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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36화 (136/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36화

동부의 영주(2)

“캡틴 헥터.”

“옛!”

“일을 참…… 열심히 했군.”

“가신 된 이로서 마스터의 지시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용병대장 헥터와 재회한 알렉스는, 몇 달 사이에 완전히 달라진 헥터 용병대의 규모를 확인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전에 헤어질 당시엔 23명이었지?’

헥터의 곁에 모여 있는 이들의 수는 70여 명.

고작 두어 달 사이에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용병대의 인원을 늘리는 것 자체는 사실 간단한 일이긴 하다.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해 칼을 든 자들이니, 금전적인 대우만 짭짤하게 해준다고 하면 사람이 몰리는 것이 당연했다.

알렉스와 이사벨의 투자금도 하층민들을 기준으로 치면 제법 상당한 금액이었으니, 사람을 모으는 것 자체는 누가 나섰어도 어렵지 않았을 터다.

문제는 그렇게 모은 용병들의 수준.

알렉스가 원한 건 그저 머릿수만 채우는 허수아비들이 아니라, 영지의 병사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력과 인성을 갖춘 용병들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 노련한 용병대장이라 자부하는 헥터의 능력을 한번 믿어보고 맡긴 것이었는데.

‘나쁘지 않은데?’

근육의 발달도와 서 있는 자세,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세 등.

검술 스킬을 마스터하고 레벨이 높아지며 본신의 능력치가 꽤 상승한 덕분인지, 알렉스는 짧은 관찰로도 타인의 무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거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

알렉스가 살펴본 바로는 용병대원들 중에 영지의 정규군으로 쓰기 부족해 보이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들 중 일부는 풍기는 기운이 용병 수준을 뛰어넘어, 견습기사 정도는 어떻게 비벼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실력자들도 꽤 있었다.

‘인성이야 바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 부분은 차차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며 골라낸다 치고. 일단 실력은 다들 합격점으로 보이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의문이긴 했다.

거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서로 힘을 겨루고 서열을 정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다 보니 용병대를 이끄는 대장은 보통 그들 중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니기 마련.

한데 숙련된 용병대장이라 이런저런 경험은 많을지언정, 무력은 고만고만한 수준인 헥터의 밑으로 들어온 실력자가 저리 많다니?

딱 봐도 헥터보다 강해 보이는 느낌이 드는 자가 열 명을 가뿐히 넘어 보여, 알렉스는 만족감과 동시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용병대장이 반드시 무리에서 최고의 무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신뢰 없이는 자기보다 강한 부하들을 통제하긴 어려울 텐데.

고작 두어 달 사이에 받아들인 신입들과 벌써부터 진한 유대감이 있을 리도 없지 않은가.

실력과 별개로 헥터의 수완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일까?

“저, 알렉스 님.”

“이제부터는 영주라 부르도록 하게.”

“아! 드디어 전에 말씀하신 일들의 정리가 끝난 것입니까?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럼 오늘 방문하신 것도 동부로……?”

“그래. 이제 동부로 떠나 영지를 관리하게 되었네.”

“제가 타이밍을 나쁘지 않게 맞췄군요! 너무 급하게 일을 벌인 건 아닌지 걱정했었습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는 헥터를 보며, 알렉스는 그가 무언가 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 겉보기엔 일단 용병대의 증원은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낸 것 같은데.”

“아, 그것이…… 사실 여기 있는 인원이 용병대의 전부가 아닙니다.”

“……응?”

이어지는 헥터의 말에, 알렉스의 눈에 진한 의문의 빛이 서렸다.

“뭐? 180명?”

“예, 아마…… 조금 더 늘었을지도 모릅니다.”

알렉스는 헥터의 설명을 들으며 황당함을 느꼈다.

너무 많은 수의 용병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경계를 사기 때문에 흩어져 있었을 뿐, 실제로는 지금보다 100명 이상 더 많은 대원들이 다른 곳에 퍼져 있다고 한다.

하긴 세 자릿수의 용병대가 도시 내에 주둔해 있으면 영지의 수비군이 경계심을 보일 만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아까부터 근처를 돌아다니며 묘한 시선을 보내는 영지병들이 자꾸 눈에 띄긴 했다.

‘70명의 무장병력이 돌아다니는 것도 영주의 입장에선 살짝 거슬리는 기분일 텐데, 근 200명에 가까운 병력이면 불안감을 느낄 만도 하지.’

그 정도면 용병길드가 활성화되어 있는 도시에서도, 붙박이로 활동하는 전체 용병의 머릿수에 가까운 숫자다.

국가 단위의 전쟁이 발발한 지역이 아니고서야, 일개 용병대가 100명이 넘는 인원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은 4~50명만 되어도 대형 용병대로 취급한다.

그만한 인력이 나서서 처리할만한 의뢰가 매우 드물고, 자잘한 의뢰들로는 단가가 맞지 않아 용병대의 운영 자체가 어렵기 때문.

작은 건이라도 인원을 나눠 여러 의뢰를 처리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명 수준이 떨어지는 이 세상에서는 일개 용병대가 그만한 행정력을 갖추기도 쉽지 않다.

통신이나 물류 등의 분야와 관련된 발전이 미개하다 보니, 조직을 세분화하여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간 관리는커녕 체계 자체가 무너지기 십상이다.

‘180여 명이면 내가 투자한 돈으로는 숙식만 해결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급여는? 그만한 몸집이 어떻게 유지가 되는 거지? 이 근방의 일감이 그렇게 많은가?’

그에 대한 답은 꽤 단순한 내용이었다.

