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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69화 (69/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69화

지하유적(2)

“동굴 아래 이런 장소가 있다니. 여긴 대체 어떤 곳일까요?”

“적어도 고블린은 이런 구조물을 만들지 못할 테니, 사람의 손이 닿은 건 확실하겠군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비밀공간이라는 건…….”

말꼬리를 흐리는 알렉스의 대답에 이사벨의 눈빛이 변했다.

“이교도들의 은신처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당장 샅샅이 수색해 봅시다!”

세간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활동하는 암흑교의 특성상, 이렇게 지하에 숨겨진 건물이라는 건 그들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긴 하다.

물론 세상 모든 비밀공간이 암흑교의 것일 수는 없을 테니, 어쩌면 그냥 오래전에 만들어졌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대의 유적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지 자세히 파헤쳐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이긴 하다.

“알렉스 경. 빨리 안을 돌아봅시다!”

이교의 은신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명감을 화르륵 불태우고 있는 이사벨이, 알렉스의 움직임을 재촉한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이니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읏! 알겠습니다. 제가 괜히 마음만 앞섰군요.”

홀리 웨폰으로 인간 횃불의 역할을 하고 있던 알렉스는, 바닥이나 벽면에 수상한 점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며 걸음을 옮겼다.

‘단순한 은신처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오래된 고대유적이라면 함정 같은 것들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을 테니.’

시프나 헌터 클래스처럼 관련 지식이나 스킬이 있는 게 아니기에 살펴본다고 함정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작정 움직이는 것보다는 조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일단 여기는 그냥 빈방처럼 보이는군요.”

천천히 이동하며 주변을 쭉 둘러본 알렉스는, 자신들이 대략 30평 정도쯤 되어 보이는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방 여기저기로 용도 불명의 구조물 몇 개가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점만 빼면, 딱히 특이한 점이 없었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글쎄요. 뭔가 규칙성을 가지고 설치되어 있는 느낌이긴 한데.”

설마 조형미술 같은 건 아닐 텐데.

생김새만 봐서는 용도를 알 수가 없는 구조물들이었다.

“여기서는 더 알아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저쪽으로 움직여보지요.”

이사벨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방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딱히 이 안에서 얻을 수 정보는 없어 보였기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로 쪽으로 앞장서서 걸어갔다.

혹시 모를 함정에 주의하며 통로를 따라 이동하던 두 사람은, 금방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통로의 끝에는 아래를 향해 빙글빙글 돌아가는 형태로 이어지는 계단이 자리해 있었다.

슬쩍 밑을 살펴보자 높이가 상당한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손전등 같은 게 있으면 좋았을 텐데.’

홀리 웨폰의 빛을 광원으로 삼아서 어둠을 밝히는 것은, 딱 횃불 대용 정도의 성능이 한계다.

멀리까지 빛을 비추는 기능 따위는 없기에, 이 위에서는 계단이 얼마나 길게 이어져 있는지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위험한 것 같습니까?”

“판단하기 어렵네요. 뭐라도 던져볼까요?”

“으음. 혹시 밑에 적대적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괜히 주의를 끌어서 좋을 것 같진 않군요. 그냥 천천히 내려가 봅시다.”

소음에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아래로 향한 두 사람은, 느린 속도 때문에 한참이 지난 후에야 원형 계단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체감상으로는 한 30미터? 대충 그 정도는 내려온 것 같은데.’

지하로 이렇게나 깊게 파고든 위치에 만들어진 건축물이라니, 점점 이곳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만약 암흑교와 관련된 곳이라면, 단순히 은신처 하나에 불과한 장소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하에 이런 규모의 구조물이라면 중요한 거점 중 한 곳일 수도 있다. 으음, 이거 일이 너무 위험해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적당히 둘러보고 암흑교와 연관된 곳이 맞다 싶으면, 들키기 전에 빠져나오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 은신처가 아닌 본거지급의 장소라면 고작 두 사람이서 감당할 순 없을 테니, 교단에 알려 대규모의 전력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일단은 조금 더 살펴보자. 아직까진 암흑교와 연관되어 보이는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겠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쪽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었기에, 그대로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은 크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커다란 공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위층의 방보다 몇 배는 넓어 보이는 장소였다.

