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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00화 (100/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00화

성전(6)

말과 사람들이 하늘을 날았다.

충분한 속도가 더해진 커다랗고 단단한 방패는, 그 자체로 흉악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기존의 방어스킬들에 이어 추가로 광휘의 방패까지 습득한 알렉스는, 그야말로 인간성벽이라 부를 만한 상태가 되었다.

거기에 실드 차지로 한 단계 더 가속된 킹의 속도까지 더해졌으니, 강화 상태의 타락기사들이라고 해봐야 볼링공에 맞고 튕겨 나가는 핀 신세를 면할 순 없었다.

단 한 기의 기마가 수백 기의 기마를 파고들어 압살한다.

양측의 돌진 속도가 있다 보니, 적 대열의 시작에서 끝까지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 초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몇 초의 시간 동안.

강제로 쪼개진 상대편 기마대는 대열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들은 혼란 속에서 상황을 수습할 새도 없이, 2차로 들이닥친 아군 기병들에 의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어야 했다.

적 기마대는 말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갔다.

“우아아아악-!”

“신께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분의 방패를 내리셨도다!”

“알렉스! 신의 방패!”

“알렉스! 알렉스-!”

선두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병사들은 거의 광란에 가까운 상태에 빠졌고, 누군가가 알렉스의 이름을 외치자 목청을 높여 그를 따라 연호했다.

병사들이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병은 달려드는 기병 앞에서 극심한 공포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만약 아군 기마대가 돌파당했다면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 되었을 터.

기적과도 같은 위용으로 적 기마대를 무너뜨린 알렉스의 모습은, 전열보병들에겐 신이 보낸 구원자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흥분한 병사들의 걸음이 빨라져 진형을 망가뜨리는 바람에, 이들을 통제하느라 본대의 진격이 잠시 지체되어야 했다.

“웨엑!”

적 기마대를 돌파하고 멈춰선 알렉스는, 뱃속이 갈기갈기 찢기는 통증을 느끼며 피 섞인 위액을 토해냈다.

‘으으, 버프를 이렇게 둘러도 충격이 장난 아니네.’

자신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낙마시킨 상대측 기병이 어림잡아도 백 명을 넘는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의 인원이 행하는 차징과 정면으로 연달아 충돌한 것이니, 극강의 방어력을 가진 알렉스라 해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순 없었다.

프르륵!

“괜찮아. 더 무리하지만 않으면 금방 회복될 테니.”

걱정스러운 기색을 담아 투레질하는 킹의 목덜미를 긁어주며, 알렉스는 남아있는 적 부대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병력의 절반, 실질적으로는 그 이상의 전력이 날아갔음에도, 적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진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두려움 없이 맹목적인 살의만을 품고 다가오는 군대.

훨씬 우세한 상황임에도 상대하기가 영 껄끄러운 적이다.

‘뭐, 이만큼 선전했으면 이제 쉬어도 되겠지.’

상대의 주력인 기병대는 궤멸, 반면 아군 기병대의 피해는 경미한 수준이다.

자신이 더 나서지 않아도 1천 남짓한 나머지 보병대쯤이야, 아군들이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라 믿었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전방에서 음산한 공기가 훅하고 퍼지며,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들러붙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적 기병들을 쓸고 지나간 아군 기마대가, 기세를 몰아 남은 보병들을 타격하기 위해 접근하던 순간이었다.

‘……휴식도 못 하게 하는구만.’

본진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고 있던 알렉스는, 역겨운 흑마력의 기운에 한숨을 내쉬고 말머리를 돌렸다.

적병들의 몸이 젖은 종이처럼 쭉쭉 찢어지더니, 핏물과 함께 꿈틀거리는 촉수가 솟구치는 광경이 눈에 보인다.

‘하급의 악마종. 딱 부화 직전의 단계로 몸에 씨앗을 품은 채 움직이고 있던 건가.’

적 보병들은 악마를 불러오기 위한 제물이었던 모양이다.

저것은 이전에 자신이 동료 팔라딘들과 함께 해치운 경험이 있던 개체와 동일한 등급의 악마다.

