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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73화 (73/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73화

지하유적(6)

<동력 부족. 추가지원 요청.>

<오류 발생. 보급설비 자원고갈.>

<운영관리자원 긴급조달 요청.>

<오류 발생. 권한등급 미달.>

<관리자 호출 수행.>

<오류 발생. 통신라인 무응답.>

“허어?”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진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파악하려던 알렉스는, 가장 처음 들려온 음성의 내용을 떠올리고 눈을 치켜떴다.

‘가만. 동력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설마 나 살 수 있는 거야?’

어쩌면 기적이 일어난 걸지도 모르겠다.

골렘을 운용하기위한 동력이란 코어에 담긴 마력을 뜻한다.

코어의 마력이 완전히 고갈된다면 당연히 보충을 받기 전에는 골렘 역시 작동하지 않게 될 터.

저승 코앞까지 다가간 자신의 목숨도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알렉스 경!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달려온 이사벨이 알렉스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괜찮습니다. 쓸린 부위가 넓어서 따끔하긴 하지만, 상처가 깊은 건 아닙니다. 피 좀 흘리는 건 하루 이틀도 아니고요.”

“저건 어떻게 된 겁니까? 혹시 알렉스 경이 뭔가 신비한 능력을 쓰신 건지?”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아하니 코어의 마력이 다해, 작동이 중지되기 직전인 상태인 것 같군요.”

알렉스의 말에 이사벨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그런 어이없는…….”

“네. 어이가 없네요. 설마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날 줄은.”

“하아, 그래도 꼼짝없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았으니 다행입니다. 이것도 다 알렉스 경 덕분인 것 같네요.”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알렉스 경이 예루스 님의 각별한 애정을 받는 분인지라, 이런 기적이 벌어진 게 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알렉스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과적으로 살긴 했다지만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굴러야 하는 게 신의 애정 때문이라면, 멱살을 움켜쥐고 제발 관심 좀 끊어달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간이면, 어딘가의 창작물 주인공처럼 사기적인 능력으로 도배하고 온갖 기연들을 독식하게 해줘야지. 덤으로 하렘 전개도 있으면 좋고 …….’

사실 레벨과 스킬이라는 시스템의 사용자라는 것만으로도, 이쪽 세계의 기준으론 충분히 사기이긴 하다.

그래도 인간의 욕심이란 건 원래 끝이 없기에, 기왕이면 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힘을 갖췄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 특수조항 적용.>

<관리자 부재 확인. 권한등급 임시조정.>

<대체자원 긴급조달 수행.>

“엥?”

너무 욕심이 가득한 생각에 신의 분노가 내린 것일까?

다 끝난 줄만 알았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방 안의 공기가 요동친다.

주저앉아 있는 스톤골렘을 향해, 다시 한 번 다량의 기운이 밀집되어갔다.

‘아니…… 장난하냐?’

막대한 마력을 공급받은 스톤골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치웠나?’ 같은 말을 내뱉은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이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화조차 나질 않는다.

이사벨 역시 생존을 기뻐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려다 말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스톤골렘을 보며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픗! 크으하하핫!”

복잡한 심경으로 다가오는 스톤골렘을 노려보던 알렉스가, 갑자기 큰 웃음을 터뜨렸다.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려서는 아니었다.

‘희망고문을 당하는 줄 알았는데, 보너스 라운드였나.’

웃음을 터뜨린 이유는, 스톤골렘에게서 어떠한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알렉스의 몸을 중심으로 신성력이 뭉쳐지더니,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터져 나왔다.

[디바인 크로스]

순수한 신성력의 폭발은 부정한 존재에게 극강의 위력을 보이지만, 그 외의 존재에게는 그저 과하게 밝은 빛일 뿐이다.

알렉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스톤골렘과의 전투에서 괜한 신성력의 낭비를 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디바인 크로스를 사용한 것은, 더 이상 스톤골렘이 평범한 마법생물이 아니게 되었음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스톤골렘의 몸체에서 쩌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단단한 암석에 잔뜩 금이 생겨난다.

‘아무리 급해도 더러운 힘을 받아들이진 말았어야지.’

