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41화
동부의 영주(7)
처음에는 이놈들을 전부 영지 밖으로 쫓아낼 생각이었으나, 출처가 수상한 성유물들을 목격했기에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알렉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어정쩡하게 서있던 깡패들을 신속하게 제압했고, 눈치 빠르게 달아나려던 녀석들은 킹에게 걷어차이거나 입에 물려 어디 한 곳이 부러진 채 끌려왔다.
“으아악!”
“미친 말이다!”
가장 요주의 인물인 성유물로 무장한 깡패 두목은 알렉스가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알렉스를 뒤따라온 이사벨이 서릿발 같은 기세를 풍기며 그를 심문했기 때문이었다.
“이놈! 바른대로 고하라!”
일개 깡패 두목 따위가 성유물로 온몸을 치장한 것에, 이사벨은 크게 화를 내며 힘을 아끼지 않았다.
동부 교구들이 곤경에 빠져 수많은 신도들이 목숨을 잃었을 시기에, 이런 작자들이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며 교단의 보물을 취했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오를 만도했다.
“끄아아악! 사, 살려줍쇼!”
아무리 귀한 성유물로 몸을 보호하고 있다 해도, 이사벨이 진심으로 발휘하는 힘에 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착용자의 몸을 지키기 위해 발동된 보호막은 이사벨의 손짓에 뜯겨 순식간에 사라지고, 깡패 두목은 팔다리가 뒤로 꺾이며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어이구…….’
깡패 두목은 팔과 다리가 등 뒤로 과도하게 접힌 채로 뒤엉켜 버려, 정면에서 마주하자니 마치 머리와 몸통만 남은 오뚝이 같은 형상처럼 보였다.
외모만 보면 작고 예쁘장한 소녀인 이사벨이 자신들의 두목을 마치 장난감처럼 다루는 모습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낀 깡패들은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며 오줌을 지렸다.
얼굴이 온통 눈물과 콧물 그리고 침으로 범벅이 되어 목숨을 구걸하던 깡패 두목은 이내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이사벨이 다른 자들에게 눈을 돌리자 그들은 더없이 착실한 태도로 심문에 응했고, 팔짱을 끼고 곁에서 듣고 있던 알렉스는 상황의 전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신전을 턴 게 아니라고?”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들쑤시다가 기이한 장소를 발견하고…….”
이들은 본디 동부의 어느 산골에서 활동하던 산적 무리였다고 한다.
동부가 전란에 휩싸인 줄도 모르고 급격히 늘어난 난민들을 털며 때아닌 호황에 시시덕거리던 그들은,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하자 산채에 틀어박혀 축적한 식량을 먹으며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마기에 물든 땅 위로 언데드들이 자연 발생하고 마수가 대거 출몰하며 난장판이 되었지만, 이들은 운이 좋게도 큰 위험과는 마주치지 않아 동부를 떠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었다.
쌓아둔 식량이 동나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뜯어먹으며 연명하던 산적들이, 버티다 못해 산을 내려온 시기 역시 타이밍 좋게도 딱 성전이 끝날 때쯤이었다.
물론 그 좋은 행운도 알렉스를 만나는 것으로 끝에 달한 듯 보였지만 말이다.
“뭐라도 입에 넣고자 산을 뒤지며 이동하는 도중에,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보이는 장소를 발견해서-”
“거기서 이 성유물들을 발견했다?”
“그, 그렇습니다. 안쪽까지 다 살피진 못했지만 그런 비슷한 것들이 제법 쌓여 있었습니다요.”
“뭔가 분위기가 음산하고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이, 다들 굉장히 위험한 기분을 느껴 재빨리 빠져나오긴 했습니다만…… 두목은 그 와중에 물건 몇 개를 집어왔습죠.”
깡패들의 설명을 듣던 알렉스는 고개를 돌려 이사벨과 눈을 마주쳤다.
이들의 이야기대로라면 산속 어딘가에 성유물이 대량으로 보관된 장소가 있다는 말이다.
‘암흑교도의 짓인가?’
성전의 발발 당시 동부를 점령했던 암흑교도들이, 무너진 신전들에서 성유물을 수거해 보관했을 가능성이 있긴 하다.
