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81화 (81/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81화

우연한 의뢰(2)

약초꾼의 아들 토미는 올해로 12살이 되었다.

슬슬 일을 배울 때가 되었다는 말에 따라 그는 얼마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숲을 돌아다니며, 채집 기술과 요령을 조금씩 터득해 가던 중이었다.

“이런, 토미! 돌아가자. 이쪽 길은 당분간 다니지 말아야겠다.”

“예? 하지만 저 위쪽 전나무 숲으로 들어가려면 여기가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하셨잖아요.”

“언제까지고 항상 안전한 길이라는 건 없지. 이걸 봐라.”

부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닥을 내려다본 토미는, 뺨을 긁적거리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토끼 똥인가요?”

“아니. 이게 바로 코볼트의 배설물이다. 한번 정해놓은 길이 아니면 잘 다니지 않는 놈들인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나온 건지 원.”

“아, 코볼트…….”

코볼트는 고블린과 비슷한 체구의 소형 몬스터이며 개과의 동물처럼 생긴 외형을 가진 종족이다.

칼질 조금 배운 신참 용병 정도만 되어도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는,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숲속 생태계의 최약체에 속하는 몬스터.

하지만 무리생활을 하기에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 있지 않고서야, 혼자서는 놈들과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낫다.

잘 무장한 용병대라면 가뿐히 상대할 수 있겠지만 부산물의 가치가 너무 떨어져, 퇴치의뢰가 나오기 전에는 일부러 사냥하려 들지는 않는 비인기 몬스터이기도 하다.

“약초를 찾고 손상 없이 채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건 목숨의 안전이다. 몬스터의 흔적이 발견되면 무조건 자리를 피해라.”

“네. 아버지.”

“요 며칠 사이 숲의 분위기가 영 이상하구나. 어디서 괴물 놈들이 크게 영역 다툼이라도 벌인 건지도 모르겠어.”

“그러고 보니 곰보풀이 자라는 곳에도 몬스터 때문에 한동안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죠? 놀이라고 했던가요?”

“그래. 코볼트보다 더 무시무시한 몬스터지. 그놈들 때문에 채집 시기를 놓쳐서 속이 쓰리구나.”

토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아버지를 쫓으며, 몬스터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그러나 두 부자의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토미.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어째선지 갑자기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된 부친이 배낭에서 풀과 진흙을 짓이겨 섞은 듯한 무언가를 꺼내 쥐어짜더니, 토미의 얼굴과 몸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역한 냄새와 피부에 닿는 끈적끈적한 감촉에 소름이 돋았지만, 토미는 인상을 찌푸릴 뿐 아버지의 말에 따라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건…… 뭔가 쫓아오고 있, 이런…… 위험해…….”

“아버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부친을 바라보던 토미는, 이내 억지로 떠미는 부친의 손에 의해 덤불더미 위로 넘어졌다.

“그 안에 있어라.”

“아버지, 대체?”

“절대 나오지 마라. 절대로!”

언제까지요? 라고 물으려 했으나, 부친은 그 말을 끝으로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갔다.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인 토미는, 덤불더미 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웅크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아아악-!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성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던 아버지의 비명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따다닥.

토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빨을 맞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린 토미가 숨은 덤불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털썩.

바깥 풍경의 극히 일부밖에 보이지 않는 한정된 시야 속으로, 바닥에 쓰러지는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망가진 인형처럼 몸 여기저기가 기이하게 뒤틀린 그 모습에서, 토미는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륵. 그르륵?

그와 동시에 무언가의 거친 숨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토미는 턱에 힘을 꽉 주며 호흡을 멈추었다.

아버지를 저렇게 만든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솨아악.

덤불 속에 엎드려 있던 토미의 등으로 뜨거운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코를 찌르는 지린내.

부친에게 들은 적이 있던 지식을 통해, 토미는 바깥의 괴물이 지금 소변을 뿌리며 영역표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버지…….’

토미는 목이 부러진 채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부친의 주검을 바라보았다.

