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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12화 (112/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12화

죽은 자들의 땅(2)

킹의 등에서 떨어져 바닥을 구르던 알렉스가, 다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고개를 들었다.

핏물과 고름을 질질 흘리는 기괴한 살덩어리가 시야에 잡힌다.

시체들이 뭉쳐 만들어진 커다란 거인의 형상.

오래전 알렉스가 간신히 견습기사 수준의 레벨을 벗어날 적의 시절에, 한번 마주한 적이 있는 존재다.

‘시체골렘? 역시!’

저 거대한 덩치가 소리도 없이 킹보다 빠르게 움직여 자신의 뒤로 다가왔을 리는 없다.

그러니 한순간에 소환이 이루어져 자신에게 공격을 가했다고 봐야 타당한데, 그것 또한 가볍게 넘길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건 술자의 레벨이 소환물보다 월등히 높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니.’

뼈로 이루어진 장벽을 순식간에 만들어 낼 때부터 꽤나 수준급의 네크로맨서임을 파악하긴 했지만, 풍기는 흑마력의 기운도 그렇고 확실히 저 노파는 고레벨의 간부급에 속하는 암흑교도가 틀림없었다.

우드듯. 뿌득.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와, 알렉스는 슬쩍 곁눈질로 옆을 살폈다.

시체골렘의 주먹에 맞고 지면에 몸을 처박았던 킹이, 금세 피해를 회복하며 곁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녀석도 언데드 못지않은 놈이지.’

피식 웃음을 흘린 알렉스는 몸을 날려 다시 킹의 등 위로 올라탔다.

시체골렘? 기습적인 공격에 한방 먹었을 뿐, 큰 타격을 입진 않았다.

쪼렙 성기사 시절에나 무서운 강적이었지, 지금의 자신에겐 어렵지 않은 상대다.

문제는 저 네크로맨서.

시체골렘을 간단히 불러내는 모습을 보아하니, 더 강력하고 끔찍한 괴물들을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새로운 소환수를 불러내려는지, 정신을 집중하며 주문을 외우고 있는 노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랴!”

알렉스는 서둘러 공격에 나섰다.

육중한 살덩어리가 앞을 막아섰지만, 기습이 아닌 정면승부에서 놈에게 밀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부웅.

커다란 손바닥이 알렉스의 머리 위를 덮으며 내리꽂혔다.

하지만 킹은 날쌘 움직임으로 가뿐히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광휘의 방패]

[실드 차지]

이어서 빛의 방패를 앞세운 돌진으로 알렉스는 시체골렘과 충돌했다.

콰앙!

중량의 차이가 열배도 훨씬 넘게 날만한 상대지만, 밀려나는 것은 알렉스와 킹이 아닌 시체골렘 쪽이다.

하이번데르크에서 상급 악마의 잔재와 싸워 77레벨을 달성한 후, 연합군이 루미츠 왕국을 장악하는 동안 알렉스는 숱한 전투를 더 치러냈다.

그 기간 동안 난적이라고 할 만한 상대는 만나지 못했으나, 그래도 자잘하게 쌓은 경험치로 어느덧 레벨은 79까지 오른 상태.

알렉스는 그 두 개의 포인트를 전부 실드 차지에 투자했었다.

[실드 차지 Lv 5(Max)]

라이딩을 통한 킹과의 조합이 워낙 사기적이다 보니, 최근에는 실드 차지 스킬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킬 1순위를 다툴 정도가 되었기 때문.

그리고 마스터 레벨에 도달한 실드 차지는, 충돌로 가해지는 피해량이 이전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후두둑.

썩은 살점들이 지면으로 우박처럼 쏟아져 내린다.

가슴팍이 크게 터져나간 시체골렘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제법 큰 부상임에도 언데드답게 여전히 움직임이 멈추진 않았으나, 놈에게는 더 볼일이 없다.

시체골렘의 몸을 밟고 오른 킹이,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곧장 네크로맨서를 향해 점프했다.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성검의 칼날이 네크로맨서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카앙!

그러나 또다시 방해가 들어왔다.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널찍한 칼날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성검의 앞을 가로막았다.

