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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88화 (88/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88화

히드라(4)

여섯 명이서 수행하던 임무를 두 사람, 그것도 사실상 이사벨 혼자서 움직이며 해내야 하니, 난이도가 급격히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히드라도 머리 두 개를 잃고 약화된 상태였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놈의 집중된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금방 무너졌을 것이다.

“오른쪽! 저 다리를 끼고 돌아서 지나갑시다!”

“옛!”

“여기가 잠깐이나마 사각지대가 되는군요. 이대로 반대편까지 끌고 갑시다!”

“알겠습니다!”

머리가 여러 개인 히드라는 자신의 시야를 머리별로 방향을 나눠서 담당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잘려 나간 두 머리가 맡았던 부분을 나머지 셋이 커버하려 하다 보니, 녀석의 시야에는 두 사람의 움직임을 잠깐씩 놓치는 순간적인 사각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평상시의 넓은 시야각을 유지하는 익숙한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습관대로 행동하려다 보니 만들어진 빈틈.

히드라의 그런 미묘한 반응속도의 차이를 알아차린 알렉스는 주둥이로(?) 이사벨을 보조하며, 녀석과의 술래잡기에서 점점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걸 훈수 두는 사람의 시야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방금까지만 해도 알렉스 역시, 히드라에게 반응이 느려지는 시야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아마도 직접 전투 행위를 하지 못하고 업혀 있기만 하다 보니, 오히려 히드라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눈에 담을 수 있게 시각적인 감각이 예민해진 듯하다.

부아앙-!

“으읏!”

“궤엡!?”

“죄, 죄송합니다.”

“퉤엣…… 아닙니다.”

히드라의 꼬리 공격을 피하느라 이사벨이 이리저리 뛰고 구른 덕분에, 알렉스는 간간이 안면으로 땅바닥에 도장을 찍기도 해야 했다.

“혹시 피하기 애매하다 싶으면 그냥 저를 방패처럼 쓰십시오. 이러고 있어도 한두 번은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알렉스 경이라면 믿고 등을 맡길 수 있지요!”

“……그렇군요.”

등 뒤를 맡긴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사실적인 형태에 맞춰 쓰이니, 약간 듣는 기분이 묘해진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제법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전위팀이 거의 전멸한 상황에서도 히드라를 계속 장벽 안에 묶어두고 있기에, 혼란에 빠졌었던 방위군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투사공격을 다시 지속했다.

퍼버벅!

쉬에에엑!

막 이사벨에게 이빨을 들이대고자 목을 뻗던 머리 하나가, 절묘한 타이밍에 쏟아진 투사체들을 얼굴에 맞고 괴성을 질렀다.

“이사벨 경!”

“하아아아앗-!”

고개를 돌리며 주춤하는 히드라의 머리 위치가 굉장히 탐스러운 기회로 보여, 알렉스는 반사적으로 이사벨의 이름을 불렀다.

자세한 설명이 없었어도 알렉스의 뜻을 이해한 이사벨이, 기합성을 내뱉으며 틈을 드러낸 녀석의 목을 향해 뛰어올랐다.

콰지직.

공성병기들의 반복적인 투사 공격에 의해 조금씩 찢기고 패여 있던 히드라의 목으로, 거력을 담은 묵직한 폴액스의 날이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이야압!”

이사벨이 뼈를 분쇄하고 틀어박힌 폴액스를 강하게 비틀며 히드라의 목을 걷어차자, 상처가 더욱 크게 벌어지며 결국 놈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지! 잘하셨습니다!”

“함께 이룬 성과입니다! 알렉스 경의 지휘가 아니었다면, 달려들지 말지 고민하느라 기회를 놓쳤을 겁니다.”

바닥으로 착지한 이사벨이 알렉스의 칭찬에 흡족해하는 목소리로 호응했다.

등이 업혀 있어 얼굴을 볼 순 없지만, 수줍게 미소 짓고 있을 이사벨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쿠웅!

샤아아악!

쿵, 쿠궁!

히드라가 알렉스와 이사벨을 무시하고 장벽에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과반수의 머리를 잃고 생명의 위기를 느낀 히드라는, 더 이상 맹목적으로 두 사람을 쫓으려 들지 않았다.

