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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13화 (113/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13화

죽은 자들의 땅(3)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알렉스의 뒷목을 노리고 칼날이 다가왔다.

암살자의 기습에 대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알렉스는, 머리를 숙여 공격을 피하며 곧바로 뒤를 돌아 적의 허리를 베었다.

하지만 섬전 같은 일격이 상대의 몸을 파고들기 전에, 그 사이로 끼어든 칼날에 의해 공격은 막히게 된다.

프지직!

빛의 칼날과 그림자의 칼날이 부딪치며 기묘한 소리가 울린다.

알렉스의 반격을 막아낸 암살자는 미끄러지듯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땅을 박차며 적을 쫓기 위해 걸음을 내디딘 알렉스가 재차 공격을 가하려 했으나, 상대는 물 위에 떨어진 눈송이가 녹아내리듯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염병할…….’

암살자들은 워낙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인지라,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조차도 어려운 일이다.

크케케켓!

키르륵!

그리고 잠시 시간을 준 사이에, 네크로맨서가 소환해 낸 언데드 몇 마리가 알렉스를 포위하며 곁으로 다가왔다.

자세를 낮춘 채 원숭이처럼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정신 사납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거리를 좁혀오는 모습.

생김새는 인간의 시체로 만들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언데드인 좀비와 흡사했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뻣뻣한 육체 때문에 느릿하게 행동하는 좀비보다 훨씬 날쌘 움직임이었고, 손끝에는 거의 손가락 길이만 한 길쭉한 손톱이 자라나 있다.

연신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리며 벌어지는 입안으로, 인간의 것이라 보기 힘든 길쭉하고 뾰족한 이빨들도 눈에 띈다.

놈들은 좀비의 강화판이라 할 수 있는 언데드 몬스터인 구울이었다.

“어딜!”

크엑!

어지러운 동작으로 주변을 맴돌며 시선을 끌던 구울 중 하나가, 기습적으로 알렉스를 덮쳤다가 단칼에 목이 잘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좀비보다 상위의 언데드라고 하지만, 구울의 신체능력은 사실 평기사 수준만 되어도 상대하기가 어렵진 않다.

문제는 놈들이 가진 수단이 그런 물리적인 부분에만 있지 않다는 점.

키키키킷!

크캬캭!

동료가 죽었지만 구울들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도리어 한층 웃음소리를 높였다.

이는 사실 놈들이 가진 능력 때문이었다.

신경을 거스르는 구울의 웃음소리는 듣는 이를 자극해 이성을 잃고 흥분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뛰어난 실력의 기사라도 놈들의 웃음에 냉정을 잃고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아차 하는 순간 빈틈을 허용해 잡아먹히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알렉스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알렉스는 기본적으로 정신계 공격에 높은 내성을 지니기도 했고, 천상의 가호가 발동되고 있는 동안은 더더욱 그런 상태이상에 면역을 가진다.

차분한 호흡을 유지하며 조금씩 네크로맨서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던 알렉스는, 구울이 덤벼들 때마다 최대한 간결한 동작으로 대응하며 놈들을 하나씩 베어냈다.

‘하지만 이깟 잔챙이들은 아무리 잡아봐야 소용없긴 한데…….’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으나 알렉스는 살짝 조바심을 느꼈다.

상대 네크로맨서의 수준을 생각하면 구울 따위는 그저 잠시 시간을 벌기 위해 꺼낸 놈들일 터.

게다가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암살자도 신경 쓰인다.

‘암살자의 기습에 반응하려면 섣불리 큰 동작을 취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느긋하게 싸우자니 시간이 지나면 점점 강한 소환수를 불러낼 테고. 이거 악순환에 걸려 곤란하게 되었…… 흡!’

상황을 어찌해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알렉스는, 달려드는 구울을 찌르려다 말고 다급히 자세를 바꾸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를 암살자를 경계하느라 예리하게 벼려진 감각이, 경고의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방패를 움직여 접근하는 구울을 밀쳐낸 알렉스는, 검을 아래로 내려 바닥을 겨누었다.

