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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68화 (68/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68화

지하유적

“이번에 팔라딘 서품을 받은 알렉스입니다.”

“아! 경께서 그…….”

이름을 듣고 놀라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알렉스는 머쓱한 기분에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미 몇 번이나 같은 반응을 마주했기에 의아해할 것도 없었다.

‘거, 소문이 빨리도 도네.’

하긴 관구의 중심이 되는 대교구에서 추기경이 직접 서임식을 주관해준 것도 충분히 이슈가 될 만한데, 참관인들이 입을 모아 신의 계시라 떠들어대는 현상까지 벌어졌으니 소문이 퍼질 만도 했다.

관구장이 곧바로 입을 단속했고 사도의 탄생은 오해일 뿐이라는 교황청의 공표가 있었지만, 한번 터진 소문을 완벽히 잠재울 수는 없는 노릇.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알렉스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다른 도시로 퍼져, 교단의 성직자라면 한 번 이상은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요사이 명성이 자자해진 알렉스 경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려.”

“명성이라니요. 하하…… 오해에서 비롯된 뜬소문일 뿐입니다. 저는 이제 막 서품을 받은 초임 팔라딘에 불과한 자이니, 많은 가르침 바랍니다.”

글라즈번을 떠나 동쪽으로 향하며 처음으로 들리게 된 도시, 바이로크.

이곳 바이로크 교구의 성기사단장과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잡담을 잠시 이어가던 알렉스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다 싶을 때쯤 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게 맡기실 일이 있다면 성심을 다해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글라즈번 교구의 연락을 받기는 했소. 초임이지만 기사로서의 경험과 실력이 뛰어나니, 정식으로 파견된 인력이라 생각하고 임무를 맡겨도 된다고 하더군. 들어보니 서임식을 치르기 전부터 꽤 여러 사건에서 활약한 전적이 있다 들었소만?”

“예, 뭐.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어딜 가도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한다고 자부합니다. 마땅한 임무가 있겠습니까? 가령 어딘가에서 몬스터가 들끓는다거나…….”

알렉스의 발언에 성기사단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허헛! 물론 최근 남서부 전역에 그런 흉흉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긴 했지만, 우리 교구는 빠른 대응으로 큼지막한 문제들은 전부 해결했다오.”

성기사단장의 대답에 알렉스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하긴, 글라즈번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교구인데,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겠지.’

토벌 임무.

그러니까 몬스터의 출몰처럼 확실하게 전투가 벌어질 만한 임무라면, 발생 즉시 교구에서도 최우선으로 처리하려 하는 게 당연하다.

게임에서야 플레이어가 손대지 않은 퀘스트는 언제까지고 목록에 남아 있겠지만, 현실에선 자신의 방문 시기에 맞춰 딱 입맛에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그런 형편 좋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결국, 남은 건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자잘한 조사 관련 임무들.

즉,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어쩌면 사특한 존재가 연관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불확실한 소문들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탐사 정도가 되겠다.

예컨대 뒷산에서 사람의 말을 하는 짐승을 발견했다거나, 옆집 사람이 귀신에 쓰인 것 같다거나 하는 애매한 신고들 말이다.

‘열에 아홉 정도는 무지한 사람들의 호들갑이지만.’

사실 팔라딘의 평상시 임무란 게 대체로 그렇긴 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막상 도착해보면 별일도 아닌, 현대의 소방대원이 느끼는 허탈감을 공감할 수 있다고나 할까.

물론 일반인들에게 성직자란 귀족 못지않게 대하기 어려운 존재여서, 보통은 촌장이나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관리의 선에서 어지간한 헛소문은 걸러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라딘들의 조사 임무는, 대체로 허탕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굳이 그런 꽝일 가능성이 높은 조사 임무를 맡을 필요는 없지.’

교단 내부의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투가 없는 그런 임무는 경험치를 올리는 데에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바쁜 시기에 손을 거들어 준다니 고맙긴 한데, 보아하니 조사가 아닌 토벌 쪽 임무만을 희망하는 모양이오?”

“예. 그렇습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알렉스의 대답에, 성기사단장이 철없는 아이를 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초임이니 의욕이 넘치는 건 이해하지만, 원래 팔라딘의 임무라는 게 으레 그런 법이오. 정체가 확실히 드러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는 일은 오히려 드물지.”