빛나는 검을 이리저리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던 알렉스는 딱히 이상한 것이 보이거나 어떤 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아, 조심스레 거대한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몇 걸음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확 하고 시야가 밝아졌다.

벽과 천장에서 조명이 켜진 것처럼 밝은 빛이 쏟아진 것이다.

“읏!?”

무기를 움켜쥐고 주위를 경계하며 환해진 시계에 적응하고자 눈을 깜박이고 있는 두 사람의 귀에, 웅웅 울리는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미등록 출입자를 감지했습니다.>

“누구냐!”

이사벨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무기를 내밀며 외쳤지만, 텅 빈 허공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어정쩡한 자세가 되어 머뭇거리고 만다.

<관리자 전이포트의 동작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비허가 우회로를 통한 침입으로 판정. 규정에 따라 침입자를 격퇴합니다.>

‘무슨 기계음 같은 목소리가…… 마법인가? 아니, 그보다 격퇴한다고?’

갑작스레 밝아진 공간과 정체불명의 음성에 당황한 채 근처를 둘러보고 있자니, 시끄러운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그그그극. 쿠웅!

두꺼운 철판 같은 것이 내려오며 두 사람이 들어온 통로가 봉쇄되었다.

이어서 양옆의 벽면이 문처럼 움직이며, 방금까지 감춰져 있었던 공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그럭. 끼긱.

좌우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주변을 살핀 알렉스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기사들이, 푸른 안광을 빛내며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잠깐! 우리는 교단의 성기사들입니다!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나, 불순한 의도로 침입한 것이 아닌-”

“소용없습니다. 이사벨 경. 저것들은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닙니다.”

“옛? 무슨?”

“저것들, 리빙 아머입니다.”

게임에서 몬스터로 등장하기도 하는 것들이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접근하는 기사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핀 이사벨은, 알렉스의 말을 이해하고 탄식을 흘렸다.

리빙 아머.

착용자 없이 홀로 움직이는 갑주.

겉모습은 자신들과 같은 기사처럼 생겼으나, 저것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인간을 흉내 내어 만든 인형들이다.

무생물에게 인공생명을 부여하는 골렘 계통 마법의 산물이라 보면 된다.

자아 없이 정해진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병기이니, 평화롭게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재빨리 어림잡아 세어본 리빙 아머의 수는 100기는 가뿐히 넘어 보였다.

‘흑마력이 느껴지진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여긴 암흑교와 관련된 장소는 아닌 모양이지만…….’

국가 단위의 기밀시설이나 대형 마법학파의 비밀연구소 같은 곳일까?

다만 이곳의 정체가 뭐든 간에, 당장 저 리빙 아머들이 멈추지 않는다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리빙 아머의 성능은 제작자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 견습기사 정도는 되는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위마법사가 제작비를 쏟아부어 명품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낸다면, 상급 기사와도 비등하게 싸우는 리빙 아머가 탄생하기도 한다.

갑옷을 부수고 안에 들어 있는 코어, 사람으로 치면 심장에 해당하는 기관을 망가뜨리기 전까진 팔다리가 잘려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기에, 어떤 면에선 진짜 기사보다 까다로운 상대가 될 수도 있다.

‘큰일이야. 저것들에겐 디바인 크로스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할 것 같은데.’

흑마력으로 구동하는 리빙 아머라면 모를까.

저것들은 평범하게 무속성 마력을 동력원으로 삼는 마법물품이나 마찬가지인 놈들이기에, 신성력의 폭발에 그리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하나하나 직접 코어를 파괴해야 하는데, 알렉스에겐 그것도 꽤나 곤란한 일이었다.

알렉스의 전투능력은 공격보단 방어에 치중되어 있는 탓.

