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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98화 (98/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98화

성전(4)

“어엇!?”

성벽에서 뛰어내린 킹은 그대로 지면에 머리를 처박을 거란 우려와 달리, 근처에 있던 어느 건물의 지붕 위에 착지했다.

무게를 생각하면 당연히 지붕을 뚫고 떨어져야 할 텐데, 킹은 사뿐하게 지붕 위에 내려서고는 알렉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길게 울부짖었다.

이어서 킹의 주행이 시작되었다.

달리기라기보단 멀리뛰기를 반복한다고 해야 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

킹은 도시 내 건물들의 지붕을 밟고 뛰어오르며, 연합군과 언데드들이 싸우고 있는 장소를 향해 다가왔다.

‘저게 어떻게 되는 거지?’

킹의 주력이 평범한 말과는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무슨 날다람쥐도 아니고 몸무게가 반 톤을 가뿐히 넘어가는 커다란 전마가, 저렇게 엄청난 속도로 뛰어다니는데 지붕들이 멀쩡하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가오는 킹을 주시하던 알렉스는 곧 정답을 파악할 수 있었다.

킹의 발목 부근에서 어렴풋하지만 익숙한 성질의 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신성력의 발현이었다.

‘……성법? 지금 성법을 사용하고 있는 거야?’

기묘한 변이를 거치며 몸에 신성력이 스며들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사람도 아니고 말이 성직자들처럼 성법을 쓰다니.

황당해서 뭐라 말이 나오질 않는다.

외형만 그럴싸한 게 아니라, 이제는 진짜 신수라고 말하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

‘허어, 무슨 효과가 생기는 거지? 무게 감소? 중력을 조절하는 건가? 으음. 지금 그걸 궁금해할 때가 아니지.’

정확한 능력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킹의 성법이 가진 효능을 추측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킹이 만약 자신을 태우고도 저렇게 비행하듯이 건물 위로 움직일 수 있다면.

지상의 언데드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곧바로 네크로맨서들의 앞까지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알렉스는 가까운 자리에서 언데드들을 분쇄하고 있던 이사벨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이사벨 경!”

“옛!”

“저를 저 위로 던져 주십시오!”

“예?”

가장 가까이 있던 건물의 꼭대기를 가리키며 소리치자, 이사벨이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알렉스가 시키는 일에는 다 마땅한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기던 그녀는, 당황하긴 했지만 따져 묻지 않고 그대로 알렉스를 붙잡아 던졌다.

다시 한번 다량의 신성력이 몰아치며 이사벨이 익시드 상태에 돌입한다.

신성력의 소모가 굉장히 심한 탓에 최상의 컨디션에서도 유지시간이 20초를 넘기지 기술.

그래도 사용자의 의지대로 온오프가 가능한 덕분에, 필요한 순간에만 잠깐씩 발동하는 식으로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으읏.”

균형을 잡기 위해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유영하던 알렉스는, 간신히 굴러떨어지지 않고 지붕 위에 내려설 수 있었다.

으지지직.

발밑에서 불안한 소리가 나긴 했지만, 다행히 지붕이 무너져 몸이 빠지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히히힝!

“그래! 여기로 와!”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킹이, 울음소리와 함께 알렉스가 서 있는 장소를 향해 도약했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을 주고받으며, 킹은 알렉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였다.

이어서 자신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킹을 향해, 알렉스는 타이밍에 맞춰 손을 뻗으며 뛰어올랐다.

우지끈!

발을 딛고 있던 자리로 힘이 가해지는 동작에, 천장의 하중을 받치던 구조물이 부러졌는지 알렉스가 서 있던 지붕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0.5초 남짓한 짧은 순간, 알렉스는 정확히 킹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매달렸다.

알렉스를 태운 킹은 지붕의 무너짐에 휩쓸리지 않고, 그대로 다음 건물을 향해 몸을 날릴 수 있었다.

“그렇지!”

조금이라도 지체하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면 둘 다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자세를 조금씩 바꿔 킹의 등 위에 제대로 올라탄 알렉스는,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크로맨서들은?’

곧이어 알렉스의 시선에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네크로맨서들의 모습이 보였다.

딱히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이미 킹은 무엇을 노려야 하는지 파악하고, 언데드 군세의 뒤편에 숨어 있는 네크로맨서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똘똘한 녀석.’

