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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47화 (47/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47화

돌로메스의 참극(4)

“이런! 사특한 망령이 탄생했군!”

“실체가 없는 비정형 몬스터…… 무기 축성의 성법을 사용해야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을 걸세!”

익히 알다시피 영체 형태의 몬스터는 신성력이나 마법적인 힘이 담긴 무기가 아니면 타격을 줄 수가 없다.

물론 홀리 웨폰을 쓰지 못해도 성기사라면 일단 몸에 신성력을 품고 있기에, 이사벨이 이전에 고스트를 상대했던 것처럼 약간씩이나마 피해를 입힐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스펙터쯤 되는 몬스터를 그런 식으로 잡으려다간 한나절은 족히 걸리겠지. 놈을 처치하려면 신성력을 무기로 방출할 수 있는 성법이 필수다.’

“으윽…… 유령…….”

알렉스는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문 채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이사벨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번 싸움에서 이사벨은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중독에서 막 회복된 참이니 무리하지 않는 편이 낫기도 하다.

“이런, 그쪽 성법엔 아직 자신이 없는데…….”

곤란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테론의 목소리에, 알렉스는 짧게 혀를 찼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테론 역시 이사벨과 마찬가지로 전력 외 판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이 인간은 칼 쪼개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나?

그나마 다행히 길레인이 무기 축성의 성법을 사용하며, 빛으로 물든 망치를 들어 올린 채 알렉스의 옆에 섰다.

빛의 밝기를 보아하니 홀리 웨폰 스킬로 따지면 2~3레벨 사이 중간쯤 되는 느낌.

무력 면에선 그의 실력이 제일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속된 말로 짬이 있는 양반이라 그런지 다방면의 성법에 재주를 보여준다.

“알렉스 경. 아무래도 우리 두 사람이 적을 전담해야 할 듯하네. 다른 이들은 적당히 놈의 시선을 분산시켜 주게.”

“……두 분에게만 맡겨서 죄송합니다.”

“하필 저런 상대가 튀어나오다니.”

잠시 의견을 나누고 있자니, 성기사들을 인식한 스펙터가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그쪽으로 날아들었다.

끼아아악!

알렉스가 반사적으로 방패를 내밀며 앞을 막아서자, 순간 연기처럼 몸을 퍼뜨린 스펙터가 보이지 않는 공격으로 그를 밀쳐냈다.

“으윽!?”

가슴 부분에 시큰한 통증을 느낀 알렉스가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영체형 몬스터를 상대하기 아주 엿 같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쪽은 놈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기도 어려운데, 상대는 얼마든지 방패나 갑옷을 무시하고 피해를 입혀온다는 것.

‘망할. 매번 막고 버티는 데에 익숙해지다 보니 잊고 있었네. 저놈은 물리적인 방어력을 무시할 수 있었지.’

“저주받은 존재여! 사멸하라!”

옆에서 뛰쳐나온 길레인이 은은하게 빛나는 망치를 휘두르며 놈을 타격했지만, 스펙터는 금세 사방으로 흩어지며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거 현실로 맞닥뜨리니 게임 때보다 훨씬 짜증 나는 놈이네.’

생물체가 아니기에 딱히 급소라고 할 부분이 있지도 않고,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적이다 보니 회피능력이 상당하다.

마법사나 구마계통 스킬 트리를 탄 사제가 있다면 난이도가 급격히 떨어질 텐데, 성기사라고 하지만 이렇게 근육쟁이들만 모여 있으니 상대하기가 꽤 까다롭다.

케케케케켁!

놈도 자신이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지 성기사들의 주변을 맴돌며 조롱하는 듯한 웃음을 터뜨린다.

“이놈! 어디서 실실 쪼개는 것이냐!”

노호성을 터뜨린 테론이 스펙터의 옆으로 돌진하며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관절을 가진 생명체라면 보여줄 수 없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인 스펙터가, 가볍게 공격을 피해내며 테론의 품 안으로 파고들려던 순간.

번쩍이는 빛과 함께 그의 무기가 반으로 갈라졌다.

키힉?

홀리 웨폰과는 성질이 조금 다르지만 성유물의 효과가 발동하는 타이밍이라 그런지, 일시적으로 테론의 쌍검이 짙은 신성력으로 번뜩였다.

스펙터가 움찔하며 몸을 피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두 번의 칼질이 놈을 가르고 지나갔다.

끼에에엑-!

고통을 느낀 스펙터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흐하핫! 그래, 그렇게 울부짖는 것이 너 같은 악귀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신이 난 테론이 재차 쌍검을 휘두르며 놈을 쫓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성유물인 그의 무기가 힘을 발휘한 순간은 아주 잠깐이었고, 빛이 사라지며 평범한 칼 두 자루로 돌아간 상태로는 스펙터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힐 수가 없었다.

