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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20화 (120/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20화

중부지역

알바니아 왕국의 수도를 점령한 것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남부군의 진격은 끝을 맞이했다.

상급 악마를 제거한 이후부터 더는 적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부군이 루미츠와 알바니아를 정리하는 동안.

위쪽 지방에 위치한 에르투니아 왕국의 점령은 북부군에 의해 마무리가 되었다.

거기에 거리상 가장 뒤늦게 합류할 수밖에 없던 서부군이 북부군과 힘을 합쳐, 마지막으로 남은 지역인 노고트의 영토들을 공략하고 있는 상황.

알바니아에 대한 권리를 남부군과 나눠야 하는 중부군은 아무래도 아쉬운 감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전공을 쌓고자 남부군과 떨어져 노고트로 향했다.

반면 이제는 얻을 것보다 지켜야할 것이 훨씬 많아진 남부군은, 얼마 남지 않은 노고트의 땅을 두고 벌어지는 아귀다툼에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이 권리를 획득한 점령지들을 정비하며 내부적인 논공행상에 들어갔다.

본국과의 접근성, 도시복구에 필요한 자원, 향후 기대할 수 있는 가치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각각의 안목에 따라 영지들에 대한 중요도가 매겨졌다.

연합군 자체가 여러 국적의 세력이 섞여 있다 보니, 각자 본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영토를 선점하고자 목소리를 높였다.

“알렉스 경도 남아계셨어야 했습니다.”

“에이, 어떻게 이사벨만 혼자 보내겠습니까.”

알렉스는 그런 남부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영지의 분배에 대한 이야기도 관심은 있지만, 그보다는 이사벨의 다친 눈을 치료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력을 전부 잃은 것도 아닌데, 제 앞가림 정도야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거기 남아 있어 봐야 딱히 할 일도 없어요. 권리를 주장하며 서로 협의를 거쳐야 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제가 영지를 얻으려면 마지막으로 남겨지는 교단의 몫에서 분배를 받아야 하니까 말입니다.”

“알렉스 경이 그간 쌓은 전공을 생각해 보면, 원하는 땅이 어디이다 하고 넌지시 흘리기만 해도 다들 선점을 포기하고 물러나 줄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어디가 좋은 영지가 될지 저는 봐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더욱 남아 있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럼 사람들이 어디를 가장 욕심내는지 알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굳이 자신을 따라올 필요가 없었다며 툴툴거리는 이사벨의 모습에, 알렉스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저희가 함께 이룬 공적을 생각하면 영지 수여는 사실상 확정적이고,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지 당신만 곁에 있으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읏.”

“지금은 눈의 부상을 치료하는 것만 생각하죠. 다른 일 따위 알게 뭡니까? 나한텐 이사벨이 가장 중요한데.”

“으읏!”

알렉스의 말을 들은 이사벨은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어째 사이가 가까워지고 나니 수줍음을 더 많이 타는 것 같다.

‘그나저나 걱정이네. 이사벨의 눈이 제대로 완치가 되어야 할 텐데.’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부끄러워하는 이사벨을 능글맞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알렉스는, 이내 그녀의 얼굴 한쪽을 덮고 있는 안대가 눈에 밟혀 인상을 굳혔다.

실력이 뛰어난 사제들이 대거 속해 있었음에도, 연합군과 함께 하는 동안 이사벨의 다친 눈은 완치가 되지 못했었다.

화살이나 칼 등의 날붙이에 의한 상처가 아닌 악마의 공격으로 생긴 부상이었기에, 평범한 성법으로는 안구의 손상된 부위를 재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들의 힘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강력한 성유물의 도움을 받는다면 완벽히 치료가 될 것도 같습니다만…….

치유에 특화된 성유물 중에서도 보물로 취급될 정도의 귀한 성유물이 필요하다.

혹은 일반 사제들보다 특별한 성법을 다룰 수 있는 주교급 이상의 사제들 여럿이 협력하지 않고서야 이사벨의 다친 눈을 치료하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때문에 알렉스는 이사벨을 데리고 연합군에서 빠져나와, 중부지방을 향해 이동하던 차였다.

고위사제 여러 명의 도움을 받거나 희귀한 성유물을 이용하려면, 아무래도 교단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중앙 관구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아무리 한쪽 눈으로도 생활은 할 수 있다지만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어.’

알렉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벨의 눈을 반드시 치료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성전이 거의 끝나가는 단계라지만 아직 어수선한 시국인 것은 변함이 없기에, 중앙 관구로 이동하는 여정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모든 국가에서 기사와 병사들이 대거 차출된 탓에 대부분의 영지는 치안상태가 좋지 않았고, 도시에서 조금 멀어졌다 싶은 곳에는 죄다 몬스터가 들끓었다.

어디를 가려고 하든지 평소보다 과할 정도의 무력을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하는 시기였다.

물론 알렉스와 이사벨에게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상황이긴 했다.

두 사람이 지닌 무력은 어지간한 영지의 정규군 전체와 전면전을 벌여도 문제가 없을 수준이기에.

사실상 인간 한정으로 봤을 때 알렉스의 방어능력을 뚫고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자는, 이제 전 대륙을 뒤져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알렉스가 이사벨에게 고결한 헌신 스킬을 사용한다면, 일시적이긴 하지만 그녀가 바로 인간계 최강의 전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규격 외의 괴력을 지닌 이사벨이 방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싸우면, 사실상 평범하게 창칼로 무장한 군대 따위로는 막을 방법도 없지.’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대륙 전체가 혼란스러운 시기라 해도 두 사람의 여행에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자잘한 사건이야 여럿 발생했지만 그런 것들을 위기라고 하기엔, 두 사람이 지닌 무력이 너무 압도적으로 강했다.

