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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10화 (110/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10화

결투(5)

카강!

방패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슬아슬하게 파르마뉴 후작의 검격을 막아낸 알렉스의 안색이 흐리게 변했다.

서로 공격에 집중하는 순간이었기에, 방어본능의 자동방어 효과가 발동하지 않았다면 반응이 늦었을 뻔했다.

‘이런 미친! 무슨 검의 궤적이 그렇게 한순간에 변하는 거지?’

거의 동시에 움직였으나 자신의 검은 상대에게 닿지 않았고, 반대로 상대의 검은 자신의 머리를 때릴 뻔했다.

분명 허공에서 서로의 공격이 맞부딪치는가 싶었는데, 파르마뉴 후작의 검이 기묘한 움직임으로 검로를 바꿔 자신의 검을 흘려보낸 탓이었다.

그 속도에서 그런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대단한 기사라고는 들었지만, 검술이 이 정도일 줄은. 소드 마스터리 스킬로 치면 최소 9레벨, 어쩌면 마스터 레벨의 실력자일지도 모르겠는데?’

기사들의 평균적인 검술 수준이 스킬로 환산했을 때 7에서 8레벨 사이인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대륙 전역에 이름을 떨칠만한 실력이었다.

긴장감이 한층 짙어진다.

알렉스는 이어질 두 번째 공격에 대비해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

그러나 파르마뉴 후작은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이지 못했다고 해야 옳았다.

‘그걸 막아내는가. 역시 대단하군.’

방금의 일격은 그가 중부에서 최고 수준의 검호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만들어준, 이를테면 필살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앞선 결투들을 관람하며 알렉스의 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았기에, 첫수부터 최선의 기술을 내보인 것.

전력에 가까운 힘이 실린 공격을 중간에 조절하는 것은, 그로서도 육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행동이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이 일격으로 승부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셈이었는데, 실패로 돌아갔으니 승리의 가능성이 꽤 낮아지게 되었군.’

내부에서 울리는 관절과 근육의 비명을 들고 있던 파르마뉴 후작은, 짧은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탐색전에 가까운 가벼운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무리한 동작으로 몸에 가해진 부담을 해소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밀어붙이는 검격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두 사람의 주변으로 귀가 따가운 소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파르마뉴 후작과 거의 동등한 움직임으로 칼날을 맞부딪치던 알렉스는, 점점 검 대신 방패에 의지해 그의 공격을 받아내게 되었다.

‘역시 검술 자체에서 내가 조금 밀린다.’

그렇게 수세에 몰린 모습을 보이는 와중이지만, 알렉스는 조급해하는 대신 더욱더 투지를 불태웠다.

‘검술이 나보다 뛰어나다 해도 상관없어. 내가 반드시 이긴다.’

비록 검을 다루는 기술에서는 한 수 떨어지는 느낌이라 해도, 알렉스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굳건한 태세]

[천상의 가호]

[리플렉트 실드]

혼자서 많은 부분을 해결해야 했던 사정상 검술에 제법 투자를 해두긴 했어도, 알렉스의 성장 방향은 근본적으로 딜러가 아닌 탱커에 속한다.

상대에게 공격능력은 뒤처질지 몰라도 방어능력으로는 분명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터.

막고 버티는 것이라면 알렉스는 세상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정 이쪽에서 공격으로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면, 상대가 때리다 지쳐 포기할 때까지 수비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파르마뉴 후작의 검술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영역.

그간 싸워온 괴물들처럼 막대한 파괴력을 가진 공격을 해오는 것은 아니니, 아무리 대단한 기교를 보여준다 해도 버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단단하게 방어를 굳히기만 해도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스킬까지 있는데, 이런 일대일 결투에서 진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으음…….”

리플렉트 실드의 반사효과로 조금씩 몸에 상처가 쌓여가자, 알렉스를 압박하던 파르마뉴 후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침음을 흘렸다.

노련한 검술로 틈을 주지 않고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는데, 작은 상처뿐이라지만 자신만 계속 부상을 입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격노의 응징]

챙! 까강!

거기에 수비에 치중하다가 격노 수치가 쌓였을 때마다 간간이 날카로운 반격을 가하며, 알렉스는 파르마뉴 후작과의 싸움을 길게 가져가려 했다.

‘허허, 떠나버린 내 젊음이여. 안타깝구나.’

철옹성처럼 견고한 알렉스의 방어를 뚫지 못한 파르마뉴 후작은, 결국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공세를 멈추고 뒤로 물러나며 한탄했다.

전성기 때의 힘과 속도를 발휘할 수 있다면 억지로라도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볼 수 있을 텐데.

지금의 그에겐 알렉스의 방패를 넘어설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끌어봤자 추해지기만 할 뿐이라는 생각에, 파르마뉴 후작은 결국 검을 거두고 포기를 선언했다.

“벽에 대고 검을 휘두르는 기분이군. 내가 졌네.”

“……양보에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멋지게 이겨낸 싸움이라 하기는 어려웠지만, 알렉스는 자신의 능력을 전부 활용하여 남부군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중부와 남부를 가릴 것 없이 호흡조차 잊고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마침내 승부가 정해지자 그제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으아아-!”

“우리가 이겼다!”

“철사자 공마저…….”

“하아…….”

양측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에 중부군 지휘부 인사들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졌다.

병력 차가 몇 배나 남에도 불구하고 남부군에게 통솔권을 양보하게 생겼으니, 이 억울한 심정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조건을 물릴 수도 없는 것을.