하급이라고 해도 악마답게 질긴 생명력과 지독한 독을 지닌 존재.

만약 본대끼리 서로 충돌하는 와중에 소환이 이루어졌다면, 아군 병력의 피해가 크게 확산되었을 것이다.

‘……이거 내가 아니었으면 기병과 보병 전력 양쪽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뻔했겠는데.’

아마도 타락기사들이 한순간에 짓밟히며 통제해 줄 암흑교도가 사라진 탓에, 대기 중이던 악마가 이른 시점에 깨어난 것으로 보였다.

“허업! 저게 뭐야!”

“괴물이다!”

“괴물이든 뭐든 무슨 상관인가! 이대로 짓밟아주마!”

튀어나오는 촉수들을 보며 당혹스러워하던 기사들은, 돌격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박차를 가했다.

‘이런. 하여튼 쓸데없이 용감하기만 해서는.’

마냥 그릇된 선택이라고 할 수 없긴 하다.

기사들의 차징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공격 중 하나로, 하급 악마 정도라면 충분히 격퇴할 수 있을 만한 위력을 가졌다.

문제는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악마의 독에 노출되어서, 자칫하면 기사들이 적과 함께 공멸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점.

해독의 능력을 가진 사제들이 교단의 전력에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성법이란 것도 결코 만능은 아니다.

수백 명이 동시에 단체로 중독되어버리면,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적잖은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럇!”

알렉스는 킹을 움직여 적진을 향해 달렸다.

악마를 굳이 기마대가 상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쪽 분야는 교단의 성기사와 사제들이 나서서 상대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지금쯤 본대에 머무르고 있는 교단 전력이 눈에 불을 켜고 뛰쳐나오고 있을 테니, 잠시 기다리면 모든 게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다.

괜히 그전에 무의미하게 기사들이 죽어 나가는 꼴은 막아야 했다.

[실드 차지]

다시 한번 이루어지는 가속.

쏜살같은 속도로 달려 나간 킹이, 기마대와 촉수들이 충돌하기 직전에 기사들을 따라잡았다.

“좌측으로 선회! 날 따라오시오!”

“뭣? 갑자기 무슨-”

[디바인 크로스]

알렉스는 대답하는 대신 신성력의 폭발을 일으켜, 코앞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촉수들을 단번에 녹여 없앴다.

“으읏!?”

번쩍이는 빛에 눈이 부신 기사들은 순간적으로 목표물에서 시선을 돌렸고, 선두를 차지하고 선회를 시작한 알렉스의 모습에 무의식적인 습관을 따라 같은 방향으로 고삐를 당겼다.

기사들을 이끌고 촉수들을 스쳐 지나간 알렉스는, 힐끔거리는 시선으로 적진을 살펴보았다.

악마를 품고 있다가 몸이 찢겨 죽은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병사들마저 독기에 중독되어 쓰러졌기에 더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깊숙하게 파고들어서 디바인 크로스를 썼다면, 저 악마 찌꺼기들도 거의 대부분 소멸시킬 수 있었을 텐데.’

기사들이 악마와 충돌하는 것을 막고자 급하게 스킬을 쓴 탓에, 범위 안에 들어온 것보다 바깥쪽으로 벗어나 있던 촉수들이 더 많았다.

경험치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기사들을 살리는 게 목적이었으니 어쩔 수 없긴 하다.

아무리 마음에 차지 않는 이들이라 해도, 아군은 아군이니 구해주는 게 도리이지 않은가.

“알렉스 경!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우리 기사단이 저 괴물 놈을 찢어발기기 직전이었거늘!”

다만 기사들의 입장에선 전공을 세우기 직전에 훼방을 받았다고 여겨,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이 나왔지만 말이다.

바로 직전에 알렉스가 적 기마대를 홀로 쪼개 버리는 장면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당장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었을지도 모른다.

‘허허, 그래, 이 정도는 예상했다. 무식한 인간들이니 내가 참고 잘 가르쳐 줘야지.’

알렉스는 참을 인을 마음속으로 새기며 기사들을 다독여주었다.