그들에게는 상극이 되는 물건이지만 가치가 높은 보물인 것은 사실이니, 어떻게든 써먹기 위해 따로 비밀 보관소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곳이 어디지? 안내해라.”
돈 냄새가 풀풀 나는 이야기에, 알렉스는 전직 산적이었던 깡패들을 닦달해 강제로 길 안내를 맡겼다.
영주성을 나선 원래의 목적은 영지의 안전을 위해 주변의 위험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이쪽의 정보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될 것 같았다.
* * *
캬아악!
“닥쳐.”
시끄럽게 괴성을 지르던 마수의 머리가 알렉스의 검에 날아가며 주변이 조용해졌다.
알렉스가 머스크족 출신 병사들을 굴려 가며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는 영토를 살짝 벗어나니, 금방 마수들이 들끓어 걸음을 조금 옮길 때마다 전투가 발생한다.
“귀찮은 것들이 자꾸 나타나는군. 어이! 정말 이 주변이 맞나?”
신경질적인 태도로 내뱉어진 알렉스의 질문에, 벌벌 떨고 있던 안내역을 맡은 사내가 허둥거리며 입을 열었다.
“화, 확실합니다! 분명 이 근처에 동굴 같은 것이…….”
“알렉스. 저쪽에.”
“어엇! 맞습니다! 바로 저깁니다!”
무언가를 발견한 이사벨이 목소리를 내자,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본 사내가 폴짝 뛰어오르며 울상이던 얼굴을 폈다.
알렉스는 거침없이 발을 놀려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햇빛이 들지 않는 컴컴한 동굴이었지만, 성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칼날이 광원이 되어주었기에 안을 살펴보기가 어렵진 않았다.
“으음.”
내부로 들어서자 기묘한 감각이 피부를 간질이는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알렉스는 이내 동굴 안을 채운 두 가지의 상반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흑마력과 신성력.
둘 다 그에겐 익숙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깡패들의 말에 거짓은 없었는지, 길게 이어진 동굴의 벽면을 따라 쭉 놓여있는 성유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와우. 이게 다 성유물이야?’
어지간한 교구에 비치된 성유물보다 더 많은 물량이다.
남서관구 본당의 성유물 보관소에도 들어간 적이 있던 알렉스는, 여기 있는 성유물들의 수가 그에 비해서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지역 근방에 있었던 여러 교구의 성유물들을 털어서 모아둔 건가.’
“교단의 보물들이 이렇게나 많이…… 그런데 아주 불쾌한 기운이 뒤섞여 있군요.”
곁에서 들려온 이사벨의 목소리에 알렉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이만한 성유물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공간 전체가 신성한 기운으로 물들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기분 나쁜 흑마력이 안쪽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와 공기에 섞여 있는 것이 두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쌓여 있는 성유물들을 눈으로 구경하며, 알렉스는 발길을 안쪽으로 향했다.
“흠.”
내부에는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이는 장소가 있었다.
혹시나 암흑교도와 마주치는 건 아닐까 싶어 조금 긴장했으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가 꽤 되었는지 테이블이나 의자 위로는 먼지가 가득하다.
성전 이후로 몇 달이 지났으니 그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면 딱 이런 모습일 것이라 여겨진다.
주변을 둘러보던 알렉스는 짙은 흑마력을 풀풀 풍기는 하나의 물건을 발견했다.
검게 물든 채 요사스러운 광택으로 반짝거리는 주먹만 한 오브가, 이 공간의 중심부에 놓여 있었다.
‘여기 있는 성유물들의 기운을 숨기기 위해 설치된 건가. 저것도 보통 물건은 아니겠군.’
알렉스는 곧장 성검을 휘둘러 오브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아무리 대단한 보물이라도 성기사인 그가 어둠의 힘이 담긴 물건 따위를 쓸 수는 없다.
타인의 보는 눈을 떠나서, 상극인 성질을 다루는 것 자체가 그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숨겨뒀다가 몰래 써먹기라도 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어떤 물건인지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84]
‘어랏?’
오브를 파괴하자 오랜만에 레벨업 알림이 떠올랐다.
상당히 강한 흑마력을 품고 있던 물건이라 그런지, 몬스터를 잡은 것처럼 경험치가 조금이나마 오른 것이다.
