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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11화 (111/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11화

죽은 자들의 땅

그어어억!

“서쪽에 언데드 다수 출현!”

“제기랄! 끝이 없군!”

“매너 없는 놈들. 쉴 시간 정도는 주란 말이다!”

끝없이 몰려오는 적들의 공세에, 피로에 젖은 연합군 기사들이 신경질적으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몇 시간째 한 자리에 못 박혀 쉬지 않고 전투를 벌이고 있으니,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기고 팔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다.

기사들이 그런 상황이니 일반병사들은 오죽할까.

“끄윽! 내 손이!”

“어깨 붙여! 뚫리면 다 같이 죽는다고!”

“아아악!”

사방에서 부상자가 속출한다.

지칠 대로 지쳐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병사들은, 새로 나타난 언데드들을 상대로 이를 악물고 간신히 버텼다.

“누가 여기 좀 도와줘!”

“이런 썅! 뚫리겠어!”

아슬아슬하게 적들을 막아내고 있는 대열이 거의 무너지기 직전.

병사들의 뒤에서 나타난 한 기의 기마가 그들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가볍게 뛰어오른 기마가 언데드 무리 사이로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방패가 근처의 적들을 단숨에 깔아뭉갰다.

“알렉스 경이다!”

“크흐흐, 이제 살았군.”

병사들이 보내는 경외의 시선을 뒤로하며, 알렉스는 주변의 언데드들을 묵묵히 때려잡았다.

‘평범한 좀비와 스켈레톤뿐인가.’

강력한 상급 언데드가 섞여 있거나 하진 않았기에, 알렉스는 오래 지나지 않아 적들을 전부 제거할 수 있었다.

리플렉트 실드만 켜고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처리될 수준의 적들이었기에, 혼자서 해결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알렉스가 새로 들이닥친 언데드들을 홀로 전부 청소할 때쯤,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전투도 거의 마무리가 지어졌다.

“주저앉지 말고 빨리 일어나! 시체들부터 한곳으로 치워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금세 질병에 걸린다! 쉬기 전에 할 일부터 해!”

지친 몸을 이끌고 뒷정리를 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알렉스는 조용히 몸에 묻은 잔해들을 털어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네. 이사벨 경도요.”

곁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알렉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사벨을 돌아보았다.

꽤나 격한 싸움을 벌였는지 자신 못지않게 지저분한 모습을 한 이사벨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오늘도 이 근처를 벗어나지 못할 모양입니다.”

“예. 일주일이 지나도록 거의 제자리걸음이군요.”

루미츠를 떠나 알바니아로 진입한 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대규모의 병력으로 동진하던 연합군은 초반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쾌진격을 이어갔으나,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불어난 적들의 공세에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발이 묶이게 되었다.

알바니아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시체들의 땅이 되어 있었다.

영토의 대부분이 강력한 저주와 죽음의 기운에 물들어, 시신을 태우지 않고 내버려 두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자연적인 언데드가 발생할 지경이다.

알바니아의 안쪽 땅으로 깊숙이 진입할수록, 적들의 규모도 점점 크게 늘어났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파도처럼 몰려오는 언데드 몬스터들.

중남부 연합군은 한 달 사이에 수많은 사상자를 기록하며 기세가 급격히 꺾여 버렸다.

그나마 알렉스를 비롯해 수백 명의 팔라딘과 프리스트들이 언데드들을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였기에 망정이지, 교단의 전력이 지금보다 부족했더라면 연합군은 진즉에 알바니아에서 버티지 못하고 발을 뺐을 터였다.

“과연 언제쯤 이 땅에서 저 불온한 존재들을 전부 몰아낼 수 있을까요?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흐음. 확실히 이대로는…….”

“알렉스 경! 파르마뉴 후작께서 회의에 참석해 달라 전하셨습니다.”

희망적이지 못한 앞날에 대해 이사벨과 이야기하고 있자니, 지휘부의 호출이 들어왔다.

