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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79화 (79/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79화

오우거(2)

알렉스의 목을 조르고 있는 오우거의 앞으로 끼어든 이사벨이, 양손을 뻗어 오우거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런, 무기도 없이 어쩌려는…….’

이사벨의 폴액스를 오우거가 저 멀리 던져 버렸다는 걸 뒤늦게 떠올린 알렉스는, 아무리 괴력을 지닌 그녀라 해도 무기 없이 자신을 돕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은 찾아볼 수도 없게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으지직.

크웍!?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알렉스의 목을 쥔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며, 오우거가 얼굴이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물들었다.

오우거의 손이 점점 뒤로 밀려난다.

‘……지금 오우거를 힘 싸움으로 이기고 있는 거야?’

믿기 어려운 광경에 알렉스가 입을 벌리고 황당해하고 있던 순간.

크와아악-!

커다란 괴성을 터뜨린 오우거가 알렉스의 팔을 붙잡았던 손을 놓고, 이사벨의 투구를 움켜잡았다.

끄기기깃.

오우거의 강한 악력에 전신갑주와 한 세트인 성유물 투구가 당장에라도 박살 날 듯 금속의 비명을 내질렀다.

이에 이사벨 역시 한 손에 하나씩 오우거의 손목을 붙잡고, 온 힘을 다해 놈을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투구 째로 머리를 터뜨리겠다는 듯이 움켜쥐었던 오우거의 손이 들어 올려지며, 투구가 벗겨져 이사벨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

오우거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식을 벗어난 소녀의 모습을 홀린 듯이 보고 있던 알렉스는, 이사벨의 머리카락이 기존의 흑발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신성력 특유의 따스하게 느껴지는 광채를 발산하며, 백금발에 가까운 몽환적인 색으로 물들어 있는 머리카락.

저건 성기사가 어떤 특별한 스킬을 사용했을 때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다.

‘디바인 익시드?’

자신이 익힌 디바인 크로스처럼 레벨 제한이 걸려 있는 특수 스킬.

광범위 공격 스킬인 디바인 크로스와 달리, 디바인 익시드는 버프계 스킬의 일종이었다.

본인이 보유한 성기사 스킬의 쿨타임과 신성력 소모량 대폭 감소.

거기에 스킬들의 위력 증대 효과까지.

딜러 타입으로 성장시킨 성기사가 데미지를 한순간에 집중시킬 때 쓰는, 속칭 딜타임의 효율을 극한으로 뽑아내야 할 때 사용하는 스킬이다.

‘하지만 이건…… 뭔가 많이 다른 느낌인데.’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는 오우거를 바라보며, 알렉스는 이사벨의 디바인 익시드가 자신의 지식과는 다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디바인 익시드에 능력치 보정 효과는 없지 않나? 그런데 근력이 말도 안 되게 증가했잖아?’

어찌 된 영문인지 대강 알 것 같기는 하다.

이사벨은 신성력을 근력으로 치환하는 성법 외에는 다룰 줄 아는 게 없다.

어쩌면 이사벨의 디바인 익시드 효과는,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 성법 하나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식으로 발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만의 맞춤형 성법이라고 해야 할까.

포인트만 투자하면 정해진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의 스킬과 달리, 이쪽 사람들의 성법은 개개인의 능력에 차이를 보이기도 하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뿌드득!

이사벨의 힘에 밀려 속절없이 뒷걸음질 치던 오우거가, 결국 양 손목이 부러진 채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어찌나 강한 힘이 가해진 건지, 손목의 뼈가 근육을 찢고 가죽까지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크워어억!

포효하는 오우거의 얼굴은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동시에 희미한 두려움이 섞여 있기도 했다.

먹잇감으로만 생각했던 인간 종족.

그것도 자기 크기의 반도 오지 않는 조그만 인간 암컷에게 힘으로 제압당했으니, 너무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털썩.

크왁?

힘으로 상대가 되지 않자 저항의 의지를 반쯤 잃고 있던 오우거의 앞에서, 이사벨이 갑자기 실 끊어진 인형처럼 픽 쓰러진다.

‘이런! 탈진했구나!’

오우거를 농락할 정도의 근력을 발휘하는 건 대단하지만, 그만큼 신성력의 소모가 상당히 심했던 모양이다.

이사벨의 강렬한 위용에 압도되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알렉스는, 그녀가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임을 깨닫고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잉.