잠시 씩 하고 웃음을 지은 알렉스는, 마스터 레벨의 라이딩 덕분에 킹과 일체화되는 감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알렉스를 태우며 조금 둔해지던 킹의 움직임에 다시 속도가 붙는다.

“저것들은 뭐야?”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아라!”

주변 건물의 지붕을 디딤돌 삼아 빠르게 다가오는 알렉스를 막기 위해, 네크로맨서들은 남아 있는 망령들을 대거 움직였다.

끼에에엑!

백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망령들이 허공에 벽을 치며 알렉스의 앞길을 막기 위해 날아들었다.

지상의 언데드들은 피했으나 망령들이 따라붙는 건 어쩔 수 없다.

‘뚫고 지나갈 수 있을까?’

지면에 발을 붙이고 수비를 단단히 한 상태라면, 저깟 망령 따위는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알렉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제자리에서 버티는 게 아니라 놈들을 뚫고 지나가야만 네크로맨서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디바인 크로스만 다시 쓸 수 있어도…… 아냐, 안 되는 일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중간에 막혀서 떨어지게 되더라도, 일단은 목표물인 네크로맨서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알렉스는, 킹에게 최대한 힘껏 망령들의 벽에 몸을 부딪칠 것을 지시했다.

킹이라면 어지간한 부상은 재생능력으로 회복할 수 있을 테니, 망령들의 공격에 다치게 되더라도 괜찮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천상의 가호]

“……어엇?”

뭉텅이로 날아오는 망령들을 마주하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막 천상의 가호 스킬을 사용한 알렉스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 탄성을 내뱉었다.

천상의 가호는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일인용 스킬인데, 어째서인지 킹에게까지 신성력이 퍼져나가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라이딩 마스터 덕분인가? 기승수까지 한 몸으로 쳐주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기마상태의 전술과 전투능력이 완전히 달라진다.

알렉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으며 다른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실드 차지]

돌진 속도를 높여주고 충돌 데미지에 보정을 주는, 초창기부터 무난하게 잘 써먹고 있는 이동 및 공격 스킬.

분명히 말에 오른 상태에서는 써지지 않아야 정상인데, 뭐가 문제냐는 듯이 스킬이 발동하며 킹의 속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흐억!?’

히히힝!?

원래도 엄청나게 빠른 속력을 가진 킹이 돌진 속도에 보정까지 받자, 그야말로 포탄이 쏘아지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방패에 홀리 웨폰을 부여해 몸을 가린 채, 알렉스는 킹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버텼다.

금빛의 섬광이 밀집되어 있는 망령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알렉스를 막기 위해 한 자리로 뭉쳐 벽을 쌓던 망령들이 갈가리 찢겨지며 거품처럼 터져 나갔다.

킹의 속도와 알렉스의 스킬 조합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진 기마돌격을 만들어 보였다.

다만 그게 마냥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콰앙!

“컥!”

너무 빨라진 속도를 주체할 수 없던 킹은 망령의 벽을 뚫고도 방향을 전환하지 못해, 앞에 있던 건물에 몸을 들이받았다.

위에 타고 있던 알렉스는 충돌의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 나가, 내장이 진탕되는 충격을 맛보며 바닥에 몸을 처박아야 했다.

“끄으…… 스으벌…….”

알렉스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마구 흔들리는 초점을 고정하기 위해 애썼다.

팔과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천상의 가호가 발동 중임에도 전신이 욱신거리는 것이, 몸에 입은 피해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하긴 단순한 낙마가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건물을 들이받은 결과이니, 커다란 부상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다.

알렉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짓이겨진 반죽처럼 되었을 터.

‘어디로 날아온 거지? 킹은 괜찮은가?’

흐릿한 시야에 무너진 건물이 보였다.

포격이나 다름없는 무지막지한 돌진에 건물이 무너진 모양인데, 어쩌면 저 아래 킹이 깔려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당장은 꺼내줄 방법이 없는데. 킹의 재생력이라면 어지간한 부상은 다 회복할 수 있으니, 전투가 끝낼 때까지 버티고 있어 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그나마 천상의 가호가 공유되고 있었으니, 치명적일 정도의 중태에 빠지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이, 이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알렉스의 귀로 더듬거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네크로맨서의 얼굴이 보였다.

“어엇!?”

