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71화 (71/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71화

지하유적(4)

알렉스는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방패를 들어 머리를 가렸다.

[굳건한 태세]

자신의 방어능력이라면 어지간한 충격은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

돌 더미에 파묻혀 옴짝달싹도 못 하는 처지에 빠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분명 근처에 있던 이사벨이 자신을 꺼내줄 것이라 믿었다.

‘……으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드를 단단히 하고 대비하던 알렉스는, 어째 방패 위로 전해져야 할 충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의문을 떠올렸다.

의문에 대한 대답은 옆에서 다가왔다.

<섬멸 명령 수행.>

뻐억!

“컥!?”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사람 몸통만큼 큰 주먹이 알렉스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강렬한 충격에 머리가 흔들려 순간적으로 시야가 깜박거렸다.

“-*! **, *-!”

이사벨이 뭐라고 외친 것 같은데, 정신이 아득한 상태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서 있던 자리에서 튕겨져 나가 한참을 구른 알렉스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며 간신히 몸을 바로잡았다.

고개를 들자 자신을 공격한 상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끄으…… 스톤, 골렘…….”

천장에서 낙석함정 같은 게 발동한 건가 싶었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 돌무더기는 마법으로 만든 강력한 전투병기의 일종인 골렘의 몸체를 이루는 부품이었다.

단단한 암석으로 몸체를 구성한 4미터를 넘는 크기의 거인이, 쿵쿵거리는 걸음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망할, 늑골이 몇 개쯤 부러진 느낌인데.’

방패로 직접 막아낸 것이 아니기에, 굳건한 태세의 효과가 온전히 발동되지 않았다.

그나마 어느 정도의 방어력 증가는 적용되어서 망정이지, 평범한 기사였다면 방금 일격으로 완전히 전투 불능에 빠졌을 것이다.

“멈춰라!”

치유의 손길로 부상을 치료하며 스톤골렘을 마주 보고 있자니, 이사벨이 크게 고함을 내지르며 놈에게로 달려들었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진 폴액스가 스톤골렘의 다리에 틀어박힌다.

하지만 이사벨의 초인적인 괴력에도 불구하고, 암석 본연의 경도에 마법적인 강화까지 더해진 스톤골렘의 다리엔 생채기 정도의 상처밖에 생기지 않았다.

끼기긱!

길지만 옅은 자국만을 남기고 흘러내린 폴액스를 잡아당겨 회수한 이사벨이,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콧잔등을 찡그리며 재차 공격을 가하기 위해 자세를 고쳤다.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하아아압!”

이번에는 제법 큼지막한 돌 부스러기 여러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합과 함께 전력을 다해 휘두른 폴액스의 날이, 스톤골렘의 다리에 방금 전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스톤골렘의 다리는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 두꺼울 정도로 굵었지만, 비슷한 공격을 계속해서 가한다면 놈의 다리를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물론 돌덩어리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돌기둥처럼 가만히 맞기만 해주는 상대가 아니기에, 스톤골렘은 곧장 몸을 돌려 이사벨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비유가 아닌 담백한 사실 그대로 바위만한 주먹이, 이사벨의 몸통을 으깨기 위해 다가온다.

쿵!

간발의 차로 몸을 날려 주먹의 범위에서 벗어난 이사벨이, 재차 이어지는 공격들을 바닥을 구르며 피해냈다.

“이쪽이다! 돌덩이 놈아!”

뻐억!

행여 이사벨이 다칠까 봐 통증을 참으며 달려온 알렉스가, 실드 차지로 스톤골렘의 다리를 들이받았다.

달리는 속도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 부딪치는 공격에 피해를 입을 법도 한데, 워낙 덩치와 무게가 상당한 상대인지라 비틀거리지도 않는다.

“으랴앗!”

깡.

조금이라도 데미지를 입히고자 검을 뽑아 내리쳤으나, 작은 흠집만 생기고 전혀 안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시발. 검으로 바위를 벨 수 있을 리가 없지.’

8레벨 소드 마스터리는 분명 고급 단계의 검술 수준을 부여해 주지만, 그게 쇠칼로 바위를 무 썰 듯 잘라낼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알렉스는 들고 있어 봐야 거추장스럽기만 한 검을 검집 안으로 되돌렸다.

