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40화 (140/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40화

동부의 영주(6)

“그러니까 그냥 건달패라고 보면 되겠네.”

“예에, 그렇습죠.”

저 패거리가 유입될 당시에는 다들 삐쩍 골아 빌빌거리기나 했지 딱히 위험한 낌새를 보이지 않았는데, 마을에 머물면서 몸을 회복하더니 요즘에는 점점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한다.

처음 영지에 이주민들을 데려와 정착할 때는 그래도 최대한 건실한 사람들로 가려 뽑았기에, 주민들 사이에 큰 문제가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후 외부에서 유입되는 인원들의 관리까진 신경 쓰지 못했더니, 저런 불량한 인종들까지 영지에 발을 들인 모양이었다.

“아직은 큰 사고를 치진 않았습니다만…….”

“사고를 쳐도 통제하기 어렵겠지.”

“크윽…… 부끄럽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는 윗선에 보고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알렉스와 마주한 병사는 마침 이곳 경비대의 최고선임이었기에, 그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영주의 병사들이라곤 하지만 타운급의 마을에 상주하는 경비대는 겨우 십여 명에 불과하다.

반면 저쪽의 불량한 패거리들은 수가 다해서 삼십여 명에 이르며, 무장상태는 뒤떨어지지만 폭력에 익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

경비병들이 쉽사리 그들을 통제하지 못할 만도 했다.

실력자가 많은 머스크족 출신 병사들이라면 또 모를까.

이곳 에밍턴 타운은 영지의 중심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외곽부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 위치해 있다 보니, 병사들 중에서도 수준이 고만고만한 자들이 배치되어 있어 무력이 그리 뛰어나지가 않았다.

“최근에는 마을 주민들에게 은근히 으름장을 놓으며 금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 같더군요. 이대로 계속 두면 무슨 짓을 벌일지…….”

입구의 병사들이 처음부터 바로 보고하지 않았던 건 일개 깡패 놈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이, 자신들이 무능하다고 고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라 창피했기 때문일 터.

“때마침 내가 여길 지나치지 않았다면 무언가 문제가 발생한 후에나 조치가 취해졌겠군. 너희들도 잘못을 하고 있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겠지?”

“크흑!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그걸로 뭐 죽을 정도까진 아니고…… 약간의 징계가 있을 테니 감수하도록.”

사건이 터져도 본인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기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미리미리 보고를 했어야 했다.

경비대가 마을의 치안 확립 임무에 실패한 것부터가 이미 징계 사유이니, 적당히 감봉 혹은 비슷한 수준의 처벌을 내리긴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일단 저것들부터 해결해야겠군.’

모두가 살기 좋은 영지를 만들기 위해 영주인 자신조차도 밤낮없이 일하며 노력하고 있는데, 저런 식으로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들이 있다니.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알렉스는 곧바로 그 불량한 패거리들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금세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고 있는 그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거리가 꽤 떨어져 있지만,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반쯤 벗어난 신체능력을 가진 알렉스는 그들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니, 거 같이 좀 먹고 살자는데 왜 이리 인색하게 굴어?”

“값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벌써 몇 번째인가? 계속 이러면 경비를 부르겠네.”

“카악- 퉤! 경비는 염병. 창만 든 쭉정이 놈들이 뭘 할 수 있다고. 우리가 이리 점잖게 요청하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수다?”

“우리 형제들이 요즘 욕구가 쌓여서 삶에 불만들이 많아. 그러고 보니 영감 딸내미가 제법 예쁘장하던데…… 흐흐.”

“이, 이놈들이! 어디서 그따위 더러운 말로 협박을!”

“협박이라.”

깡패 중 하나가 부르르 떠는 중년 사내의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부라렸다.

“우리가 그냥 주둥이만 놀리는 사람들이 아니야. 진짜 일이 터지고 나서야 크게 후회하고 싶어?”

“으윽…….”

몽둥이를 들어 가슴을 쿡쿡 찌르며 위협적인 분위기로 말하는 험상궂은 사내의 모습에, 울컥했던 상대는 차마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눈을 피했다.