이내 녹색의 커다란 손이 시신의 몸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괴물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토미는 덤불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적신 괴물의 뜨거운 오줌이 차갑게 식어 말라버릴 때까지, 토미는 계속 덤불 속에서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 * *

자세한 사정을 접한 알렉스는 안쓰러운 감정을 담아 토미를 바라보았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트롤이 나타나 사람을 해쳤다라…… 오우거보다 급이 떨어지긴 해도 트롤 역시 꽤나 수준 높은 몬스터인데.’

들어보니 사고가 생긴 것은 고작 이틀 전이고, 용병길드에서 파악하고 있던 트롤의 영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장소에서 일이 터졌다.

놀 무리가 자리 잡은 구역에 갑자기 나타났던 오우거의 일도 그렇고, 확실히 이 지역의 몬스터 생태계에 무언가 이변이 일어나긴 한 모양이다.

“거기 용병. 그쪽은 왜 이 아이의 의뢰를 헛소리라고 말한 거지?”

“그, 그것이…… 이 꼬맹이가 말한 구역은 기껏해야 코볼트 따위가 출몰하는 곳입니다. 트롤이라니, 그런 위험한 몬스터가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요? 뭘 모르는 녀석이라 지 애비가 엄청난 괴물에게 당했다고 여기는 거겠죠.”

“아냐! 모습을 전부 보진 못했지만 그건 분명 아버지보다 훨씬 큰 괴물이었어요! 코볼트 같은 게 아니었다고! 제임스 아저씨가 그건 분명 트롤이었을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하, 트롤이 무슨 동네 개새끼 이름도 아니고.”

제임스가 누군지는 모르겠고 그리 궁금하지도 않지만, 사람보다 확연히 큰 체구에 녹색 피부를 가진 몬스터가 트롤 하나뿐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가능성을 따지자면 전혀 신빙성이 없는 말은 아니긴 하다.

알렉스는 용병 사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의뢰가 아니라 생각하면 돈은 왜 받았나?”

“으윽, 그건…….”

아이는 부친의 복수를 해줄 용병을 구하고자, 길드를 기웃거렸다고 한다.

그리고 눈앞의 용병은 그런 아이를 발견하고, 의뢰를 맡아줄 것처럼 말하며 막 돈을 받아내던 중이었다.

“의뢰를 수행할 생각이 애초에 없으면서 돈만 챙기려고 했군?”

“아, 아닙니다! 마땅히 곧바로 가서 수색은 해볼 생각이었습죠!”

“그러다 정말로 나타난 몬스터가 트롤이면, 혼자서 잡을 실력은 되고?”

“…….”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엄청난 재생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몬스터인 트롤은, 기사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실력이 아니고서야 일대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녀석이다.

명성과 실력을 갖춘 대형 용병대가 나선다면 모를까, 일개 용병 하나가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는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를 받았지?”

“그게…….”

당연히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에게, 트롤 같은 고위험군 몬스터 사냥을 의뢰할 만한 큰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들어보니 식당에서 푸짐한 상차림 몇 번을 받을 정도의 금액은 구해가지고 온 모양.

용병 사내는 아이의 의뢰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 돈을 받고는 입을 싹 닦고 시치미를 뗄 생각이었던 듯했다.

어차피 큰 금액도 아니거니와 길드에서 중재하는 정식의뢰로 등록되기도 전이었으니, 별 탈은 없을 거라 여겼으리라.

‘이거 제대로 된 용병이 아니라 순 양아치 새끼였네.’

한심하다는 듯이 용병을 바라보던 알렉스는, 남자아이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그 의뢰, 내가 받아주마.”

오우거보다야 훨씬 약하지만, 평기사 이상의 수준은 되는 몬스터인 트롤.

돈이 아니라 경험치를 필요로 하는 알렉스에게, 트롤은 그냥 지나칠 순 없는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었다.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길드에서 아직 파악하지 못한 최신 정보인데. 이렇게 필요한 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주다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려나?’

어쩌면 용병의 말대로 어린아이의 오해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정확히 알아보는 수고를 들일 가치는 충분했다.

용병 사내보다 훨씬 신뢰가 가는 느낌을 풍기는 알렉스의 발언에 토미는 환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이내 우물쭈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하지만 제겐 이제 기사님께 드릴 돈이…….”

