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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59화 (59/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59화

복귀

괴물은 해치웠지만, 알렉스는 며칠 더 폴라이스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혹시나 다른 위협이 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숲속을 더 조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사들이 많이 죽긴 했지만, 병사들은 대부분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기에, 조사에 필요한 인력을 꾸리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마수가 싹 사라진 숲 안에서는 더 이상 별다른 위험을 찾아볼 수 없었고, 숲속 깊은 곳을 샅샅이 수색하던 연합군은 결국 암흑교와 관련된 몇 가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악한 연구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동굴과, 이교의 증표를 목에 걸고 있는 몇 구의 시체들.

시체의 상태와 발견한 자료들을 조사한 팔라딘들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암흑교의 음모도 매번 계획대로 굴러가는 건 아닌 모양이지? 하긴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겠지만.’

알렉스가 짐작했었던 대로, 암흑교는 이곳에서 마수의 대량생산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다만 연구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괴물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체액이 전부 빨린 채로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이 사태를 일으킨 암흑교도들이었으나, 알렉스가 해치운 바로 그 괴물에 의해 전부 몰살당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멍청이들이라 비웃어야 할지 실패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암흑교도들이 그 괴물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다면, 폴로이스뿐 아니라 남서부 전체가 엄청나게 위험한 사태에 직면했었겠지.’

많은 희생자가 생기긴 했지만 그 끔찍한 괴물에 대해 떠올리면,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치길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입구는 작은데 안은 이렇게 크다니. 자연적은 동굴은 아닌 것 같은데, 이교 놈들은 잘도 이런 공간을 만드는군.”

“이교도들이야 숨어서 지내는 데는 도가 튼 놈들이지 않습니까.”

“설비와 자료의 양을 봐서는 하루 이틀 머문 게 아닌 모양일세. 최근에 들여온 듯한 물품들도 있고…… 이것들의 존재를 일찍 알았더라면 일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이교도들이 이런 동굴에 숨어 사악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보급을 위해 아마도 사냥꾼이나 약초꾼으로 위장해 가끔 도시에 들렸겠지만, 수상하게 여길 만한 행동을 하진 않았겠지요.”

“아무튼 이제는 다 끝난 일이지 않습니까? 어서 죄악의 흔적들을 처리하고 돌아갑시다. 더 이상 도시에 위협이 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빨리 시민들에게 알려줘야겠습니다.”

팔라딘들은 증거를 위해 몇 가지 자료들을 챙기고, 동굴 안에 불을 질러 나머지 물건들을 싹 다 태워 버렸다.

‘가져다 팔면 적당히 돈이 될 만한 것도 꽤 있어 보이는데. 아깝게 죄다 불을 질러버리네.’

이교에 대한 교단의 반응은 항상 이렇게 완고하다.

만에 하나라도 부정한 물품이 민간에 섞여 들어갈 수도 있으니, 이교와 관련이 되었다 싶으면 뭐가 나오든지 전부 파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틀린 행동은 아니지만…… 괜히 억울하구만.’

아직 게임 폐인처럼 살았던 때의 물이 덜 빠져서 그런지, 매번 이리저리 구를 때마다 뭔가 물질적인 보상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에, 강한 몬스터를 잡는다고 귀한 장비가 툭 떨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기회가 있으면 뭐라도 챙겨보고 싶은데, 팔라딘의 규율에 따르지 않을 수도 없으니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에이! 설마 저 안에 뭐 대단한 마법물품 같은 게 있기야 했겠어? 있어도 암흑교의 물건이니까 저주받은 무엇이니 하는 것들이겠지.’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그냥 저 포도는 신 포도다 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어쨌거나 조사를 마친 팔라딘들은 도시로 귀환해 이제 폴로이스는 안전하노라 공표했다.

전투에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던 폴로이스의 영주 가문에선, 중앙 팔라딘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연합군을 위해 나름대로 성대한 연회를 열어주었다.

다만 알렉스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 교구로 돌아간다고? 힘든 임무를 마쳤는데 연회만이라도 하루쯤 즐기고 가지 그러나?”

“임무가 끝났으면 바로 복귀해야지요. 연회도 좋지만 돌아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알렉스의 칼 같은 대답에, 자르빈은 굉장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련을 함께 헤쳐나간 형제를 이리 떠나보내려니 참 아쉽군. 소속구로 돌아가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

처음과는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사실상 이번 사태의 종결에는 알렉스가 지대한 역할을 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우이긴 하다.

자르빈은 알렉스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목소리를 살짝 낮추며 말을 건넸다.

“알렉스 경. 경의 공적은 내 윗선에 제대로 보고하도록 하겠네. 적어도 그쪽 관구에서 공로를 치하하며 마땅한 보상이 내려지도록 말일세.”

