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70화 (70/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70화

지하유적(3)

[알렉스 Lv 63]

[잔여 스킬 포인트 1]

고블린이나 잡자고 온 첫 임무에는 실망했었지만, 결과적으론 빠른 레벨업의 지름길이 되어주었다.

설마 고블린 소굴 지하에서 이런 유적을 발견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것도 이런 개꿀 경험치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니.’

얻은 포인트로는 당연히 홀리 웨폰을 올렸다.

성검 알페리온을 써먹으려면 가장 먼저 충족시켜야 할 목표이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홀리 웨폰 Lv 4]

앞으로 포인트 1개만 더 투자하면 알페리온에 내재된 빛의 칼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달달한 기회가 또 있어주면 금방이겠는데.’

“알렉스 경.”

이사벨의 부름에, 알렉스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제 어떻게 할까요?”

“흐음.”

알렉스는 주변을 쓱 돌아보았다.

더 이상 작동하는 리빙 아머는 없지만, 방 안에 특별히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울리던 음성도 리빙 아머들의 출현 이후로 더는 들려오지 않는다.

“일단은 퇴로부터 확보해 놓고 뭔가 하는 편이 좋겠네요.”

철문이 내려와 막힌 통로를 가리키며 말하자, 이사벨이 그쪽으로 다가가 주먹으로 철판을 두드려 본다.

탕탕.

두께가 상당한지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수는 건 어렵겠습니다. 정 방법이 없다면 뚫릴 때까지 때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그 방법은 일단 보류해 두죠.”

대포라도 쏘지 않는 이상 철문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이사벨의 공격력을 생각하면 아주 불가능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힘으로 해결할 거면 차라리 철판 옆의 석벽을 깨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한번 들어볼까요?”

“이 철문을 말입니까? 들 수 있는 무게는 아닐 것 같은데요.”

2미터 남짓한 높이에 두 사람이 어깨를 붙이고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의 통로지만, 나무도 아니고 철판의 무게를 사람이 감당할 순 없을 것이다.

‘길이와 폭, 두께를 어림잡고, 철의 비중을 곱하면 무게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과인들이나 신나서 계산하겠지.’

아무튼 눈대중으로 봐도 무게가 100㎏은 우습게 돌파할 테고, 아마도 200㎏쯤에서 어쩌면 300㎏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무거운 걸 잘 들기로 유명한 미란이 누나가 와도 이건 무리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이사벨은 창 자루 끝으로 바닥을 퍽퍽 내리찍더니, 손가락을 넣을 만한 작은 틈을 만들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이어서 신성력을 극도로 발휘한 이사벨의 전신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흐읍, 이야아앗!”

“와우…….”

철문이 천천히 움직인다.

저걸 진짜 근력으로 들어 올릴 줄이야.

육중한 철문을 무릎 위까지 들어 올린 이사벨은, 이내 그것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이만한 무게라면 충분히 끝까지 들 수 있겠습니다.”

“아, 예…… 빠져나갈 방도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안쪽을 더 둘러봐도 되겠군요.”

퇴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두 사람은 널찍한 공간을 돌아다니며, 무언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바닥과 천장을 유심히 살피고 리빙 아머가 튀어나온 벽면 등을 조사했지만, 딱히 대단한 발견을 하지는 못했다.

찾아낸 것이라곤 두 사람이 들어온 통로와 마찬가지로, 철문으로 막혀 있는 또 다른 통로가 하나 더 있다는 것뿐이었다.

“알렉스 경. 저쪽으로 길이 더 이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겠지요. 분명 무언가를 지키려고 저런 것들을 두었을 텐데, 이 방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니 말입니다.”

“고대의 보물이 쌓여 있는 창고가 있을까요?”

“하핫! 글쎄요. 모험가들이 그런 기대를 품고 유적지를 찾아다닌다고는 하던데, 실제로 보물을 발견해 부자가 된 사례는 극히 드물지 않겠습니까?”

