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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78화 (78/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78화

오우거

대륙에는 무수히 많은 몬스터가 존재하고, 그런 몬스터들을 구분하는 형식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가장 직관적이면서 간단한 방식은 몬스터를 크기로 분류하여 소, 중, 대형으로 나누는 것.

개체의 평균을 따졌을 때, 인간을 기준으로 작다 싶은 것은 전부 소형.

소형보다 크지만 키나 길이가 인간의 두 배를 넘지 않는 것들은 중형.

그 이상의 크기는 전부 대형으로 구별하는 삼분법의 방식이다.

오우거의 평균적인 크기가 3.5미터 가량으로 중형 몬스터에 속한다.

사실 크게 의미 있는 구별법은 아니긴 하다.

방금까지 가뿐하게 해치웠던 놀 역시 같은 중형 몬스터이지만, 오우거와 놀은 중무장한 기사와 목검을 든 코흘리개 아이만큼 전투력에 차이가 있기에.

중형 몬스터계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오우거는, 레벨이 제법 높아진 알렉스에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력한 괴물이었다.

‘망할, 왜 매번 이런 위험한 놈들이 불쑥 튀어나오고 지랄인 거야?’

고블린을 잡으러 갔다가 스톤골렘을 만나 죽을 뻔했던 것은, 지하유적을 탐색하기로 한 자신의 선택 때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놀의 영역에 뜬금없이 오우거가 등장하는 건 조금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아무리 불평을 해봤자 들이닥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알렉스는 속으로 잔뜩 욕설을 중얼거리며 전투를 준비했다.

기이잉.

방패를 앞세우고 성검의 칼날을 뽑아 오우거를 겨누자, 여태껏 심드렁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녀석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보인다.

그르르륵.

방금까지만 해도 오우거는 전투가 아닌 그저 식사시간으로 이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난폭한 기세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한데 먹잇감으로 찍어둔 인간이 감히 자신을 향해 덤벼들려는 기색을 보이자, 서서히 몬스터 특유의 흉포한 성질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크워억!

우렁찬 함성을 내지른 오우거가 손에 쥐고 있던 용병의 시체를 집어 던졌다.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날아오는 시체를 막아낸 알렉스는, 그 짧은 순간 전방의 시야에서 오우거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뻐억!

‘큿! 이 자식, 뭐 이리 빨라!’

어느새 측면으로 다가온 오우거가 휘두른 손바닥이 알렉스의 방패를 후려쳤다.

방어본능이 발동하지 않았으면 제대로 막지 못할 뻔했다.

오우거는 힘의 대명사로 불리며 몬스터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한 근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털 없는 커다란 유인원을 연상시키는 외모인 오우거는 마치 근육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것처럼 굵직한 체형을 갖고 있는데, 이 근육질의 몸에서 나오는 힘은 맨손으로 판금갑옷을 입은 기사를 찢어죽일 수 있을 정도.

기사를 완성시켜 주는 장점인 방어력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니, 괜히 기사 살해자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오우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놈의 무서움에 대해 근력보다는 오히려 기민한 몸놀림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몸 전체의 그 압도적인 근육을 탄력적으로 활용한 오우거의 기동능력은, 비대해 보이는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을 가지고 있었다.

쉬익.

자세를 다잡으며 내찌른 검이 허공을 뚫고 지나간다.

알렉스가 곧바로 반격을 가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것.

짧은 도약으로 몇 미터의 거리를 벌린 오우거가 의문을 담은 눈빛으로 알렉스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버텨내는 상대를 볼 일이 매우 드물다 보니, 오우거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단단함을 갖춘 알렉스가 신기하게 느껴질 만도 했다.

“주여! 당신의 종을 이끄소서!”

부아앙!

물러난 오우거를 향해 달려든 이사벨이, 힘찬 목소리와 함께 폴액스를 내리쳤다.

공기를 찢어발기며 다가오는 폴액스의 기세가 사뭇 사나웠기에, 오우거는 다시 한번 바닥을 차며 이사벨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크와아악-!

자신이 두 번씩이나 뒤로 물러섰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 오우거가, 거대한 함성을 내뱉고는 주변에 있던 나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우거가 양팔로 나무의 밑동을 감싸 쥐고 힘을 주자, 땅이 뒤집히며 사람의 허리만 한 굵기의 나무가 뿌리째로 뽑혀 나왔다.