“우린 저 바깥에 온갖 괴물들이 득실한 곳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이야. 어디 무슨 건달패처럼 생각하면 섭섭하지.”

“이런 개척지대나 다름없는 곳의 마을은 언제 무슨 위험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거 아닌가? 그때 우리가 지켜주겠다니까?”

“그러니까 보호세를 내라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하며 사는 게 우리네들의 정 아니겠어?”

그렇게 킬킬거리며 말하는 사내들의 뒤로 무언가 커다란 그림자가 불쑥 솟아올랐다.

핍박당하며 몸을 움츠리던 중년 사내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신묘한 발놀림으로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그들의 뒤로 다가선 킹.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채 무심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알렉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보호세? 너넨 뭔데 나도 안 걷는 세금을 받으려고 하고 있냐?”

주민들의 생활이 먼저 안정되어야 영지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기에, 알렉스의 주교령에선 대부분의 세금이 면제되고 있다.

이미 교단에서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어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크게 어렵지 않기도 하고, 주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재물을 모을 생각이 없는 알렉스의 입장에선 당연한 조치였다.

영주가 되고 나니 영지를 제대로 굴리려면 은근히 돈 나갈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알렉스는 굳이 밑의 사람들을 쥐어짜서 곳간을 채울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감히 이런 잡것들이 내 영지민을 착취하려고 들어?’

“어떤 노…… 윽!? 기, 기사?”

“뭐, 뭐야. 이 마을에 기사는 없었잖아?”

뒤를 돌아본 건달패들은 누가 봐도 엄청 진귀해 보이는 말인 킹과 그 위에 올라탄 알렉스를 발견하고 주눅이 들었다.

“헤헤, 기사님. 저희 같은 천것들에게 무슨 용무십니까?”

강자를 발견하자 금방 비굴한 태도를 취하는 패거리의 모습에, 알렉스는 킹의 등에서 내려 그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미 상황은 명확했고 필요한 것은 처벌뿐이다.

“영지민들을 대상으로 한 협박과 갈취. 현행범이니 더 길게 말할 것도 없겠군. 판결은 영외추방이다.”

주민들을 위협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사람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니기에, 팔다리를 자른다거나 하는 험악한 처벌을 내리진 않았다.

그냥 영지에서 쫓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으악!”

앞에 서 있던 한 녀석을 발로 걷어차 바닥을 구르게 하자, 깡패들은 분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래도 기사와 대적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걸 잘 아는지, 건달들은 금방 머리를 숙이고 알렉스에게 굴종하는 태도를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나리.”

“썩 꺼져라.”

“예, 옙.”

패거리들은 위축된 모습으로 알렉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지나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빛의 사슬!”

“음?”

난데없는 외침에 알렉스는 몸을 돌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있던 깡패들과 비슷한 행색의 또 다른 패거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대장!”

“무, 뭐하는 거야!? 기사라고 기사!”

“닥쳐 멍청이들아! 기사는 뭐 사람 아니냐! 저거 봐!”

대장이라 불린 사내가 푸른색으로 반짝거리는 구슬 같은 물건을 손에 꼭 쥔 채로 알렉스를 가리켰다.

은은한 빛으로 이루어진 밧줄이 그의 몸을 꽁꽁 옭아매고 있었다.

“뭐야? 잡은 거야?”

“아니, 하지만 기사를 잘못 건드리면…….”

“병신들아! 저놈만 처리하고 이깟 동네쯤은 그냥 떠나면 그만이지! 크게 한탕하고 뜨는 거다!”

“화, 확실히 저놈의 말만 팔아도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겠는데?”

“잘난 기사 놈도 마법에는 못 당하는구만!”

멋대로 떠들어대는 패거리들을 조용히 쳐다보던 알렉스는, 자신을 감싼 신비한 힘으로 만들어진 사슬을 내려다보았다.

‘구속 마법…… 아니, 이건 마법이 아닌데.’