깨갱!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여지없이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군요.”

야영 중에 급습해온 놀 몇 마리를 때려잡은 이사벨이, 녀석들의 시체를 한곳으로 멀리 치워두고 불가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오늘 길에 마주쳐 운 좋게 사냥한 꿩 한 마리를 모닥불에 굽고 있던 알렉스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리 한 짝을 뜯어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거기 물도 따로 담아놨으니까 손부터 씻고 받아요.”

“앗, 감사합니다.”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내며 손에 묻은 이물질들을 닦아낸 이사벨이, 꿩 다리를 받아들고 크게 한입 베어 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음음! 매번 바깥에선 딱딱한 보존식만 씹다가, 이렇게 조리된 음식을 먹으니 참 좋군요.”

“그러네요.”

알렉스는 흐뭇한 얼굴로 이사벨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얼굴에 기름기를 묻히며 고기를 물어뜯는 행동이 품위를 조금 떨어트리긴 하지만, 그렇게 복스럽게 먹고 있는 모습도 마냥 예쁘기만 하다.

‘스킬 포인트가 아까워서 속이 쓰렸는데, 오늘은 그래도 도움이 되었네. 투척술이 없었으면 저걸 사냥하지도 못했을 테니.’

바닥에 내려둔 방패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은 알렉스는, 꿩을 사냥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사람을 마주치자마자 후다닥 뛰며 날아오르는 꿩을 잡기 위해, 알렉스는 자신의 방패를 집어 던졌었다.

날아간 방패는 그대로 꿩의 머리를 부수고 지나가, 근처에 있던 나무 한 그루를 부러뜨리고 나서야 바닥에 떨어졌다.

[실드 부메랑 Lv 1]

십여 미터쯤 떨어진 목표를 정확히 맞추는 명중률이나 제법 굵직한 나무까지 부수는 파괴력은, 실드 부메랑 스킬이 방패의 투척능력에 보정을 주었기 때문이다.

상급 악마를 잡고 올린 두 번의 레벨 업 이후 배운 새로운 스킬.

원래도 묘하게 방패를 던져 무언가를 맞추는데 소질을 보였기도 하고, 성기사 스킬 트리에선 보기 드문 원거리 공격 기술이기에 한번 투자해 본 스킬이었다.

‘효과 자체는 분명 만족스러운데…….’

속도와 위력, 명중률 모두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게 일회성 공격이라는 점.

방패를 던져 타격한다는 컨셉이라고는 해도 게임 때는 장비한 아이템을 드롭하거나 하는 설정 따윈 없었는데, 이게 현실이 되고 나니 사정이 달랐다.

극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페널티가 있었다.

던진 방패를 다시 사용하려면 직접 가서 주워야 했기 때문이다.

방패가 있어야 완성되는 탱커형 성기사인 알렉스에게, 실드 부메랑으로 던진 방패를 곧바로 회수할 수 없다는 점은 굉장히 치명적인 문제였다.

게임의 지식과 지금의 현실에 차이점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으나, 이번처럼 스킬을 잘못 찍었다고 후회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장비를 던지고 회수가 안 되면 그런 스킬을 누가 쓰냐고. 아니, 애초에 이름부터가 부메랑인데 왜 안 돌아와?’

물론 아무리 불만을 늘어나 봤자 실제 게임처럼 고객센터에 문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결국 홀로 화를 억누르며 마음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포인트에 여유가 생겨서 찍어본 스킬이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분통이 터져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에픽 퀘스트 ‘빛을 잠식하는 어둠’이 완료되었습니다.]

3단계 성과 보상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퀘스트.

상급 악마를 해치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는 알림이 떠올랐었다.

알렉스가 마음 편히 연합군을 떠날 수 있게 만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더는 교단에 위협이 될 만한 문제가 동부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

아무튼, 이 퀘스트 완료의 보상으로 알렉스는 3단계 성과보상 때처럼 또다시 3개의 스킬 포인트를 받을 수 있었다.

레벨 업으로 얻은 포인트를 더해 총 5개의 가용 포인트가 생긴 것이니, 거기서 실드 부메랑 하나가 꽝이라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리 Lv 10(Max)]

[심판의 일격 Lv 5(Max)]

남은 4개의 포인트 중, 알렉스는 마스터를 한 단계씩 남긴 공격스킬과 검술스킬에 가장 먼저 투자를 해두었다.

그리고 남은 2개의 포인트는, 7레벨에서 멈춰져 있던 방패술을 올리는 데에 사용했다.

[실드 마스터리 Lv 9]

공격계와 방어계에 균형 잡힌 투자를 하고 난 뒤.

9레벨에 그친 실드 마스터리를 보고 있자 다시 살짝 속이 쓰려 왔다.

‘실드 부메랑 따위에 포인트를 쓰지 않았으면 방패술도 마스터할 수 있었을 텐데. 쯧!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지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어쩌면 실수라 생각한 이런 스킬도 쓸모를 발휘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부스럭.

“음?”

지난 과거를 떠올리며 잠시 감상에 빠져 있던 알렉스는,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를 감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스 경? 왜 그러십니까?”

살이 얼마 나지 않은 뼈다귀를 입에 물고 쭙쭙 빨고 있던 이사벨이, 알렉스의 움직임에 의아한 얼굴로 질문을 건넸다.

“무슨 소리가 났는데, 못 들으셨습니까?”

“엣, 으…… 제가 식사에 너무 열중한 모양입니다. 몬스터입니까?”

“글쎄요. 뭔가 기척을 느끼긴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무언가가 보이진 않는군요.”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다시 한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렉스와 이사벨은 입을 다물고 기척이 들려온 방향을 주시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피투성이의 사내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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