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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39화 (139/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39화

동부의 영주(5)

“에른가스트의 가보, 기억하는가?”

“공간전이 능력이 담긴 팔찌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연구를 하신다고 가져가셨죠.”

“그 아티팩트에 담긴 술식을 연구하고 파악한 끝에, 자네의 방패에 조금 더 고차원적인 기능을 추가할 수 있었다네!”

“오?”

자신만만하게 떠드는 슈테판의 설명을 들으며 알렉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원래도 장비 욕심이 많았던 그이기에, 더 좋은 방패를 얻게 되었다는 말에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방패를 던진 후에 제가 원하는 타이밍에 전이를 발동할 수 있다는 거군요?”

“바로 그거지! 이름을 붙이자면 앱솔루트 리콜이라고 해야 할까?”

리콜 마법은 던진 물건을 다시 손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마법으로, 알렉스는 방패에 그런 기능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리라 여긴 적이 있었다.

다만 방패가 장애물에 걸리거나 어떠한 방해에 의해 멈춰지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직접 회수를 해야만 할 텐데.

슈테판의 말대로라면 평범한 리콜이 아닌 공간이동의 술식이 섞여 개량된 마법을 통해, 어떤 순간에도 방패가 알렉스의 손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다만 공간 자체에 간섭하는 방해 마법에 묶이는 경우까진 어쩔 수 없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절대적인 회수기능은 아니긴 하다네.”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함부로 절대란 말을 입에 담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기능입니다.”

“흐허허! 사람이 아닌 물체를 대상으로 지정하려 하니, 생각보다 술식의 난이도가 내려가더군. 덕분에 빠르게 연구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지. 물론 그래도 나 정도가 아니었다면-”

자랑을 늘어놓는 슈테판의 모습에, 알렉스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방패를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외부로 나가 주변 정리를 할 생각이었으니, 성능을 실험해 보기도 좋은 타이밍이었다.

“따로 뭔가 주의할 점이 있습니까? 사용횟수의 제한이라던가, 아티팩트 특유의 제약이 있을 텐데요.”

“으음. 사실 그만한 마법을 아티팩트 자체의 마력만으로 구현하기란 매우 어렵다네. 그래서 한번 리콜이 발동될 때마다 마력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

“엥? 그럼 결국 한 번밖에 쓸 수 없다는 말이잖습니까?”

“크흠. 사용하고 나면 내게 다시 가져오게. 마력을 충전하는 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니.”

마법사가 아닌 자신은 아티팩트에 마력충전을 할 수단이 없다.

기능은 마음에 들지만, 고작 일회용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진 알렉스가 눈에 힘을 주며 쳐다보자, 슈테판은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신성력으로 사용하는 성유물이었다면 내가 바로 충전할 수 있으니 완벽했을 텐데. 하아…….’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그래도 필요할 때 한 번이나마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는 수밖에.

무장까지 온전히 마친 알렉스는, 외출 준비의 마지막 완성을 위해 이사벨을 찾아갔다.

영토 주변에서 튀어나오는 마수들을 제거하는 일이야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단짝인 그녀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앗! 당연히 따라가지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며칠 정도 영지 인근을 순찰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이사벨은 화색을 띠며 그를 따라나섰다.

알렉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이사벨도 그를 도와 여러 일들을 처리하는 영지의 주요 인사 중 하나다.

아직 혼인식을 올리진 않았지만 사실상 주위에선 이미 영지의 안주인으로 대해지며, 알렉스가 자리를 비울 때면 영주대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이기도 했다.

그런 이사벨까지 이리 데리고 나가게 되면 헥터가 고생해야할 일이 더 늘어나게 되겠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나.

“이렇게 같이 나가는 것도 꽤 오랜만인 것 같군요.”

“시간으로 따지면 아주 오래된 건 아니지만, 최근에는 계속 서류에만 파묻혀 살았으니 말입니다.”

웃으며 대답한 알렉스는 나란히 말을 몰아 옆에 선 이사벨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요즘은 어째 볼 때마다 더 예뻐지는 것 같네.’

동부로 넘어오고 나서 몇 달.

그사이 해가 바뀌어 두 사람의 나이는 한 살씩 올라갔고, 이사벨의 미모는 한층 더 화사해졌다.

‘……결혼도 하긴 해야 하는데.’

알렉스는 아직 이사벨과 정식으로 혼인식을 올리진 않았다.

본인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기 보단, 영지의 일이 워낙 바쁘고 상황이 안 좋았던 탓이다.

이전에는 자신이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이사벨과의 관계에 생각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런 머리 아픈 고민을 굳이 해야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이곳의 삶에 익숙해져 오히려 현대의 기억이 한낱 꿈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니, 이것저것 따질 거 없이 그냥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제는 이사벨이 아닌 다른 누구를 생각할 수도 없고. 영지의 상황이 조금 더 안정되면 확실하게 날을 잡던가 해야겠어.’

“……알렉스?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리 게슴츠레한 눈으로 저를 보고 있습니까?”

생각에 깊이 잠겨있던 알렉스는, 이사벨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풀어진 얼굴에 힘을 주었다.

“허음! 이사벨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깐 넋을 잃었나 봅니다.”

“……으읏.”

이런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도 매번 금세 귓불이 붉어지는 순진한 이사벨의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며, 알렉스는 자신의 영토 주변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영주성을 떠났다.

* * *

꾸어어억!

피부가 녹아내린 것처럼 흉측한 외형을 지닌 거대한 사슴 마수를 쓰러뜨린 알렉스는, 시체를 향해 팔을 뻗어 손바닥을 쭉 펼쳤다.