매번 반복되는 회의에서도 현 사태에 대한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회의 자체를 참가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전투가 끝나도 쉬질 못하는구만.’

마음속으로 가볍게 투덜거리며, 알렉스는 연합군의 수뇌부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물러나야 합니다. 병사들의 피로도가 거의 한계에 달했습니다. 자칫하다간 한순간에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후퇴라니? 당치도 않소!”

“보고를 듣지 못했소? 저 역겨운 것들을 코앞에 두고 물러나자니!”

“함정일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까! 너무 위험하단 말입니다!”

막사 안이 고성으로 가득 찼다.

지휘부의 회의는 항상 조용히 진행된 적이 드물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시끄러웠다.

주둔지 인근을 탐색하던 정찰병들이, 언데드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군대조차 버티기 어려운 지역에서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 무리.

흔적을 남긴 자들은 알바니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든 암흑교도들이라 여기는 것이 타당했다.

알바니아에 진입한 이후로 연합군은 몰려오는 언데드들만 계속 상대했을 뿐, 이 사태를 일으킨 암흑교도들을 아직 마주하지 못했었다.

“역시 저 썩은 괴물들을 조종하는 것들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었군!”

“놈들을 잡아낸다면 언데드들의 군집도 저절로 와해될지도 모릅니다!”

한 달 만에 발견한 적의 실체에 대한 실마리에, 지휘부의 의견은 둘로 갈라졌다.

첫째로 기동성을 갖춘 기사들만으로 특별공격대를 꾸려, 놈들을 찾아내 토벌하자는 의견.

부대를 통째로 움직이는 것은 이동도 느리거니와 기습의 이점을 살릴 수 없게 될 테니, 따로 습격을 위한 인원을 꾸리자는 말이 이치에 합당해 보이기는 했다.

둘째로는 부대를 나누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는 의견.

암흑교도들을 상대하려면 연합군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기사들과 교단의 팔라딘들을 대거 차출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계속해서 몰려오는 언데드 군세를 상대하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니, 그렇게 했다가는 자칫하면 본진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이대로 수비적인 스탠스를 유지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알렉스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으음…….”

파르마뉴 후작의 질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알렉스에게 쏠린다.

“이대로 지지부진한 상태를 유지하느니,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긴 합니다만.”

“크음…….”

“역시 그렇지요!”

알렉스의 발언에 일부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고, 일부는 반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단의 전력이 아무리 언데드를 상대로 상극의 힘을 발휘한다지만, 전장의 아군들을 전부 커버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야. 모두들 점점 지치고 있으니, 이대로는 어차피 계속 피해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어.’

그럴 바에야 차라리 무리를 해서라도 승부를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연합군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지닌 알렉스의 지지를 받았기에, 결국 인원을 차출해 따로 공격대를 결성하자는 주장이 채택되었다.

“결정이 났으면 서두릅시다. 놈들을 빨리 찾아내지 못하면 그만큼 위험부담이 늘어나잖소.”

“빠르게 편제를 구성해 보겠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작전은 소수의 정예들로 팀을 짜 실행되어야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알렉스의 이름이 가장 먼저 편성에 올랐다.

연합군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로 자리매김했고, 거기에 암흑교를 상대로 효과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팔라딘이기까지 하니 자연스러운 결과다.

언제나 알렉스의 뒤를 따르는 이사벨 역시 빠지지 않았다.

알렉스와 이사벨을 포함한 팔라딘 30여 명에, 프리스트 중 기마술에 능한 이로 10여 명.

추가로 나름대로 명성이 알려진 실력 있는 기사 50명 정도가 더해졌다.

‘어째 거의 다 중부군 쪽 사람들이군. 하긴 남부군엔 실력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 별로 없긴 하지.’

출신이야 어쨌든 도합 100명에 달하는 인원으로 이루어진 특별공격대가 만들어졌다.

정예만을 차출한다고 해서 수뇌부의 인물들까지 대거 자리를 비울 순 없으니, 알렉스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파르마뉴 후작은 본진에 남기로 했다.

