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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45화 (45/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45화

돌로메스의 참극(2)

가장 뒤편에서 다른 이들보다 천천히 움직였던 알렉스는, 쓰러진 사제들의 몸이 뒤틀리고 갈라지며 변이를 일으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의 살점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것인지, 사제들의 몸이 쪼그라들며 검붉은 색의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솟구쳤다.

“위험해!”

한발 늦은 경고였다.

순식간에 자라난 길쭉한 촉수들이, 길레인과 그 뒤로 따라붙은 두 성기사의 몸을 칭칭 휘감아 들어 올렸다.

“어헉!? 이것은 설마……!”

“이건 또 무슨 사악한 괴물이란 말인가!”

팔다리를 옭아매는 징그러운 촉수의 형상에, 성기사들은 기겁하며 몸부림쳤다.

알렉스가 욕설과 함께 한 마디 단어를 내뱉었다.

“……X발, 악마잖아.”

비록 모니터 너머의 그래픽으로 마주했던 경험들이지만, 지긋지긋하게 상대했던 존재들이라 알아보기가 어렵진 않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땅이 아닌, 마계라는 차원에 서식하는 이형의 괴물.

‘정신지배가 거기까지 진행된 건가. 염병할…….’

마녀의 꼭두각시가 된 사람이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결말은, 스스로의 영혼과 육신을 악마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을 제물로 바친다고 해서, 이계의 존재를 불러들이는데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를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일반적인 인간의 영혼이란, 악마의 힘을 빌려 쓸 수 있게 만드는 흑마법의 재료로 소모되는 정도일 뿐.

하지만 그 제물이 미약하게나마 신의 힘을 몸에 품은 사제들이라면?

성직자의 오염된 영혼은 악마들에게 있어, 가장 가치 있고 진귀한 먹잇감이다.

십여 명의 사제들이 제물이라면, 악마 그 자체를 불러내기에도 충분한 수준.

“현실 촉수물은 사절하고 싶은데.”

농담 섞인 푸념을 내뱉으며, 알렉스는 속박당한 동료들을 돕기 위해 달려 나갔다.

사실 저런 촉수 형태의 악마는 마계에서도 가장 저등한 존재로, 악마라는 이름값에 비해서 그리 강력한 괴물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지성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저급한 것들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악마란 종족은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끔찍한 마물.

아무리 부정한 존재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성기사라 해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은 것들이다.

‘다들 사제들을 별로 경계하지 않았던 탓에 너무 간단히 붙잡혀 버렸어.’

붙들린 성기사들이 제각기 신성력을 끌어올리며 저항하려는 모습이 보였지만, 무력화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전사라 할지라도 몸이 묶이고 땅에서 발이 떨어지기까지 한 채로는, 제힘을 발휘할 수가 없기 마련이기에.

“하아아앗-!”

쩌적. 트두둑.

‘……아. 뭐, 예외도 있긴 하지.’

성법을 최대로 구사한 이사벨이, 몸을 구속한 촉수를 괴력으로 뜯어내며 바닥으로 내려섰다.

“예루스의 은총이 나를 가호하사, 그 어떤 사특한 힘도 나를 억압하지 못할지니!”

근력이 왕창 세지는 걸 신의 가호라고 부르기는 조금 멋쩍긴 하지만, 어쨌거나 위기에서 벗어난 이사벨은 눈에 불을 켜고 폴액스를 휘둘러 주변의 촉수들을 끊어냈다.

그러나 악마는 아무리 급이 낮은 것들이라 해도, 지상의 몬스터들보다 끈질기고 지독한 존재.

이사벨이 날뛰며 베어내는 속도와 비슷하게, 남아 있던 촉수들이 몸을 분열하며 점점 수를 늘려갔다.

게다가 잘려 나간 촉수들조차 그냥 죽지는 않겠다는 듯, 지독한 악취와 함께 수상해 보이는 검은 연기를 뿜으며 말라비틀어진다.

“이사벨 경! 물러나십시오!”

“읏!”

알렉스의 외침에 이사벨이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렇지만 물러나는 와중에 사방으로 퍼지는 연기를 조금 들이마셨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악마란 것들은 열에 아홉 정도는, 살아 있는 존재에게 해를 끼치는 독성 물질을 몸에 품고 있다.