오랜 세월 방치된 시설에는 스톤골렘의 동력을 충전해 줄 보급자원 역시도 제대로 남아나지 않은 상태였다.

침입자를 격퇴하지도 못하고 동력이 전부 떨어진 상황에서 시설의 방제 시스템이 내린 명령은, 정상적인 관리절차에선 사용이 허가될 수 없었을 대체자원을 억지로 끌어다 사용하는 것.

그리고 그 대체자원이란 것은, 이 방의 중심 아래에서 흘러넘치는 마계화 지역의 마력을 뜻함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계화 지역의 마력은 인간계의 자연적인 마력과 달리, 농도 짙은 어둠의 기운을 잔뜩 품고 있다.

신성력과 부딪치면 커다란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힘인 것이다.

‘지금이라면 내 공격도 놈에게 통할 거다.’

그런 사정들을 알렉스가 전부 알아볼 수야 없었지만, 적어도 스톤골렘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어떤 종류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검을 쥔 알렉스가 스톤골렘을 향해 달려들었다.

흥분감이 차올라 옆구리의 통증 따윈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심판의 일격]

아까까지만 해도 도저히 파고들 수 없던 스톤골렘의 몸체가, 썩은 나무토막으로 변하기라도 한 듯 깊게 파이며 돌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동력으로 쓰는 마력의 성질이 흑마력으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 사실만으로 홀리 웨폰과 심판의 일격의 추가 데미지를 적용받기엔 충분했다.

알렉스의 검격이 연달아 스톤골렘을 두드렸다.

암석 파편들이 잔뜩 깨져 나온다.

괴력을 가진 이사벨이 공격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이었다.

“흐읍!”

코어의 위치도 이미 파악하고 있기에, 알렉스는 거침없는 맹공으로 스톤골렘의 몸체를 자르고 쪼갰다.

쨍!

코어를 확인했던 위치에 찔러 넣은 검이 부러졌다.

스킬의 효과로 막강한 위력을 보여주었지만 스톤골렘의 방어력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보니, 평범한 검이 연이은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깨진 것이다.

그래도 알렉스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번의 찌르기가 코어에 닿았다는 것을 손맛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브짓, 그기긱, 트르비- 칫.>

잡음이 심해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스톤골렘의 몸체를 이루던 암석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경험치 바가 급격하게 차오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두 번의 레벨 업.

굉장히 강력했던 적답게 상당한 양의 경험치가 올랐다.

알림을 확인한 알렉스가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알렉스 경!”

“괜찮습, 후우…… 진이 빠지는군요.”

레벨이 올라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엄청났던 탓에 몸이 매우 나른해졌다.

물론 피곤하다고 해도 미루고 싶지 않은 일이 있기에, 알렉스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알렉스 Lv 65]

[잔여 스킬 포인트 2]

‘드디어 알페리온을 써먹을 수 있겠네.’

포인트 하나의 사용처는 이미 정해져있다.

알렉스는 주저 없이 홀리 웨폰의 레벨을 올렸다.

[홀리 웨폰 Lv 5(Max)]

5레벨로 맥스치를 찍은 스킬을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이제 성검 알페리온의 빛의 칼날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멋들어진 모습일지 기대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광선검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아이템이지. 물론 구경하기 전에 이 엿 같은 장소부터 벗어나는 게 먼저지만.’

남은 하나의 포인트는 조금 고민되는 부분이 있어 일단 세이브 해두기로 하고, 알렉스는 휴식을 요청하는 육신에 억지로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벨 경. 어서 빠져나갑시다. 이곳에 계속 있다가 또 무슨 꼴을 볼지 두렵네요.”

“예. 저도 유적탐사가 이렇게 위험한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모험가란 실로 대단한 사람들이었군요.”

세상 모든 유적이 이런 식이면 유물을 찾아다니는 트레져헌터들은 전부 씨가 말랐겠지만, 알렉스는 굳이 이사벨의 오해를 지적하진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막 출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때였다.

<그토록 대비했음에도 결국 이런 사단이 나고 마는가.>

다시금 들려오는 음성에, 두 사람은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박살난 스톤골렘의 잔해 옆에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한 노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쓰읍. 이건 또 뭐야!’

