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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52화 (52/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52화

마수 토벌

성문이 열림과 동시에 말을 탄 기사들이 바깥으로 우르르 몰려 나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멍청한 짐승 놈들에게 숲에서 빠져나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줘라!”

“전부 찢어 죽여!”

성난 함성과 함께 수십 기의 기마가 뛰쳐 나가며, 힘찬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전술이고 뭐고 없는 무질서한 모습이었지만, 거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것은 없었다.

현재 수비군 지휘부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은 어차피 죄다 기사들이고, 기마 전력이 이만큼 모여 있는데 굳이 잔머리를 굴려야 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적을 향해 ‘닥치고 돌격, 무조건 돌격, 어쨌든 돌격’ 을 감행하는 것은, 단순한 기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투양상이기도 했다.

‘음. 딱히 끼어들 틈도 없겠는데.’

후열에서 기사들을 따라가던 알렉스는, 느긋하게 상황을 감상하며 천천히 말을 몰았다.

이제 막 폴로이스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끌려 나온지라, 늙은 말의 컨디션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체력이 한참 떨어져 있는 녀석을 타고 다른 기사들의 돌진 페이스에 맞추는 것은 무리이기에, 지금은 조금 더디더라도 천천히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허겁지겁 뛰어오는 병사들과 비슷한 속도로 이동하며, 알렉스는 도시의 앞마당에 등장한 마수들의 수를 파악했다.

‘다섯, 열, 스물…… 마수가 이렇게 한 지역에 뭉쳐 있는 경우는 없다고 알고 있는데. 확실히 기이한 일이군.’

서른에 조금 못 미치는 마수들.

종류 역시 사슴, 족제비, 멧돼지 등 숲에 사는 온갖 짐승들이 죄다 모여들어 있었다.

자연에는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성질의 기운이 분포되어 있고, 흑마력으로 분류되는 부정한 기운 역시 어딘가에는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마수는 몬스터와 달리 평범한 짐승으로 태어났지만, 그런 흑마력을 몸에 받아들여 변이를 일으킨 괴물을 의미한다.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놈들이긴 하지만, 이만한 수가 한 곳에 모였으면 우연이라 보긴 어렵지.’

현재 대륙 남서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이한 사건들은 대부분 암흑교의 수작으로 추정되고 있고, 폴로이스의 이상현상 역시 그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교단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기에 팔라딘들을 이곳으로 투입시킨 것이리라.

키에익!

“덩치만 큰 짐승들! 평지로 나오니 아무것도 아니군!”

폴로이스 수비군의 기사 한 사람이, 커다란 오소리의 몸에 랜스를 쑤셔 박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교단의 지원이 오기 전부터 영지를 지키기 위해, 바깥을 돌아다니며 마수와 싸우던 인원들 중 한 사람이었다.

폴로이스는 저산지대에 위치한 도시로, 인근 평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지세가 험해지고 숲이 가득 들어차 있는 지역이다.

그간 수풀이 우거진 지형에서 마수들을 쫓아다닌다고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놈들이 이리 평지에 모습을 드러내 주니 손쉬운 사냥이 되어 꽤나 신이 난 상태였다.

“흐하하-! 저놈은 내가 잡는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금방 끝날 수도 있겠군.”

“마수들을 다 처리하고 나면 숲 안쪽을 조사하는 것쯤이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말을 탄 기사들과 평지라는 조건이 만나게 되면, 그들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 존재란 굉장히 드물어지게 된다.

애초에 마수 자체가 기존보다 덩치가 배 이상 커진다는 차이점을 빼면, 대부분은 짐승일 때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놈들이다.

오래 생존한 마수는 꾸준히 강해지다가 특별한 능력을 깨우치기도 하지만, 지금 보이는 녀석들은 레벨로 따지자면 30대 초중반 속하는 수준이 대부분.

훈련을 게을리하는 기사가 아니라면 그리 어려운 상대도 아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적이 다수가 아닐 경우의 이야기이긴 하다.

기사들이 마수를 하나둘씩 처치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날뛰는 마수 떼의 수는 그리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숲 지형 안으로부터 계속해서 마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응? 저 짐승 놈들이 갑자기 전부 미치기라도 한 건가?”

“숲 안쪽에 틀어박혀 있던 놈들이 죄다 몰려나오고 있는 모양이오.”

“하하! 무얼 고민하고 있습니까? 전부 잡아 죽이고 나면 안쪽을 확인하기가 더욱 수월해지는 거지!”

몇몇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의문을 표했지만, 물 만난 고기처럼 돌아다니던 대부분의 기사들은 사냥의 흥분에 취해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쓰러진 마수의 시체가 거의 세 자릿수에 육박해져 갈 때쯤이었다.

슬슬 평지로 유입되는 마수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전투는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초식동물이나 작은 짐승에서 마수화한 녀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점점 숲 깊은 곳에 둥지를 틀고 있던 대형육식동물을 베이스로 한 마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과 비슷한 크기를 지닌 늑대 형태의 마수 몇 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기사들을 덮쳤다.