당황한 알렉스는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을 견디며, 힘겹게 검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적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보아하니, 조금 문제가 있는 돌진이긴 했어도 방향은 제대로 잡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큰일인데. 몸이 이래서는 제대로 싸울 수가…….’

“크으윽!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다니!”

‘……음?’

그런데 네크로맨서의 상태가 이상했다.

질린 기색으로 뒷걸음질 치는 네크로맨서를 보며, 알렉스는 의문으로 채워진 두 눈을 깜박거렸다.

상대방의 묘한 태도가 무엇 때문인지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머리에 가해진 충격으로 흐려진 시야가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자, 바닥 여기저기에 조각나 흩뿌려진 인간의 파편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빨간 선혈이 줄줄 흐르고 있는 것이, 언데드가 아니라 방금까지 살아 있던 사람의 것임이 분명했다.

“하! 그런 거였나.”

주위를 둘러본 알렉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일어나기 전까진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었는데, 자신이 날아와 떨어진 자리가 바로 네크로맨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장소였던 것이다.

아마도 네크로맨서 몇 놈이 자신과 충돌하며, 대포알에 맞은 것처럼 몸이 산산이 박살 나버린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개꿀이구만. 운이 이렇게 따라주다니.’

살아 있는 네크로맨서는 저 한 놈뿐이었다.

몸 상태가 많이 안 좋긴 하지만, 상대가 고작 하나라면 소극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었다.

달려들기에는 팔다리가 영 말을 잘 듣지 않아, 알렉스는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적에게 다가갔다.

“이리 와 이 새끼야!”

“흐이익!”

느릿하게 걸어오는 알렉스의 일갈에, 동료를 전부 잃고 당황하던 네크로맨서는 흠칫 놀라며 다급히 주문을 외웠다.

기분 나쁜 흑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하나의 마법이 완성된다.

“이, 이놈! 위대한 어둠의 힘에 무릎 꿇어라!”

“싫은데.”

“허억!?”

아마도 정신계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마법이었던 모양인데, 아무런 현상도 벌어지지 않은 탓에 정확히 어떤 마법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성기사는 기본적으로 정신마법에 대한 내성이 높은 클래스다.

거기에 온갖 마법저항 효과로 떡칠을 하고 있는 알렉스가, 급조된 마법 따위에 눈곱만큼이라도 흔들릴 리가 없었다.

상대가 흑마법에 정통한 암흑교의 장로급쯤 되는 고위교도라면 또 모를까.

현 상태의 알렉스는 상성 자체가 마법사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휘리릭.

거리를 어느 정도 좁힌 알렉스는 방패에 홀리 웨폰을 부여하고, 그대로 네크로맨서를 향해 집어 던졌다.

몸이 엉망이라 상대가 도망치면 쫓아가기가 곤란하기에, 다른 수작을 부리기 전에 빨리 쓰러뜨려야 했다.

뻐걱!

“커억…….”

빛나는 방패가 정확하게 네크로맨서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딱히 투척 연습을 따로 한 건 아닌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던질 때마다 결과가 잘 따라준다.

‘흐, 어쩌면 이쪽으로 재능이 있을 지도? 다음엔 실드 스로잉 스킬도 하나 찍어볼까? 게임에선 효율이 별로라 안 쓰던 스킬이긴 한데.’

쓰러진 채 바들거리는 네크로맨서에게 다가간 알렉스는, 놈의 몸에 박힌 방패를 뽑았다가 무게를 실어 다시 내리찍었다.

콰득.

살려달라는 듯이 손을 들어 바동거리던 네크로맨서는 그대로 목이 부러져 절명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74]

전투 내내 조금씩 쌓여가던 경험치가 마지막 조각을 채웠는지, 레벨 업 알림이 떠올랐다.

동시에 연합군이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알렉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놈들이 쓰러진다!”

“정의가 승리했노라!”

네크로맨서들이 죽은 시점에서 언데드들도 시체로 돌아가거나 급격히 약화되었으니, 연합군의 승리는 당연히 뒤따르는 결실이었다.

‘솔직히 내가 다한 거 같긴 한데.’

알렉스는 피식 웃으며 지면에 주저앉았다.

마무리를 짓느라 억지로 움직였더니 상처들이 더 쑤신다.

처음부터 끝까지 썩 마음에 드는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전투는 남부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평가가 썩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성전에 참가한 연합군들의 첫 점령전으로 역사에 기록될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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