‘쯧! 간발의 차이로 늦었나.’

알렉스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상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음산한 죽음의 기운을 풀풀 풍기는 검은 갑주의 기사.

암흑교도의 계파 중 하나인 타락기사와 매우 흡사한 생김새지만, 저것 역시도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언데드 몬스터의 일종이다.

사령술로 다루는 소환물 중에서는 수위를 다투는 강력한 존재.

죽음에서 돌아온 기사, 데스나이트.

알 만한 사람들은 네크로맨서를 생각할 때 흔히들 같이 연상하게 되는, 사령술의 대표 격인 언데드 몬스터이기도 하다.

쉬익!

묵직한 양손검을 휘두르는 데스나이트는 반격에, 알렉스는 킹을 움직여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어서 막 다시 공격을 가하려는 찰나에, 데스나이트의 입에서 어눌한 음성이 들려왔다.

“며명예로운 겨결투르를 워원한다아.”

“뭐?”

“그그대도 기사사라면 마말에서 내려 순수수한 거검술만을 겨뤄보보자.”

“……아, 그래?”

시체골렘을 만드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백 단위의 시체를 뭉쳐야만 하나, 데스나이트를 만드는데 필요한 시체는 단 한 구면 충분하다.

다만 아무런 시체나 때려 박아도 되는 시체골렘과 달리, 데스나이트는 반드시 원념을 품고 죽은 기사의 시체가 재료로 쓰인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 죽어서 썩어 문드러져 가는 몸뚱이임에도, 데스나이트들은 기사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양식을 보인다.

물론 기사답다는 말이 꼭 칭찬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별 개소리를 다 하네.’

결투의 낭만도 때를 봐가면서 찾아야지, 지금 같은 상황에 무슨 얼어 죽을 명예를 논한단 말인가?

상급의 언데드인 데스나이트는 시체임에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지성을 갖춘 존재이지만, 뇌가 썩어서 그런지 머리가 그다지 제구실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면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속셈이려나.’

알렉스는 데스나이트의 뒤에 숨어서 또다시 무언가 주문을 외우는 네크로맨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알렉스의 몸에서 신성력이 격한 움직임을 보이며 터져 나왔다.

[디바인 크로스]

한 전투에서 두 번 이상 쓰기는 어려운 기술이라 어지간하면 아껴두는 편이지만, 네크로맨서에게 계속 시간을 주게 되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디바인 크로스를 사용해 빠르게 적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끄에에엑-!”

“흐어억!?”

강렬한 빛의 폭발이 데스나이트를 집어삼키고 뒤에 있던 네크로맨서까지 덮쳤다.

스킬의 사용을 마친 알렉스는 눈을 움직여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확인했다.

몸을 일으키던 시체골렘은 디바인 크로스의 위력을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녹아내렸고, 데스나이트와 네크로맨서 역시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일발역전이 가능한 성기사의 가장 강력한 공격스킬.

간부급임이 분명한 암흑교도조차 이 기술에는 단숨에 무력화되고 만다.

알렉스의 레벨도 이제는 고위층의 암흑교도와 비등한 수준이 되었으니, 능력치가 부족하지도 않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몸이 반쯤 부서진 데스나이트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비비열하다! 기기사란 자가 결투요요청을 무무시하다니니!”

“최선을 다해 너희 같은 것들을 때려잡는 게 성기사의 의무라서.”

데스나이트가 뭔가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알렉스는 놈에게 아까운 시간을 더 할애하지 않았다.

콰득.

킹의 발굽이 신성력에 의해 타들어 가는 녀석의 머리를 짓밟아 깨부쉈다.

이어서 알렉스는 바닥을 기며 일어나려는 네크로맨서에게 다가갔다.

디바인 크로스의 범위 내에 있던 네크로맨서는, 그 짧은 순간 기존의 주문을 취소하고 어둠의 장막이라는 흑마법을 발동했었다.

거의 모든 종류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켜내는 강력한 보호의 주문.

하지만 상극인 신성력만은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기에,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겨우 목숨을 부지한 상태였다.

“끄으…… 이노옴…….”