잔뜩 경계하며 노인을 주시하던 알렉스는, 이내 상대가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회색으로 칠해져 있는 데다가, 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입체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형상이었기 때문.

‘……홀로그램 같은 건가? 환영 마법의 일종 같긴 한데.’

<무엇을 얻고자 이곳에 발을 들였는가? 이 안에 보물이나 재화 따윈 없다네. 세상에 드러나선 안 될 무저갱의 입구만이 존재할 뿐.>

“……당신은 누구십니까?”

리빙아머나 스톤골렘과 달리 대화가 통하는 사람으로 보였기에, 알렉스는 경계심을 살짝 누그러뜨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보았다.

알렉스의 질문을 받은 노인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농담하는 건가? 그 많은 함정과 가디언들을 뚫고 여기까지 도달한 이들이,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 볼 리가 없을 텐데.>

알렉스는 이사벨을 돌아보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누군지 압니까?’

‘전혀 모릅니다.’

눈빛으로 짧은 대화를 나눈 알렉스가 다시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 정말 모르는 건가? 그러면 대체 이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저희는 여기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저 우연히 발견한 시설물의 정체가 궁금해서 들어왔을 뿐입니다만. 저기 저쪽으로 말입니다.”

알렉스가 망가진 철문 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하자, 노인의 얼굴이 점점 심하게 구겨졌다.

<헛소리! 저 방향엔 인가받은 관리자의 전이마법에만 대응하는 포트가 있을 뿐, 외부와 연결된 통로 따윈 존재하지 않아!>

“으음, 그걸 통로라고 해야 할지…… 고블린 땅굴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만.”

<고, 고블린? 땅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참 알렉스의 설명을 듣던 노인에게서, 큰 충격을 받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세기의 천재 대마도사인 나 엠피슨 마이스너의 유산을 노리고 찾아온 게 아니란 소리로군.>

스스로를 세기의 천재라고 부르다니, 노인은 대단한 자신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름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내 말년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 만든 역작인, 417개의 방으로 구성된 미로함정을 돌파한 것도 아니고?>

“……417개?”

알렉스는 각 벽면에 위치한 열어보지 못했던 다른 철문들을 보며, 끔찍한 흉물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다른 공간들은, 죄다 침입자를 저지하기 위한 함정이 설치된 방인 모양이다.

<설마 관리자 출입을 위한 우회로를…… 그래, 그 위쪽에 동굴지형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고블린? 고블린 땅굴이라고? 허, 허허…….>

허망한 표정으로 음성을 내뱉던 노인의 형상은, 어느 순간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하더니 펑 하고 사라져버렸다.

“음? 저기요?”

당황한 알렉스가 몇 번 다시 불러보았지만, 노인의 형상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떨떠름한 심정이 되어 어쩌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자니, 이사벨이 말을 건네 왔다.

“저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요?”

“글쎄요. 이런 시설을 만든 장본인이라니, 대단한 마법사는 맞는 것 같은데…….”

“여기가 고대의 유적이라면, 제작자도 이미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겠지요. 아마 방금 그건 마법을 이용해 본인의 사념체 같은 걸 남겼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골렘을 해치운 게 마법 발현의 트리거가 되었던 것 같군요.”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알렉스의 입장에선 그저 황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사념이 소멸하기라도 했나? 그 마법사 노인도 마계화의 위험을 알아보고 확산을 막느라 이런 봉인시설을 만든 것 같기는 한데.’

기껏 설명을 끝내고 이제야 대화를 좀 해보려니, 저렇게 갑자기 사라져서 정작 궁금한 건 물어보지도 못했다.

아무튼 이렇게 되었으니 더는 이곳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 하나 확실하게 알아낸 것 없이 혼란만 가득 남긴 시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들어온 출입구를 통해 고대의 유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떠나 버린 두 사람은 볼 수 없었지만.

뿌직.

마계화 지역이 봉인되어 있던 바닥의 철판 틈 사이로, 새끼손가락만 한 촉수 하나가 꼬물거리며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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