일장 설교가 이어진다.

이런 잡무만 시키지 말고 중요한 업무도 보게 해달라며 투덜거리는 신입 사원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훈계를 하는 고참 사원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압니다. 아는데, 내가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

소속구에 머물러 있는 때라면, 마땅히 어떤 임무라도 가리지 않고 팔라딘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순례행의 핑계를 대고 떠돌아다니는 현 상황에서는, 다른 것보다 경험치의 획득이라는 목적을 우선시할 생각이다.

그런 알렉스의 고집을 느낀 성기사단장은, 결국 아니꼽다는 듯한 얼굴이 되어 설교를 그만두었다.

“크흠! 더 말해봐야 서로 입만 아프겠군. 꼭 그렇게 피를 보는 임무만을 고집하겠다면, 이쪽을 한번 알아보든지 하시게.”

일단은 순례행의 형식을 흉내 내고 있으니, 정 마땅한 일이 없으면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걸로 뭐든지 하나 처리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한데 마냥 자신이 요구한 바와 같은 토벌 임무가 없는 건 또 아니었는지, 성기사단장은 그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네주었다.

‘으음, 몬스터 소탕 쪽의 일이 맞긴 맞는데……’

내용을 확인한 알렉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임무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집을 부려 죄송합니다. 그럼 이 사건은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헛. 나 원 참.”

헛웃음을 흘린 성기사단장이 신경질적으로 가보라는 듯이 손을 내젓는 모습에, 알렉스는 고개를 까닥이고는 그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 * *

“그래서, 어떤 임무입니까?”

“교구의 영역에 속해 있는 촌락 한 곳에서,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답니다.”

“몬스터! 주민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서둘러 처리해야 하겠군요. 상대는 어떤 존재입니까? 트롤? 라이칸스롭? 설마 오우거 같은 강대한 괴물입니까?”

“고블린입니다.”

“고브, 네?”

멍하니 굳어진 이사벨을 보며 알렉스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고블린.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등의 매체에 어지간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라, 모르는 사람이 드물 만한 몬스터.

몬스터계의 최약체에 속하는 종족인 고블린은, 사실상 몬스터라기보단 질 나쁜 해충에 가까운 포지션을 담당하는 생물이다.

“고블린이라, 으음…… 교구에서 그런 것들에게까지 신경을 쓰는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몇백 마리쯤 되는 규모의 부락이 있는 겁니까?”

“설마요. 마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네 마네 하는 내용인 걸 봐서는, 아마 많아야 스무 마리나 넘을까 싶군요. 그 이상쯤 되는 무리라면 진즉에 마을에 쳐들어와 인명피해가 생겼겠지요.”

“스무 마리…… 식후 운동거리도 안 되겠군요.”

이사벨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업계 선배라고 할 수는 있지만 알렉스와 겨우 1년 차이이고, 그마저도 작년에는 순례행을 도느라 정식 임무 경험은 그리 큰 차이가 없는 그녀다.

한창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을 시기에 고작 고블린 따위의 몬스터를 상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

‘지역 관리의 늦장 대응에 누군가 신전에 하소연을 한 모양이지? 이런 일에 팔라딘이 출동하는 경우는 사실 없을 텐데.’

고블린 몇 마리쯤이야 보통은 마을에서 힘 좀 쓰는 장정들이 나서서 처리하면 그만이다.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라 해도, 성인 남성이라면 고블린 한두 마리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몬스터 특유의 공격성을 마주하고, 괜히 겁을 집어먹어 패닉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만약 마을에 인력이 부족하다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용병을 고용해서 처리해도 된다.

그러나 대응이나 발견이 늦어, 고블린 무리의 규모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에게 병사들의 파견을 요청해야 한다.

물론 일개 촌락의 사정 따위가 영주의 귀에 직접 들어갈 일은 없다.

마을의 대표인 촌장이 나서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도시의 행정관 정도가 전부.

그리고 여기서 또 일 처리의 방향이 갈릴 수 있다.

-그래서 누가 죽었나? 몬스터가 마을 안까지 침입한 적은?

-아직 그렇게까진…….

-그러면 딱히 중대한 문제도 아니군?

행정관이 진지하게 사안을 검토하고 윗선에 보고를 빠르게 올리면, 병사들이 투입되어 사태가 진압될 것이다.