죽어가는 촉수들이 내뿜은 연기에도 역시나 해로운 독성분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호호홋! 고작 너희들 따위가 악마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니? 내가 이 녀석을 사역하느라 사제 놈들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촉수들의 뒤에서 마녀가 깔깔대는 웃음을 흘리며 우쭐거린다.

바쳐진 제물을 빨아먹고 소환된 악마는, 스스로의 힘이 다하거나 계약자가 온전히 의지를 발하는 동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약의 주체인 마녀를 죽여야 하는데…….’

계약자가 없어진다고 악마가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발휘하는 힘에 상당한 제약이 걸리게 된다.

약화된 상태의 저급 악마라면 지금의 전력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터.

문제는 우글거리는 촉수들을 뚫고 어떻게 마녀에게 타격을 주느냐는 것인데.

‘……마침 또 그게 가능한 스킬이 있긴 하지.’

뒷걸음치는 이사벨의 앞을 막아서며, 알렉스는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디바인 크로스]

가진 능력을 전부 드러내고 싶진 않아 교구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한 수인데, 상황이 이러하니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렉스의 몸속의 신성력이 맹렬하게 요동치더니, 이윽고 거대한 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수십 수백 개로 분열하며 사방으로 뻗어가던 촉수들이, 소리 없는 폭발에 휘말리며 갈기갈기 찢긴다.

“꺄아아아악-!?”

그리고 스킬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던 마녀 역시,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쿵.

“으으윽.”

“푸, 풀려난 건가?”

구속에서 벗어나 땅으로 떨어진 테론과 길레인이, 허우적거리며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다른 성기사들에게 피해를 입히진 않는군. 약간 걱정하긴 했었는데.’

신성한 폭탄이라 할 수 있는 디바인 크로스의 위력이 만약 아군까지 해를 끼치는 종류였다면,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 되었을 터다.

“아, 알렉스 경. 방금 그건…….”

“나중에, 지금은 전투에 집중합시다.”

경악한 얼굴로 더듬거리며 입을 떼는 이사벨을 뒤로하고, 알렉스는 바닥을 기며 일어서는 마녀를 향해 돌진했다.

절반 이상의 촉수가 조각나며 흩어지긴 했으나, 아직 살아 있는 것들이 꿈틀거리며 한곳으로 뭉치려 하고 있다.

아무리 위력이 뛰어난 스킬이라 해도, 역시 지금의 레벨로는 한방에 악마를 소멸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니 빨리 마녀를 처치해 놈의 힘이 약해지도록 만들어야 했다.

“흐으으! 이, 이게 무슨! 이만한 성법을 다루는 인물을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상급 마녀라 해도 디바인 크로스의 폭발에 휩쓸린 것은 치명적이었는지,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어 더 이상 첫인상과 같은 요염한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피부 위로 기포가 생기고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외형.

누구라도 절로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처참한 모습이다.

한달음에 마녀의 앞으로 달려간 알렉스는, 홀리 웨폰을 건 검을 뽑아 마녀의 목을 내리쳤다.

“이 내가, 이딴 곳에서…….”

잘려 나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억울하다는 듯이 부릅뜬 눈을 보며 알렉스는 코웃음을 쳤다.

“네까짓 게 뭐 대단하다고 그러시나?”

그때.

바닥에 떨어진 마녀의 머리가 휙 움직이며, 알렉스를 향해서 커다랗게 입을 벌렸다.

목이 베이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 힘을 쥐어짜 낸 마녀가, 어떠한 흑마법을 발동한 것이었다.

흠칫하며 놀란 알렉스가 무언가 공격이 날아오는가 싶어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으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신 알렉스는 마녀의 벌어진 입안에서, 한없이 깊은 심연이 꿈틀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 심연 속에서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린 순간.

마녀의 입이 움직이며 잘린 머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음의 그림자가…… 너를 쫓을…….”

부정확한 발음으로 하나의 문장을 내뱉고, 마녀의 머리는 발에 채인 연탄재처럼 파스슥 부서지며 바람에 흩어졌다.

‘……씁. 깜짝 놀랐네. 방금 그건 뭐였지?’

찝찝한 감정에 휩싸인 알렉스는 마녀의 잔해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일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자신을 바라본 것 같았는데.