확실히 힘이 대단하긴 대단한 몬스터다.

자신의 키보다 큰 나무를 뽑아낸 오우거가 그것을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알렉스와 이사벨을 공격했다.

“이런 썅.”

리치가 급격하게 늘어난 오우거의 통나무 몽둥이질에, 두 사람은 놈에게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점점 밀려나야 했다.

그때, 뒤편으로 빠져 있던 킹이 긴 울음소리를 내뱉고는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전투를 보면 눈이 뒤집히게 되는 킹의 성미는, 상대가 오우거라 해도 사릴 줄을 몰랐다.

히히히힝-!

크웍?

황당하다는 듯이 킹을 바라보며 멈칫하던 오우거가, 이내 흉성을 터뜨리며 통나무를 휘둘렀다.

잔가지까지 고스란히 달려 있어 넓은 면적을 가득 채운 통나무가, 킹의 몸을 후려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보통의 말이었다면 그대로 몸이 박살 났겠지만, 킹은 굉장한 점프력으로 뛰어올라 오우거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어서 허공으로 높이 뛴 킹이 자신의 몸으로 오우거를 들이받았다.

육중한 몸집을 가진 오우거는 킹의 육탄돌격에도 큰 충격을 받진 않았으나,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있느라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있던 상황.

그 와중에 평범하지 않은 힘을 가진 킹에게 들이받히게 되자, 결국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크워어억!

고작 말 따위에게 공격당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오우거가, 통나무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킹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주먹에 얻어맞은 킹의 몸이 붕 떠올라 몇 미터 밖으로 나가떨어진다.

척추가 부러졌는지 몸이 심하게 꺾인 킹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을 긁으며 꿈틀거렸다.

“이런 염병할 근육돼지가!”

킹이 벌어준 시간 동안 오우거에게 접근한 알렉스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깔끔한 베기.

하지만 두터운 가죽과 근육질로 보호받는 오우거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내진 못했다.

따끔한 통증으로 인해 성질을 자극받은 오우거가 분노를 터뜨리며, 양손을 움직여 알렉스를 마구 때린다.

단단하게 자세를 잡은 알렉스가 방패를 능숙하게 활용해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지만, 워낙에 힘이 좋은 녀석이라 굳건한 태세를 발동하고 있음에도 몸이 점점 뒤로 밀려난다.

‘크윽! 역시 이게 오우거인가.’

스톤골렘과 비교했을 때 일격의 무게감은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속도 면에서는 오우거 쪽이 훨씬 우월하다.

나름대로 방패술도 경지에 올라 놈의 맹공을 버틸 만은 하지만, 반격의 기회를 잡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과연 악명이 자자할 만한 몬스터.

혼자였다면 두들겨 맞기만 하다가 결국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쪽의 전력은 자신 혼자가 아니다.

“단죄하노라!”

오우거의 등 뒤로 이사벨의 참격이 가해졌다.

아무리 탄탄한 근육으로 뒤덮인 오우거라 할지라도, 생물의 몸이라면 이사벨의 공격을 무시할 수 있을 리 없다.

괴력을 담은 폴액스의 날이 놈의 가죽을 가르고 근육을 찢어내며 등에 파고들었다.

원래는 놈의 뒤통수를 노리고 내리친 공격이었으나, 야성의 감각으로 위기를 감지한 녀석이 몸을 움직인 탓에 아쉽게도 목표 지점을 벗어났다.

크아아악!

화끈한 통증에 크게 울부짖은 오우거가 신형을 돌려 이사벨을 후려쳤다.

알렉스와 같은 방어수단이 없던 그녀는 급하게 몸을 뺐지만, 오우거의 팔이 워낙 길다 보니 공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퍼억.

“하윽!”

직격을 피하고 옆구리가 손끝에 살짝 걸렸을 뿐이었으나, 체중이 가벼운 이사벨은 오우거의 힘에 밀려 거의 날아가다시피 튕겨져 저 멀리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흐아압!”

이사벨을 공격하느라 빈틈이 드러났기에, 알렉스는 곧바로 검을 수평으로 세워 녀석의 허리 부근을 찔렀다.

손바닥 정도의 길이만큼 파고든 알렉스의 찌르기에, 상처를 입은 오우거가 비명을 내지른다.

이어질 반격에 알렉스가 자세를 낮추고 방패를 들었으나, 오우거는 그를 무시하고 다른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런!?’

