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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04화 (104/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04화

하이번데르크 점령전(4)

적병들을 베어 넘기며 내성을 향해 행진하던 연합군은, 발길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입을 멈추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발밑에 음산한 느낌의 기운이 흐르는가 싶더니, 앞으로 나아갈수록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나 시야를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도시를 덮어 햇빛조차 가려버린 안개에, 연합군 병사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흥! 역시나 이곳에서도 뭔가 수작질을 부려두었군.”

“두려워할 것 없다! 고작 안개일 뿐이니!”

흐릿한 시계에 병사들이 겁을 먹고 웅성거리는 것도 잠시.

교단의 성직자들이 신성력을 퍼뜨리며 앞으로 나서자, 밝은 광채가 주위를 밝게 비추며 안개를 밀어냈다.

“신께서 따스한 손길로 그분의 자녀들을 인도하사, 그 어떤 사특한 방해물도 우리 앞길을 막아설 수 없음이니!”

“주 예루스를 따르는 자들이여! 두려움 없이 나아갈지어다!”

도시를 감싼 안개가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주변을 식별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연합군은 주변은 경계하며 천천히 진군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뭐지? 뭔가 느낌이 기묘한데.’

선두에서 주위를 살피며 나아가던 알렉스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매서운 눈빛으로 좌우를 훑어보는 기사들과 잔뜩 굳은 표정으로 무기를 붙잡고 있는 병사들.

딱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없는데…… 나도 조금 긴장하고 있는 건가? 괜히 기분이 이상하군.’

어깨를 으쓱거린 알렉스는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잘못된 것이 없다면 이대로 계속 움직이면 된다.

삼십 분, 한 시간, 두 시간.

목구멍이 텁텁해진 알렉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내성이 예상보다 더 먼 편이네. 오늘 안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는데.’

역시 대도시라서 그런지 내부의 넓이가 상당하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한참은 더 이동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합군의 행진은 계속 이어졌다.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

오랜 이동에 슬슬 피로감이 느껴졌다.

제 발로 걷는 게 아니기에 병사들만큼 피로가 쌓이진 않지만, 승마 역시 은근히 제법 체력을 소모하는 행위다.

알렉스는 찌뿌드드한 몸을 풀기 위해 목과 허리를 좌우로 움직였다.

기이잉.

‘으음?’

골반을 비틀던 알렉스의 시선에, 허리춤에 매달아둔 성검이 미약하게 떨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홀리 웨폰을 발동할 때나 잠깐씩 진동하곤 하던 성검이, 어째서 손도 대지 않았는데 혼자 움직이는 것일까.

의아해진 알렉스는 무심코 손을 움직여 성검을 쥐었다.

지이잉-!

“헛!?”

어째서 이리 늦게 눈치를 채는 거냐고 항의라도 하는 듯, 손을 대기 무섭게 성검의 진동이 한층 과격해졌다.

그 격렬한 떨림이, 무언가에 의해 짓눌려 있던 알렉스의 정신을 일깨웠다.

눈을 부릅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속된 행군에 아까보다 지친 기색이긴 하지만, 여전히 별 탈 없이 자신을 따라오는 연합군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겉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알렉스는 이제 처음에 느낀 기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는데?’

수천 명이나 되는 병력이 이동하고 있는데, 마땅히 발생해야 할 소음이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마치 누구 하나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연합군에는 이동 중인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적막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몇 시간 째 아직도 내성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전혀 말이 되질 않는다.

아무리 거대한 성이라 해도 도시 하나의 면적이 그렇게 클 리가 있겠는가.

‘이런 당연한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아차린 거지? 우리가 정말 움직이고 있긴 했었나?’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수상한 점을 인지하고 나자, 아군들의 모습이 방금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아군들.

등줄기를 타고 오른 서늘한 감각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낀 알렉스가,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을 사용했다.

[디바인 크로스]

터져 나온 빛이 주변을 휩쓸었다.

동시에, 무언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알렉스의 고막을 때린다.

키에에엑-!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을 움츠리며 방패를 어깨 옆에 단단히 붙인 채 주변을 둘러본 알렉스는, 현혹에 빠져 이제껏 보지 못하고 있던 적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었다.

꿈틀거리는 촉수 몇 개가 팔다리처럼 붙어 있는, 기묘한 형태의 고깃덩어리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악마!’

악마종 특유의 촉수 형태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급의 악마였다면 디바인 크로스의 빛에 타죽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걸 보아하니 못해도 중급 이상의 격을 가진 악마일 것이다.

‘아까 그 안개가 악마의 능력이었나? 수천 명을 단숨에 미혹에 빠트리는 힘이라니. 그것도 우리 쪽엔 성직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데.’

알렉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분명 자신은 정신계 마법에 높은 저항력을 가졌음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해버렸다.

성검의 반응이 아니었다면 악마의 수작에 빠졌음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마법능력이라면…… 설마 중급을 넘어 상급에 도달한 악마인 건가?’

저게 만약 상급의 악마라면, 연합군은 이 자리에서 전멸을 피하지 못한다.

레벨로 따지면 최소 90대.

상급의 악마는 인간 수천 명쯤은 손쉽게 갈아 마실 수 있는 존재다.

상대의 수준을 가늠해 보고 나니,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격차를 느끼고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가만, 그런데 어째서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진 악마의 생김새가?’