상대가 암흑교도나 마수, 언데드 같은 부정한 존재라면 성기사 스킬들의 효과로 충분한 피해를 입힐 수 있겠지만, 저 갑옷인형들에게는 신성력과 직업스킬이 어떠한 추가 피해도 더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사벨의 괴력에 기댈 수밖에 없나?’

그녀의 힘이라면 충분히 갑옷을 쪼개고 안에 든 코어를 박살 낼 수 있을 터.

일단 자신은 최대한 버티는 쪽으로 싸우며, 이사벨이 적들을 처리해 주길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자신과 이사벨에게 블레싱 스킬을 걸면서 고될 것이 분명한 전투에 대비하던 알렉스는, 문득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생각하던 것을 멈추었다.

끼기긱! 끄긋!

“……잉?”

당장에라도 덮칠 듯한 기세를 뿜어내는 것과는 달리, 자신들과 리빙 아머들의 거리가 영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굉장히 느리고 엉성하게 움직이는 리빙 아머들.

몇몇은 아예 다가오다 말고 바닥으로 쓰러져, 허공을 향해 헛발질을 하기도 한다.

“알렉스 경. 저거 아무래도…….”

“예, 으음. 녹이 잔뜩 슬었네요.”

리빙 아머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부드럽게 움직여야 할 관절부가 녹이 끼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발버둥 치며 바닥을 구르는 리빙 아머들의 모습에, 알렉스는 긴장했던 것이 허무해져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꽤 오랫동안 관리 없이 방치된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교도들의 시설은 아닌 것 같군요.”

“그러네요. 모험가들이 찾아다닌다는 고대의 유적지인 걸까요?”

끼기기깃!

“아마도? 어쩌면 대단한 발견을 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리빙 아머라면 꽤나 비싼 마법병기인데…… 이렇게나 많은 수를 경비로 두고 지키는 곳이라면, 꽤나 중요한 장소였던 모양입니다.”

그기긱! 까각!

대화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금속음에, 알렉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일단 저것들부터 처리하죠. 당장 위협이 되진 않지만, 적의를 가진 것들을 마냥 내버려 둘 순 없겠네요. 정신 사납기도 하고 말입니다.”

“네. 저도 영 신경 쓰이던 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땅바닥에서 버둥거리는 꼴로 어떻게든 공격을 하겠다고 조금씩 다가오는 리빙 아머들에게 접근했다.

이사벨이 폴액스를 휘둘러 가까이 있던 리빙 아머의 몸통을 내리치자, 갑옷이 깨지며 금속 파편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내부는 딱히 부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거나하는 복잡한 구조도 아니었기에, 코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걸 부수면 되나 보군요.”

“이사벨 경, 잠시만! 그거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아? 저야 상관없긴 합니다.”

리빙 아머라면 경험치가 어느 정도 오르지 않을까 싶었기에, 알렉스는 이사벨의 양보를 받아 부서진 갑옷 틈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코어가 파괴되자 동력원을 잃은 리빙 아머는 곧바로 작동을 멈추었다.

상태창을 확인한 알렉스는 경험치 바가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제법 오르는데?’

소수점 자리 단위의 변동으로 보였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유의미한 양의 경험치다.

적어도 고블린 따위를 잡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수준.

게다가 아직 제물은 많이 남아 팔딱거리고 있었다.

“이사벨 경. 코어를 손상시키지 않고 갑옷에 틈만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이제 대강 위치를 알았으니 코어까지 한 번에 같이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부탁드립니다. 마무리만 제 손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음…… 이상한 부탁이지만 알렉스 경의 말이니. 네, 그렇게 하지요.”

이사벨이 갑옷을 깨고 지나가면 알렉스는 뒤를 따르며 코어를 파괴했다.

힘들이지 않고 날로 먹는 경험치는 제법 고소한 맛이 있었다.

손수 까먹기는 귀찮아서 엄마가 껍질을 벗겨놔야 날름 집어먹던 땅콩과도 같았다.

‘아, 어머니. 그립습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가족들을 생각하며 잠시 코끝이 찡해오던 것도 잠시.

[레벨이 올랐습니다.]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알림이 떠올라, 알렉스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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