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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74화 (74/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74화

남부산맥

바이로크 교구로 돌아간 알렉스 일행은, 신전에 들러 성기사단장에게 임무 완수에 대한 보고를 전했다.

“고블린 소탕을 완료했습니다.”

“그, 그래. 그거 참…… 수고가 많았소.”

떨떠름해하는 성기사단장을 보며, 알렉스 역시 머쓱한 얼굴이 되어 헛기침을 했다.

성기사들이 고작 고블린 따위의 하급 몬스터를 가지고 임무를 운운하려니, 재미없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서로 영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무튼 아직 중대한 용건이 남아있기에, 알렉스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고블린 따위는 별것 아니지만, 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발견이 있었습니다.”

“으음? 무슨 말이오?”

알렉스는 그에게 지하유적의 발견과 그 안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마계화 지역의 발견은 교단 전체의 차원에서 나서야 할 문제일 테니, 바이로크 교구를 통해 교단 최상부에 신속히 보고를 전하려는 의도였다.

한데 예상과 달리, 성기사단장의 반응은 영 미지근했다.

“고블린 소굴과 이어진 고대의 유적이라니, 허헛! 그거참 공교로운 일이군. 그런데 마계화 지역이라니? 그건 대체 무슨 말이오?”

“예? 아, 물론 쉬이 믿기 어려우시겠지요. 저도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었지만, 지옥물망초를 발견하여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지옥물망초? 그건 또 무엇인지?”

성기사단장의 대답에 알렉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골랐다.

‘으음. 지옥물망초를 몰라? 아! 게임의 배경 설정하고 이곳의 시간대가 다른 느낌이긴 했는데, 그 때문에 사용하는 명칭이 바뀐 건가?’

생각해 보면 부르는 이름이 바뀐 게 아니라, 정말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다.

단장급 팔라딘이라고 해서 마계화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에 대해서까지 해박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자신이야 마계화 지역 맵을 돌며 퀘스트를 수행하느라,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로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뿐.

애초에 설정을 파보면 마계화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물게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할 터다.

“음…… 정확한 명칭은 제가 말한 것과 다를 수도 있는데, 마기가 충만한 땅에서만 자라는 식물에 대해 말씀드린 겁니다.”

이걸 왜 모르냐고 따져봐야 감정만 상하게 할 것이기에,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설명하며 그에게 자신이 찾은 지옥물망초를 꺼내 보였다.

“여기, 이겁니다. 마계화 지역의 발견에 대한 증거품으로 제출하겠습니다.”

“마기가 충만한 땅…… 아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군. 그럼 그 유적이라는 곳에서 이교의 흔적은 발견했소?”

“저희가 들어간 위치까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꽤 위험한 상황을 겪은지라, 안을 전부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단 건가. 흠, 잘 알겠소. 우리 교구에서 나서도록 해야겠군. 설마 고블린을 잡겠다고 떠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고 올 줄은 몰랐네만.”

“하하. 세상일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언제 어디서 무엇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는 일이죠.”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군. 아무튼, 이 건에 대해서는 우리 측에서 잘 알아보고 해결하도록 하겠소이다.”

“음…….”

“또 무언가 할 말이 있소?”

덤덤하게 말하는 성기사단장을 보며, 알렉스는 입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살펴가시오. 순례행 동안 예루스 님의 가호가 함께하길 기원하겠소.”

마계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펄쩍 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무미건조해서 김이 빠지는 기분이다.

뭔가 살짝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더 대화를 나눌 이야기도 없기에, 알렉스는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며 바이로크 교구를 빠져나왔다.

‘어째 대화 내내 뭔가 핀트가 살짝 어긋난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끄응. 뭐 전할 내용은 다 전했으니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려나? 이제 그 유적에 관한 건 교단에서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알렉스가 떠나간 후.

바이로크의 성기사단장은 자신의 단원 몇 사람을 불러들여, 알렉스가 전하고 간 이야기에 대한 논의를 나누었다.