그러자 마수의 목뼈를 깨부수고 틀어박혔던 알렉스의 방패가, 공간을 넘어 순식간에 되돌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군. 여기까진 참 마음에 드는데.”

슈테판이 개조해준 방패의 새 기능은 알렉스가 원하던 조건에 완벽히 부합했다.

일회용이나 마찬가지라는 유일한 단점만 빼면 말이다.

‘마력충전을 해줄 수 있는 마법사가 없으면 다시 쓸 수가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만약 마력 대신 신성력으로 기능을 발동할 수 있다면 전투방식에 큰 변화를 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아쉬웠다.

“이제 이 근처에는 더 이상 마수가 없는 것 같군요. 딱히 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알렉스와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수를 토벌하던 이사벨이, 아쉬움에 몸부림치고 있는 그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그래요? 그럼 이 근방은 정리가 끝났으니,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야겠군요.”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할 시간이니, 오늘은 이곳에 있는 마을에서 머무는 게 낫지 않습니까?”

“하긴. 그럽시다.”

하늘에서 슬금슬금 내려오고 있는 태양을 힐끔 쳐다본 알렉스는, 이사벨의 의견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가장 가까이 위치한 마을을 찾아 움직였다.

영지 외곽부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촌락(Village) 규모의 작은 마을이 대부분이지만, 멀지 않은 곳에 그나마 소도시(Town) 규모의 마을이 있어 하룻밤 쉬었다 가기에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영주성이 위치한 루발랑 같은 대도시(City)와 비교하면 당연히 수준이 떨어지지만, 제대로 된 여관 하나 없는 촌락에서 머무는 것보단 그나마 낫다.

“정지! 신원을 밝히시오!”

두 사람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긴장감을 한껏 드러내며 창을 들이댄다.

‘으음?’

재건에 힘쓰고는 있지만 아직 여행자가 많이 돌아다닐 만큼 동부의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보니, 낯선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경비병들의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아, 알렉스는 살짝 의문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 몰라? 내 얼굴 정도는 알아봐야지?”

“그게 무, 어엇! 추웅-!”

“시, 실례했습니다, 영주님!”

뜬구름 잡는 듯한 알렉스의 말에 인상을 쓰던 경비들이, 이윽고 그의 정체를 알아보고 다급히 경례를 올렸다.

알렉스는 가볍게 턱을 끄덕여 인사를 받고는 그들에게 편한 자세를 취하라 손짓으로 알렸다.

다른 영주들처럼 화려한 마차에 시종들을 주렁주렁 달고 높은 신분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고 다니질 않으니, 병사들이 한눈에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질책할 생각은 없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나? 어째 이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날이 선 느낌이군.”

“아, 아닙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흐음.”

병사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알렉스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그들을 지나쳤다.

별말 없이 마을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던 병사들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떠올랐다.

“알렉스. 바로 여관으로 갈 겁니까?”

“잠깐 좀 돌아보죠.”

마을 내부로 들어선 알렉스는 곧장 휴식을 취하러 가는 대신, 길거리를 따라 천천히 말을 몰아 이동했다.

조금 전 머뭇거리던 병사들의 표정에서 약간의 두려움과 부끄러움 등의 감정을 읽었기에, 마을 내에 뭔가 사건이 있었으리란 의심이 들었기 때문.

물론 정말로 별일이 없었을 수도 있기에, 굳이 그 자리에서 윽박지르며 추궁해 묻진 않았다.

‘뭔가 수상한 점이 있으면 눈에 띄겠지.’

어차피 인구수가 많지도 않은 타운급에 불과한 마을이니, 내부를 전부 돌아보는 데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을 안을 둘러보던 알렉스의 눈에, 신경 쓰이는 광경 하나가 들어왔다.

“이놈들! 사고 칠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

“어이쿠.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슈? 우리가 뭘 어쨌다고?”

“분명 무기를 소지하고 돌아다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거참. 그래서 무기는 다 치웠잖수? 아, 이거? 이건 무기가 아니라 지팡이요, 지팡이! 내가 요즘 무릎이 시원찮아서, 흐흐.”

“끄응…… 네놈들 패거리는 우리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똑바로 행동하도록!”

“예이예이. 그러시든지. 클클!”

순찰을 도는 경비병들로 보이는 병사들이, 어떤 패거리들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저놈들은 뭐야?’

마을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인원을 뽑아 자경단을 운영하는 촌락 규모와 달리, 그래도 타운급의 마을은 그 땅을 다스리는 영주의 병사들이 치안을 담당한다.

똑같이 마을의 경비라고 해도, 가진 권위의 무게감이 전혀 다른 것이다.

평범한 주민이라면 감히 영주의 병사들에게 대들거나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해야 정상이다.

‘일거리를 찾아온 떠돌이 용병들인가?’

험상궂은 외모에 사나운 기세.

날붙이는 보이지 않지만 허리춤에 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 하나씩 차고 있는 것이, 적어도 선량한 주민으로 보이진 않았다.

용병이거나 도적놈이거나.

대충 그런 부류의 인간들로 보인다.

경비병들과 잠시 대치하다가 멀어져가는 패거리를 지켜보던 알렉스는, 떨떠름한 얼굴로 저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어이.”

“엇? 기사…… 헉! 여, 영주님!”

“쉿. 시끄럽게 소리 지르지 말고.”

“죄, 죄송합니다.”

“그래. 잠깐 이야기 좀 하지.”

병사들에게 말을 건 알렉스는 방금 전의 패거리들에 대해 물어보았고, 곧 그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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