명칭이 성유물이라 하면 꼭 신성력을 펑펑 쏟아내며 악령 따위는 살짝 찌르기만 해도 제령 시킬 것 같은 이름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강력한 성유물은 교단 전체를 통틀어도 몇 개 되지 않는다.

아마 교황청의 성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크아아아-!

상처를 입고 분노한 스펙터가 죽음의 기운이 가득 담긴 함성을 내지르며, 무형의 손톱으로 테론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커억!”

“테론 경!”

갑옷의 틈 사이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판금갑옷을 그냥 통과하여 부상을 입힐 수 있는 몬스터.

기사의 입장에서 여러모로 상성이 좋지 않은 적이었다.

쓰러지는 테론에게 달려간 이사벨이 재빨리 그를 질질 끌고 뒤로 물러났다.

화가 잔뜩 난 스펙터가 따라붙으려 했지만, 길레인이 시기적절한 해머질로 놈의 움직임을 잡아 세웠다.

신성력을 발산하는 무기에 맞으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경계심을 품은 스펙터는 테론을 포기하고 길레인을 노려보며 고음의 괴성을 질렀다.

끼에에엑-!

“시끄럽다, 못생긴 새끼야!”

알렉스가 뒤에서 검을 휘둘러 놈을 베려고 하자, 스펙터는 또다시 몸을 흩어지게 만들어 저만치 떨어진 곳으로 도망쳤다.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놈이다 보니 역시 싸우기가 어렵다.

‘영체는 육신과 달리 불안정한 형체로 존재를 유지하는 방식이라, 타격이 들어가기만 하면 작은 손상으로도 소멸의 위기에 놓인다. 심판의 일격 한두 방만 맞춰도 놈을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홀리 웨폰과 심판의 일격 조합이, 부정한 존재에게 굉장히 잘 먹힌다는 것은 이미 입증이 되었다.

문제는 일단 놈을 맞춰야 뭐가 된다는 건데, 반칙에 가까운 회피능력을 보이고 있으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나마 스펙터가 공격을 할 때는 스스로도 형체를 유지해야 하기에 반격의 기회가 있지만, 갑옷도 무시하는 놈이라 카운터를 노리기도 위험부담이 상당하다.

‘포위가 통하지 않으니 수적 우세를 내세울 수도 없고. 어지간히도 귀찮은 놈일세.’

길레인과 함께 몇 차례 연계공격을 시도하던 알렉스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슬금슬금 아군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알렉스 경?”

힘을 합쳐 같이 싸워도 버거운 마당에 몸을 빼는 모습에, 길레인의 의아해하며 알렉스를 불렀다.

알렉스는 대답하지 않고 눈짓을 보내며, 그에게 적의 주의를 끌어 달라 부탁했다.

‘묘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실력은 확실한 친구니, 이번에도 뭔가 계획이 있겠지.’

친하다고는 못해도 동료로서 그럭저럭 신뢰할만한 관계는 되기에, 알렉스의 의도를 이해한 길레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펙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짓되고 공허한 존재여! 이 땅에 네가 있을 자리는 없다!”

영체이기에 신성력을 민감하게 느끼던 스펙터는, 본능적으로 길레인보다 알렉스를 더 위험한 상대라 인지하고 있었다.

한데 알렉스가 바로 다가오기 어려운 거리까지 떨어지자, 경계심을 슬쩍 늦추며 길레인을 향해 적극적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크윽! 예루스시여! 흐아앗!”

갑옷 안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길레인의 몸에 점점 부상이 늘어난다.

길레인이 완숙한 솜씨로 해머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중병기 특유의 느린 속도는 어쩔 수 없기에 손실뿐인 공방을 이어가야 했다.

키헤헤헤!

피의 맛에 취한 스펙터가 좀 더 과감한 공세를 가하던 순간이었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든 무언가가, 스펙터의 몸을 긁고 지나갔다.

기회를 엿보던 알렉스가 홀리 웨폰을 방패에 걸고 냅다 집어던진 것이었다.

몸에서 떨어진 상태에서도 홀리 웨폰은 잠깐이나마 유지가 되기에, 신성력을 머금고 날아간 방패는 놈의 몸에 상처를 입히기에 충분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고통을 느낀 스펙터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가 다급히 공중으로 흩어지려 했으나.

“참회하라!”

풀스윙으로 휘둘러진 길레인의 망치가, 놈의 변화보다 한 박자 빠르게 놈의 몸통에 직격했다.