“고블린 소굴을 뒤지다가 유적을 발견했단 말입니까? 거참 신기한 일이군요.”

“그러게나 말일세. 아무튼, 나쁘지 않은 이야기라네. 이교와 관련된 장소인지 확인해 보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 허영심 많은 귀족들에게 적당히 연결시켜 줄 수도 있겠지.”

“고대의 유적지에서 나온 물건이라면, 부러진 놋쇠 숟가락 하나라도 비싸게 사겠다는 인간들이 있으니 말이지요.”

“초임이라서 그런지 그 친구도 꽤나 순진하군요. 자신의 소속구에 정보를 넘겼다면 제법 괜찮은 실적으로 남았을 수도 있을 텐데.”

단원들의 말에, 성기사단장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마기가 흘러나오는 땅이 있다더군. 그걸 마계화 지역이라 칭했던가? 그 때문에 빨리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일세.”

“허헛! 마계화라니, 무시무시한 명칭이군요.”

“대체 누가 그딴 거북한 이름을 만들어 붙인 겁니까?”

“알렉스라고, 최근 시끄러웠으니 이름은 다들 들어봤을 걸세.”

“아! 사도에 관한 논란이 있었던 그 형제입니까?”

알렉스의 이름이 거론되자, 성기사들이 다들 아는 체를 하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불순한 기운이 천연적으로 발생하는 장소는, 흔하진 않아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는 것이거늘.”

“외부에서 영입된 기사라더니, 역시 기본적인 소양이 조금 부족한 모양이군요.”

“하긴 나이도 꽤 어리다고 하던데 배움이 미천하다면,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떨 수도 있겠습니다.”

바이로크의 성기사단장을 비롯한 팔라딘들은, 알렉스가 말한 마계화 지역에 대해서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이들은 애초에 마계화라는 표현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래된 대규모 묘지에 음산한 기운이 쌓이다 보면, 자연적인 언데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처럼.

성기사단장은 알렉스가 말한 마계화의 의미가, 단순히 자연적으로 생겨난 어둠의 기운이 모여든 장소의 일종일 것이라 받아들였다.

알렉스도 단장급의 팔라딘이 설마 마계화란 명칭 자체를 모를 거라곤 여기지 못하고, 그저 ‘반응이 영 미묘하네?’ 정도의 생각만 하며 넘어간 게 실책이라면 실책이었다.

“그러면 그 유적이란 곳의 탐사 규모는 어떻게 꾸리실 겁니까?”

“리빙아머와 골렘 같은 마법병기가 돌아다닌다고 들었으니, 파견을 나가 있는 인력들이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규모를 키우는 편이 좋을 것 같네.”

“지저분한 기운이 흐르는 땅이 있다고 하니, 정화의 성법에 능한 사제분도 동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흠. 그쪽은 별로 중요할 것 같진 않네만…… 그래도 데려가서 나쁠 건 없으니 내 따로 협력 인원을 요청해두도록 하지.”

결국 그렇게 잘못 맞물린 톱니바퀴가 삐거덕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중요한 내용은 전부 전달했다고 여긴 알렉스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 * *

바이로크를 지나 동남쪽의 다음 행선지를 향해 이동하던 도중.

알렉스와 이사벨은 잠시 길가에 멈춰 식사시간을 가졌다.

사실 식사라고 해봤자 본격적인 요리는 아니고 휴대가 편한 건량이 전부였기에, 하고자 한다면 말을 타고 움직이면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긴 하다.

다만 킹은 몰라도 이사벨의 로자리아는 평범한 말이라 충분한 휴식을 시켜줘야 하기에, 어느 정도 달렸다 싶으면 이런 쉬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특히 서부에서 남부로 접어드는 이쪽 지역은 산악지대가 많아 언덕을 자주 오르내리기 때문에, 튼튼한 전마라 해도 쉽게 피로도가 쌓이는 지형이기도 했다.