더 때려봐야 오히려 칼날이 망가지기나 할 테니, 공격은 그냥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

‘성검을 쓸 수 있다면 칼이 깨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필 조건을 채우기 전에 이런 놈을 만나게 되다니.’

알렉스는 스톤골렘의 다리 주변을 맴돌며 이사벨을 향해 외쳤다.

“제가 계속 주의를 끌 테니 공격은 이사벨 경이 전담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겨우 바닥에서 일어나 숨을 돌린 이사벨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첫 공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기에 한 방 먹었지만, 제대로 방어에 치중한다면 아까처럼 나가떨어질 일은 없을 터.

자신이 스톤골렘의 공격을 막고 그 틈에 이사벨이 계속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면, 일단 지지는 않는 싸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로, 이길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스톤골렘도 리빙아머처럼 코어의 에너지를 이용해 움직이는 병기니, 코어만 파괴하면 잡을 수 있기는 한데.’

마력의 흐름을 추적해 파악할 수 있는 마법사의 도움 없이는 외부에서 코어의 위치를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코어가 보일 때까지 계속 몸체를 깨부숴야 한다.

코어는 몸통이나 팔, 혹은 다리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갑옷의 일부만 깨뜨리면 안의 코어를 찾을 수 있던 리빙아머와는 난이도가 비교가 안 된다.

통짜 돌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는 저 스톤골렘은, 일단 부피부터가 몇 배는 차이가 나니까.

운이 없다면 전신을 모조리 파괴하고 나서야, 숨겨진 코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쯤에는 이미 스톤골렘이 몸체를 잃고 무력화되어, 코어를 찾을 필요 자체도 없어지겠지만.’

물론 그렇게라도 이길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스톤골렘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생각하면 거기까지 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서지도 않는다.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방패술과 이사벨의 괴력은 무한정하지 않다.

코어를 찾기 전에 이사벨의 힘이 먼저 빠지거나, 자신이 스톤골렘의 공세를 더 버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당장에라도 빠져나가고 싶다.

분명 경험치를 적지 않게 줄 것 같으니 상황만 괜찮다면 최대한 오래 버텨보겠지만, 마계화 지역이 봉인된 것으로 추측되는 장소에서 계속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시설에 악영향을 끼쳐 저것이 바깥으로 퍼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인세에 지옥이 펼쳐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리 하나를 파괴할 때까지만 싸우자. 운이 좋으면 그사이에 코어를 찾아낼 수도 있겠지.’

스톤골렘의 동작이 체구와 달리 꽤나 기민한 탓에, 당장 문을 열려다가는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니 딱 다리 한 개만 망가뜨려 두고 그사이 코어를 찾지 못한다면, 기동력이 떨어진 놈을 구석으로 유인해 둔 후에 후다닥 뛰어 철문을 열고 빠져나가면 될 것이다.

“하아앗!”

콰득!

이사벨의 폴액스가 스톤골렘의 다리를 두드려 조금씩 깨뜨린다.

그러면 알렉스는 재빨리 이사벨 쪽으로 몸을 날려, 스톤골렘의 반격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그녀를 보호했다.

‘공격을 막아내고 나면 이사벨이 다시 공격하기 전까지 계속 내 쪽으로 집중해 줘서 다행이군.’

인공지능이 그리 뛰어나진 않은 모양인지, 스톤골렘의 전투패턴은 굉장히 단조로웠다.

하긴 골렘을 제작한 마법사가 직접 서포팅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수준 높은 전투패턴까지 지닐 수는 없는 게 당연하리라.

쾅!

“으윽…….”

스무 차례쯤 스톤골렘의 주먹질을 정면에서 받아낸 알렉스가,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구겼다.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긴 하지만, 공격을 막을 때마다 전달되는 충격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꾸준히 치유를 걸고 있음에도 팔 전체가 시큰시큰한 것이,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게다가 방패도 이렇게 혹사당하고 있으면 언제 부서질지 몰라.’

스킬의 효과로 피해의 대부분을 무효화시켜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원래 평범한 방패 따위는 스톤골렘의 주먹질 한 방에 바로 조각조각 깨져나갔어야 정상이다.

공격을 막고 있는 자신의 육체에 점점 부담이 더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패 역시 꾸준히 금속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아티팩트나 성유물 같은 특별한 물품이 아니기에 언제 내구도가 다할지 모르는 일이다.

카강! 빠드득!

“됐습니다!”