크와응!

“허억!”

“으아악!”

늑대 마수의 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기사 몇 사람이, 놈들의 주둥이에 물려 말 위에서 떨어졌다.

까그그극. 아그작.

“끄악! 도, 도와주시오!”

갑옷으로 보호받고 있던 기사들은 마수에게 물려도 바로 팔다리가 뜯겨나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놈들의 엄청난 치악력은 철판을 우그러뜨리며 점점 이빨이 몸을 파고들어 왔다.

코를 찌르는 강렬한 누린내와 몸통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통증에, 늑대에게 물린 기사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몸부림치던 순간.

빛으로 휘감긴 날카로운 칼날이, 사납게 고개를 흔들던 늑대 마수의 이마를 파고들었다.

“일어날 수 있습니까?”

“으으…… 고, 고맙소.”

늑대의 주둥이에서 기사를 빼내 일으켜준 알렉스는, 방금 막 뛰어내렸던 늙은 말의 등 위로 기사를 올려주었다.

“부상 때문에 더 싸우진 못하실 것 같은데, 포위되기 전에 제 말을 타고 후방으로 빠지십시오.”

“그럼 경께서는?”

“마저 할 일을 해야지요.”

어차피 마상전투를 하는 것보다 혼자가 낫기도 하고, 괜히 늑대들에게 말을 잃을 수도 있으니 이참에 부상자와 함께 뒤로 빼는 편이 낫다.

푸르르륵!

주인 아닌 다른 사람을 태우는 것이 불만스러운지 늙은 말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흔들었지만, 상황을 이해하는지 금방 몸을 돌려 성을 향해 달려갔다.

“이, 이름을 알려주시오! 내 꼭 명예로운 그대의-”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외치며 멀어져가는 기사에게, 알렉스는 대충 손을 흔들어 보이고 몸을 돌렸다.

‘누가 보면 내가 희생하려고 남은 줄 알겠네.’

피식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자니, 홀로 서 있는 그를 발견한 또 다른 늑대 마수가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알렉스는 느긋하게 방패를 들어 올리고 자세를 잡았다.

저렇게 무작정 돌진하는 적을 상대하는 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는 매우 쉬운 일이다.

[굳건한 태세]

깊게 뿌리를 내린 거목처럼 단단하게 변한 알렉스가, 덮쳐오는 늑대 마수의 머리를 방패로 막아내며 턱밑으로 칼을 가져다 대었다.

케헹!?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 꼴이 된 늑대 마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축 늘어졌다.

경련하는 놈의 몸뚱이를 밀쳐낸 알렉스는, 다가올 만한 거리에 있는 다른 마수들을 경계함과 동시에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싸움이 길어지니 점점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군.’

늑대를 비롯해 표범이나 곰 등의 맹수에서 마수화한 놈들이 나타나자, 기사들은 기세가 한풀 꺾인 채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저놈은 레벨이 못해도 60은 되겠는데.’

특히 집채만 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회색 곰 마수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일반적인 마수보다 레벨이 두 배쯤은 되어 보이는 강력한 개체.

게임이었다면 아마 마수들을 대표하는 필드 보스급으로 등장할만한 녀석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상황이 조금 어려워지긴 했어도, 여전히 전투는 인간들이 더 우세한 편이었다.

전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밝은 광채들이 이를 증명했다.

다른 기사들 사이에서 적당히 어울리며 싸우고 있었던 중앙 관구의 팔라딘들이, 강력한 마수들이 등장하자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조리 섬멸하라!”

“더러움에 물든 짐승들을 정화하노라!”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전투를 잠깐 지켜보던 알렉스는, 중앙 팔라딘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개인마다 수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신체능력과 성법의 위력을 따져봤을 때, 다들 자신과 엇비슷한 레벨은 되는 것 같았다.

‘잘 싸우긴 하네…… 아!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수들이 빛나는 무기에 맞아 하나둘씩 격퇴당하는 것을 본 알렉스는, 다급히 몸을 움직여 회색 곰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레벨이 낮은 다른 마수들은 어차피 잡아봐야 경험치가 거의 오르지도 않는다.

그나마 가장 강해 보이는 회색 곰 마수가 자신과 비슷하거나 살짝 높은 레벨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이 되니, 늦기 전에 한 다리 걸쳐서 경험치를 뽑아먹어야 했다.

“힘이 상당한 놈이니 정면에서 싸우는 건 피해라!”

“교대로 시선을 끌면서 다리 한쪽을 먼저 끊어놓읍시다!”

“가죽이 굉장히 두꺼운 놈이군! 치자르 경! 자네가 먼저 상처를 만들어 주게!”

“맡겨두십시오!”

