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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23화 (123/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23화

중부지역(4)

비행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여러모로 까다롭다.

머리 위에서 가해지는 공격이란 건 평소에는 경험할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

다만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나 통용되는 말이지, 알렉스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소리였다.

‘하피라면 방패술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적이긴 한데.’

날카롭지만 무게감이 부족한 하피의 공격으로는 알렉스의 방어를 뚫을 수 없고, 그가 원하지 않는 이상 한 걸음도 움직이게 만들 수 없을 터였다.

굳건한 태세의 넉백 저항을 무시하려면, 하피 백 마리쯤을 줄에 연결해 동시에 들어 올리려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제는 굳건한 태세와 리플렉트 실드의 조합만으로도,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절로 처리가 될 정도.

실드 마스터리에 투자함으로 전반적인 방패술 스킬들의 효과가 더 좋아졌기에, 정말 마음먹고 방어에 전념한다면 하피 몇 마리 따위는 털끝만큼도 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건 너무 시간이 걸리니까.’

방패 대신 검에 정신을 집중한다.

알렉스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며 날아드는 하피들과의 간격을 쟀다.

좌로 한 걸음, 그리고 사선 베기.

다시 좌로 반걸음을 움직이며 올려 베기, 그대로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찌르기.

1.5초 남짓한 짧은 순간에 3마리의 하피가 피를 쏟으며 지면에 몸을 처박는다.

힘을 많이 실을 필요도 없다.

하늘에서 내리꽂히듯 공습해 오는 하피들의 비행경로에 칼날을 가져다 대기만 해도, 녀석들의 속도가 역으로 스스로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무기가 되어준다.

원래 서 있던 자리에서 반경 1미터를 벗어나지 않고, 알렉스는 스트레칭을 하듯이 가벼운 동작만으로 자신을 덮쳐오는 하피들을 모조리 베어 넘겼다.

검술 스킬을 한계까지 투자한 알렉스에겐 꽤나 간단한 일이었다.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하피 7마리가 알렉스의 뒤편에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하피 무리는 급히 타겟을 변경하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나머지 두 사람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하피들에겐 안타깝게도 그쪽이라고 해서 만만한 상대인 것은 아니었다.

“쓰버어얼! 그래, 덤벼라!”

두려움을 감추고자 용병 사내는 하피들에게 검을 겨누며 악을 질렀다.

하지만 힘 있게 앞을 향했던 검은 이내 목표를 잃게 되었고, 남자는 어정쩡한 자세로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이사벨의 한 수로 상황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

익시드에 돌입한 이사벨은 폴액스로 바닥을 깊숙이 내리찍고는, 삽으로 흙을 퍼 올리듯 창대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이야아앗-!”

퍼버벅!

흙더미가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날아드는 하피 무리를 뒤덮었다.

작은 자갈과 모래알갱이들이 이사벨의 괴력에 의해 강력한 운동에너지를 품고 하피들의 온몸을 타격했다.

산탄총에서 뿜어져 나온 버드샷에 맞은 새 떼처럼.

하피들은 이사벨에게 가까이 접근하기도 전에 전신에 구멍이 뚫리며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교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압도적인 싸움이 끝났다.

순식간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고작 두 마리만 남은 나머지 하피들이, 급하게 선회하며 날아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저것들을 쫓으면 금방 둥지를 찾을 수 있겠군.”

“어엇! 그 말씀이 맞습니다!”

넋을 잃고 두 사람의 활약을 지켜보던 남자가, 알렉스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빠, 빨리 따라가지 않으면 저것들을 놓치겠습니다!”

호들갑을 떠는 남자의 말에, 알렉스는 검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음. 이사벨 경. 저는 먼저 가고 있을 테니 그 사람을 부탁합니다.”

“네. 금방 뒤따르겠습니다.”

알렉스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뒤쪽에서 멀뚱히 서 있던 킹의 등 위로 올라탔다.

나무가 울창해 말을 타고 이동하기엔 거치적거리는 게 많아 여태껏 함께 걷고 있었지만, 날아가는 하피를 추격하려면 킹의 속도가 필요하다.

“달려보자.”

히힝!

울음소리를 낸 킹이 알렉스를 태우고 질주했다.

방패로 앞을 가리고 굳건한 태세를 발동한 알렉스는, 자신을 두들기는 나뭇가지들을 전부 몸으로 부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킹이 전력을 다한다면 비행하는 하피를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속력을 낼 수 있지만, 일단은 둥지를 찾아내는 게 목적이기에 알렉스는 적당히 거리를 조절하며 녀석들을 뒤쫓았다.

이윽고 잠깐의 추격 끝에, 알렉스는 하피들의 둥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네? 근데 저건…… 무슨 바오밥나무 같은 건가? 엄청나게 큰데?’

하피들은 주변의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굵고 거대한 고목의 위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높이가 못해도 50미터는 될 것 같다.

현대에도 세쿼이아 또는 레드우드라고 불리는, 수천 년의 수명과 100미터 이상의 크기를 가진 거목들이 존재하긴 한다.

눈앞의 나무는 그것들과 비교하면 비록 길이는 부족하지만, 굵직한 가지들이 옆으로 넓게 퍼져 있어 전체적인 크기는 오히려 더 크고 웅장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조금 포장을 더하자면 판타지에 흔히 등장하는 엘프들의 세계수가 이런 형태가 아닐까 싶다.

‘가지도 빼곡한데 잎까지 수북해서 잘 보이지도 않네. 용병들은 저 안쪽에 있는 건가?’

50미터의 높이란 자신처럼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고서야 사람이 떨어져서 살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니, 저 고목은 그대로도 커다란 감옥이나 마찬가지긴 하겠다.