“음. 감사합니다.”

교단에 헌신하는 팔라딘들이 교단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임무를 나갔다 돌아온다고 딱히 개별적인 보상을 받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이번 사태처럼 중앙에서 직접 해결하기 위해 주도하여 나선 대형 사건에서,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할 만큼 지대한 역할을 했다면?

여느 때처럼 고생했으니까 밥 잘 먹고 다음 임무까지 푹 쉬세요, 하고 넘어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교단의 높으신 분들 입에서 이름이 오르내릴 텐데, 무언가 따로 혜택을 챙겨줄 법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복귀하면 바로 서임식을 열어준다고 했는데. 뭔가 더 보상이 추가될 수도 있으려나?’

알렉스의 마음 한 구석에 작은 기대감이 서렸다.

설마 대충 표창장 같은 거 하나 만들어 전달하고 끝난다면, 매우 아주 많이 엄청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인연이 이것으로 끝은 아닐 걸세. 어쩌면 금방 다시 볼지도 모르겠군.”

“하하…… 이런 심각한 일이 그리 자주 일어나겠습니까?”

“딱히 이번과 같은 사건이 아니어도…… 아니, 아직 이에 대해 논할 단계는 아니군. 그럼 살펴 가시게.”

“……?”

의미심장한 말투로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자르빈을 뒤로하고, 알렉스는 연합군의 주둔지를 빠져나왔다.

‘금방 다시 볼 수도 있다고? ……설마 중앙 쪽으로 나를 차출해 가기라도 하려는 건가?’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중앙 팔라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니, 어쩌면 그리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같은 교단의 팔라딘이라 해도 중앙은 지방보다 우수하다며 우월감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니, 그들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였던 자신을 보고 꽤 충격을 받았을 터.

본인들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는 방법으로 선택한 게 알렉스를 같은 중앙 소속으로 포섭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말이 된다.

‘나는 딱히 그쪽에 관심이 없는데. 설마 내가 싫다는데 강제로 소속이 바뀌는 일은 없겠지?’

중앙 관구의 힘이 북동이나 남서 관구보다 강하다지만, 그건 교내의 정치적인 상황에 따른 격차일 뿐이다.

지방의 관구가 중앙 관구와 상하관계로 묶여 있는 것은 아니니,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속구가 바뀌는 사태가 벌어지진 않을 것이라 믿었다.

‘후우! 자잘한 건 일단 내버려두자. 그렇지 않아도 해결해야 할 고민도 있는데.’

도시를 떠나기 위해 움직이고 있던 알렉스는 갑자기 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것은, 사실 소속구가 어쩌니 하는 이야기 같은 게 아니다.

푸히힝-!

‘……저놈이 제일 문제야 저놈이.’

자신을 발견하고 반갑게 울음소리를 지르는 말을 보며, 알렉스는 떨떠름한 내색을 숨기지 못했다.

연회를 마다하고 빨리 폴로이스를 떠나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저 말에게 있었다.

‘이 녀석은 대체 어떻게 되어버린 거지.’

알렉스는 언제 부상을 입었냐는 듯 멀쩡해진 자신의 말을 보며, 더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을 쓰러뜨렸을 당시의 일이 다시금 떠오른다.

본능적으로 생존의 기회를 느끼고 한 행동이었을까?

뜬금없이 자신의 손에 묻은 괴물의 심장 파편을 핥아 먹은 늙은 말은, 고위 사제의 치유 능력에 버금가는 재생력을 보이며 완전히 부활했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지만, 말이 살아났다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괴물의 본체였던 심장의 일부를 먹고 되살아난 녀석을, 더 이상 평범한 말이라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녀석이 마수가 된 걸까? 크기가 그대로인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긴 한데…….’

육체의 급격한 재생이라는 기현상이 벌어졌을 때.

솔직히 괴물이 말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나는 줄 알고 기겁했었다.

손에 검이 들려 있었다면 곧바로 녀석을 베어버렸겠지.

하지만 되살아난 늙은 말의 생김새는 이전 그대로와 같았고,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어떤 사악한 힘이 느껴지진 않는 모습이었다.

혹시나 싶어 블레싱을 걸거나 치유의 손길을 대보는 등 신성력을 접하게 해봤지만, ‘뭐하슈?’ 하는 심드렁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딱히 어떤 거부반응이 일어나진 않았다.

‘아오! 모르겠다. 그 심장 쪼가리가 무슨 영약도 아니고, 단순히 부상을 회복시키고 끝이라는 형편 좋은 일이 일어났던 건 분명 아닐 텐데.’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거나 마수로 변이하는 징조가 보인다면.