다행히 그런 걱정은 날려버리라는 듯이, 때맞춰 이사벨의 공격이 스톤골렘의 다리 한쪽을 완전히 박살 내는 것에 성공했다.

인간으로 치자면 무릎에 해당하는 부분이 부서진 것이다.

“좋아! 저쪽으로 끌고 갑시다!”

무릎 아래에 코어가 있진 않았는지 멀쩡히 계속 작동하는 모습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단 계획에 맞게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알렉스가 스톤골렘을 구석으로 몰고 가기 위해 녀석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스톤골렘은 예의 그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새로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하부기관 파손. 균형조정 시행.>

중심을 잃고 넘어진 스톤골렘은 멀쩡한 쪽의 다리를 스스로 끊어냈다.

양쪽의 다리가 동일한 길이로 맞춰지며, 약간의 변형과 함께 짧지만 새로운 다리로 재탄생된다.

숏다리가 되면서 체고가 조금 낮아진 스톤골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알렉스 경? 저렇게 되면…….”

“으음. 그래도 이동속도는 아까보다 느려졌을 겁니다. 잠시 지켜보죠.”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알렉스는 일단 처음의 계획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스톤골렘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쿵, 쿵쿵, 쿠구구궁!

다리가 반 토막으로 짧아져 종종걸음이 된 스톤골렘이, 두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왔다.

기세는 여전히 무시무시하지만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 진지하게 싸우고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이 살짝 무너진다.

“……그래도 저 속도면 그럭저럭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신호 주시는 대로 곧장 문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어쨌거나 다리가 짧아진 만큼 달리는 속도는 확실히 느려지긴 했기에, 알렉스는 출입구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스톤골렘을 유인했다.

쾅!

“지금!”

코너에 붙어 스톤골렘이 따라오길 기다린 알렉스가 놈의 공격을 막아낸 사이.

신호와 함께 출발한 이사벨이 스톤골렘의 옆을 지나쳐 철문을 향해 뛰었다.

알렉스 역시 놈의 공세를 잠시 받아내다가, 이사벨의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

철문 앞에 도달한 이사벨이 폴액스를 던지듯 내려놓고, 바닥의 틈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기기긱, 끼익!

무거운 철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간다.

이사벨의 곁에 도착해 뒤를 돌아본 알렉스는, 총총거리며 쫓아오는 스톤골렘과의 거리를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히 문을 열고 빠져나갈 수 있겠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근접해서 싸웠기에 보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스톤골렘에겐 도주자 및 원거리 공격자를 요격하는 전투패턴이 하나 더 내재되어 있었다.

부아앙!

알렉스의 눈이 한껏 치켜떠졌다.

스톤골렘이 자신 쪽을 향해 팔을 뻗자, 바위주먹이 굉장한 속도로 발사되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로, 로켓 펀치!? 이런 썅!’

예상하지 않았던 공격에 당황해서 욕설이 절로 나왔지만, 몸은 침착하게 곧바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피하려 했다간 문을 열고 있는 이사벨이 직격당하게 될 테니, 무조건 막아내야 했다.

[굳건한 태세]

콰앙-!

“큭!”

날아오는 주먹의 위력이 상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다만 스킬의 효과 중 하나인 넉백 저항을 받고 있음에도, 밀쳐지는 힘을 백 퍼센트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딱 한걸음 물러났을 뿐인데 하필 또 위치가 이사벨의 바로 뒤였던지라 접촉을 피하지 못했다.

“아앗!?”

등이 밀쳐진 이사벨의 자세가 무너지는 바람에, 허리까지 들어 올린 철판을 놓치며 출구가 다시 폐쇄되어버린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조금 전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방패에 잔뜩 금이 생겨났다.

걱정하던 대로 결국 연달아 누적된 충격이, 방패의 수명 대부분을 갉아먹은 것이다.

‘하, 시발! 돌아버리겠네.’

아마도 한 번에서 두 번 정도의 공격을 막아내면, 방패는 완전히 박살 나고 말 터.

난관에 빠진 알렉스의 눈에, 재차 공격을 가하려는 듯한 스톤골렘의 모습이 새겨진다.

인간형태를 지닌 스톤골렘의 주먹은 두 개이니, 방금과 같은 발사가 한 번 더 가능할 것이란 건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자명했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이나 마찬가지로, 두 번째 주먹이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