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65화 (65/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65화

로안티카 대교구(3)

로안티카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도시 내로 번졌다.

대교구의 팔라딘 서임식에 천상의 존재께서 친히 강림하시어, 자신의 사도를 지목하셨다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을 타고 떠돌았다.

소문의 출처가 서임식에 직접 참여한 도시의 유지들이다 보니, 신뢰성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최근 여기저기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지 않았었나! 대륙이 혼란스러우니 예루스께서 문제를 처리할 대리자를 정해주신 거지.”

“어…… 이교의 준동이라고 얘기하던 사건들 말인가? 이미 귀족 나리들과 교단의 성기사님들이 나서서 해결 중이라고 들었네만.”

“어허, 어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딘가에서 우리가 모르는 더 큰 위험이 자라나고 있으니, 신께서 자신의 사도를 내려주신 게 분명하네.”

“하긴…… 서부와 남부에 소동이 일고 있는 와중에, 남서부를 대표하는 교단의 대교구에서 이런 이적이 벌어졌으니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니겠구먼.”

성자, 사도, 용사 같은 단어들과 함께, 알렉스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야기가 널리 퍼짐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 알렉스는 교단 외부의 사람들에게, 대륙을 구원할 용사에 가까운 인물로 점점 자리매김해 가고 있었다.

어떤 이가 아침에 달걀에서 노른자가 두 개 나온 것도 구원자의 탄생을 예고하는 징조였으리라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서 알렉스.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시는 게 없는 겁니까?”

“그저 검을 받아들자 곧바로 일어난 현상이었을 뿐입니다.”

“예컨대 그분의 음성이 들렸다거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 상황에 아무런 계시도 없었다니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분들이 본 것처럼, 그저 빛줄기가 내리쬔 게 전부입니다. 저도 당혹스러울 뿐이군요.”

행사가 끝나면 바로 떠날 생각이었던 알렉스는, 추기경을 비롯한 대교구의 고위 사제들에게 붙들려 질문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서임식에서 벌어진 그 현상은 사제들이 보기에도 가벼이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한 줌의 기운도 남아 있지 않은 망가진 성유물이, 저자의 손에 닿자 반응하며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그 상황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아르미온 추기경은, 고뇌에 찬 눈으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당시의 일은 마치 신의 계시가 내려진 신성한 현장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어떤 마법적인 눈속임 같은 것은 아니었다.

‘교단 역사상 신탁을 받았노라 주장하는 자는 적지 않게 나왔었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현상이 벌어졌던 기록은 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그런 계시를 경험한 극소수의 인물들은, 모두 교단의 역사에 깊은 한 획을 긋는 거대한 족적을 남겼었다.

예루스께서 직접 지목한 신명의 이행자임을 뜻하는, 사도의 명칭을 이름 앞에 내걸고.

만약 저 젊은 팔라딘이 정말로 사도로 인정받게 된다면, 교황조차도 쉬이 대할 수 없는 거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 일에 대해선 내 교황 성하께 보고하도록 하겠소. 알렉스 경 본인이 그분의 어떠한 말씀도 듣지 못했다 하니, 벌써부터 사도에 대한 섣부른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다들 단단히 함구해 주시오.”

“이미 도시 내에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만.”

“……후우! 지금부터라도 말이 나오지 않도록 통제를 하란 말일세!”

“아, 알겠습니다.”

한숨을 내쉰 아르미온 추기경은 이내 알렉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경은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주게. 교황청의 지시가 내려오기 전까진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좋겠네.”

“아니오. 저는 제 소속구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알렉스로서는, 굳이 이곳에 처박혀 시간을 버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이 계시니 뭐니 떠들어댔던 그 현상은 성검 알페리온의 봉인 해제 이펙트일 뿐이다.

“뭣? 아니, 자네…… 으음.”

면전에서 자신의 말을 거스르는 알렉스에게 뭐라 한마디 하려던 추기경은, 이내 어색한 표정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교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사도의 발걸음을 막아설 수 없다.

사도란 신께서 지시하신 절대적인 명령을 이루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아가는 자.

아직 알렉스에 대한 결론이 확실하게 나오진 않았으나, 이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추기경은 그의 의견과 대립하는 것에 큰 심적 부담을 느꼈다.

어쩌면 본인이 당장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 무의식적으로 신께서 내려주신 어떤 목표에 따라 움직이고자 하는 중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알렉스 경의 뜻이 그렇다면…… 그리 하시게.”