“이런!? 놈이 달아나려는 모양입니다!”

웅장한 몸집으로 바람의 장벽에 부딪치며 밀어대는 히드라.

그런 히드라의 모습을 지켜본 알렉스는 마음이 살짝 조급해졌다.

설명을 들은 바로는 장벽마법이 몇 번 충돌했다고 바로 파괴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견고한 내구성을 가진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대로 두면 놈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저 놈을 이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보내준다면…….’

히드라가 다시 본래의 영역으로 돌아가 틀어박히게 된다면, 몬스터 웨이브는 끝나고 판디움 인근의 생태계도 다시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도시를 지켜낸다는 방위군의 목적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험요소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니, 아주 최소한의 목표달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히드라의 잘린 머리는 결국 다시 재생된다.’

히드라는 재생능력을 갖추고 있는 몬스터이기에, 시간만 주어진다면 잘린 머리조차도 회복할 수 있다.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머리들을 복구하고 나면, 언제고 다시 나타나 도시에 위협을 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다른 이유야 어쨌든 간에, 히드라가 줄 막대한 경험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사벨 경! 익시드를 쓰면 몇 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습니다만…… 지금 몸 상태라면 10초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알렉스의 질문에 이사벨이 조금 자신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최대로 잡아도 10초 이하. 그럼 적당히 7, 8초 정도로 예상한다면…… 승부를 걸어 볼 만은 하다.’

계산을 마친 알렉스는 이사벨에게 디바인 익시드를 사용하여, 전력을 다해 남은 두 머리의 제거를 시도할 것을 지시했다.

“지금이 그걸 써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놈의 목숨에 종지부를 찍어줍시다.”

“알겠습니다! 떨어지지 않게 더 단단히 붙잡으세요!”

알렉스의 지시를 착실히 이행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며 자신의 내부에 잠재된 막대한 힘을 일깨웠다.

“후우우-”

길게 숨을 몰아 쉰 이사벨이, 폭발적으로 날뛰는 신성력을 육신에 머금기 시작했다.

갑옷과 방패 등의 무장으로 중량의 총합이 100㎏를 넘어가는 알렉스를 등에 매달고 있음에도, 디바인 익시드를 사용한 이사벨은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을 연상케 하는 속도로 히드라를 향해 쏘아졌다.

‘크으! 기대하긴 했지만 확실히 굉장한 움직임이다. 이 정도라면 탈진하기 전에 충분히 머리 두 개를 전부 제거할 수 있겠어.’

순식간에 히드라의 등에 올라탄 이사벨이 곧바로 놈의 목을 향해 도약했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뚫고 빠져나가려 시도하느라, 바람의 장벽에 몸뚱이를 붙인 채 힘으로 밀어내고 있던 히드라.

그렇게 움직임이 제한된 히드라의 목 위로, 산도 쪼갤 수 있을 것 같은 거력이 담긴 이사벨의 폴액스가 내리꽂혔다.

아니, 꽂힐 뻔했었다.

폴액스가 가죽을 찢고 등뼈를 부수며 히드라의 몸통을 파고들었다.

상당한 피해를 강요하는 일격이기는 했지만, 머리를 잘라내는 것에 비하면 치명상이라 할 수도 없는 상처가 놈의 등에 새겨졌다.

“이런 썅!?”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알렉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히드라를 가둬두고 있던 마법장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탓에 놈의 몸체가 바깥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목의 위치에 맞춰 내리치던 이사벨의 공격이 빗나가고 말았다.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알렉스가 휙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주둔지 주변으로 마법사들이 몸을 숨긴 채 포진해 있는 지점을 바라보자, 새로운 마력의 흐름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기존의 주문을 캔슬하고 대신 다른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염병할! 딱 1초만 더 있었어도 머리 하나를 잘라낼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아군 마법 전력과의 손발이 맞지 않아 큰 손해를 보고 말았다.

아마 전위팀이 거의 전멸한 상황이고 바람의 장벽 역시 곧 부서질 것으로 보이자, 마법사들도 부랴부랴 다른 대안을 실행할 생각이었으리라.