성전 이후로 마수와 몬스터들을 제법 잡긴 했지만 알렉스의 레벨에 비하면 워낙 잔챙이들이었기에 경험치를 얼마 얻지 못했었는데, 그래도 소량의 경험치들이 쌓이고 쌓여 몇 달 만에 이렇게 레벨이 올랐다.
“알렉스. 어서 성유물들을 회수하도록 하죠. 이런 막대한 양이라면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부의 형제들에게 큰 보탬이 될 겁니다.”
“음. 그래야지요.”
스킬 포인트에 대한 고민은 급할 것 없기에 잠시 미뤄두고, 알렉스는 이사벨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몸을 돌렸다.
물론 시원스럽게 대답은 했지만, 여기서 얻은 성유물들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료로 교단에 돌려줄 마음은 없었다.
‘교단하고 협상할 거리가 생겼군. 이게 돈으로 환산하면 가치가 얼만데.’
오면서 대충 눈으로 훑고 지나간 것만 해도 백 개를 훌쩍 뛰어넘는 양.
다만 성유물이 아무리 귀한 보물이라 해도, 마법사들이 만든 아티팩트처럼 시중에 팔아넘길 수는 없는 것들이다.
한 지역의 영주인 그가 마음먹고 몰래 유통하려고 한다면 성유물도 팔아치우지 못할 것은 없겠지만, 한두 개도 아니고 이만한 양이라면 결국 뒤탈이 생길 수밖에 없을 터다.
‘그랬다가는 내 입지에도 큰 문제가 생기겠지.’
게다가 그와는 별개로 그런 행위 자체가 신실한 성기사인 이사벨이 자신에게 큰 실망감을 느끼게 만들 테니, 성유물을 처분해 돈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은 애초에 선택지에 올릴 것도 아니었다.
결국 교단에 반납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극한의 이득을 꾀하는 그로서는 어떤 식으로 협상에 임해서 최대한의 보상을 뜯어낼 것인지, 진지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반납 후의 보상도 보상이지만, 일단은 내가 쓸 만한 것이 있는지도 잘 살펴봐야겠지?’
이 많은 성유물 중에 발견자인 자신이 몇 개 정도 사적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교단에서 뭐라고 따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게임처럼 커서만 가져다 대면 아이템 정보를 손쉽게 감정하는 것과는 달리, 성유물에 담긴 능력들을 성기사인 알렉스라 해도 보자마자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곳을 관리하던 암흑교도의 생활공간이라 여겨지는 안쪽에서, 성유물들에 대한 세세한 자료를 발견했기 때문.
교구의 성유물 보관소에는 성유물에 대한 세세한 정보문서들이 함께 비치되어 있는데, 놈들은 그곳을 털면서 그런 자료들 역시 꼼꼼하게 챙겨온 모양이었다.
‘오오! 전신갑옷이 있잖아! 뭐야, 변형까지 가능하다고!?’
쌓여 있던 성유물 중에는 이사벨의 갑옷처럼 자동수복이 가능한 데다가, 경량화와 내구강화, 오염제거와 갑옷 내부의 온도 및 습도조절 등의 다양한 기능이 붙어있는 전신갑옷도 있었다.
심지어 평상시에는 답답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맬 필요 없이 흉갑의 형태를 유지하다가, 전투 때만 변신을 하듯 갑옷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변형기능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갑옷계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보물이다.
다른 물건들은 그냥 다 돌려줘도 좋으니, 이거 하나만 챙겨 먹어도 큰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신이 나서 탭댄스를 추며 성유물 갑옷을 챙긴 알렉스는, 어느 순간 움찔하며 동작을 멈추게 되었다.
쌓여 있는 성유물들 사이에서, 무언가 기묘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어?”
성유물이라고 해서 다 대단한 보물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 상당히 볼품없어 보이는 물건이 하나 섞여 있었다.
한 줌의 예기도 느껴지지 않는 부러진 칼날.
낡다 못해 완전히 닳아빠진 손잡이.
남서관구의 본당 성유물 보관소에서 발견했던, 성검 알페리온의 각성 전 모습과 완전히 동일한 생김새였다.
‘???’
알렉스의 얼굴이 의문으로 가득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