추기경마저 그럴진대 다른 사제들이라고 다를 리는 없었다.

대교구의 성직자들은 바쁘게 뛰어다니며 알렉스를 떠나보낼 준비를 차렸다.

‘어…… 이럴 필요는 없는데.’

순식간에 보급물자 및 팔라딘 네 명의 인원 편성이 이루어졌다.

사도일지도 모르는 인물을 그냥 보낼 순 없다며, 알렉스의 전송을 따를 호위대가 구성된 것이다.

‘그래도 이건 나쁘지 않은가? 가는 길에 또 암습이 있을 수도 있으니, 경호원이 생겼다고 치자고.’

“저, 알렉스…… 님.”

경건한 태도로 자신을 뒤따르는 대교구의 성직자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던 알렉스는,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쪽의 눈치를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사벨의 얼굴이 보인다.

“이사벨 경. 말투가 갑자기 왜 그럽니까?”

“그게…… 더는 가벼이 대할 수 없는 신분이 되신 것 같아서…….”

헛웃음을 흘린 알렉스가 이사벨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저 사도 아닙니다.”

“읏!?”

뜨거운 입김에 잠시 움찔하던 이사벨은 이내 알렉스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전에 보관소에서 말했었지요? 망가진 성검을 고른 이유가 있다고. 사실 당시에는 확신을 하지 못했었는데, 저는 그때 성검의 힘을 되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아……?”

“서임식에서의 일은 성검이 부활하며 벌어진 현상일 뿐입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들 오해를 하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어째서 다른 분들에게는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는 겁니까?”

“주변에서 제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는데, 굳이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속물적인 이유도 있고. 어쩌면 정말 제게 어떤 특별함이 있을지 모른다고 스스로 기대하는 중이라면, 이사벨 경은 저에게 실망하시겠습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친분이 있는 이사벨이라도, 이런 자세한 이야기는 숨기는 편이 낫다.

비록 그로 인해 사이가 어색해질지라도,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래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알렉스는 그녀의 귀에 진솔함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언을 속삭였다.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친구라 부를 만한 사이에 가까운 인물이기도 하고, 매번 모든 사람들에게 속내를 숨기며 거짓말만 되풀이하는 것도 지친다는 감정적인 충동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사벨이 놀란 얼굴이 되어 눈을 마주쳐왔다.

멈춰 있던 이사벨은 잠시 뒤 입가에 살짝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아무리 교단에 귀의한 몸이라 해도 어찌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전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라니……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져 대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리 인간적인 말씀을 하시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흠흠!”

조금 불경스러운 소리를 했다 싶었는지, 이사벨은 곧장 안색을 굳히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래도 본인이 말한 것처럼 알렉스의 대처가 충분히 이해의 범주 안에 있다 여겼는지, 더 이상 이 건에 대해 자세히 따져 묻지는 않았다.

마냥 고지식하게 교단에 대한 충심을 부르짖으며 추궁하지 않는 걸 보니, 그래도 그간 쌓은 신뢰와 호감이 헛되진 않은 모양이다.

‘이 정도면 잘 넘어간 건가? 끄응, 하여간 이놈의 성검이 갑자기 반응해서 여러모로 곤란하게 만드네.’

알렉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아 둔 성검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억하기로 알페리온은 입수 후에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그 진정한 힘을 드러내는 아이템이었는데, 어째선지 손에 닿자마자 곧바로 봉인이 풀려 꽤나 당황스러웠었다.

‘신앙 스킬 마스터, 홀리 웨폰 마스터, 그리고 캐릭터 레벨 제한도 있었지 않나?’

어쩌면 조건을 전부 충족하기 전에는 써먹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했었는데, 이렇게 바로 봉인이 풀려 눈에 띄는 현상을 일으키게 된 것은 상정 외의 일이다.

사실 주변에서 사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고, 이번 사건을 이용해 교단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하기는 했었다.

만약 신의 계시를 받았다 말하며 ‘내가 예루스의 사도다! 교단의 총력을 기울여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라!’라고 한다면, 자신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꽤 높기는 할 터.

물론 그 계획은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접어버렸다.

‘교황의 능력이 내가 기억하는 게임 세계관과 비슷하다면, 언젠가는 탄로 날 거짓말이 되니까…….’

