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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22화 (122/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22화

중부지역(3)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를 보며, 알렉스는 곤란한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음? 도망친 다른 생존자를 찾는 건 도와줄 수 있지만, 몬스터에게 당했다면…… 부정적인 의견이라 미안하지만 살아 있기는 어렵지 않겠소?”

단순히 몬스터와 싸워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이미 전투가 끝난 시점이면 뭔가 해주기엔 늦은 시기이지 않은가.

몬스터들이 인간들의 전쟁처럼 사람을 포로로 사로잡을 리도 없으니, 전투에서 패했다면 다른 용병들은 다 죽은 목숨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아, 아닙니다! 제가 빠져나올 때쯤엔 놀들의 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으니, 아마 마지막 승자는 하피들이 되었을 겁니다.”

“흐음?”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서 바라보고 있자니, 용병 사내는 추가적인 설명을 늘어놓았다.

“놀과 하피가 협력관계인 게 아니라 저희 용병대가 운 나쁘게 그 사이에 끼었을 뿐이니, 마지막엔 두 세력들이 싸움을 벌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쪽 말대로 끝까지 남은 게 놀이든 하피든간에, 결국 사람들을 잡아먹는 몬스터인 건 어차피 똑같지 않소?”

“앗! 알렉스 경. 그건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예? 어떤?”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가 끼어든 이사벨의 말에, 알렉스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알렉스의 시선을 받은 이사벨은 어째 말을 하기 곤란하다는 듯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눈길을 슬쩍 피하며 입을 열었다.

“다른 몬스터가 아닌 하피라면, 시간이 지났어도 생존자들이 제법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응? 녀석들에게 뭔가 특별한 성향이 있습니까?”

“그게…… 하피는 수컷이 없이 암컷만 존재하는 종족입니다.”

“예. 저도 봐서 알긴 합니다만.”

하피들은 하나같이 외형이 인간의 여성을 닮은 것들만 있다는 사실은 알렉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의아해하는 알렉스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사벨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게…… 암컷뿐인 하피들은 기회가 되면 다른 종족의 수컷들을 사로잡아서, 그…… 교, 교, 으읏…… 그것을 합니다.”

“아하?”

소리가 작아서 알아듣기 어렵지만, 대강 분위기를 파악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종족과 상관없이 섹-”

“흐잇! 알렉스 경! 발언에 품위를 지키세요!”

화들짝 놀라는 이사벨의 태도에 알렉스는 내뱉으려던 단어를 정정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무튼, 번식행위를 한다는 말이지요?”

“으…… 그렇습니다.”

잘 익은 감처럼 얼굴이 붉어진 이사벨을 보며 알렉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게임에선 그런 19금스러운 설정 따윈 없었지만, 여기선 몬스터도 생태를 유지하려면 먹고 자고 그 짓도 하고 다 해야겠지.’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피들은 다른 몬스터의 수컷보다는 인간 남성을 최고의 생산자(?)로 친다는 모양이다.

몸뚱이의 외형이 인간과 비슷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궁합이 잘 맞아서 번식에 유리하다나 뭐라나.

아무튼 상황이 그러하니 녀석들의 둥지에는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전투가 끝나고 하피들은 용병들을 전부 수거해 둥지로 데려갔을 것이다.

부상이 악화되어 죽는 이들은 그대로 식량이 될 테고, 살아 있다면 다른 의미로 잡아먹을 생각으로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알렉스 경! 어서 그들을 구하러 갑시다!”

여전히 붉은색이 가득한 얼굴로, 이사벨은 하피 무리에 사로잡혀 있을 용병대를 구하러 가자고 말했다.

누군가는 가능이라 외치며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몬스터에게 잡힌 사람들을 팔라딘으로서 못 본 척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용병 사내에게 전투가 벌어진 장소로 안내할 것을 요구했다.

“옙! 저를 따라오십쇼!”