끄아아악!?

영체의 삼 분의 일가량이 터져 나간 스펙터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뺐지만, 어느새 달려온 알렉스가 녀석의 등 뒤에서 검을 내리꽂았다.

“이제 그만 꺼져라!”

[심판의 일격]

길레인의 해머질로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은 탓인지, 놈을 해치우는 것은 한 방으로 충분했다.

지이익.

마치 종이를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몸체가 반으로 갈라진 스펙터는 외마디 비명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58]

[잔여 스킬 포인트 1]

이미 경험치 바가 상당히 채워져 있던 덕분에, 알렉스는 또다시 레벨 업을 경험할 수 있었다.

“흐어! 힘들었지만 어쨌거나 놈을 해치웠군.”

“방심을 유도한 게 잘 먹혔네요. 길레인 경이 시선을 잘 끌어주신 덕분입니다.”

“부끄러우니 그런 소리 말게. 단장에게 감사해야겠군. 자네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하하…… 아차! 테론 경을 치료해야 합니다!”

알렉스가 부상당한 테론을 떠올리고 다급히 몸을 돌리자, 길레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테론 경은 괜찮네. 그 친구도 나름의 재주를 가지고 있으니.”

“예? 하지만…….”

이사벨이 그를 데리고 물러나긴 했지만, 두 사람 다 치료술과는 인연이 없던 걸로 아는데.

알렉스는 의아해하며 쓰러져 있는 테론과 그를 돌보고 있는 이사벨에게로 다가갔다.

“알렉스 경.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여어. 불꽃남자가 오셨군.”

“……뭡니까 그 호칭은?”

“아까 자네 몸에서 막 불꽃이 일어나고 그랬지 않았나. 이사벨에게 올라타 뜨거운 포옹을 나누기까지 하고. 언제 또 음흉한 속내를 드러낼지, 내가 계속 주시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거참! 치료 때문이라니까!”

길레인이 태연한 이유가 있었다.

흉갑을 벗은 채 누워 있는 테론의 몸에는 스펙터가 남긴 긴 고랑 같은 상처들이 보였는데, 이미 피는 멎은 채였고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상처 부위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신체 수복? 과연, 그쪽의 성법을 익히고 있었군.’

알렉스도 그와 비슷한 스킬을 찍을 수는 있지만, 스킬 트리가 갈리기에 배우지 않은 능력이다.

타인을 치료할 수는 없고 본인의 육체에만 적용되지만, 다른 치료계통보다 더 효율은 높아 주로 솔로잉을 좋아하는 타입의 성기사들이 찍는 스킬이다.

“갑옷에 상의까지 왜 벗고 계십니까?”

“내 성법의 단점이지. 이게 아물다가 피부가 옷에 들러붙기도 해서 말일세. 나중에 딱지 뜯어내듯이 떼다가 또 피를 보거든.”

“흐음. 뭐 멀쩡해 보이니 따로 돕지 않아도 되겠군요.”

“어허, 이거 매정하게 왜 이래.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게 굉장히 가려워서 참기 어렵거든? 빨리 힘 좀 써보라고.”

재생능력으로도 시간이 지나면 완치가 되겠지만, 당연히 치유능력이 더해지면 더욱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알렉스는 길레인과 함께 테론의 상처에 치유를 걸었고, 이내 그는 멀쩡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의복과 흉갑을 다시 착용한 테론은, 이내 길레인의 옆에 서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어쩌실 겁니까?”

“으음. 살짝 애매하군.”

‘응? 뭐가 또 남아 있나?’

무언가를 고민하는 두 사람을 보며 알렉스가 의문을 품고 있자니, 이사벨이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주민들의 처분을 논하는 겁니다.”

“아?”

마녀에 의해 배교를 저지른 사제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용을 당한 마을의 주민들.

자의든 타의든 자신들에게 해를 끼친 것이기에, 원칙적으로 따지면 이들은 모두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알렉스는 침을 꼴깍 삼키고 기절해 있는 사람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현혹에 당해서긴 하지만 어긋난 의식을 치러 악령을 불러낸 죄…… 설마 이들을 전부 죽여야 하는 건가?’

마녀를 보호하고 악마의 제물이 되었던 사제들 때와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그래도 이들에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기에 길레인과 테론도 고민하고 있는 것.

주민들이 멀쩡한 정신으로 이런 짓을 벌였더라면, 어떠한 융통성도 보이지 않고 멸악의 원칙을 준수했을 터다.

만약 선임 팔라딘들이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수백 명의 사람들을 전부 학살하는 일에 가담해야 하는 걸까?

‘으음…….’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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