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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34화 (134/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34화

에른가스트(5)

흉흉한 살기를 흘리며 다가오는 기사들을 지켜보던 알렉스는, 문득 자신이 굳이 적들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선두에 선 기사를 향해, 한 손에 들린 방패를 냅다 집어 던진다.

[실드 부메랑]

휘리릭.

스킬의 효과로 위력에 보정이 더해진 방패가, 바람을 가르며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설마 상대가 방패를 던질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적들은 알렉스의 기행에 한 번 놀랐고, 이어서 투석기로 탄환을 쏘아 보낸 것 같은 그 무지막지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콰드득!

“커흐윽!?”

이십 미터가량의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비행한 방패가, 기사의 몸에 부딪혀 박살 났다.

목재질에 금속을 덧씌워 만든 병사들의 방패는 그럭저럭 튼튼하긴 했지만, 통짜 쇳덩어리인 판금갑옷과의 충돌을 견디기엔 내구성이 부족했다.

그러나 판금갑옷의 방어력을 완전히 뚫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돌의 데미지가 완벽하게 상쇄된 것도 아니었다.

눈에 띄게 우그러진 흉갑부가 그것을 증명했다.

기사의 갑옷은 갈비뼈 몇 개쯤은 박살이 났을 거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손상이 심각해 보였다.

이윽고 짐작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듯, 방패에 맞고 튕겨져 나간 기사는 바닥에 쓰러진 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내장을 뒤흔들 정도로 깊숙이 파고드는 충격에 결국 기절한 모양이었다.

“어엇!? 무슨 말도 안 되는!”

“방패를 던져서 어떻게 이런 위력이…….”

인간의 근력으로 판금갑옷을 타격해 손상시키는 것은 원래는 거의 불가능에 일이었기에, 당황한 기사들은 안색이 급변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완전무장한 기사 일곱이서 갑옷을 입지 않은 기사 둘을 제압하는 일이니, 다들 방금까지는 전혀 어렵지 않은 싸움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상대가 저렇게 전신갑주를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니, 대번에 경각심이 차오르며 섬뜩한 긴장감이 기사들의 어깨를 내리누른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갑옷의 수리비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풀 플레이트 아머가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니고, 한 번 망가지면 수리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표적들이 그렇게 가만히 있어주면 나야 고맙지.’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무력에 대한 경계와 주머니 사정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 잠시 멈춰선 기사들을 보며, 알렉스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바닥에 떨어진 다른 방패를 주워들었다.

아직 주변에 방패는 많이 남아 있다.

알렉스는 쓰러져 있는 병사들의 사이를 뛰어다니며, 손에 잡히는 대로 방패를 집어 들어 기사들을 향해 던졌다.

“이런! 막지 말고 피, 꺼억!”

“뭐얏!? 방금 방패가 휘어져서 틀어박혔어!”

“제기랄! 다들 눈치 보지 말고 달려들엇!”

고작 20미터의 거리를 두었을 뿐이기에 기사들은 금방 알렉스에게 달라붙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실드 부메랑에 당해 쓰러진 기사가 4명이나 되었고, 그마저도 남은 3명의 기사들은 알렉스와 검을 섞을 기회조차 받지 못하였다.

부아악-! 콰앙!

흉악한 기세를 발하며 휘둘러진 핼버드가, 달려드는 기사 한 명을 때려 저 멀리로 날려 보냈다.

이사벨이 가진 무시무시한 파괴력에 비하면 그나마 알렉스의 방패투척은 애교 수준이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허공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던 기사는, 이내 바닥에 떨어져 미동조차 하지 못하고 널브러졌다.

“어…… 이사벨. 가능하면 살생은 피하는 편이…….”

“앗, 그, 그냥 기절했을 뿐일 겁니다.”

그렇게 말한 이사벨은 남은 2명의 기사를 상대로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며 무기를 마저 휘둘렀다.

공작가의 기사들이 모두 처리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고작 1분 남짓이었다.

‘이건 뭐, 너무 수준 차이가 나서 미안할 지경이네.’

마스터 레벨의 검술을 뽐낼 기회조차 없었다.