기껏 도망쳐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꼴이지만, 남자는 화색을 띠며 곧바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알렉스의 무력은 이미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고, 신의 은총을 받은 성기사들이라면 동료들을 구하고 다친 이들을 치료해 주기까지 할 것이란 계산이 섰다.

‘아까는 추격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숨어서 움직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최대한 빠른 길로 이동해야겠어.’

남자는 자신이 지나온 흔적을 살피고 머릿속으로 움직였던 경로를 복기해 계산하며, 몬스터들과 마주친 곳으로 가장 가까운 길을 그려 알렉스와 이사벨을 인도했다.

그가 가진 패스파인더의 능력은 제법 나쁘지 않았는지, 일행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군요.”

“그러네요.”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는 놀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온다.

간간이 하피의 시체도 섞여 있긴 했지만, 몬스터를 제외한 인간의 시신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짐작한 대로 전부 하피들에게 잡혀간 것으로 보였다.

‘놀의 시체만 대충 6~70구는 되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큰 싸움이었군.’

주변을 둘러본 알렉스가 용병 사내를 향해 말을 걸었다.

“하피는 몇 마리나 있었소?”

“저희가 마주친 무리는 40마리 정도 되었습니다. 둥지에서 쉬던 녀석들도 있을 테니, 전체의 수는 그보다 많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용케 이만큼 버텼군. 용병대의 인원은 총 몇 명이오?”

“저를 포함하여 37명입니다.”

“오? 예전에 봤을 때보다 인원이 많이 늘었소?”

이전에는 분명 십여 명에 불과한 수였으니, 그사이에 세 배가량 규모가 확장되었다는 소리.

단일 용병대로 그만한 숫자면 용병업계에선 제법 대우받을 만한 숫자다.

‘그 용병대장이…… 그래, 이름이 헥터라고 했었지.’

단순히 머릿수만 채운 게 아니고 무장상태도 탄탄하기까지 하니, 그때의 용병대장이란 자도 상당히 능력이 있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흐흐, 우리 대장이 여러모로 꽤 수완이 있는 인물인지라 저희들도 빠르게 성장하는 중입니다. 뭐…… 결국, 이런 꼴을 당하긴 했지만 말입죠.”

잠시 웃음을 흘리던 사내는 금세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다시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놀과 하피를 따로 만났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만…… 결국 이 바닥은 운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입죠. 아무리 준비를 갖춰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면 한순간에 끝나버리게 되니…….”

“꼭 나쁘게만 생각하진 마시오. 그나마 다른 몬스터가 아닌 하피인 덕분에 아직 희망은 있지 않은가? 거기에 우릴 만나기까지 했으니 마냥 운이 없다고 할 수도 없겠지.”

“엇! 그 말씀이 옳으십니다! 동료들을 무사히 구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악운에 강한 용병대라고 자랑하고 다녀도 되겠습니다.”

알렉스를 향해 잠시 굽실거리던 사내는 이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여기서부턴 하피들의 흔적을 더듬어 녀석들의 둥지를 찾아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가 얼른 방향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하피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몬스터이니, 지상을 걸어 다니는 것들에 비하면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

그나마 떨어진 깃털을 보고 대략적인 방향을 알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녀석들을 추적하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 없겠군. 잠시 뒤로 빠져 있으시오.”

“옙? 무슨 말씀을……?”

남자가 의문을 표했지만, 알렉스는 구태여 설명하는 대신 이사벨을 불렀다.

“이사벨 경.”

“네. 저도 감지했습니다.”

이사벨의 대답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내를 향해 한 가지 스킬을 사용했다.

[고결한 헌신]

“으어?”

자신에게 달라붙는 은은한 빛줄기에 당황한 남자가 바보 같은 감탄사를 터뜨린다.

“우리가 있으니 크게 위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있으시오.”

그런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경고를 보내며, 알렉스는 점점 선명해지는 기척을 쫓아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퍼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며, 스무 마리를 조금 넘는 하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헉!”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용병 사내가 검을 뽑아들며, 긴장으로 뻣뻣해진 움직임으로 자세를 잡는다.