“저건 이교도들이 저주받을 행위를 통해 이 땅에 불러들인 악마입니다. 두려움을 모르고 악마에게 돌격한 그대들의 용맹은 칭송받아 마땅하나, 악마를 상대하는 것은 교단의 기사들에게 맡겨두도록 하십시오.”

“아, 악마? 저게 이야기로만 듣던 그 사악한 존재란 말이오?”

“으음! 어쩐지 처음 보는 기괴한 모양새라 생각하긴 했소.”

“악마의 사악한 숨결에 닿으면 아무리 강직한 기사들이라 해도, 스스로도 모르게 영혼을 빼앗길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의 빛이 닿지 않는 저 나락으로 끌려 들어가, 영원한 고통 속에 갇히게 되고 말겠지요.”

하급 악마 따위에게 그런 요상한 재주는 없지만, 악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기사들은 팔라딘인 알렉스의 말에 의심을 품을 수가 없었다.

“으으, 굉장히 끔찍한 괴물이로구려. 말려주어서 고맙소!”

“확실히 저런 사악한 존재는, 신께 권능을 허락받은 교단의 팔라딘들이 상대해야 옳겠군.”

불만은 감쪽같이 사그라졌다.

적당한 말로 기사들을 설득한 알렉스는 그대로 기마대와 함께 본대로 향했다.

적 기마대를 돌파하며 몸이 꽤나 상한 상태였기에, 악마를 처치하기 위해 성기사들에게 합류하는 건 참기로 했다.

어차피 가장 위력적인 디바인 크로스를 이미 써버렸으니, 그쪽으로 가세한다 해도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추악한 존재여! 신의 권능 앞에 짓눌려 사라질지어다!”

“예루스의 이름으로 너를 추방하노라!”

이를 갈며 뛰쳐나온 백여 명의 성기사들에 의해 악마가 흔적도 없이 소멸하는 것을 끝으로, 전투는 완전히 종료되었다.

* * *

대승이란 말로도 부족한 결과에 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야기 속 영웅과도 같은 위업을 세웠던 알렉스는, 연합군내에서 존중을 표하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의 막대한 인지도를 쌓게 되었다.

일반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귀족 작위를 가진 지휘부의 자존심 강한 기사들도, 알렉스의 말이라면 덮어두고 따르는 게 맞지 않을까 하고 여길 만큼 강한 영향력이 생겨났다.

알렉스가 발휘한 능력은 그만큼 모두의 마음을 휘어잡기에 충분할 정도의 강렬함을 보여주었다.

“저는 알렉스 경이 언제고 이런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어째 저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하핫! 다른 교구의 단장들이 알렉스 경을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묘하게 기분이 좋습니다. 대리만족 같은 걸까요?”

밝은 얼굴로 뿌듯해하는 이사벨을 보며, 알렉스는 머쓱하게 웃음을 지었다.

임시로 소속되었던 올리머츠 교구의 단장 모르덴은, 이제 더는 알렉스의 앞에서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말투까지 공대로 바뀌었다.

팔라딘으로서의 알렉스의 능력이 단장급에서조차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임을 알았으니, 태도가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당연하긴 했다.

“뭐…… 대우받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말고는, 딱히 실질적인 이득은 없긴 합니다만.”

“앗? 음…… 지금은 그렇겠지만, 성전이 끝나고 나면 크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교단 내에서의 위치도 그렇거니와, 경께서 계속 이렇게 공적을 쌓아간다면…… 어쩌면 동부의 영주가 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으음? 영주?’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알렉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게…… 그렇게 될 수도 있나?’

처음엔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싶었으나, 생각해 보니 마냥 이상한 말은 아니긴 했다.

연합군이 동부 지역을 싹 점령하게 된다면, 성전에 참가한 국가들이 교단의 주관하에 주인 잃은 땅을 나눠 먹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뭐라도 콩고물이 떨어질 가능성은, 분명 꽤나 높은 축에 속할 터.

남부가 아닌 전체 연합군으로 범위를 확장하면 사정이 어떨지 모르지만, 솔직히 교단 소속에서 자신만큼 활약을 펼치는 인물이 또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성전이 끝난 후의 일을 그런 쪽으론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영지라? 흐음.’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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