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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85화 (85/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85화

히드라

대륙에 존재하는 수십 곳의 마법학파들이, 지식의 교류와 이권 보호 등 여러 목적을 위해 뭉친 공동체가 있다.

그들이 서로를 칭하는 세부적인 분류와 명칭이 따로 있긴 하지만, 외부에서는 이 단체를 뭉뚱그려 통칭 마탑이라 부른다.

정확히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마법사들이 모여서 거주하는 장소들이 하나같이 탑 형식의 고층 건물이라는 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오직 마법사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인 이들은 각 국가의 여러 도시들에 마탑의 지부를 세우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안에 주둔하며 살아간다.

이는 일정 규모 이상의 마을에는 반드시 들어서게 되는, 예루스 교단의 신전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마탑에서 탐색 결과를 전해왔다네.”

“벌써 말입니까? 꽤 빠르군요.”

“이곳 도시의 마탑 규모는 다른 지역들의 평균보다 훨씬 큰 편이니, 일의 진척도 그만큼 빠른 것이겠지. 그만큼 상당히 많은 인적 및 물적 자원이 소모되었다고 듣긴 했지만 말일세.”

지식의 탐구를 갈망하는 마법사들은 자신만의 연구와 실험을 위해, 온갖 광물이나 약초, 각종 몬스터 부산물 등을 다량으로 소비하는 편이다.

그리고 판디움은 산악지대이자 몬스터 생태계와 인접해 있다는 지역 특성상, 위에 나열된 재료들을 전부 생산 및 유통하는 남부의 도시 중 하나.

마법사들에겐 최적의 연구 환경을 갖춘 장소라 할 수 있으니, 마탑의 규모가 다른 도시보다 커지는 것이 당연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미 우려했던 대로 몬스터 웨이브의 징후를 포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네.”

“역시 그렇게 되었군요.”

알렉스와 이사벨은 판디움 교구의 성기사단장과 대면하여, 이번 비정상적인 몬스터 출몰 사태에 대한 원인파악과 앞으로 진행될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웨이브가 확정적인 상황이라 똥줄이 탄 모양이군. 이렇게 따로 브리핑까지 해주며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걸 보면 말이지.’

단장급의 인사가 굳이 타 교구의 단원인 두 사람에게 이런 개별적인 만남을 청한 것은, 오우거 슬레이어란 업적을 이룬 알렉스와 이사벨의 무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

마탑에서 파악한 정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알렉스는 판디움 교구에서 자신들을 붙잡아두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대형 몬스터. 그것도 아주 강력한 개체가 발견되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네. 이번 몬스터 웨이브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놈이지.”

웨이브의 발생 원인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다만 마법사들의 탐색 결과에 의하면 이번 사태의 원흉은, 이 지역 몬스터 생태계의 최상층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강대한 개체의 난동이 그 시발점이라 했다.

“크기 외에는 정보가 없는 겁니까?”

“으음. 원거리에서 펼치는 광범위 탐색 마법이란 게 정밀도는 많이 떨어진다더군. 그래도 감지된 그것의 외형이 특이한 덕분에, 놈의 정체에 대한 의견을 하나로 좁힐 수 있었다던 모양일세.”

거기까지 말한 성기사단장은 두 사람의 눈치를 조금 살피다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마법사들은 그것의 정체가 히드라일 확률이 높다고 말해왔네.”

“예루스시여! 히드라라니, 영웅들의 서사시에서나 간혹 언급되는 몬스터가 아닙니까?”

알렉스의 옆에서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이사벨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표현은 안했지만 알렉스 역시 내심 기겁하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니, 히드라는 조금 심하게 무리잖아?’

히드라는 정말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목이 길고 덩치가 큰 도마뱀이다.

평범한 도마뱀과의 차이점이라면 머리가 여러 개 달려 있고, 맹독을 품고 있으며, 덩치가 중생대의 상징인 공룡 뺨치도록 크다는 정도.

냉병기를 들고 싸워야 하는 입장에선 사소하게 여기기 어려운 차이점이기는 하다.

‘만약 최대치까지 성장한 개체라면 필드 보스급 몬스터이니, 무조건 피해야 하는 괴물인데?’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3개 달려 있는 몬스터인 히드라는, 성체가 될 때쯤엔 머리의 수가 5개로 늘어난다.

거기에 수백 년을 더 생존하며 힘을 축적한 개체라면 최대 9개까지 머리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런 나인 헤드의 히드라는 격퇴하기 위해선 국가 단위로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

게임에서도 만렙 유저 십여 명 이상이 파티를 이루어야 레이드를 시도할 수 있는 괴물이다.

지금의 알렉스에겐 상대하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인 몬스터라 할 수 있었다.