아무리 주변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다 해도 감이라는 것이 언제나 백 퍼센트 다 적중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바닥에서 솟구치는 흐릿한 형체를 향해, 알렉스의 검이 힘차게 내리꽂혔다.

하지만 칼날에 무언가 닿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암살자 역시 반격을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인지, 공격보다 회피 동작을 우선하며 알렉스의 찌르기를 비껴갔기 때문.

사람이 아니라 연체동물처럼 느껴지는 기괴한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며, 암살자의 손이 알렉스의 다리 부근을 한 차례 휘감고 다시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읏!”

근육을 헤집는 날카로운 통증에 알렉스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암살자가 휘두른 칼날이 종아리 부분을 가르고 지나간 탓이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움직임에 약간의 제약이 생겼다.

치유의 손길을 발동해 다리 쪽으로 신성력을 집중한 알렉스는, 방패를 타고 넘으며 입질을 하는 구울의 턱밑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리곤 이내 늘어지는 놈의 시체를 신경질적으로 밀쳐냈다.

‘계속 이렇게 발이 묶여 있으면 안 되는데.’

솔직히 시간을 끈다고 해서 알렉스가 꼭 불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캠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자체는 연합군 측이 더 유리해 보이니,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군들이 자신을 도우러 와줄 터다.

다만 그때쯤에는 저 고위 네크로맨서가 꽤 준비를 갖춘 상태가 돼 있을 테니, 전투가 길어지면 아군의 피해가 급격히 늘어날 확률이 높았다.

‘에잇! 까짓것 좀 다치더라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게 낫겠군.’

방어를 무시하는 암살자의 공격이 위협적이라지만, 자신을 단칼에 죽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전투를 빨리 끝낼 수만 있다면 치료해줄 사제는 충분하니, 알렉스는 부상을 감수하고라도 조금 무리하게 움직이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위기를 맞닥뜨리면 머뭇거리느니 차라리 억지로 돌파하는 게 이제는 거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다리의 상처 때문에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알렉스는 보폭을 크게 가져가며 네크로맨서를 향해 성큼성큼 발길을 옮겼다.

알렉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반응하여, 근처를 뛰어다니며 틈을 엿보던 구울들이 앞길을 막고자 달려들었다.

[심판의 일격]

강렬한 빛을 품고 길게 그어진 횡 베기에, 구울 세 마리가 동시에 반 토막이 되어 내장을 쏟았다.

큰 동작을 취하느라 자세가 흐트러지자, 곧장 암살자가 튀어나와 알렉스의 옆구리를 노리고 단검을 그었다.

이번에는 알렉스도 감각적으로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으나, 다행히 방어본능의 발동으로 움직인 방패가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쯔가각!

놈의 그림자 칼날이 기묘한 소리와 함께 방패를 반쯤 파고들었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공격에 방어무시의 효과가 있다고 해도 암살자 자체가 유령처럼 모든 물체를 완벽히 통과하는 것은 아니니, 방패에 가로막히면 암살자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다.

알렉스는 암살자가 몸을 숨기기 전에 공격을 가해보려 했지만, 앞뒤로 구울들이 덮쳐와 어쩔 수 없이 놈들에게로 칼끝을 돌려야만 했다.

베고 후려치고 찔러낸 끝에, 네크로맨서가 불러낸 구울들의 대부분이 알렉스의 주변으로 나뒹굴게 되었다.

‘갑자기 이렇게 달려든다고?’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노리던 약아빠진 놈들이 갑작스럽게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모습에, 알렉스는 의아해하며 네크로맨서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런 돌발적인 행동은 술자가 무언가 따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지팡이를 흔들며 주문을 중얼거리던 네크로맨서와 시선을 마주친 알렉스는, 상대의 눈빛에 담겨 있는 악의를 읽고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를 할 셈이구나. 소환이 아니라 나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거야.’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게임 때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암흑교에 대해 적지 않은 지식을 갖춘 알렉스다.

특히 네크로맨서는 암흑교도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군으로 성기사에겐 익숙한 적이기에, 상대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가 있었다.

화르륵!