하지만 고작 고블린 따위도 처리 못 해서 자신의 업무를 더하냐며 탐탁지 않게 여기는 행정관이라면, 접수된 안건의 우선순위가 뒤로 쭉 밀려날 수도 있다.

실질적인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소한 문제라 여기고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무원의 일 처리가 대충대충인 건 어느 세계고 다 똑같지.’

상황이 그렇다 보니 머리를 조금 굴릴 줄 아는 촌장이라면, 도시의 교구에 중개를 요청하기도 한다.

‘저희 좀 살려주세요! 높으신 분들의 관심이 고파요!’라며 신전에서 머리를 조아리면, 교구 측에서 ‘양민들 곡소리가 여기까지 울리는데 거 좀 살펴보지 그러시오?’ 하고 관리들에게 한마디쯤 찔러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나마 일 처리가 빨라질 확률이 높아진다.

알렉스가 받은 임무란 것도 원래는 그렇게 처리될 일이었지, 팔라딘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할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건 너무 과한 인력 낭비이니까.

아마 성기사단장은 알렉스의 토벌 임무가 아니면 싫다는 식의 태도가 아니꼬워서, ‘어디 그러면 격에 맞지 않게 고블린이라도 때려잡을 테냐!?’ 하는 생각으로 이런 일을 던져준 게 아닌가 싶다.

설마 자신이 그걸 수락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지만.

‘고블린이라. 경험치가 0.01%라도 오르기는 할까?’

정식 팔라딘이 돼서 처음으로 싸워야하는 적이 하찮은 고블린이라니, 김이 빠지는 상황이긴 하다.

그래도 순례행의 핑계를 대고 돌아다니는 마당이니 뭐라도 일 하나쯤은 해결해 줘야 했기에, 괜히 이러니저러니 말을 더 꺼내는 대신 받아들인 임무다.

“갑시다. 고블린 잡으러.”

“저희의 여정이 갑자기 초라해지는 기분이 드는군요.”

투덜거리는 이사벨의 목소리에, 알렉스는 그저 머쓱하게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 실망하지 맙시다. 혹시 또 모르지 않습니까? 고블린 말고 다른 게 더 있을 수도.”

* * *

요청이 있던 마을에 도착하고, 고블린이 목격된 장소를 확인하고, 놈들의 은신처로 사용하는 동굴을 발견하기까지.

모든 단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애초에 고블린 자체가 습성이나 생활양식 등이 잘 알려져 있는 흔한 몬스터이기에, 놈들을 소탕함에 있어 색다르거나 어려운 점 따위는 있을 수가 없었다.

고블린들을 처리하는 과정도 싱겁기 그지없었다.

끼에엑!

캬악!

“시끄럽다.”

칼질 한 번에 고블린 머리 하나.

몸풀기 운동을 하듯 가볍게 몇 번 움직였을 뿐인데, 차 한 잔 마실쯤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더 이상 살아 있는 고블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키가 1미터를 겨우 넘는 녀석들이 생활하는 동굴답게 좁은 공간이 많아, 수색이 조금 불편했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래도 이사벨 경이 있어준 덕분에, 놓치는 부분 없이 구석구석까지 전부 둘러본 것 같군요.”

“그건 꼭 제 키가 고블린만하다고 여겨지는 듯한 발언이네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으음, 미안합니다.”

“사과하는 쪽이 더 속상합니다!”

다만 고블린 퇴치의 임무는 그것으로 종료되었으나, 두 사람의 발걸음은 거기서 끝이 나진 않았다.

“알렉스 경. 여기 구멍 아래 길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제법 깊어 보이는군요.”

“고블린들이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땅굴을 파놓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숨어 있는 녀석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안쪽까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고블린 소굴의 구석 한쪽.

땅굴처럼 보이는 구멍 안을 살펴보다가 내려온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며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여긴……?”

“으음, 고블린이 이런 걸 만들었을 리는 없는데. 이건 대체 뭐지?”

자연적인 동굴이나 고블린들이 판 다른 땅굴로 이어지는 공간이 아니었다.

단단하게 다져진 바닥과 인공적인 석벽이 쭉 이어져 있는 광경을 보며,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어떤 거대한 구조물 안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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