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16화 (116/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16화

종말의 악마(2)

암흑교도는 징그러운 놈들이고, 악마는 끔찍한 놈들이다.

이전에 상대해야 했던 거대 시체골렘의 경우처럼, 그 둘의 힘이 결합되면 알렉스라 해도 상대하기 버거운 괴물이 튀어나올 수 있다.

‘저런 걸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이리 쉽게…… 저 심장에 담겨 있는 힘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암흑교도가 이곳에 없는 건가?’

푸르륵!

킹이 거칠게 투레질하며 뒷걸음질 친다.

라이딩 스킬 덕분에 기승수와 완벽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알렉스는, 굉장히 겁에 질려 있는 킹의 심경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저렇게 살 떨리게 만드는 기운이라니…… 아무튼 저건 한시라도 빨리 파괴해야 한다.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물건이야.’

그나마 자신 정도 되니까 이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설령 성기사라 할지라도, 저것을 보는 순간 거대한 어둠의 기운에 짓눌려 숨도 쉬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만큼 눈앞에 보이는 심장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굉장히 위협적이고 강대하기 그지없었다.

[천상의 가호]

‘괜찮아. 가자.’

본인과 킹이 같이 적용되도록 가호 스킬을 사용하며, 알렉스는 킹을 다독여 앞으로 나아갔다.

[광휘의 방패]

[실드 차지]

전방으로 넓게 전개되는 빛의 방패를 앞세우며, 알렉스는 심장을 들고 있는 시체골렘을 향해 돌격했다.

근처에 있던 몇몇 암흑교도들이 그에게 달려들거나 마법을 날리며 방해하려 했지만, 알렉스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규격 외의 괴물이라면 모를까, 전차의 돌진과도 같은 알렉스의 앞을 막아설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태까지는 항상 그래왔었다.

쁘지직!

무언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알렉스의 신형이 공중을 날았다.

“끄윽!?”

바닥을 뒹군 알렉스가 낙마의 충격에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딘가의 기둥을 뽑아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굵고 길쭉한 대검을 든 기사가, 느긋한 걸음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며 다가온다.

흐히힝…….

알렉스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져 구슬픈 울음소리를 흘리는 킹에게로 향했다.

방금 저 기사가 휘두른 대검에 의해,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광휘의 방패 일부가 찢겨지며 킹의 앞다리가 잘려나갔다.

워낙 재생력이 뛰어난 녀석이라 여생을 불구로 지낼 일은 없겠지만, 당장 전투에 투입될 수 없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내 방어스킬이 뚫리다니…….’

신성력을 퍼뜨려 넓은 범위에 방호벽을 펼치는 광휘의 방패 스킬은, 아무래도 알렉스가 직접 방패를 들고 막아서는 것보단 방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늘린 만큼 견고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알고 있던 사실이라 해도 실제로 이렇게 스킬효과가 강제로 부서진 적은 처음이다 보니, 자신의 방어능력에 믿음을 가지고 있던 알렉스로선 심리적인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알렉스의 시선이 천천히 다가오는 대검의 기사에게로 향했다.

‘으음. 간부급이 안 보여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여기에 하나 있었군. 레벨은…… 나보다 위인 느낌인데.’

악마의 심장이 내뿜는 기운에 정신에 팔려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는데, 풍기는 기세를 보아하니 상대는 꽤 고레벨의 타락기사로 보였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들지도 못할 사이즈의 대검을 휘둘러 광휘의 방패를 깨부술 정도니, 인체의 한계를 벗어난 능력을 지닌 것은 확실했다.

‘내 방어력을 너무 맹신한 탓에 마음이 조금 해이해졌어. 집중하자.’

고레벨의 타락기사는 상성에서 우위인 성기사에게도 꽤 번거로운 존재다.

초인적인 근력을 기반으로 가해오는 공격은 방어특화의 탱커가 아니면 받아내기 어려운 위력.

거기에 한층 단단해진 심연의 갑주의 방어력과 급속으로 육체의 손상을 복구하는 재생력까지 추가되어, 신성력이 깃든 공격으로도 제압하기가 만만치 않게 되어버린다.

‘암흑교 간부급의 레벨을 가진 타락기사라면 디바인 크로스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진 못하겠는데…….’

“알렉스 경! 가세합니다!”

마음을 조이며 다가오는 적에 대비하고 있자니, 믿음직한 음성이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자신을 뒤쫓아 온 이사벨의 모습을 발견한 알렉스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이제 되었군. 혼자서는 까다롭지만 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고레벨의 타락기사를 홀로 상대하기는 만만치 않겠으나, 이사벨의 합류로 이제 공격력과 방어력이 고루 갖춰지게 되었다.

탱커와 딜러로 파트를 분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무리하게 수를 쓸 필요 없이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여유를 되찾은 알렉스는 타락기사를 향해 먼저 달려들어 공격을 시도했다.

부아악!

공간을 찢어발기는 흉악한 소리와 함께, 알렉스의 접근에 맞춰 거대한 대검이 그를 부수기 위해 휘둘러진다.

‘쳇.’

절묘한 각도에서 피하기 어려운 속력으로 다가오는 대검의 모습에, 알렉스는 속으로 혀를 차며 방패를 어깨에 밀착시켰다.

아까는 정확히 보지 못해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는데, 예상보다 더 공격의 속도가 빠르다.

[굳건한 태세]

콰앙-!

방어를 굳힘과 동시에 칼이라기 보단 쇠몽둥이에 가까운 대검이, 알렉스의 방패 위를 타격했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들이닥치는 무지막지한 충격량에, 알렉스는 굳건한 태세 스킬을 발동 중임에도 몇 걸음 뒤로 밀려나야 했다.

‘크으, 장난이 아니네.’