알렉스의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구울들의 시체가, 흑마력으로 타오르는 검은 불길에 휩싸이며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시체폭발의 주문.

생물의 시체를 도구로 활용하는 네크로맨서들이 가진 가장 위력적인 공격마법이었다.

평범한 시체를 대상으로 사용한 시체폭발의 주문도, 중무장한 보병을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위력을 가진다.

술자 본인의 소환수이자 흑마력을 품고 있는 언데드 몬스터를 제물로 바칠 경우엔 위력이 더욱 증가하여,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조차도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강력한 마법.

알렉스는 다급히 방패에 몸을 밀착했다.

“크흐흣! 이미 늦었다! 멍청한 예루스의 종복아!”

퍼엉! 퍼버버벙-!

커다란 폭음이 연달아 발생하며 검은 불꽃이 알렉스가 서 있던 자리를 집어삼켰다.

잠시 뒤.

흩어지는 연기 사이로 암살자가 나타나며 수십 개의 섬광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스쉬시시식!

처음 모습을 드러낼 당시에 킹을 난도질해 쓰러뜨렸던 기술.

고위 암살자만 가능한 극한의 속도로 가해지는 연격이다.

시체폭발의 중심에서 무사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알렉스가 워낙에 보통이 아닌 능력을 보였기에, 확실하게 숨통을 끊고자 마무리 공격을 가한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불러와야 할 화려한 연격은, 무엇과도 부딪치지 않고 애꿎은 허공만을 갈랐다.

가면 안으로 보이는 암살자의 눈빛에 당혹감이 서렸다.

바닥을 구르며 흩어져가는 불꽃과 연기가 뚫고 튀어나온 알렉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적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있었기에, 알렉스는 처음부터 방어에 온전히 집중할 생각이 없었다.

시체폭발을 견디고자 가만히 몸을 움츠리고만 있었다면, 암살자의 공격에 고스란히 등 뒤를 내줬어야 했을 터.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하기로 하고 폭발의 충격을 버티고 있다가, 적당한 시점에 몸을 던져 이어질 기습을 피해낸다는 선택을 했다.

갑옷이 잔뜩 일그러지고 그을린 형상이 꽤나 낭패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알렉스는 눈을 빛내며 기합성과 함께 네크로맨서를 향해 뛰쳐나갔다.

“흐아압-!”

“이, 이놈이!?”

당황한 네크로맨서가 뒷걸음질 치며 다급히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암살자 역시 재빨리 그림자에 몸을 파묻었다가, 알렉스의 뒤편에 나타나 다시금 양손의 단검을 휘둘렀다.

‘좋아. 끌어냈다.’

바로 그런 상황까지가 알렉스의 노림수였다.

[실드 차지]

앞으로 달려가려던 알렉스는 급격히 몸을 뒤틀어 방향을 바꾸고서, 실드 차지를 발동해 방패로 뒤편의 암살자를 후려쳤다.

평범한 기사였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동작이었겠지만, 돌진 스킬의 효과가 있으니 이렇게 방향과 자세를 전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뿌드득!

물론 관절에 극심한 부담을 주는 동작에 발목과 무릎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지만, 알렉스는 시큰거리는 통증을 무시하며 암살자에게 검을 찔러넣었다.

실드 차지의 충돌에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된 암살자는, 그림자에 숨기 전에 알렉스의 검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암살자의 양손에서 단검이 나풀거리며 움직였다.

눈을 현혹하듯 온몸으로 묘한 흔들림을 보이며 달라붙는 암살자의 공격에, 알렉스는 코웃음을 치며 올곧은 자세로 검을 내뻗었다.

검으로 최고를 논하기엔 아직 살짝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보다 먼저 움직였음에도 목표를 놓칠 만큼 알렉스의 실력이 부족하진 않다.

암살자의 단검이 하나는 어깨 위를 긁고, 나머지 하나는 아슬아슬하게 목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면 알렉스의 검은 암살자의 가면을 파고들어, 눈을 관통해 뒤통수를 뚫고 빠져나온 상태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80]

당연히 즉사에 달할 수밖에 없는 일격이었고, 그런 사실을 증명하듯 반가운 알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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