무식하게 날뛰기만 할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오우거는 제법 영악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

쉽게 깨뜨릴 수 없는 단단함을 가진 알렉스보단, 위협적인 공격력을 갖춘 이사벨을 먼저 처리하기로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다.

바닥을 뒹굴며 쓰러졌다가 일어난 이사벨이 자신을 덮쳐오는 오우거를 피해 다급히 몸을 움직였다.

기사로서의 실력에 부족함이 없는 이사벨은 오우거와의 신체 능력에 차이가 있음에도, 쉬이 거리를 내주지 않고 놈의 손길을 피해 재빠르게 회피 동작을 반복했다.

“이 자식아! 이쪽을 봐라!”

알렉스 역시 오우거의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 녀석을 쫓으며 악을 쓰고 공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우거는 한번 정한 목표를 바꾸지 않겠다는 듯 알렉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완벽히 놈의 공격을 피해낼 수는 없었기에, 이사벨은 결국 오우거에게 따라잡혀 녀석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뻐억!

“안 돼!”

오우거가 내지른 주먹에 몸을 얻어맞은 이사벨이 신음조차 뱉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크워어-!

목표를 제압했으니 기뻐해야 하겠지만, 오우거는 계속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고 고통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놈의 복부에 파고들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폴액스가 눈에 보인다.

자신이 당하는 순간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기회로 삼아, 이사벨이 온 힘을 다해 반격을 가한 것이었다.

배에 박힌 폴액스를 잡아 뽑아서 내던진 오우거가, 잔뜩 성난 얼굴로 쓰러진 이사벨을 향해 뛰어올랐다.

양손을 깍지 끼고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 모습이, 그대로 이사벨을 내리쳐 뭉개 버리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였다.

콰앙!

“끄윽…….”

간신히 늦지 않게 이사벨의 앞을 막아선 알렉스가, 방패를 들어 오우거의 공격을 막아냈다.

온몸의 뼈마디가 울리며 욱신거리는 통증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알렉스는 오우거가 체중을 실어 전력을 다한 공격에도 굳건하게 버티며 자리를 지켰다.

우지직.

“큭!?”

팔목에서 느껴지는 우악스러운 압력에 알렉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힘을 믿고 두 팔을 무기 삼아 휘두르던 오우거가 공격 방식을 바꿔, 알렉스에게 달라붙어 몸을 붙잡은 것이다.

오우거는 알렉스가 검을 쓰지 못하도록 그쪽의 팔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알렉스의 목을 쥐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런 쓰으……!”

굳건한 태세 스킬을 사용하는 동안은 알렉스의 신체도 바위와 같은 단단함이 부여되지만, 숨통이 막혀 힘이 빠지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방패를 낀 팔은 움직일 수 있어 오우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해봤으나, 알렉스의 힘으로는 놈의 손가락 하나를 풀어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나름 상급기사 수준을 넘어서는 능력치를 갖춘 그였지만, 인간과 오우거란 종에는 그만큼 압도적인 근력의 차이가 있었다.

‘개 같은…… 이대로는, 위험…….’

이미 붙잡혀 버린 이상 오우거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점점 숨이 막혀 시야가 흐려지는 가운데.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던 알렉스의 표정에, 희미한 웃음기가 서렸다.

바로 뒤편에서 거대한 기운이 맥동하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익숙한 힘.

신성력의 움직임이었다.

이 자리에 신성력을 다루는 이는 자신과 이사벨 둘뿐이다.

‘이사벨! 아직 쓰러지지 않았구나!’

“알레에, 스으…….”

자신의 생각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살짝 잠긴 이사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벨이 도와준다면 빠져나올 수……. 으음?’

아군의 회생에 기뻐하며 곧 그녀의 도움을 받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알렉스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의문을 표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의 흐름이 점점 과격하게 변하는 것이,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굉장히 거대한 양의 기운이 한 점에 뭉쳐 난폭하게 날뛰는 듯한-

‘……디바인 크로스?’

문득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스킬의 이름을 떠올렸다.

알렉스는 뒤에서 사납게 요동치는 매우 강렬한 기운이, 디바인 크로스를 사용할 때 몸 안에서 터져 나오는 막대한 신성력의 움직임과 제법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괜찮은 거겠지? 혹시 새로운 성법을 각성한 건가?’

혹시나 그녀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어 알렉스가 당혹스러워하는 사이.

이사벨의 신형이 오우거와 알렉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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