아무리 자신을 위해 괴물과 맞선 충성스러운 녀석이라 해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급히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일단 엄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도시에서 떨어지고, 녀석을 주의 깊게 더 지켜볼 필요를 느꼈다.

‘열흘 내내 꼼짝없이 노숙만 해야겠군.’

알렉스는 돌아가는 기간 내내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하며, 무엇이 되어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말을 유심히 관찰하기로 결심했다.

* * *

‘이걸 일주일 만에 끊어버리네…….’

글라즈번을 눈앞에 둔 알렉스는 늙은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겉보기엔 여전히 노쇠한 말이지만, 녀석의 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힘이 숨어 있다.

장기간의 여행에도 어째 전혀 지치질 않더니, 갈 때는 열흘이 걸렸던 거리를 올 때는 칠 일만에 주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마저도 자신이 평범하게 휴식을 취했기에 일주일이었지, 잠을 아껴가며 달렸다면 그보다 더 빠르게 도착했으리라.

‘아주 명마가 되어버렸구만. 하…….’

기사에게 말은 반려와도 같다.

이전까지는 녀석에게 정이 들긴 했어도 기회가 되면 바꿀 생각만 했지, 그다지 애지중지하지는 않았었다.

한데 이리 뛰어난 명마로 거듭난 모습을 보니, 없던 애정도 절로 생겨나서 솟구치는 기분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심란했다.

오는 동안 녀석에게 딱히 수상한 기미가 보이진 않았으나, 어떤 위험성을 품고 있는지 모르는 마당에 계속 이놈을 타고 다닐 순 없었다.

‘단장하고 상담해 봐야겠군. 교단 측에 부탁해 이상한 점이 있는지 검사해달라고 해야 하려나?’

임무에 관한 보고와 서임식, 말에 대한 것까지.

해야 할 말이 참 많다고 생각하며, 알렉스는 글라즈번의 성문을 지나쳤다.

* * *

“고생이 많았군. 이미 간략하게 이야기는 전달받았네. 생각보다 훨씬 더 큰일이었다지?”

“말도 마시죠. 하마터면 서임식이 아니라 장례식을 준비하셨어야 했을 겁니다.”

“미안하게 되었네. 그렇게 위험한 임무가 될 줄, 나라고 알았겠는가? 그래도 약조한 대로 교구장께 잘 이야기해 두었으니, 며칠 내로 자네의 서임식을 진행할 수 있을 걸세.”

“음. 진짜 엄청나게 고생하고 왔는데, 뭔가 더 해주실 생각은 없으신지?”

“……못 본 사이에 꽤 능글맞아진 것 같군. 원래 그런 성격이었나? 좋아, 말해보게. 따로 원하는 게 있는가? 내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힘써보겠다고 약속하지.”

단장 프리츠의 말에, 알렉스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전이었다면 장비 쪽의 지원에 대해 떠올렸겠지만, 지금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말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고 ‘제 전투마가 괴물 심장을 먹고 조금 이상해진 것 같은데 좀 봐주실래요?’ 따위로 내뱉었다간, ‘그래? 가서 당장 죽여 버리세.’ 하고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을 잘 골라야 했다.

일단 당장은 위험이 느껴지질 않으니, 큰 문제만 없다면 어떻게든 살려서 타고 다니고 싶다.

사악한 힘을 억누르는 성유물 같은 걸 구할 수 있나 알아봐야 하나?

괴물로 변할 것 같으면 신성한 힘으로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한다든지.

그런 어떤 안전장치가 되어줄 것이 있다면, 그나마 녀석을 안심하고 타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눈물을 머금고 제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때까지는 별문제 없이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무언가의 수단이 필요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단장실의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프리츠 경!”

“교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노크도 하지 않고 예의 없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온 사람의 정체는, 이곳 글라즈번 교구의 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여기에 소속되고 딱 한 번 인사를 나눴을 뿐, 따로 대화는커녕 다시 얼굴 볼 일도 거의 없었던 사람이다.

아무튼 그런 신분을 가진 이가 저리 다급히 단장을 찾는 걸 보니,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친구 대체 어떤 사람인가?”

“……누구 말입니까? 왜 그러시는지 몰라도 진정 좀 하시지요.”

“그, 그, 알렉스라는 후보생 말일세! 자네가 바로 서품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엥?’

난데없이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알렉스는 놀란 얼굴로 프리츠와 눈을 마주쳤다.

‘자네 혹시 무슨 사고를 치고 보고하지 않은 게 있나?’

그런 뜻이 담긴 듯한 시선에, 알렉스는 전혀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응수해주었다.

‘뭐지? 왜 교구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나를 저리 급하게 찾지?’

어째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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