건달 짓이나 하는 패거리의 두목이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속박한 사슬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마법이 아니라 성법이야. 그럼 저것도 아티팩트가 아니라 성유물인데?’

성기사인 알렉스가 신성력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깡패 두목이 들고 있는 구슬은 성유물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알렉스의 머릿속엔 의문이 가득 들어찰 수밖에 없었다.

‘내장된 성법이 시동어로 발동하는 방식의 성유물인가. 그럼 신성력이 없는 일반인도 사용할 순 있겠다만…… 저걸 어떻게 손에 넣었지?’

성유물이나 아티팩트나 일반인이 취급하기 어려운 귀한 물건인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돈만 있으면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아티팩트와 달리, 성유물은 성직자가 아니면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특수한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외부로의 유출이 금지되어 있기에, 저렇게 일반인의 손에 성유물이 들려 있는 것은 명백히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의문을 해소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흉흉한 살기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깡패 놈들에게로 시선을 돌린 알렉스는, 내면의 신성력을 양팔에 집중하며 몸에 힘을 주었다.

파지직.

성법으로 만들어진 빛의 사슬이 썩은 밧줄처럼 간단하게 끊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동일한 속성인 신성력을 상대로, 성기사인 알렉스는 막대한 저항력을 발휘할 수 있다.

평범한 구속 마법보다 오히려 성법에 의한 속박을 벗어나는 것이 그에겐 훨씬 수월했다.

“어엇!?”

“마, 마법이 풀렸다!”

눈앞의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고 이빨을 드러낸 바보들을 상대로, 알렉스는 자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아니, 칼 대신 주먹으로 제압했으니 그래도 일말의 자비는 보여준 것이긴 하겠다.

빠악!

“커억!”

앞을 가로막는 자들의 어깨를 으스러뜨리거나 갈비뼈를 박살 내며 거침없이 나아간 알렉스는, 순식간에 성유물을 들고 있던 깡패 두목의 앞까지 도달했다.

“너. 그 물건을 어디서 얻었지?”

“어, 어엇.”

알렉스는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는 상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깡패 두목의 앞으로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벽이 나타나며 알렉스의 손길을 막아섰다.

‘보호막?’

알렉스의 시선이 깡패 두목의 목으로 향했다.

남자가 쓰기엔 조금 어울리지 않는 형태의 목걸이가, 그의 목에 걸린 채 빛을 뿜어내고 있다.

‘성유물? 잠깐, 이제 보니 한두 개가 아니잖아?’

손목에 달린 팔찌.

지저분한 옷에 어울리지 않는 브로치.

그 외에도 허리춤의 주머니와 품안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의 흔적들.

알렉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자식, 뭐지?’

성직자도 아닌 일반인, 그것도 패거리를 이끌며 깡패 짓이나 하는 놈이 성유물로 전신을 도배하고 있다니.

어느 교구의 성유물 보관소를 털기라도 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라?’

생각의 흐름이 거기까지 도달한 알렉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농담처럼 떠올린 생각이지만 그게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이따위 패거리가 신전을 털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만약 비어 있는 신전이었다면?

성전의 원인이 된 암흑교의 준동.

암흑교도들이 날뛰던 당시 기존의 동부 교구들은 철저히 준비된 놈들의 계획에 의해, 간신히 탈출한 소수의 생존자만을 남기고 깡그리 몰살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성전의 승리로 동부의 땅은 되찾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동부 교구들이 축적해 온 수많은 자료와 재산들이 유실되었다.

‘그것들은 전부 암흑교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일부는 평범한 일반인의 손에 흘러 들어 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짐작이 사실이라면 교단의 재산을 되찾아야 했다.

물론 교단에 대한 충성심 때문은 아니었다.

‘내 영토에서 되찾은 재물이라면 내가 날름 먹어도 탈이 없을 거 아냐?’

영지민을 착복해 재산을 쌓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아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인물은 또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지 않나.

‘이거 잘하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걸지도?’

알렉스의 눈에 비친 깡패 두목이, 갑자기 화려하게 치장된 보물 상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