절망감에 흐려져 가던 알렉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번뜩였다.

악마의 신체는 기본적으로 수백, 수천 개의 촉수가 모인 군집체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게 촉수를 한 덩어리로 뭉쳐놓은 게 전부인 하급 악마와 달리, 격이 높아진 악마들은 군집체의 형태가 점점 인간과 비슷한 모양새로 변하게 된다.

상급의 악마쯤 되면 외형만 살펴서는 인간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

눈앞의 악마는 저 강력한 현혹능력만 봐도 상급에 달하는 존재일 것처럼 보이는데, 어째서 하급의 악마와 별 차이가 없는 생김새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촉수가 달린 여러 개의 덩어리들…… 설마 소환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건가?’

악마는 비교 대상이 드물 정도로 강력한 괴물들이지만, 놈들의 차원인 마계를 벗어나 인간계에 오기 위해선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하급의 악마라면 제물만 잔뜩 때려 넣어도 본체를 끌고 오는 것이 가능하겠으나, 상급의 악마는 그렇게 쉽게 소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전에 올리머츠에서 흑마법사의 소환에 응해 잠시 존재감을 드러냈던 상급 악마도, 본체가 직접 넘어오진 못하고 공간 너머로 마법 하나만을 투사한 채 사라지지 않았던가.

‘하긴 여기가 마계화 지역도 아닌데, 상급의 악마가 돌아다닌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아.’

어쩌면 저것은 고위의 악마를 이쪽 세계에 억지로 불러들이기 위해, 본체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소환한 형태인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조각들이 아직 온전히 조립되지 못한 상태라면, 놈은 어쩌면 상급 악마라는 격에 걸맞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에 간섭하는 능력만은 대단했지만, 딱 거기까지가 놈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의 한계가 아닐까?

히히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킹이 주인을 따라 정신을 차렸는지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펄쩍 뛰어올랐다.

“알렉스 경? 으읏, 어라?”

“으윽…… 내가 뭘……?”

“허업! 괴물!? 적이다!”

이어서 이사벨을 비롯해 주변에 있던 일부 인원들이, 현혹에서 벗어나 화들짝 놀란다.

디바인 크로스로 인근에 있던 악마의 파편들에게 타격을 입힌 덕분에, 알렉스와 가까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게 대체? 언제 이런 놈들이 다가온 거지?”

“아니, 다들 뭐 하고 있나! 정신들 차리시게!”

그렇지만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온 사람은 고작 스무 명도 되지 않았다.

연합군 전체의 병력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한 수.

정신을 차린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부르고 흔들어보았지만, 나머지 병력들은 외부의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멍하니 서 있기만 하는 상태였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멈춰 있는 사람들에게, 악마의 파편들이 달라붙어 몸에 촉수를 쑤셔 넣는다.

이어 생명력을 빨아먹기라도 하는 것인지, 공격에 당한 사람들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이, 이런!”

“사라져라! 추악한 괴물아!”

정상으로 돌아온 소수의 인원들이, 동료를 지키기 위해 놈들에게 달려들어 무기를 휘둘렀다.

알렉스 역시 킹과 함께 움직여 근처에 있던 악마의 파편을 베어냈다.

[심판의 일격]

킈이잇!

신성력이 가득 담긴 공격에 당한 고깃덩어리가, 대체 어디로 소리를 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확실히 현혹능력 외에는 별다른 힘을 발휘할 수 없는지, 악마의 파편은 몇 번 칼질을 해주자 지글거리며 타오르다가 이내 소멸하게 되었다.

이 정도라면 그냥 하급 악마보다 조금 더 튼튼한 몸뚱이일 뿐, 특별한 위험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알렉스는 일그러진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망할! 이래선 놈을 잡는 동안 아군까지 다 죽겠어!’

수천 명의 연합군 사이를 파고들며 사람들을 찔러 죽이는 파편의 수는, 얼핏 봐도 백 마리는 되어 보인다.

수 초마다 사람이 백 명씩은 죽어 나가게 되는 셈이니,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과연 몇이나 되는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75]

‘엇?’

파편 몇 마리를 제거하고 나자, 레벨 업 알림이 떠오른다.

그동안 전쟁을 치르며 쌓은 경험치로 레벨 업을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때마침 필요한 경험치가 전부 채워진 듯했다.

‘하지만 레벨이 올랐다고 해도…… 잠깐, 혹시 그 스킬이라면?’

알렉스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감돌았다.

타이밍 좋게도 레벨이 오른 덕분에, 한 가지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생긴 포인트를 어떤 스킬을 배우는데 투자한다면, 아군의 피해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다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 스킬이, 알렉스가 구상한 스킬트리에 들어가 있지 않은 스킬이라는 점.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끄응! 이러다 점점 잡캐가 되어버리겠는데.’

포인트 하나하나를 신중히 사용하고 싶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죽음을 외면하면서까지 고집을 부리긴 어려웠다.

지금은 일단 이 방법을 쓰기로 하고, 예상보다 더 좋은 스킬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소망을 품는 수밖에 없다.

‘효율을 따지느라 배제했던 스킬이지만, 운이 좋으면 라이딩처럼 의외의 효과를 보여줄지도 모르니까.’

길게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기에, 알렉스는 곧바로 포인트를 사용해 한 가지 새로운 스킬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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