“하, 하피들입니다!”

“알고 있소. 인간들은 전부 납치해 갔으니, 다음으로 여기 있는 놀 시체를 수거하러 돌아온 모양이군.”

번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하피에게 인간 남성은 최우선 목표였을 테고, 그다음으로는 당연히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량일 것이었다.

생김새는 평범한 인간의 여성처럼 보이지만 몬스터인 하피에게 놀의 시체는 중요한 먹잇감이니, 저대로 버려두지 않고 거두어가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상하네요. 40마리 정도라고 들었는데 수가 절반뿐입니다.”

용병이 말해준 정보와 차이가 있다는 이사벨의 지적에,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사벨 경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피들이 ‘교미’를 위해 용병들을 잡아갔다고.”

“으읏!?”

“무리를 짓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서열관계가 정해져 있는 편이니, 아마 힘 있는 녀석들은 지금쯤 열심히 번식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 으…… 빨리 저것들을 처리하고 사람들을 구하러 갑시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이사벨을 보며, 알렉스는 히죽하고 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금방 몸이 반응하니 놀리는 맛이 있다.

너무 서둘렀다간 굉장히 낯 뜨거운 광경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혹시 그게 보고 싶은 거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삼켜진다.

장난도 적당히 해야지 잘못 선을 넘었다간 부끄러움을 넘어 화를 낼지도 모른다.

‘분노한 이사벨은…… 많이 무서울지도.’

짧은 잡담을 끝으로 알렉스는 다시 하피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멀리 하늘에서 날아오는 녀석들과의 거리가 이제는 100미터 정도로 가까워진 상황.

이전까지는 마냥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겠지만, 원거리 공격 스킬을 배운 이제는 슬슬 적들이 자신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었다.

슬쩍 몸을 숙인 알렉스가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직경 30㎝가량의 원형의 버클러.

용병대의 누군가가 하피들에게 붙잡혀 갈 때 떨어뜨린 것으로 추측되는 방패였다.

그리고 그런 방패들이 주변에 십여 개 이상 널브러져 있었다.

풀 플레이트로 무장한 기사들은 마상창시합을 할 때가 아니라면 방패를 거의 다루지 않는 편이지만, 일반 병사나 용병들에게 방패는 굉장히 유용한 장비다.

타지던 버클러던 무장에 충실한 용병대라면 소형이나마 방패 하나쯤은 다들 가지고 있었을 터.

‘마침 잘된 일이지.’

본인의 방패를 마구 던지기엔 부담이 가지만, 남이 흘린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알렉스는 날아오는 하피를 향해 주워든 방패를 집어 던졌다.

[실드 부메랑]

스킬의 효과가 적용된 방패가 바람을 가르는 매서운 소리와 함께 쏘아진다.

비행능력을 가진 몬스터를, 그것도 100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뭔가를 던져서 맞춘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스킬이라는 힘을 가진 알렉스에겐 그 정도의 거리는 유효사거리의 안이다.

선두에서 날아오던 하피가 몸을 틀며 방패를 피하려 했으나, 이내 빨려 들어가듯 하피의 이동경로를 향해 방향을 튼 방패에 맞아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나이스 샷.”

작게 중얼거린 알렉스는 주변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방패를 죄다 주워서 던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하피들이 일행들의 앞에 도달할 때까지.

알렉스는 8개의 방패를 던져 8마리의 하피를 제거했다.

하피들이 회피기동을 한답시고 비행속도가 느려졌지만 그럼에도 초속 10미터 정도를 유지했으니, 거의 1초당 한 마리꼴로 보내 버린 셈이었다.

‘이렇게 조건이 맞아떨어지니 진짜 괜찮은 스킬이긴 한데…….’

순식간에 적 전력의 삼 분의 일을 날려 버린 알렉스는, 찍어 놓고 후회한 스킬이 의외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키에엑!

그런 그를 향해서, 눈을 후벼 파려는 듯이 발톱을 세운 하피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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