“맡겨주신 자금은 다 떨어졌지만, 용병대의 유지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정확히는 방금까진 조금 아슬아슬했습니다만, 영주님이 오셨으니 이제 다 해결이 되었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모은 인원들은 전부 동부 출신의 용병들입니다.”

“으음?”

헥터의 설명을 들은 알렉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암흑교가 국가 단위로 사람들을 조종하며 교단과 대적하려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부의 땅과 주민들이 100퍼센트 전부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던 것은 아니다.

암흑교의 수작으로 전복된 국가들과 교단간의 성전으로 동부는 초토화되었지만, 그와 무관하게 혼란스러운 전쟁터가 된 고향을 떠나 살아남은 동부인의 수도 적지는 않았다.

“특히 평범한 난민들이 아니라, 그쪽에서도 원래 용병 일을 생업으로 삼는 부족들을 찾아 협상을…….”

“흐음.

동부는 원래부터 문화 및 기술 수준이 다른 지역들보다 낙후된 지방으로, 국가의 테두리에 끼지 않고 소규모의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소수민족의 수가 제법 많았다.

그런 이들 중에는 아예 마을의 남자들이 부족민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단체로 용병이 되어, 타 지역으로 떠나 돈을 버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지요. 난민들 중엔 상황이 나아지면 반드시 고향 땅으로 돌아가겠다며 벼르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과연. 그쪽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람을 끌어들였군.”

“예. 마침 전쟁이 곧 종식되리란 소문도 돌고 있었기에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급여조건 따윈 따지지 않고 투신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모은 동부출신 용병들의 고향이 전부 알렉스의 영토와 가까운 곳일 리는 없었지만, 지금은 동부 대부분의 땅들이 대규모의 인력을 투입한 복구 작업 없이는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해진 상황.

고향과 인접한 곳이 아니라도 일단 그를 따라 동부의 어디라도 정착해, 후일을 도모하거나 아예 부족민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땅을 만들자 생각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영주인 알렉스가 교단 소속이자 성전의 영웅이란 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 한몫했다.

어차피 수복될 동부의 땅들이 대부분 타 지역 국가들의 식민지가 될 테니, 그나마 교단 소속인 알렉스의 영지에선 다른 국가에서 넘어온 이들과의 차별대우가 덜할 것이란 생각을 가진 것이다.

“그…… 사실 여기 있는 신입들은 동부 출신이라 해도 고향이 제각각이지만, 나머지 100여 명의 대원들은 전부 하나의 부족으로 이루어진 용병집단입니다. 성전이 발발하자 본인들의 가족과 함께 동부를 떠나왔다고 하더군요.”

“호오?”

헥터의 설명을 자세히 듣던 알렉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을 뚫고 중부로 이주한 이들이라면, 꽤 수준 높은 무력을 갖췄을 것이란 기대가 들었다.

“뜻이 맞아떨어지기도 했고 놓치기엔 아까운 전력들이라 회유해 두긴 했습니다만, 하나같이 실력이 대단한지라 부끄럽게도 제 통제에 따른다고 말하긴 어려운 자들입니다.”

“그들이 뭔가 사고를 친 게 있나?”

“아, 그런 건 아닙니다. 스스로 간의 규율이 엄격한 자들이라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습니다. 다만 얼마 전 성전의 종결이 선포되고 나서, 동부로 떠나는 시기를 명확히 알려달라며 성화를 부리긴 했습지요.”

“때마침 내가 왔으니 그건 상관없겠군.”

“그렇습니다.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아마 부족민들을 위한 땅을 요구하긴 할 텐데…… 아! 물론 영지 내의 모든 권한은 영주님의 소유입니다만, 혹여나 다른 주민들에게 간섭을 받을 것을 우려해 약간의 권리를-”

말이 길어지는 헥터를 보며 알렉스는 손을 저어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만. 무슨 소리인지 알겠네. 그쯤은 내가 그자들과 만나보고 알아서 정리하도록 하지.”

“옙, 영주님. 주제넘게 나서서 죄송합니다.”

용병 100여명에 가족까지 전부 더한다고 해봐야 총원은 대략 500명 남짓으로 추정된다.

그 정도 규모면 그냥 그들끼리 마을 하나를 이루도록 땅을 배정해 주고, 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교단에서 넘겨받은 영토는 그가 홀로 관리하기 벅찰 정도로 충분히 넓었기에.

‘가족들을 데리고 오면 그 사람들도 결국 다 내 영지의 노동력이 되는 거지. 내가 무슨 악덕 영주들처럼 혹독하게 세금을 뽑아먹을 것도 아니니, 일정한 땅과 권리를 내어주고 병사와 주민들을 얻을 수 있다면 아주 괜찮은 조건이야.’

봉급을 받고 봉사하는 것이 아닌 땅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것이라는 용병부족.

귀족의 힘은 소유한 땅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다른 영주들이었다면 건방진 소리를 한다며 용병부족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작은 영지의 영주라면 기사나 준귀족쯤 되는 가신에게 봉토를 내리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인데, 감히 용병 따위가 그런 조건으로 협상을 요청하는 것이 불쾌해하지 않을 귀족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선 충분히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이야기로 여겨졌기에, 알렉스는 이에 대해선 딱히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물론 그 용병 부족의 수준이 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이런 이야기도 다 의미 없는 소리가 될 것이었다.

알렉스는 헥터의 안내를 받아, 그가 내내 언급한 용병부족의 사람들을 대면했다.

그리고 이내 커다란 만족감을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대박인데?’

아무래도 헥터를 휘하로 거두고 병사로 쓸 용병들의 모집을 맡긴 것은, 제법 성공적인 투자였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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