잠시 몸을 뒤적거리던 토미가 손바닥을 펴자, 가장 가치가 낮은 화폐인 동화 두 개가 초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평민들이 먹는 싸구려 흑빵 한 덩어리나 간신히 살 수 있을 만한 금액.

알렉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돈은 괜찮으니 한…… 모레쯤에 다시 찾아와 보거라. 일을 처리하고 나면 길드에 이야기를 전해둘 테니.”

“아…… 가, 감사합니다! 흐윽!”

눈물과 콧물을 찔찔거리는 토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알렉스는 몸을 돌려 쭈뼛거리며 서 있는 용병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아, 저는 그럼 이만…….”

“어딜 가나? 돈을 받아 처먹었으면 의뢰를 수행해야지.”

“옛? 어, 그게…… 도, 돈은 돌려주겠습니다.”

알렉스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떠듬거리는 용병.

‘기사가 도대체 왜 이런 일에…… 젠장, 설마 거기서 진짜 트롤이 나오는 거 아냐?’

하필이면 재수 없게 기사와 엮여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던 그는, 토미에게 받은 돈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용병 사내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니 위약금을 물어줘야겠군. 저 아이에게 받은 돈의…… 그래, 백 배를 지불하도록.”

“배, 백 배!?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용병에게 성큼 다가선 알렉스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내 판결에 불만이 있다면 길드로 가서 지부장과 삼자대면을 해볼까? 네 녀석의 행동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어억! 자, 잠깐! 살려주십쇼!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깨뼈가 박살날 것 같은 듯한 압력과 가슴이 철렁해지는 협박에, 기겁한 용병은 덜덜 떨면서 알렉스에게 애원했다.

“위약금을 못 내겠으면 의뢰를 무사히 완수해라.”

“으윽, 아, 알겠습니다!”

“마침 나도 같은 의뢰를 받았으니 일을 해결할 때까지 함께 다니도록 하지. 말하는 걸 보니 그 코볼트 구역이란 곳이 어딘지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던데, 거기까지 안내하도록.”

“예, 예엡…….”

울상이 되어 굽실거리는 용병을 보며 알렉스는 차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딱한 사정에 빠진 어린아이를 등쳐먹으려고 한 놈이기에, 의뢰를 수행하는 동안 데리고 다니며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알렉스 경. 어째서 저런 자와 동행을?”

“어차피 바깥을 안내할 길잡이가 필요하기는 하니까요. 저 어린 의뢰주를 데려가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저자는 악행을 저지르려 했으니 적당히 벌을 줘서 보내고, 따로 성실한 사람을 고용하는 건 어떨까요?”

이사벨의 말에 알렉스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불량스러운 인간을 굳이 골려주겠다고 데리고 다니는 것도 조금 우스운 일이긴 했다.

동료인 이사벨의 의사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고 말이다.

“음. 그편이 낫겠군요.”

“그렇지요? 삿된 말로 어린아이를 속이고 재물을 갈취하려 들었으니, 절도에 해당하는 처벌을 행해야겠군요. 가볍게 양손을 잘라내고 보내주면 되겠습니다.”

“…….?”

결론이 조금 이상하게 들려, 알렉스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로 가벼운 형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용병을 힐끔 바라본 알렉스는, 고개를 저으며 이사벨을 만류했다.

“죄를 저지를 뻔했지만 제가 그 전에 막아섰으니, 그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앗? 그럼 사기죄를 적용해 혀를 뽑아내는 것으로 할까요?”

“……그냥 길잡이나 시킵시다.”

알렉스가 자신의 의견을 들어줄 것처럼 굴다가 말을 바꾸자, 이사벨은 살짝 서운함을 느꼈는지 입술을 삐죽이며 물러났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하잖아.’

어린아이의 푼돈을 꿀꺽하려고 든 건 몹쓸 짓이긴 하지만, 상해를 입히면서 강도질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가혹한 처벌이다.

아무튼 트롤로 추측되는 몬스터가 알렉스의 다음 목표가 되었다.

이사벨의 살벌한 발언 탓에 공포에 질린 용병 사내를 잡아끌며, 알렉스는 준비를 갖추고 토미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판디움을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