괜히 길게 말을 섞을 이유가 없기에, 알렉스는 데스나이트와 마찬가지로 킹을 움직여 네크로맨서를 짓밟으려 했다.

바로 그때, 섬뜩한 느낌이 알렉스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헛!?’

[굳건한 태세]

[천상의 가호]

거의 본능적인 행동으로, 알렉스는 자신이 가진 방어스킬들을 발동시키며 방패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카가가가강!

귀를 따갑게 만드는 쇳소리가 한순간에 연이어 울려 퍼지며, 알렉스의 주위로 수십 번의 불똥이 튀어 올랐다.

“큿!”

몸 이곳저곳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진다.

무언가의 공격이 전신갑옷과 방어스킬들로 보호받는 알렉스의 신체에 상처를 입혔다.

히히힝!

공격을 당한 것은 알렉스뿐만이 아니다.

온몸이 난도질당한 킹이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제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킹의 전신에서 핏줄기가 솟구친다.

“쓰읍…….”

방패를 내린 알렉스는 이를 악물고 어느 한 지점을 노려보았다.

어느새 수십 걸음쯤 떨어진 곳으로 벗어난 네크로맨서 노파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노파를 멀리 옮겨놓은 또 다른 적의 모습도.

조잡스러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기형적으로 마른 몸매를 가진 인물.

‘쉐도우 케인.’

암흑교에 속한 암살자 집단의 일원.

알렉스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골치 아프게 되었는데.’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이동하는 암살자의 기술은 상대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게다가 조금 전의 무시무시한 공격.

상대는 평범한 암흑교도가 아닌, 저 네크로맨서처럼 간부급에 속하는 고위층임이 분명했다.

‘설마 고위층의 암흑교도가 더 있었을 줄은. 그리고 하필이면 암살자라니.’

막 디바인 크로스를 사용해버리고 나서야 저런 적의 존재를 알게 되다니, 상당히 낭패스러운 일이다.

레벨 수준이 동급인 암흑교도라면, 신성력을 다루는 성기사가 큰 우위를 점하는 것이 정상이다.

다만 유일하게 고레벨의 암살자를 상대로는 예외적인 상황이 생긴다.

알렉스의 시선이 암살자의 손으로 향했다.

양손에 역수로 쥐고 있는 흐릿하게 일렁거리는 형체의 단검이 보인다.

‘그림자 칼날. 저게 문제인데.’

그림자를 넘나드는 능력을 지닌 암살자가 고레벨에 도달하면 다루게 되는 능력.

대상이 지닌 방어력의 대부분을 무시하고 피해를 입히는 효과가 있는 공격기술이다.

방어능력으로 먹고사는 탱커 타입의 성기사에겐, 상성 자체가 좋지 않은 상대인 것이었다.

“끄으으…… 가, 간신히 살아났군. 빌어먹을! 절대로 곱게 죽이진 않겠다!”

지팡이에 기대어 일어난 네크로맨서가 흉흉한 살기를 뿌리며 눈을 번뜩였다.

알렉스는 아쉬움에 혀를 차며 노파를 바라보았다.

‘쯧! 1초만 더 있었어도 머리를 박살낼 수 있었을 텐데.’

네크로맨서의 목숨을 끊어놓지 못했으니, 이 대 일의 불리한 싸움을 진행해야 한다.

가까이 붙기만 하면 칼질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상대인데, 암살자 때문에 이제는 쉬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기동능력은 자신보다 암살자가 단연코 우위에 있으니, 놈을 따돌리고 네크로맨서에게 달라붙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다른 적들이라면 공격을 그냥 무시하고 몸으로 버티며 달려가기라도 할 텐데, 방어무시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암살자를 상대로는 자신도 굉장히 신중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끄응. 내가 너무 혼자서만 뛰쳐나가긴 했지?’

아군 기사들은 이제 막 캠프에 도착해, 다른 암흑교도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공격대에는 기사들만 있는 게 아니라 보호를 받아야 할 사제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군들은 방진을 이룬 채 천천히 눈앞의 적들과 싸우며 캠프 안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당장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할 수 없지. 혼자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힘들겠지만 한동안 홀로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알렉스는 적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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