게이머였던 당시 교단의 퀘스트를 수차례 진행하며 마주친 교황 NPC는, 기도의식을 통해 신에게 직접 신탁을 내려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처럼 명확하게 이루어지는 소통이 아니기에 해석이 필요하다는 모양이지만, ‘저 인간이 정말 당신께서 보낸 사도가 맞습니까?’라는 교황의 기도에 해석의 여지조차 필요 없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면?

‘어이쿠!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정도로 넘어갈 순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뭐 내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신적인 존재의 개입이 있을 거라 의심되긴 하니, 정말로 내가 사도로 추앙받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욕심을 부리기엔 너무 하이 리스크라, 도박을 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 교황이 알렉스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다면, 그날로 온갖 감당하기 어려운 풍파에 휘말리게 될 테니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처음 생각대로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편이 낫겠지.’

딱 관구 내에서 손꼽힐 정도의 강력한 팔라딘이 되는 게, 현재 알렉스가 교단에서 추구하는 위치다.

교단이란 배경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자잘한 임무에는 손을 뗄 수 있는 아낌받는 칼이 되는 것.

그 정도의 신분을 확보하고 나서야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생각이었기에, 뜬금없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도로 언급되어서는 곤란했다.

아직 어떤 위험에 빠져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을 만큼, 자신이 강한 힘을 갖춘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개인의 무력만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영웅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 그러니까 못해도 80레벨 정도는 넘겨야, 여기저기 눈치 안 보고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성기사의 레벨이 80을 넘어갈 즈음이면, 목에 칼이 꽂혀도 즉사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출 수 있다.

그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교단이라는 배경 내에서도 너무 튀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 생각들과 함께 로안티카를 떠나기 위해 말을 찾아 걸음을 옮기며, 알렉스는 성검의 손잡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꽝이 아니란 걸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건 마음에 드네. 내가 아는 성검의 성능은 그대로 갖추고 있는 것 같아. 제한 조건 때문에 당장 써먹지는 못하지만.’

봉인이 풀린 알페리온의 겉모습은, 이전보다 더욱 초라해진 모습이었다.

부러지긴 했어도 그나마 검신이 달려 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아예 아무것도 없이 딸랑 손잡이만 남아 있는 상태.

그렇지만 현대의 문물에 익숙한 게이머라면, 도저히 전투에 써먹을 수 없을 그 형태를 보고 오히려 무언가를 연상하며 기대감을 품는다.

그리고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이 손잡이뿐인 성검에 마스터 레벨의 홀리 웨폰 스킬을 부여하면, 속칭 라이트세이버라 불리는 결코 부러지지 않는 빛의 칼날이 탄생하게 된다.

‘광선검이라니. 중세 배경의 판타지에 등장하기엔 너무 사기적인 무기가 아닌가 싶긴 한데.’

그래도 마냥 밸런스를 파괴하는 무기는 아닌 것이, SF영화에 등장하는 광선검처럼 어떤 물질이고 다 잘라버리는 강력한 절삭력을 가지고 있진 않다.

그래도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무기이기는 하다.

‘홀리 웨폰의 마스터 레벨은 5레벨. 현재 내가 찍어둔 게 3레벨이니, 아직 2번을 더 올려야 한단 말이지.’

스킬 포인트 2개를 확보해 홀리 웨폰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단기적인 목표가 생겼다.

물론 그 외에 다른 조건들도 자신이 계획한 스킬 트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채워가야 할 것이다.

애초에 알페리온이 성검으로 지정되었던 것은, 빛의 칼날이 아닌 다른 능력으로 인해서다.

무기로서의 성능을 빨리 써먹기 위해서 그쪽 능력을 먼저 개발하려는 것일 뿐.

성유물로서의 성능은 오히려 다른 능력 쪽이 더 대단한 가치를 가졌다고 본다.

‘거기까지 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긴 하다만.’

우지끈! 히히힝!

‘음?’

자신이 향하고 있던 방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 탓에, 알렉스는 상념에서 깨어나 소음의 발생지로 시선을 집중했다.

신전의 말들을 관리하는 마사에서 무언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째 촉이 안 좋은데?’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고 있자니, 마사에서 일하는 평신도 한 사람이 알렉스를 알아보고 달려 나왔다.

“아이고! 기사님의 말 좀 어떻게 해주십쇼! 지금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말들이 다 죽게 생겼어요!”

느낌이 영 싸하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말이 사고를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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