“머리가 몇 개랍니까?”

초조한 얼굴로 알렉스와 이사벨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성기사단장이, 재빨리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5개라고 전달되었다네.”

“후우, 그나마 다행이군요.”

“으음? 마탑에선 머리가 5개면 아마 갓 성체가 된 개체일 거라고 이야기하던데, 자네는 이미 알고 있던 정보인 모양이군? 혹시 히드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가?”

“아니오. 저도 딱 그 정도, 그것도 어쩌다 우연히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사실 게임에서는 히드라를 잡아본 경험이 꽤 있었지만,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이기에 굳이 더 아는 척을 하진 않았다.

“그런가. 하긴 마탑에서도 근 50년 내로는, 대륙 어디에서도 출현했다는 소식이 없는 몬스터라더군. 우리 쪽에도 전승된 기록이 있기는 한데, 매우 강력한 몬스터라는 언급 외에는 그리 자세한 정보가 남아 있지 않으니.”

“저희들이야 이교도들의 사역마나 기타 사이한 존재들에 대한 정보가 아니면, 깊게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편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판디움의 총력을 다하여 방위군을 결성해 히드라를 제거하는 것이, 이번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란 결론을 내렸다네.”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는 성기사단장을 보며, 알렉스는 우려가 가득 담긴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그거 참 불행한 결론이네요.”

“웨이브도 문제지만 놈이 계속 판디움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었기에, 위험하다고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닐세. 자칫하다간 끔찍한 피해가 발생하게 될 테니 말이네.”

“하지만 이곳의 전력으로 놈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탑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네. 인근 영지와 교구에도 도움을 요청했으니, 병력이 더 충원될 테고 말일세.”

“전투의 예상 시기는 언제입니까?”

“일단은 짧으면 일주일에서 길면 한 달까지도 예상하고 있네. 놈의 이동 경로와 행동 패턴을 계속 관측하고 있으니, 곧 더 정확한 시점을 확인할 수 있을 걸세.”

알렉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게임에서처럼 믿음직한 고인물들로 이루어진 파티는 없지만 다수의 마법사들과 대규모의 병력이 동원된다면, 히드라 같은 강대한 몬스터의 사냥도 마냥 어려운 것만은 아닐 터다.

‘머리 다섯 개짜리 히드라라면 레벨이 대충 80대 후반쯤 되던가? 90을 넘는 정도만 아니면 인해전술이 그럭저럭 먹히긴 하겠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그만큼 달달한 경험치를 예상할 수 있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니 발을 뺄 이유가 없다.

“교구의 위기를 외면할 수야 없지요. 원하시는 건 저희가 전위에 서길 바라시는 겁니까?”

“크흠! 염치없지만 그래 줄 수 있겠는가? 마법사들이 아무리 전천후로 활약해준다 해도, 히드라의 시선을 끌어줄 이가 없다면 준비한 만큼의 위력을 내기가 어려울 걸세.”

“흠. 가장 위험한 자리에 있으란 소리군요.”

성기사단장은 알렉스에게 전위의 주축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어차피 탱커 타입으로 성장해 온 알렉스에겐,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서 맡아야 할 포지션이긴 하다.

그래도 마냥 당연하다는 듯이 수락하는 건 너무 값싸 보이기에, 알렉스는 일부러 곤란하다는 듯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안달 나도록 만들었다.

“부탁하네. 자네 같은 용맹하고 실력 있는 팔라딘이 선두에 서준다면, 다른 이들의 인명피해를 최대한 방지할 수 있을 걸세.”

어차피 알렉스도 성기사의 신분이다 보니 같은 소속의 도움 요청을 아예 거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전위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것과, 적당히 몸을 사리며 뒤에 머무는 건 아주 큰 차이가 있는 법.

성기사단장의 입장에선 판디움 소속 팔라딘들의 손해를 줄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테니, 이런저런 지원들을 약속하며 알렉스를 앞장서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가 없군요. 부담스럽긴 하지만 제가 방위군의 선두에서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이제야 한시름 놓이는군.”

진심으로 안도한 모양인지 성기사단장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그간 봐왔던 얼굴들 중 가장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긴 알렉스가 없었다면 판디움 교구의 팔라딘들이 영주의 기사들과 함께 방위군의 전위를 담당했을 터.

그럴 경우 전위의 중심에는 눈앞의 성기사단장이 서게 되었을 테니, 그 자리를 알렉스에게 넘기며 부담감을 꽤나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판디움 교구와의 협의를 마치고, 알렉스는 이어지는 방위군의 전략회의에도 참가를 해야 했다.

영지 규모의 대단위 작전을 펼쳐야 하는 만큼, 교단과 마탑 그리고 영주 가문의 고위층들이 모여들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딱히 나한텐 알맹이 있는 내용은 아니군.’