“이교도들의 소굴은 아닌 듯해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무언가 아쉬움을 달랠 흥미로운 게 있으면 좋겠네요.”

그런 말을 내뱉고 나서, 이사벨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괴력을 발휘해 철문을 들어 올렸다.

어깨높이까지 올라간 철문 아래로 알렉스가 머리를 숙이고 지나가, 안쪽에 또 다른 위험 요소는 없는지 살펴보았다.

‘이쪽도 상당히 넓은 공간이네.’

조금 어둡긴 하지만 내부를 훑어보는 데 큰 무리는 없는 수준이었다.

넘어오기 전 방과 마찬가지로 텅 빈 공간이다.

반대쪽 벽면과 양옆의 다른 벽면들에도 지금 통과한 것과 같은 형식의 철문들이 보였다.

‘통로가 또 있어? 그것도 이번엔 여러 개라니.’

도무지 무슨 시설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알레, 스읏! 겨엉?”

“아, 들어와도 되겠습니다.”

철문을 받친 채 힘겨워하는 이사벨의 목소리에, 알렉스는 일단 눈에 보이는 위험은 없어 그녀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어깨가 뻐근한지 팔을 천천히 돌리며 주변을 둘러본 이사벨이, 실망스러운 감정을 담아 입을 열었다.

“으음. 또 빈방입니까?”

“눈에 보이는 건 그러네요. 잠시 쉬고 계시죠. 혹시 또 아까처럼 무언가 공격해올 수도 있으니, 저 혼자 안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이번에도 움직임을 감지하고 함정 같은 게 발동할 가능성이 있다.

녹슬어서 제 기능도 못 하는 리빙 아머가 또 나와 준다면 매우 고맙겠지만, 그런 행운이 언제까지고 따라줄 거라 기대할 수만은 없으니 충분히 주의해야 할 터.

뭔가 위험한 것들이 튀어나온다면 바로 문을 열고 빠져나갈 수 있도록, 이사벨은 통로 쪽에 대기하고 있는 편이 낫다.

알렉스는 신중히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방의 중앙으로 나아가던 알렉스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금속질?’

중심부의 바닥만 유독 색이 달라 보여 자세히 살피니, 다른 곳처럼 석판이 아닌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 안이 살짝 어두워 출입구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중앙에 가까워지니 확연히 차이가 났다.

‘수수께끼만 계속 늘어나는군. 이쪽 바닥만 재질을 다르게 한 이유가 있나?’

중앙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 알렉스는, 갑자기 기온이 확 낮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섬뜩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팔다리로 번진다.

“알렉스 경? 무슨 일입니까!”

다급히 방패를 몸에 붙여 수비자세를 취하는 알렉스의 모습에, 철문 앞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이사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잘 모르겠습니다.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잠시 굳어 있던 알렉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어 대답했다.

‘뭐지? 왜 이리 불쾌한 느낌이 드는 거지?’

알렉스는 중앙의 바닥을 유심하게 살펴보았다.

석판이 아닌 철판으로 덮여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는데, 대체 무엇이 자신의 신경을 이리 헤집는 것일까.

방 안의 불빛이 흐릿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친 게 있는 건가?

‘잠깐, 흐리다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알렉스는 흠칫하며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마도 마법적인 장치일 것으로 보이는 조명이, 앞선 방과 마찬가지로 이 방도 충분히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 왜 다른 방보다 더 어둡다는 인상을 받았던 걸까?

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자, 이질적인 부분들이 좀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마치 빛 사이로 어둠이 군데군데 스며들어 공존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방 안의 명암 상태는 기묘하기 그지없었다.

알렉스는 팔등 위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어째 여기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인데.’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이런 기현상들은, 대체로 좋지 못한 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길한 감각에 막 뒷걸음질 치던 알렉스가, 바닥에 이어 붙어져 있는 철판의 틈 사이로 무언가가 솟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즉에 눈에 띄었어야 정상일 텐데, 뒤죽박죽인 밝기가 시야를 방해했던 건지 발견하는 것이 늦었다.

