까이 붙자 마음이 떨리는지, 알렉스의 곁으로 다가온 모르덴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어색한 자세로 그를 힐끔거렸다.

“내가 용무가 있어서 불렀네. 내 소개는 안 해도 되겠지?”

“무, 물론이싯, 십니다!”

허둥대는 모르덴을 보며, 알렉스는 성검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빛의 칼날이 주변으로 찬란한 광채를 흩뿌렸다.

“확인할 게 있는데, 날 좀 도와주겠나?”

넘실거리는 신성력을 감탄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모르덴이, 정신을 차리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엡! 말씀만 하십쇼!”

“고맙군. 잠깐 무릎을 꿇고 앉아 주지.”

“……예?”

모르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직은 일개 수련생에 불과하다지만, 그는 팔라딘이 되어 교단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맹세를 한 몸이다.

교단에 소속된 사람은 타인의 앞에 함부로 무릎을 꿇지 않는다.

설사 자신이 태어난 국가의 왕이라 해도 공손히 고개를 숙일 뿐.

남에게 무릎을 꿇고 극진한 예를 표하는 것 자체가 교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교권이 왕권보다 위에 있음을 에둘러 표현하고자 하는 몇몇 성직자들로 인해 암묵적으로 퍼지게 된 규율이었다.

그런 태도를 고위귀족들과 왕족들은 언짢아하지만, 교단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다 보니 차마 무례하다고 지적하진 못한다.

“크흠! 알렉스 경?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모르덴의 명예를 존중해 주셔야 합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마이튼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수련생 신분이라도 성직자는 성직자.

이들이 누군가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경우는, 오로지 교단의 거룩한 행사에 참여할 때뿐이어야 한다.

하지만 마이튼의 참견에도 알렉스는 모르덴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재차 입을 열었다.

“자네를 무시하거나 모욕하기 위함이 아니야. 날 믿고 따라주면 좋겠군.”

두 사람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래도 퍼질대로 퍼진 명성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인지, 이내 모르덴은 알렉스의 앞에서 천천히 스스로의 몸을 굽혔다.

“교단에서 가장 명예로운 팔라딘이신 분께서 저를 우롱하실 리는 없으니,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는 모르덴을 잠시 바라보던 알렉스는, 검을 쥐지 않은 반대편의 손을 들어 그의 머리에 가져다대었다.

“끄으음!”

연륜이 그득한 팔라딘인 마이튼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안수의식.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이런 행위는, 세례성사나 혼배성사(신자들 간의 혼인성사) 등의 성총행사를 집전할 때에 행해지는 의식이다.

다만 대상이 일반인이 아닌 같은 성직자라면 의미와 중요도가 크게 달라진다.

팔라딘 수련생인 모르덴에게는, 권한을 지닌 고위사제에 의한 정식 팔라딘의 서임식을 치를 때나 이루어져야 하는 행위인 것이다.

물론 알렉스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성검에 담긴 힘이…… 이런 능력을 가졌다니.’

자신의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성검의 인도를 무시할 수가 없기에 그대로 따랐을 뿐이다.

모르덴의 몸속으로 신성력이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이윽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아!”

눈물을 줄줄 흘리며 몸을 부르르 떤 모르덴이, 허리춤에 달려 있던 훈련용 검을 허겁지겁 꺼내어 높이 치켜들었다.

곧이어 알렉스의 홀리 웨폰과 비교하면 굉장히 희미한 수준이지만, 못 알아볼 수가 없는 명확한 기운이 그의 검에서 타올랐다.

무기축성.

미약하긴 하지만 분명 제대로 발현된 성법이었다.

‘성법에 대한 재능? 혹은 신성력에 대한 친화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걸 강제로 개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니.’

자신이 알던 게임의 지식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기능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교단에선 어떻게 반응할까?

성검에 담겨진 너무나도 파격적인 힘이 어떤 반향을 가져올지 상상하며, 알렉스는 머리가 살살 아파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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