작전의 개요가 어떻든 간에 어차피 자신의 역할은 히드라의 발을 묶어두는 것 하나뿐이기에, 회의에 직접적으로 나서서 발언을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며 전투를 대비하는 사람들 속에서, 알렉스는 자신이 활약할 차례가 찾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마침내 판디움의 명운을 건 작전, 히드라 토벌전이 시작되었다.

* * *

판디움에서 한나절쯤 이동해 떨어진 거리.

방위군은 주둔지를 결성하고 토벌 목표인 히드라가 접근하는 것을 기다렸다.

어떤 방식으로 재도 크기가 10미터를 가뿐히 넘어가는 대형 몬스터인 히드라를 상대로는, 도시의 성벽은 사실상 전투의 진행에 그리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렇기에 괜히 성벽을 날려먹을 가능성이 높은 농성전 대신, 방위군은 도시를 벗어난 장소에서 놈을 처치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 정도로 준비가 갖춰졌으니 토벌에 문제는 없겠지.’

기대 이상으로 대비를 마친 방위군의 전력에, 알렉스는 살짝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성전에나 쓸 법한 캐터펄트와 발리스타가 곳곳에서 조립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울창한 숲속임에도 기마가 움직일 수 있도록 나무를 베어내 길을 만들어두었고,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사방에 포진한 마법사들이 미리 마법진을 설치하고 주문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영지의 기사와 병사들, 교단의 팔라딘과 프리스트들이 지정된 장소에 배치되어, 언제든 필요시 투입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상한 변수만 없다면 무난한 사냥이 될지도.’

알렉스는 주위의 지형지물을 숙지하고, 킹의 등위에 올라 천천히 주둔지를 빠져나왔다.

히드라가 예측한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미리 마중을 나가 유인하는 것이, 전위 팀이 착수해야 할 역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알렉스와 함께 전위를 담당하는 팀으로 편성된 기사 몇 사람이, 각자의 말에 올라 뒤를 따랐다.

“알렉스 경의 전마는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대단하군요. 대체 어떤 품종인 겁니까?”

“저도 궁금하군요. 말에 대해서는 제법 박식하다고 자부합니다만, 이런 신비한 털색을 가진 품종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지요.”

“하하…… 딱히 진귀한 품종은 아닙니다.”

킹의 화려한 자태에 반한 기사들이 건네 오는 질문들을 웃음으로 대충 넘기고, 알렉스는 지휘부에서 전해준 정보에 따라 히드라의 접근방향을 주시하며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부터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당장 눈엔 보이지 않아도 피부로 느껴지게 되었다.

호기심 반 긴장을 풀 목적 반으로 킹에 대한 잡담을 떠들던 기사들도, 어느덧 강해지기 시작한 대지의 진동을 감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쿠웅. 쿠웅.

생물이 움직이며 나는 소리가 맞긴 한지 의심스러운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귓가에 들려올 때쯤.

길게 뻗은 머리들과 거대한 몸체를 가진 거대한 몬스터의 모습이, 일행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맙소사…… 엄청나군.”

“저게 히드라? 저런 걸 정말 우리가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듣던 것보다 더 커 보이는데…….”

미리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물로 마주하게 된 히드라의 위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기사들이 동요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두려움을 담아 한마디씩 내뱉고 있자니, 그들을 태운 말 역시 겁을 먹고 흥분하며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그들 사이로 금빛으로 빛나는 말과 그 위에 탄 한 사람의 성기사만이 유일하게, 꼿꼿한 자세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다가오는 히드라의 거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사벨 경.”

“아, 네!”

다른 기사들만큼은 아니지만 긴장으로 평소보다 약간 움츠러들어 있던 이사벨은, 알렉스의 음성이 들려오자 마음을 다잡으며 어깨를 폈다.

“계획대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말에서 내린 이사벨이 미리 준비해온 투창용 창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이윽고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한 자루의 창이 수백 미터의 거리를 뚫고 날아갔다.

쌔애애액-!

일반적인 투사공격의 사거리를 아득히 뛰어넘은 초장거리 투창.

이사벨만의 초인적인 괴력이 있기에 가능한 공격이었다.

하늘 높이 쏘아 보낸 창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히드라의 몸체에 틀어박혔다.

“자, 이동합시다.”

알렉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괴성이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사벨이 다시 말에 오르는 것을 확인한 알렉스가 주둔지로 복귀하고자 박차를 가하는 것과 동시에.

분노한 히드라가 거체를 움직여 근처의 나무들을 깔아뭉개며, 감히 자신을 공격한 일행들을 붙잡고자 쫓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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