그렇기에 괜히 권한을 두고 다툴 것도 없이, 공격대의 총지휘관은 알렉스가 맡게 되었다.

“어서 놈들을 찾아봅시다.”

흔적이 발견된 구역을 수색해 암흑교도들을 찾는다.

만약 그전에 언데드 군세를 마주친다면,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뚫고 나갈지 후퇴할지 결정을 내린다.

그런 식의 심플한 계획 정도만을 수립한 채, 공격대는 근방을 돌아다니는 암흑교도들을 찾아낸다는 목표를 가지고 주둔지를 떠났다.

* * *

“찾았다!”

흔적이 발견된 장소를 중심으로 수색을 실시한 공격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적들의 캠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동안 몇 번 정도 언데드들을 마주하긴 했지만, 다행히 전부 소규모의 무리였기에 돌파하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주둔지에서 그리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아주 살림을 차려놓고 있었구나!”

“큭! 어지간히도 우습게 보인 모양이군.”

연합군이 꽤 오랫동안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으니, 적들도 저렇게 가까운 곳에 진지를 만들어놓고 있던 듯하다.

‘캠프의 규모를 봐서는 인원은 많아 봐야 삼, 사십쯤 되겠는데.’

이대로 기습을 가하면 별다른 피해 없이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저게 함정만 아니라면 말이다.

‘함정을 파두고 기다리는 느낌은 아니야.’

기마대의 접근을 알아차린 적들이 캠프 안에서 어수선하게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혼란에 빠진 분위기가 느껴지는 게, 연기를 하는 걸로 보이진 않는다.

‘흔적이 발견되었단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달려온 거니. 막 언데드들의 공세를 물리친 시점이기도 했으니, 허를 찌르기 적절한 타이밍이긴 했지.’

적들의 당황한 기색이 꾸며낸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기에, 바로 전투에 돌입해야 최대의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싹 쓸어버린다!”

“이랴앗!”

알렉스의 지시에 따라 기사들은 앞다투어 적의 캠프를 향해 들이닥쳤다.

물론 선두에 선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알렉스 본인이었다.

[광휘의 방패]

[실드 차지]

으지직!

“꺼어헉!”

“뭐, 뭐냐!”

빛의 방패를 앞세우고 킹에게 가속을 걸어, 천막 안에서 뛰쳐나오는 적들을 그대로 밀어버렸다.

사람이고 천막이고 가릴 것 없이, 알렉스가 지나간 자리는 싹 쓸려나가 박살 나고 짓밟힌 잔해만이 남는다.

“이놈! 멈춰라!”

적의 캠프 안을 거침없이 돌파하던 알렉스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전신으로 퍼지는 불쾌한 감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 겪어도 익숙해지기 힘든 기분 나쁜 느낌.

흑마력의 발현이었다.

알렉스의 앞으로 새하얀 벽이 솟구쳤다.

뼈로 이루어진 몇 미터 높이의 구조물이 알렉스의 돌진을 막아선다.

“하앗!”

“어엇!?”

하지만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깟 벽 따위는 이제 알렉스와 킹의 조합엔 전혀 방해물이 되지 못한다.

단숨에 벽을 뛰어넘은 알렉스의 시야에, 눈을 부릅뜨고 이쪽을 노려보는 한 노파의 모습이 들어왔다.

‘역겨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군. 상당한 고위층이 틀림없다.’

사방으로 퍼지는 짙은 흑마력이 상대방의 정체를 증명해 주었다.

흑마법에 정통한 고위의 암흑교도라면 잠깐의 시간만 줘도 무슨 위험한 짓거리를 벌일지 모른다.

이대로 단숨에 적을 해치울 마음으로, 알렉스는 노파를 깔아뭉개기 위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큿!?”

“어리석은 예루스의 종놈아. 감히 누구 앞에서 그리 건방지게 날뛰는 게냐?”

그러나 등 뒤에서 느껴진 갑작스러운 충격에, 알렉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튕겨져 나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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