작동이 멈춰 있던 알페리온이 다시 칼날을 내뿜는다.

[격노의 응징]

격노 스택은 충분히 쌓였기에, 알렉스는 세차게 발을 내디디며 스킬의 힘을 담아 오우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주저앉아 있던 오우거가 상황을 파악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놈이 피하는 것보다 빠르게 빛의 칼날이 녀석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놈의 목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카아악!

‘쳇!’

제법 잘 들어간 공격이었으나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강한 참격이었으나 오우거의 두꺼운 목 근육을 일격에 베어내기엔 위력이 조금 부족했다.

알렉스는 아쉬움을 삼키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어. 이제 내 쪽이 훨씬 유리하다.’

제아무리 오우거가 기사살해자라 불리는 강력한 몬스터라지만, 놈은 이미 적지 않게 다친 상태다.

이사벨의 폴액스에 맞아서 생긴 등과 복부의 상처에, 자신이 입힌 자잘한 피해 및 목의 부상.

거기에 양 손목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손상되어 덜렁거리고 있으니, 이 정도면 다 차려진 밥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사벨이 이렇게까지 양념을 잘 쳐줬는데, 마무리도 못 해서야 면목이 없지. 어디 오우거 정식으로 경험치 좀 채워볼까?’

손을 잃은 녀석이라 더 이상 붙잡힐 위험도 없기에, 알렉스는 전보다 과감하게 오우거와 맞붙으며 놈을 베고 또 베었다.

탄탄한 방어를 기반으로 버티며 몸뚱이에 계속 구멍을 만들어주자, 오우거는 갈수록 힘이 빠지며 움직임이 둔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으랴앗-!”

서걱!

허공에 반원을 그려낸 알렉스의 검이, 오우거의 머리를 몸통에서 분리시켜 주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두 번의 레벨 업.

그러고도 경험치 바도 쭉쭉 올라가, 자잘한 몬스터 몇 마리만 더 잡아도 또 한 번 레벨이 오를 정도로 채워졌다.

[알렉스 Lv 67]

[잔여 스킬 포인트 3]

“후우…….”

호흡을 고른 알렉스가 자신의 상태창을 살폈다.

레벨은 두 단계가 올랐지만 잔여 포인트가 3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전에 스톤골렘을 잡고 얻은 포인트 중, 아직까지 쓰지 않은 1개의 포인트가 남아 있었기 때문.

원래는 포인트가 생기면 당연히 바로바로 써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성검을 얻은 뒤로 스킬 트리의 우선순위에 대해 고민을 하느라 오늘까지 질질 끌고 말았다.

‘계속 고민하다간 이도 저도 아니게 되겠어. 이참에 확실히 해야겠군.’

성검은 제한조건을 채워 얻는 추가 효과는 분명 효과적이지만, 개인의 전투력 상승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선행스킬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자면 주변 아군의 방어력을 증가시키는 홀리 오라 스킬이나, 아군의 피해량 일부를 대신 받아주는 고결한 헌신 같은 스킬.

게임에서처럼 대규모 파티로 던전을 공략해야 할 때는 분명 유용한 스킬이지만, 현재의 알렉스에겐 투자할 메리트가 떨어지는 스킬들이다.

그리고 성검이라는 이름값에 어울리게도 그렇게 투자해서 얻게 되는 효능은, 대부분 마기를 가진 존재와 전투를 벌일 때 유용한 효과를 가졌다.

‘어둠의 속성을 지닌 적을 상대하는 데에 특화된 성기사가, 성검의 옵션들까지 개방하면 확실히 효과가 극대화되긴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야겠어.’

게임처럼 사냥터를 골라 원하는 몹만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너무 성검의 옵션을 개방하는 것에 매달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종류와 수를 놓고 따져본다면 세상에는 언데드나 마수처럼 흑마력에 물든 적보단, 그렇지 않은 몬스터가 훨씬 더 다양하고 많다.

이번 오우거와의 싸움처럼 자연적인 생태계 속에도, 강력하고 위험한 괴물들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런 적들을 만날 때마다 매번 고전하고 싶지는 않으니, 성검의 추가옵션을 개방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범용적인 스킬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 듯싶었다.

스킬창을 주시하던 알렉스는 곧 생각을 정리하고 포인트를 분배했다.