‘헙!? 저, 저게 왜, 여기에…….’

발견물을 살피던 알렉스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것은 볼품없는 모양새를 가진 풀 한 포기에 불과했으나, 알렉스의 사고를 일순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식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아는 지식도 별로 없지만, 게임의 기억 덕분에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게이머 시절 고레벨 전용의 한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약값을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연금술사 NPC의 반복 퀘스트를 같이 수행한 적이 있다.

그때 재료 아이템으로 수도 없이 채취했던 게 바로 저 풀이다.

이름은 지옥물망초.

마기를 머금은 땅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었다.

‘저게 여기서 자랐다는 말은, 이 철판 아래 마계화 지역이 있다는 거야?’

악마들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차원을 인간들은 마계라 부른다.

그리고 간혹 인간세계에서도 마계와 비슷한 환경이 조성된 땅이 등장하곤 한다.

이른바 마계화라 칭하는 공간의 오염.

차원의 대치점이 충돌하며 서로의 영향을 받아 어쩌고저쩌고하는 NPC와의 대화 부분이 있기는 한데, 그딴 이야기는 빠르게 스킵했기에 세세한 내용까진 기억하지 못한다.

중요한 건 마계화가 진행된 땅에는 악마족이 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해치운 적이 있던 그런 저급한 촉수 악마를 말하는 게 아니다.

마계화 지역은 하나같이 전부 고난이도의 던전들이기에, 대부분이 만렙을 찍으려는 유저들의 사냥터이기도 했다.

그곳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먹이사슬 최하층의 제일 약한 녀석도 레벨이 70은 넘어간다.

고유의 이름과 지위를 가진 중급이나 상급의 악마라면, 80대 또는 90대 레벨까지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

인간계 대륙의 NPC들 중 영웅으로 추앙받는 강자들을 데려다 놔도, 절반 이상은 하루를 못 버티고 머리와 몸통이 찢겨 나가는 장소인 것이다.

‘고블린 잡으러 왔다가 갑자기 마계라니? 급이 안 맞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할 거 아냐!’

만약 자신이 지금 마계화 지역에 발을 들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리 성기사가 악마사냥의 스페셜리스트라 해도, 최소한의 체급은 맞춰야 싸움이 된다.

63레벨의 성기사인 알렉스쯤은 입김만 후! 하고 불어도 뼈와 살을 분리시킬 수 있는 괴물들이, 마계화 지역엔 널리고 널려 있었다.

‘감각이 어긋나고 기분이 이상했던 게 이것 때문이었군. 상당히 오래된 시설인 것 같은데, 고대의 누군가가 이 장소를 봉인하려고 했던 건가?’

마계화 지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점점 규모가 확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바닥 아래의 구조나 상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철판 따위로 공간 오염을 억눌러 왔을 리는 없을 테니, 아마도 어떤 마법적인 조치가 취해져 있을 터.

어쩌면 이 시설 자체가 마계화 발생 지점을, 외부의 접근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일지도 모르겠다.

“알렉스 경? 계속 가만히 계신데…… 뭔가 발견하신 겁니까?”

상황을 모르는 이사벨의 의문이 담긴 목소리에, 알렉스는 깊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일단 한시라도 빨리 이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자.’

마계화 지역과 연관된 장소에서 괜히 뭔가를 건드렸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알렉스는, 다른 통로를 살펴보는 건 포기하고 바로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돌아갑시다. 이사벨 경.”

“옛? 벌써 말입니까?”

“설명은 나가서 해드리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알렉스는 허리를 숙여 지옥물망초를 뽑아 들었다.

교단에서 이 장소를 파악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보고는 해야 할 테니 증거품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설마 이거 하나 뽑았다고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테니.’

“알렉스 경!”

우르르릉.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옛 현인들의 충고를 잊지 말았어야 했다.

이사벨의 외침과 동시에 머리 위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이런 썅?’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든 알렉스의 눈동자로,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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