회색 곰 마수는 기사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강력한 적이었기에, 중앙 팔라딘들도 여럿이 모여 놈을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꾸워어엉!

“크읏! 덩치가 저만한 녀석이 제법 날래기까지 하군.”

“조심하게! 한 방이라도 허용하면 위험해질 걸세!”

중앙 팔라딘들의 전투능력이 상당하긴 했지만, 대형 마수의 압도적인 덩치에서 뿜어지는 힘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놈을 둘러싸고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공략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런 팔라딘들의 진형 사이로, 한 사람의 신형이 파고들었다.

경험치를 얻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알렉스였다.

“어엇! 무슨 짓인가!”

“무모하게 굴지 말고 뒤로 빠지시오!”

자신들의 호흡을 망가뜨리는 난입에, 팔라딘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을 치는 순간.

크워어엉!

정면으로 달려든 알렉스를 향해, 곰 마수의 강맹한 일격이 내리꽂혔다.

“저런 멍청한 인간이!”

“쯧! 공명심에 눈이 멀어버린 건가.”

거의 사람 키만 한 크기의 발바닥이 머리 위를 덮친다.

팔라딘들은 바보 같은 기사 하나가 주제도 모르고 나섰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의 예측을 벗어났다.

“크으…… 힘 좀 쓰는데?”

상체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린 마수의 일격을 방패를 들어 막아낸 알렉스는, 몸에 힘을 팍 주고 욱신거리는 통증을 견뎌냈다.

충격이 상당하긴 하지만 예상범주 안에 둔 위력이다.

이 정도 공격은 몇 번이고 더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막았다고!?”

“저건…… 요셉 경의 성법과 비슷해 보이는데.”

“저런 게 가능한 사람이 또 있었단 말인가?”

크게 놀란 팔라딘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음? 저쪽에도 내 스킬과 비슷한 능력자가 있나?’

방패술 스킬 트리의 기술들과 유사한 성법을 다루는 이는 아직 만나보질 못했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 중앙 쪽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고.’

“보기만 할 겁니까! 제가 주의를 끌 동안 계속 공격하십시오!”

“으음! 공격하라!”

알렉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팔라딘들이, 전보다 한층 적극적인 공세에 돌입했다.

시선을 잡아끄는 데 그치지 않고 마수의 공격을 막고 버티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이들이 조금 더 과감하게 치고 빠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쿠와앙-!

성난 마수가 알렉스를 두고 다른 팔라딘들에게로 공격대상을 옮기려 했지만, 그걸 그냥 두고 볼 알렉스가 아니었다.

“딴 남자 말고 나만 보라고 이 자식아!”

고개를 돌릴 때마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칼침을 찔러대니, 마수의 입장에선 마냥 무시하고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사실 곰 마수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롱소드에 찔려봐야 그리 깊은 상처를 입히지 못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흑마력으로 변이된 마수의 특성상 홀리 웨폰의 추가 데미지가 적용이 되다 보니, 칼에 찔릴 때마다 발생하는 상당한 통증이 놈을 지독히도 괴롭혔다.

쥐방울만 한 인간을 멀리 떨어뜨리고자 앞발로 후려쳐도, 이해할 수 없는 묵직한 무게감만 느껴지며 밀려나지 않고 버티니, 곰 마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쌓여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징벌을 내리노라!”

뿌드득.

알렉스가 기회를 만들어 주는 동안 팔라딘들이 공격을 집중한 끝에, 마수의 뒷다리 한쪽에서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리 한쪽이 망가진 탓에 지면을 버티고 서는 힘이 확 줄어들며, 곰 마수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진다.

몸을 지지하기 위해 앞다리로 땅을 짚느라, 놈이 저항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팔라딘들의 공격은 한층 더 맹렬해졌다.

이윽고 마침내, 힘이 빠진 놈의 거체가 스스로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쿠웅!

알렉스는 숨을 크게 헐떡이는 마수의 얼굴 앞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내가 해치운다.’

그런 마음으로 뛰어가는데, 이미 누군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놈의 턱 아래에서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래도 마무리는 양보하기 아쉽지.’

“윽, 이봐!”

일부러 애매한 각도에서 끼어들어 팔라딘의 공격을 방해한 알렉스는, 곧바로 칼을 휘둘러 마수의 목을 길게 베었다.

[격노의 응징]

이제껏 버티면서 최대치까지 쌓인 격노 수치를 소모하여 날린 강격.

다른 팔라딘이 찢어놓은 가죽 사이로 드러난 마수의 질긴 근육이 갈라지며, 다량의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거기에 한 번 더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 검을 되돌린 알렉스는 어깨를 뒤로 길게 잡아 뺐다.

[심판의 일격]

온 힘을 다해 내뻗은 찌르기에, 벌어진 상처 안으로 롱소드가 손잡이 끝까지 파고들었다.

‘잡았다!’

경험치가 차오르며 대형 곰 마수의 생명이 확실하게 다했음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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