알렉스는 검을 집어넣고 이제는 반대편에 서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 페도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 무, 어엇?”

너무 순식간에 기사들이 당해버린 탓에, 페도놈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깜박거리며 넋을 잃고 있었다.

“뭐 더 믿는 구석이 있으신가? 그러고 있다가 잡히면 안 봐줄 건데?”

“으, 으악!”

걸음을 옮기며 내뱉어진 알렉스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페도놈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간전이 아티팩트는 더 못 쓰나 보군? 하긴 아무리 뛰어난 보물이라도, 이렇게 단기간에 몇 번씩이나 쓸 수 있는 물건일 리는 없겠지.’

혹시 뭔가 또 다른 수단이 있을까 싶어 잠시 페도놈을 지켜보던 알렉스는, 그에게 두 다리 외에 다른 도주수단이 없음을 확인하고 느긋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방패 하나를 주워든 알렉스는 그대로 어깨를 돌려 팔을 휘둘렀다.

단련된 기사가 아닌 페도놈의 움직임은 분명 사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느릿느릿했고, 스킬의 보정 덕분에 위력과 명중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알렉스의 방패투척은 당연히 목표물을 놓치지 않았다.

“끄아악-!”

갑옷도 우그러뜨리는 위력을 인간의 육신이 버텨낼 리가 없다.

날아간 방패는 알렉스가 노렸던 페도놈의 다리 한쪽을 정확히 파고들었고, 다리가 절단된 페도놈은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자, 공작님. 우리 할 말이 좀 많지 않습니까?”

“으으으…….”

“어허!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렇게 누워계시면 쓰나? 고귀한 신분이니 배울 만큼 배우셨을 텐데. 똑바로 일어나셔야지?”

쓰러진 페도놈에게 다가간 알렉스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뿌직.

“끄악! 그, 그만! 제발…….”

“어라? 이러려던 건 아닌데, 미안하게 되었네.”

손에 너무 강하게 힘을 줬는지, 페도놈의 몸이 일으켜지는 대신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 나왔다.

이사벨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간 올린 레벨로 알렉스의 근력 수치도 이제는 탈인간이라 부를 수준이 되었기에, 평범한 일반인을 상대로는 힘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노익장을 자랑하는 어느 대전격투게임의 나이든 무투가 같은 헤어스타일이 된 페도놈을 내려다보던 알렉스는, 이내 뽑힌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렇게 두면 너무 보기 흉하니까, 그냥 나머지도 마저 뽑읍시다.”

뿌직. 뿌지짓.

“끄아악!”

휑하게 비어버린 정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알렉스는 페도놈의 머리카락을 전부 잡아 뜯어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음. 한결 보기 좋네. 내가 이렇게 친절한 사람입니다. 공작 각하.”

“크흐, 흐으으…… 이 미친놈…….”

“오. 아직도 험한 말이 나오다니. 보기보다 제법 뚝심이 있으셔.”

알렉스는 페도놈을 향해 씩 웃어 보이며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판에 역으로 사죄하라는 둥 개소리나 지껄이면, 듣는 사람이 화가 나겠습니까? 안 나겠습니까?”

“끄으! 빌어먹을……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흠. 반성의 기미가 없으시군. 자, 하나만 물어봅시다. 듣자 하니 아주 질 나쁜 성벽을 갖고 계신 모양이던데, 그 잘나신 신분을 이용해 여태까지 아이들을 몇이나 건드렸습니까?”

“…….”

고통에 몸부림치던 페도놈은 알렉스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피했다.

‘그래 뭐, 한둘이 아니겠지. X같은 새끼.’

현대에서도 성범죄는 재범률이 높다.

하물며 여기는 인권이 바닥을 기는 세상이 아닌가.

대귀족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그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무슨 짓들을 해왔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밟아 죽여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지만, 알렉스는 분노를 꾹 눌러 담았다.

페도놈에 대한 처분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게 아니라, 이사벨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마냥 두렵고 피해야만 하는 존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참으로 보잘것없는 인간일 뿐이군요.”

뒤따라온 이사벨이 알렉스의 곁에 서서 페도놈과 얼굴을 마주했다.