뒷걸음질 치는 알렉스를 향해 다시 대검이 내리꽂힌다.

크고 무거운 무기라 후속공격까지의 텀이 길어야 정상인데, 생각보다 더 근력이 대단한지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쾅! 콰앙!

거대한 충돌음이 연달아 울리며 알렉스의 신형이 속절없이 밀려난다.

그래도 마냥 위태로운 상황인 건 아니었다.

충격을 버티지 않고 흘려내느라 밀리고 있을 뿐이지, 가드 자체는 확실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리플렉트 실드]

게다가 공격을 받아내는 만큼 상대에게도 반사피해를 누적시키고 있어, 딱히 손해를 보고 있는 입장인 것도 아니었다.

“……굉장히 거슬리는 놈이군.”

묵묵히 공격을 반복하던 타락기사의 입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나왔다.

“오냐, 칭찬 고맙다.”

“흐음.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수 있겠느냐?”

“글쎄? 적어도 나보단 네가 먼저 쓰러질 테니, 내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거다.”

“건방진…….”

알렉스의 대꾸에 뭐라 쏘아붙이려던 타락기사는, 괜한 심력 낭비라 여겼는지 금방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알렉스가 공격을 받아내며 적을 붙잡아 두고 있는 사이.

“신의 이름으로 단죄하노라!”

타락기사의 뒤로 접근한 이사벨이 곧바로 익시드 상태에 돌입하며 폴액스를 힘차게 휘둘렀다.

쐐애액!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다가오는 공격에, 알렉스를 몰아붙이던 타락기사는 허리를 비틀며 이사벨과 무기를 맞부딪쳤다.

“크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타락기사에게서 억눌린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고레벨의 타락기사가 가진 신체능력도 대단하긴 하지만, 역시 익시드를 발동 중인 이사벨의 사기적인 괴력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아마 누군가에게 힘에서 밀린 적은 처음일 테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알렉스보단 이사벨이 더 위험요소라고 판단한 타락기사는, 이내 자세를 고치며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실드 차지]

잠깐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알렉스는 적에게 달라붙어 공격을 가했다.

굳이 무리하게 급소를 노릴 필요도 없다.

그냥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며 상대의 움직임을 방해하기만 하면 된다.

콰드득!

그럼 이렇게 이사벨이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레 만들어질 테니까.

“크윽!”

어깨 한쪽이 으스러진 타락기사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물론 이 한 방으로 승부가 나지는 않았다.

부상을 입혔다지만 급속재생이 가능한 타락기사는, 금방 흑마력을 소모해 어깨의 상처를 회복하며 다시 처음의 상태로 돌아간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끈질기게 달라붙는 알렉스와 틈이 보일 때마다 매서운 일격을 가하는 이사벨의 합동을 저지할 수단이 없었기에, 타락기사는 부상과 회복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힘을 소모해야 했다.

“이잇! 떨어져라!”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타락기사는 곧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했고, 오히려 허점을 드러낸 탓에 금방 두 사람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심판의 일격]

푸슉!

이사벨의 공격에 얻어맞아 손상된 갑주의 틈으로, 알렉스의 검격이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신성력을 잔뜩 머금은 성검의 칼날이 갈비뼈 사이를 통과해 심장을 꿰뚫었다.

“커억…….”

심장이 파괴되고서까지 버틸 재간은 없었는지, 결국 타락기사는 무기를 떨어뜨리며 추욱 늘어지게 되었다.

알렉스가 몸에 박힌 검을 뽑아내자, 그는 바닥으로 허물어지며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그르윽…… 흐으, 그러나 이미 너희는 늦었……

“음?”

비슷한 소리를 다른 녀석에게도 들은 적이 있기에, 알렉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쓰러진 타락기사를 바라보았다.

‘지난번 네크로맨서도 늦었다느니 하는 소리를 지껄였는데. 으음, 그러고 보니 이 정도의 고위급 암흑교도가 왜 저 악마의 파편을 활용하지 않은 거지?’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에게서 더 무언가를 들을 수는 없었다.

레벨 업을 목적에 둘 만큼 다량의 경험치가 들어온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긴 했지만 시체에게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에, 알렉스는 죽은 타락기사에게서 몸을 돌려 다시 처음의 목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사벨 경. 저걸 어서 파괴해야 합니다.”

“으읏! 굉장히 사특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알겠습니다!”

더는 앞을 막아서는 존재가 없었기에, 알렉스와 이사벨은 맥동하고 있는 악마의 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심장이 시체골렘의 품에 안겨 있긴 했지만, 고작 그 정도의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쯤은 이제 두 사람에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윽고 시체골렘을 해치우자, 놈의 손에 들려 있던 악마의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압!”

알렉스가 심장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하지만 겉 부분에 옅은 생채기만 남을 뿐, 칼날은 깊게 파고들지 못했다.

“허? 생긴 건 그냥 살덩어리처럼 보이는데 엄청나게 단단하잖아?”

“앗, 그럼 제가 해볼까요?”

“으음. 네,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파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알렉스는 슬쩍 옆으로 물러나며 이사벨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이야아앗-!”

이어서 이사벨이 폴액스를 어깨 위로 높이 치켜세웠다가, 기합성과 함께 온힘을 다해 벼락처럼 내리꽂았다.

푸쉬잇!

과연 이사벨의 괴력까지는 견디지 못했는지, 폴액스가 심장을 깊게 파고들며 갈라진 상처에서 핏줄기가 거세게 솟구쳤다.

까앙!

‘……어?’

알렉스는 갑작스레 튀어나간 방패의 움직임에 순간 당황했다.

방어본능 스킬의 발동.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가 공격을 가해왔단 소리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던 알렉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사벨!”

공중으로 솟구쳤던 핏줄기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쏘아져, 이사벨의 투구를 파고드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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