마녀가 흘린 마지막 말도 그렇고, 어째 앞으로 영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56]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마치 괜한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이 레벨 업 알림이 떠올랐다.

포인트의 사용은 잠시 미뤄두고, 알렉스는 몸을 돌려 악마와 싸우는 동료들을 살펴보았다.

마녀가 죽자 확실히 커다란 제약을 짊어지게 되었는지, 남아 있던 촉수들은 시들어버린 콩나물마냥 늘어져 힘없이 꿈틀거리고 있다.

“파고들 틈이 없는 나의 믿음을 뚫지 못하고 결국 힘이 다한 모양이로군!”

“사라져라! 사악한 존재여!”

그런 촉수들을 열심히 자르고 터뜨리는 두 성기사 남정네들을 보며, 알렉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믿음이 뭐가 어째?

나 아니었으면 다 죽을 뻔했다, 이 아저씨들아.

촉수에서 벗어나지 못해 얼굴까지 칭칭 감겨 있던 두 성기사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스킬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사벨은, 으음.’

기운을 차려 날뛰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알렉스는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이사벨과 눈을 마주쳤다.

‘……역시 디바인 크로스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으려나.’

글라즈번에 머무는 동안, 지겹기만 한 공부 외에도 따로 조사해본 지식들이 있다.

다른 팔라딘이나 프리스트들의 성법이, 어떤 종류가 있고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췄느냐에 대한 정보.

주변의 성직자들이 하는 말을 기준으로 쌓은 데이터라 100퍼센트 정확한 것은 아니긴 하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관구 단위로 따져도 디바인 크로스처럼 강력한 성법을 구사하는 인물은 매우 드물다는 점.

어쩌면 교단 전체로 따져도 몇십 명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역시 다른 성직자들은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게이머의 스킬처럼 강력한 성법을 갖추기는 어렵단 거겠지.’

그런 고위 성직자급 능력을 아직 성기사 후보생에 머물고 있는 자신이 펼쳐 보였으니, 두 눈으로 목격한 이사벨이 느끼는 감정도 꽤나 복잡할 것이다.

알렉스는 슬쩍 그녀의 눈길을 피하며, 아직 남아 있는 촉수들을 향해 달려갔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곳곳에 늘어져 있는 경험치들부터 주워 담고 나서 생각하기로 한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57]

[잔여 스킬 포인트 2]

힘없이 꼬물거리는 마지막 하나의 촉수까지 짓밟은 후에야, 악마가 사멸하며 또 한 번의 레벨 업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거의 2업에 가까울 정도로 오르긴 했지만... 소환수로 판정돼서 그런 건가? 악마를 잡은 것치곤 경험치가 많이 오르진 않네. 하긴, 고레벨 사냥터처럼 마계화한 지역도 아니었…… 으윽! 아니야, 상상하지 말자.’

게임 속에서 만렙을 찍기 위해 돌아다녔던 아비규환의 지옥들을 떠올린 알렉스는, 스스로의 뺨을 후려치며 생각하기를 멈췄다.

괜히 말이 씨가 되어 현실로 다가오게 될까 봐 두렵다.

“전부 해치운 건가? 하아…….”

“말로만 전해 듣던 악마를 마주하게 되다니. 후우, 신이시여…….”

전투를 끝낸 성기사들이 더럽혀진 신전의 터를 둘러보며 탄식하는 동안.

알렉스는 굳은 채로 서 있는 이사벨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사벨 경?”

“아…….”

얼굴에 핏기가 가신 이사벨의 멍한 얼굴이 알렉스에게 향한다.

그렇게까지 충격이 컸나?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사벨이 갑자기 그의 가슴팍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깡.

“윽?”

뭐지. 격한 포옹? 아니면 설마 공격당한 건가?

당황한 알렉스가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니, 이내 이사벨의 몸이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어엇!? 무슨 일인가!”

“이사벨!?”

깜짝 놀란 길레인과 테론이 달려오는 동안.

알렉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이사벨의 상태를 살폈다.

안색이 파리해진 이사벨의 얼굴에 작은 반점 같은 것들이 울긋불긋하게 올라온다.

‘이런, 그 독연기! 바로 물러나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중독.

악마가 뿜어낸 독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력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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