나무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하피보다 빠르게 움직이진 못할 테니, 도주를 시도해 봐야 금방 다시 붙잡히게 될 것이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활약할 수 있는 게 나 하나뿐인가.’

이사벨의 합류를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다.

그녀가 있다고 해도 나무 위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알렉스 역시 혼자서는 방법이 마땅치 않겠지만, 다행히 그에겐 벽면주행이 가능한 뛰어난 탑승수가 있다.

‘내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람들을 옮기는 수밖에. 물론 그전에 하피들을 먼저 처리해야겠지만.’

숨을 크게 들이마신 알렉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리 오너라! 이 새대가리들아-!”

고함소리가 퍼져 나가고 나서 몇 초 뒤.

푸드드득!

키잇!

여기저기서 홰치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며, 무성한 나뭇잎 사이를 뚫고 하피들이 날아올랐다.

수십 쌍의 눈길이 알렉스에게 꽂힌다.

“어…… 들은 것보다 조금 많네?”

용병 사내가 설명했던 40여 마리보다는 더 많을 거라 짐작하긴 했으나, 둥지에 있는 하피의 수는 예상의 두 배 이상이었다.

앞서 스무 마리가 넘는 하피를 제거했음에도, 눈에 보이는 적의 수는 거의 세 자릿수에 가까웠다.

‘백 마리쯤 되겠는데? 뭐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하피 자체가 알렉스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몬스터가 아니니, 백 마리쯤 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전투에 대한 걱정보다는, 조금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한다.

“이거 원, 눈을 둘 곳이 없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민망해지는 살색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깃털과 갈퀴발이라는 부분만 제외하면 사실상 여성의 나체와 동일한 몸뚱이이니, 몬스터라는 걸 알아도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거, 이쪽은 임자 있는 몸인데, 노출은 좀 가려주면 안 되냐?”

키에엣!

농담처럼 내뱉는 말에 하피들은 괴성으로 답변하며 알렉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런 하렘은 필요 없는데.”

사방에서 덤벼드는 백여 마리의 하피들을 마주하며, 알렉스는 짧은 중얼거림과 동시에 신성력을 방출했다.

[디바인 크로스]

강렬한 빛이 주위를 밝히며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이미 알다시피 신성력으로 가득한 디바인 크로스의 위력은 언데드나 암흑교도 같은 어둠속성을 지닌 존재에겐 매우 치명적이지만, 일반적인 몬스터에게는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기껏해야 표피에 손상을 입히는 1도에서 2도 사이의 심각하지 않은 화상 정도.

그쯤은 인간보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몬스터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흉터도 남지 않고 회복할 수 있는 피해다.

그럼에도 굳이 디바인 크로스를 사용한 것은, 스킬의 발동 시에 방출되는 빛 그 자체를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킈에엑!?

몇 초 동안 주변을 하얗게 물들이는 눈 부신 빛에, 하피들은 앞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일시적인 실명 상태에 빠졌다.

반절 이상의 하피들이 급하게 스스로의 몸에 제동을 걸며 방향을 바꾸려다가, 근처에 있던 동족과 충돌하고는 허우적거리며 밑으로 추락했다.

적들이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상대라면 그다지 의미 있는 상태이상은 아니었겠지만, 공중을 날아다니는 하피들에게는 잠시간의 실명도 꽤 효과적이었다.

“이럇!”

알렉스는 킹을 몰아 주위를 몇 바퀴 빙빙 돌았다.

굳이 무기를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땅 위로 떨어진 하피들은 근 1톤의 중량에 짓밟혀, 순식간에 전투 불능에 빠지거나 목숨을 잃어갔다.

흩뿌려진 깃털이 피로 물들고, 짓이겨진 몸뚱이에서 육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만, 굉장히 효율적인 도살이었다.

그렇게 하피 무리의 반절 가량을 제거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인간. 갖고 싶다!”

“응?”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화려한 색의 날개를 가진 하피가 알렉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피 퀸?’

게임에서도 등장하는 몬스터이기에 금방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피 무리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개체.

일반 하피들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이며 인간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는 지능을 갖췄다.

물론 그래 봤자 레벨로 따지면 70도 되지 않는다.

그냥 준보스 정도의 몬스터로 실력 좋은 상급 기사들의 선에서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기에, 현재의 알렉스에겐 위협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교, 교미! 좋은 씨앗!”

“……거 여왕님이 너무 천박하게 구는 거 아냐?”

혀를 차던 알렉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호흡을 멈췄다.

하피 퀸이 가까워지자 그다지 맡고 싶지 않은 비릿한 향이 물씬 풍겨왔기 때문이었다.

‘쓰읍. 밤나무도 없는데 밤꽃이 만개한 향이 나네.’

어째 다른 하피들보다 늦게 나타났다 했더니, 사로잡은 용병들을 신나게 시식(?)하고 있다가 이제야 등장한 모양이다.

음란한 행위의 흔적이 가득한 모습으로 덮쳐오는 하피 퀸에게 대응하여, 알렉스는 결코 부러지지 않는 성스러운 무기를 곧게 세웠다.

물론 성검 알페리온을 말함이다.

“악취를 풍기는 여자는 매력이 없어!”

몸통을 할퀴어오는 공격을 방패로 막아내고, 알렉스는 검을 찔러 하피 퀸의 복부를 꿰뚫었다.

“캬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하피 퀸의 머리를 방패 모서리로 내려찍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진 상대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많은 동족을 잃고 여왕의 허망한 최후까지 목격한 하피들은, 이내 전의를 상실한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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