“으으, 이사벨! 이런 짓을 벌이고도, 네년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몸에 밴 것처럼 협박부터 내뱉는 모습에 알렉스의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이사벨은 미동조차 없이 담담한 태도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사벨.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이건 살아 있어 봐야 타인에게 해악만 끼칠 쓰레기네요.”

귀족 살해는 너무 일이 커질 수 있기에 처음에는 페도놈을 죽이진 않을 생각이었으나, 알렉스는 이사벨이 원한다면 녀석을 처리하고 어떻게든 뒷감당을 해주기로 마음을 바꿨다.

하지만 이사벨은 고개를 저으며 알렉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까진 없었습니다. 다만 나름의 복수는 해야겠군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페도놈의 앞에 선 이사벨이 다리를 뒤로 젖혔다.

알렉스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작지만 거력을 담은 그녀의 발이, 페도놈의 고간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콰드득!

“꺼헉……!”

이사벨의 괴력이 담긴 발길질이다.

골반이 아예 으스러진 페도놈은 눈을 까뒤집고 경련하더니, 이윽고 정신을 잃었는지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었다.

‘아, 저건 무조건 터졌네.’

소리만 들어도 결과를 알 만했다.

하반신이 아예 뭉개졌으니, 아마 이중적인 의미로 다시는 서지 못할 것이다.

‘그래 봐야 워낙에 힘 있는 가문이니까, 고위사제들의 치료를 받으면 거기도 재생시킬 수 있긴 하겠다만. 그래도 일시적으로나마 대머리에 고자가 된 삶을 살아 보시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알렉스는 기절한 페도놈의 옷자락을 뜯어, 그의 잘린 다리를 동여매 지혈했다.

이어서 치유의 손길을 발휘해 그가 당장 죽지 않을 정도의 치료도 해주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지만 이사벨이 그를 살려주기로 결정했으니, 일단은 과다출혈로 죽지 않도록 숨은 붙여놔야 했다.

‘이 정도면 나도 성인군자 소리를 들을 만하네. 어쩌면 진짜로 신의 사도가 맞을지도? 아, 치료비는 조금 챙겨볼까.’

알렉스는 페도놈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팔찌를 슬쩍 빼서 품에 넣었다.

공간전이의 마법이 깃든 아티팩트이니, 분명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쓰러져 있는 기사들 중에도 혹시 목숨이 간당간당한 부상을 입은 이가 있는지 살펴 봐준 후.

알렉스는 이사벨에게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이사벨이 알렉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 할 일은 명확하네요. 얼른 튑시다.”

“……네. 동부로 떠나면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로 돌아올 수 없게 되어버렸군요.”

“어라? 설마 저를 탓하는 건 아니겠죠?”

“아하핫! 아닙니다. 저를 위해 나서주셔서 고맙습니다.”

너스레를 떠는 알렉스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 이사벨은, 생기를 되찾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할 일이 더 있습니다.”

“으음?”

“외조부님을 이대로 두고 갈 순 없습니다. 저 때문에 큰 곤욕을 겪게 되실 텐데…….”

“그건 그러네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슈테판의 저택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든 그를 깨우고 서둘러 사정을 설명했다.

“이런 십헐! 아주 X 됐구나!”

오랜 연륜으로 다져진 인물답게 슈테판은 비몽사몽한 와중에도 자신의 처지를 완벽하게 이해했고, 지금 당장 공작의 영지를 떠나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바로 움직여야 합니다.”

“5분, 아니, 7분만 기다려다오. 필요한 물품을 챙겨 나오마.”

마법사인 슈테판은 연구실이 포함된 자신의 저택에 꽤 많은 물품과 자료들을 쌓아두고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을 챙길 시간이 없기에 많은 부분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큰 아쉬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빠르게 자신의 짐을 꾸리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마치 예전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사람처럼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되었다. 이제 가자꾸나.”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아 캄캄해진 밤.

병사들이 뛰어다니고 여기저기서 고성이 들려오는 내성을 빠져나와, 세 사람은 말을 달려 잽싸게 공작령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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