[격노의 응징 Lv 4]

전반적인 공격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소드 마스터리부터 9레벨로 올리고 싶었는데, 아직 충분한 숙련도를 인정받지 못했는지 제한에 걸렸다.

해서 격노의 응징을 올리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격노 스택을 채워야만 최대위력을 낼 수 있다는 제한이 있긴 해도, 상대의 속성과 관계없이 강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유용한 공격기술.

여태까지 암흑교도나 마수 등의 적들을 많이 상대한 탓에 심판의 일격 사용빈도가 훨씬 잦긴 했으나, 범용적인 면에서는 격노의 응징도 투자가치가 충분했다.

애초에 알렉스의 취향대로 스킬 트리를 짜면 배울 수 있는 공격계 스킬이 몇 개 없기도 하니, 언젠가는 최대치까지 올려야 할 스킬이기도 하다.

‘진작 남은 포인트를 이쪽에 투자해뒀으면, 오우거의 숨통도 더 빨리 끊을 수 있었을 텐데.’

살짝 투덜거려 본 알렉스는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격노의 응징은 5레벨 마스터 스킬이고, 방금까지 2레벨이었기에 포인트 3개를 전부 투자하면 마스터할 수 있다.

하지만 알렉스는 격노의 응징을 마스터하는 대신 4레벨까지만 올려놓고, 남은 1개의 포인트를 다른 스킬에 투자했다.

[리플렉트 실드 Lv 1]

‘이건 살짝 애매해서 보류해뒀던 스킬이긴 한데.’

자신에게 가해지는 피해의 일부를 반사시켜 적에게 되돌려주는 효과로, 현실이 된 지금은 그 효용을 장담할 수 없어 선택지에서 제외했던 스킬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구상한 스킬 트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범용성을 갖춘 스킬을 찾자니, 이보다 나아 보이는 선택이 드물기에 어쩔 수 없었다.

피해반사의 효율이 썩 좋지는 않지만, 상대의 속성과 관계없이 고정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 스킬.

수비적인 성향이 강한 알렉스와 궁합이 괜찮은 스킬이기도 하다.

‘게임에서도 탱커 타입의 성기사라면 제법 쓸 만하긴 했지. 그런데 여기선 데미지 반사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의문이네.’

게임처럼 눈에 보이는 생명력 수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적용이 될지 궁금하다.

하지만 당장은 실험이나 하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기에, 알렉스는 확인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스킬창을 닫았다.

프히힝.

말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킹이 절룩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우거의 주먹질에 맞아 크게 다쳤던 킹이지만, 트롤 못지않은 재생력 덕분에 벌써 움직일 정도로 회복이 된 모양이었다.

“녀석. 고생했다.”

알렉스는 킹의 목을 잠깐 긁어주고 있자니, 조금 떨어진 곳에 죽어 널브러진 용병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으음…….”

언제 죽어 사라질지 모르는 것이 이런 용병의 목숨이라지만, 자신과 같이 일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 걸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아직 몸이 불편하겠지만 사람 하나만 태우자.”

알렉스는 용병의 시체를 수습해 킹의 등 위에 올렸다.

최소한 용병길드에 사정을 알리고 연고자를 찾아,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게는 해줄 생각이었다.

시신을 고정시킨 알렉스는 이어서 기절해 있는 이사벨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꼼짝없이 도시까지 걸어가야겠군. 그래도 엄청 멀진 않으니 다행인가.’

킹의 힘이라면 세 명이 올라타도 그 정도 무게쯤이야 거뜬히 버티겠지만, 당장은 태우는 녀석이나 타는 사람들이나 다들 멀쩡한 상태가 아니니 무리다.

적어도 이사벨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킹과 함께 걸어서 움직여야 할 듯싶었다.

‘도시 근방에서 오우거 같은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난 건 보통 일이 아니니, 이에 대해서도 교단에 따로 전달을 해줘야겠지.’

전투는 끝났으나 처리해야 할 일은 많아졌다.

놀 무리 소탕 건에 대한 정산, 오우거에 관한 보고, 죽은 용병의 처우.

이사벨의 새로운 성법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고, 리플렉트 실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실험해 봐야 한다.

오우거 사체를 저대로 버려두기는 아까우니, 도시에서 수레라도 빌리던가 해서 다시 회수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져 가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알렉스는 판디움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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