유지시키고 있던 마법이 강제로 부서지게 되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 주문사용자는 악영향을 입게 된다.

그나마 개인이 사용하는 마법은 주문파괴가 발생해도 부작용이 그리 크지 않지만, 이런 대단위 합작마법의 반동은 분명 여러 마법사들에게 후유증을 입히게 될 터.

바람의 장벽을 취소시킨 것은 그렇기에 내려진 판단이었다.

주문이 파괴당하기 전에 스스로의 의지로 거둬들인다면, 반동을 최소한으로 억제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소모된 마력을 일부나마 회수할 수가 있기 때문.

그런 사정으로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었으나 타이밍이 안 좋게 맞물려, 알렉스의 입장에선 아주 골치 아픈 사태가 되고 말았다.

‘이러면 히드라를 잡을 가능성이 확 줄어드는데.’

“알렉스 경! 제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면으로 내려오며 황급히 디바인 익시드의 발현을 중지한 이사벨이, 곤란한 심정을 가득 담아 알렉스를 불렀다.

이미 지금까지의 고된 전투로 이사벨은 상당량의 기운을 소진했고, 디바인 익시드는 애초에 길게 지속할 수 있는 기술도 아니었다.

익시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아주 잠시뿐.

그녀 스스로가 남은 시간 동안 머리 두 개를 잘라낼 수 없을 거라 판단했기에, 성법을 취소하고 알렉스에게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놈을 보내줘야 하나?’

무리하게 마무리를 시도하다가 이사벨의 탈진이 먼저 오게 된다면, 두 사람의 목숨은 그대로 끝이 날 것이다.

괜히 더 욕심내지 않고 여기서 멈추는 것이 옳다.

그렇게 생각한 알렉스가 아쉬움을 삼키며 히드라를 바라보는 동안.

도주를 선택하는가 싶던 히드라는 생각보다 쉽게 방해물이 사라지자, 오히려 곧장 떠나가지 않고 머리를 휙휙 돌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시에엑?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주위를 둘러본 히드라의 눈에 의문의 기색이 서린다.

이윽고 녀석은 도망치려던 생각을 바꿔먹었는지, 몸을 돌리며 강렬한 살기를 드러냈다.

스시시시싯!

자신을 몰아붙이던 인간들의 여력이 다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싸움을 계속해 조금 전까지의 치욕을 되갚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럼 아직 기회는 있겠군.’

알렉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이사벨에게 지시를 내렸다.

“놈이 좀 더 싸우려는 모양입니다. 무리하지 말고 시간만 더 끌어봅시다.”

마법사들이 새로 구성하고 있는 주문이 공격 계열이라면, 히드라의 머리 하나 정도는 떨어뜨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 머리는 이사벨이 확실히 처리할 수 있다.

그때 가서 히드라가 다시 도망을 치려고 해도, 이사벨이 익시드 상태의 남은 시간을 활용한다면 단숨에 녀석의 목을 칠 수 있을 것이다.

‘가용 시간이 짧아 두 개는 위험할지 몰라도 하나쯤은 충분히 벨 수 있겠지.’

알렉스가 승리의 플랜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자니, 거친 괴성과 함께 히드라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앗!?”

계속 그래왔듯이 놈의 반응이 느려지는 사각을 파고들어 안전거리를 확보하려던 이사벨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동작을 멈추었다.

히드라는 더 이상 자신을 가로막던 두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곧장 주둔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 이런…….”

알렉스 역시 녀석의 행동에 깜짝 놀라 탄식을 흘렸다.

마법의 방벽이 사라졌어도 여태까지 그랬듯이 자신들에게 시선이 끌릴 줄 알았는데,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보폭이 넓은 히드라는, 방위군의 병력들이 뭔가 대비하기도 어려운 짧은 시간 만에 주둔지의 안으로 들어섰다.

다 자란 코끼리도 가릴 수 있을 만한 크기를 지닌 히드라의 발바닥이, 지금껏 자신을 괴롭혔던 공성병기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던 병사들이 히드라의 꼬리에 맞고 핏덩어리가 되어 날아다녔다.

주둔지가 초토화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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