얇게 저며 말린 딱딱한 고기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자니, 이사벨이 말을 걸어왔다.

“알렉스 경.”

“네. 말씀하십시오.”

“조금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경께서는 마치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상을 구원하는 용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 진짜 뜬금없네요. 게다가 너무 과분한 평가라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알렉스가 장난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지만, 이사벨은 여전히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사람은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영혼과 육체는 불멸이 아니지요. 과도한 시련은 인간 그 자체를 마모시킵니다.”

“음.”

농담 따먹기를 하자고 꺼낸 이야기는 아닌 듯해, 알렉스 역시 자세를 바로 하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간 꽤 많은 사건을 겪었지만, 자세히 따지고 보면 경과 만난 지는 고작 1년이 채 되지 않았지요. 외람된 소리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알렉스 경은, 어딘가 조금 미숙해 보이는 기사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연한 말이다.

이사벨과의 첫 만남은 레벨이 굉장히 낮을 때였으니까.

그녀의 도움을 받아 언데드화된 기사를 해치우고, 아마 간신히 30레벨을 넘어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정도면 견습기사에 근접한 숙련된 종자 수준이니, 솔직히 기사로 봐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평범한 사람들은 어렵게 시련을 극복했다 하여도, 그 경험을 온전히 성장의 밑거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렉스 경은 그와는 반대로 고난을 뛰어넘을 때마다, 폭발적으로 강해진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신의 축복을 받아 적을 쓰러뜨릴수록 점점 강해지는 옛날이야기 속의 용사처럼 말입니다.”

“으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렉스 경도 무언가 짐작하는 바가 있어, 이번 순례행에서 전투를 찾아다니시는 게 아닌지요? 리빙아머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처리하려 하신 것도 그 때문일 거라 짐작합니다만.”

하긴 그건 너무 티를 낸 거긴 했다.

이사벨과의 신뢰 관계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사실을 이야기해 줘도 될 것이라 여겼기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생각하시는 바가 맞긴 할 겁니다. 저 스스로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 자세히 설명드리긴 힘들지만…… 강적을 해치울 때마다 제 안에 깃든 그분의 힘이, 급진적으로 커지는 것을 몇 번이고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역시! 알렉스 경은 매우 특별한 운명을 타고나신 게 분명합니다! 예루스 님의 뜻을 일개 인간인 저희가 온전히 헤아릴 순 없으나, 분명 어떤 쓰임이 있기에 알렉스 경에게 그런 능력을 내리신 것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를 내보내고 혼자 죽으려고 하셨던 겁니까?”

“앗? 그건…….”

살짝 날카로운 어조로 내뱉어진 알렉스의 말에, 이사벨은 움찔하며 다급히 변명했다.

“그,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을 열고 지탱할 수 있는 게 저뿐이었으니, 알렉스 경이 아닌 다른 동료와 함께였다 해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저랑은 반대군요. 전 이사벨 경이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그대로 그 자리를 벗어났을 겁니다.”

“네?”

“이사벨 경은 제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되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되었든 반드시 살아남아 저를 지켜봐 주십시오. 제 마음이 꺾이지 않고 계속 시련을 넘어 강해질 수 있도록.”

“읏!?”

신뢰할 수 있는 동료인 이사벨이 괜히 다음에도 자신을 지킨다고 희생하려 들까봐,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 소리였다.

한데 말해놓고 보니 어째 고백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려, 알렉스는 짧게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사벨 역시 묘한 느낌에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한참 후에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와의 우정을 그리 각별히 생각해 주실 줄은 몰랐군요.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대충 배도 채웠으니 슬슬 다시 출발해볼까요?”

알렉스가 그렇게 말하며 말들을 매어둔 곳을 향해 다가가던 때였다.

거무스름한 무언가가 알렉스의 곁에서, 빠른 속도로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엇?’

그것은 커다란 그림자였다.

구름이라 생각하기엔 너무 격한 움직임이었기에, 알렉스는 움찔하며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알렉스는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똑바로 날아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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