마음 같아선 대결을 무효로 돌리고 싶지만, 지켜보는 눈이 몇인데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자, 이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봅시다.”

“중부군의 병력이 저희의 뒤를 받쳐준다면, 굳이 지원 병력이 도착하길 기다릴 필요도 없이 다른 지역들의 공략을 시도해도 되겠군요.”

남부군 지휘부의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위험한 도박 같은 대결이었지만 아무튼 승리를 쟁취해 명분이 이쪽으로 넘어왔으니, 얼굴에서 웃음기가 떠나가질 않는다.

완전히 휘하로 들어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주도권을 거머쥔 채로 남부군은 중부군을 받아들였다.

병력이 부족해 추가적인 지원만을 기다리고 있던 남부군의 입장에선, 깜짝 선물을 받아 등에 날개를 단 셈이었다.

* * *

중부군과 힘을 합친 남부군은 잠시 멈춰졌던 진격을 재개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투들에서, 연합군은 별 어려움 없이 연이은 승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간 함께해 온 아군들을 비하하고 싶진 않지만 준비를 철저히 갖춰 출병한 중부군은, 확실히 남부군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우수한 전력이었다.

공적을 반으로 나누는 게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약속이 있었다 해도 말이 나올 법한데, 의외로 다들 잠잠하네.’

지휘권을 넘기고 협력하기로 약조했다지만, 불만이 따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중부군 측에서 별다른 말이 없는 것은, 기실 거의 알렉스 한 사람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알렉스는 남부군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항상 선두에 서서 적극적으로 위험에 뛰어들었다.

전체적인 기여도만 놓고 비교하면, 당연히 수가 한참 모자란 남부군이 중부군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알렉스가 그렇게 매번 앞장서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니, 중부군의 입장에선 마냥 자신들의 공로가 더 뛰어나다 말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남부군에서 그러했듯 중부군의 많은 사람들 역시, 기적적인 능력을 선보이는 알렉스의 존재를 점점 신성한 상징처럼 여기게 되어갔다.

“자네도 봤나? 알렉스 님께서 신수를 타시고 성벽을 훌쩍 뛰어넘는 모습 말일세!”

“당연하지. 그분이 내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하셨는데! 하마터면 기껏 성벽에 올라놓고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었는데, 알렉스 님께서 단번에 적병들을 싹 밀어내며 길을 뚫어주셨다고!”

“내 생각에 그분은 분명 예루스 님께서 성전을 위해 내려 보내주신, 저 천상의 성스러운 존재가 분명하네.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인간의 껍질을 쓰고 계실 뿐이지!”

상황이 그러하니 중부군 지휘부에선 뭔가 불만이 있어도 소리 높여 항의하기가 어려웠다.

힘을 합친 연합군은 그렇게 별다른 불협화음 없이 진군을 계속하며 성과를 내었고, 어느덧 동부의 루미츠 왕국 영토의 8할 이상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면 사실상 루미츠의 정복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중, 남부군 지휘부는 다음 목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모여들어 머리를 맞댔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동쪽으로 계속 진군하거나 아니면 북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습니다만.”

“이대로 알바니아까지 쭉 밀어붙입시다!”

교단에 반기를 든 동부의 국가는 총 네 곳.

지형상 남부 쪽에 가까운 루미츠와 알바니아, 그리고 반대로 북부 쪽과 가까운 에르투니아와 노고트가 있다.

그중 에르투니아 왕국은 현재 북부군에서 토벌을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굳이 그쪽으로 움직여 충돌을 빚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남은 것은 알바니아와 노고트인데, 사실상 유효한 선택지는 알바니아 하나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루미츠를 점령하며 만들어진 군사기지들과 보급망을 계속 활용하려면, 북부에 가까운 노고트보다는 영토가 인접해 있는 알바니아를 공략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

알바니아 왕국은 다른 동부 국가들에 비해 영토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이기에, 전투의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북부군은 우리처럼 빠르게 토벌을 진행하진 못하고 있다 들었소. 잘하면 북부군이 에르투니아 왕국을 정리할 즈음에, 우리 역시 알바니아까지 점령할 수 있을 거요.”

“알바니아는 동부에서 가장 약소국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 측의 병력에 큰 손실이 생기진 않을 테지. 전력을 잘 보존하면 마지막엔 노고트를 두고 경쟁할 수 있겠군.”

그렇게 되면 남부군은 이번 성전에서 최고의 실적을 자랑할 수 있을 테고, 중부군 역시 충분히 이득을 챙기게 될 테니 딱히 불만이 나오진 않을 것이었다.

“그럼 어서 서두릅시다.”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향하여!”

목표를 확정한 중, 남부 연합군은 채비를 갖추고 바쁘게 움직여, 동쪽으로의 진군을 계속했다.

기세를 탄 연합군은 자신들의 앞길에 완벽한 승리만 따를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동부의 국가들이 교단에 반기를 들어 성전이 발발하고, 대규모의 연합군이 결성되어 동부에 발을 들이게 만드는 것.

그것 자체가 암흑교가 그리던 계획을 완성시켜 주는 마지막 조각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암흑교는 동부의 깊숙한 땅에서 세상을 집어삼킬 짙은 악의를 키워내고 있었다.

알바니아에는 루미츠와 같이 세뇌당한 군대가 주둔해 있진 않았으나, 그보다 훨씬 위험한 적이라 할 수 있는 암흑교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알렉스를 필두로 한 중, 남부 연합군은, 암흑교가 오랜 세월 동안 숨어서 준비해 온 전력을 고스란히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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