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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42화 (42/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42화

입단 테스트(2)

두 번째 상대인 테론은 투핸디드소드를 다루는 팔라딘이었다.

‘확실히 이사벨도 그렇고, 다른 성기사도 다들 양손무기를 선호하긴 하네.’

그러고 보니까 이사벨 하니 생각났는데, 앞에서 싸운 길레인은 이사벨처럼 특별한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었다.

연결부의 빈틈조차 거의 없는 이사벨의 성유물 갑옷과 같은 물건이었다면, 쉽게 약점을 공략하지도 못했을 텐데.

길레인도 그렇고 이제 상대할 테론 역시, 자신처럼 일반적인 판금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식 팔라딘이 되면 다 주는 게 아닌 건가? ……그건 조금 실망인데.’

솔직히 너무 편해 보이는 장비라 가지고 싶었다.

이사벨처럼 어린 나이에 서임식을 치를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아야 하는 걸까?

특별한 능력이 부여된 물품이란 건 사소한 것 하나도 상당히 귀한 모양이니, 서임만 받는다고 다 주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도 가능하겠지. 남들이 보기엔 아마 나 역시 나이에 맞지 않는 대단한 능력자로 보일 테니.’

너무 튈 것 같아 모든 스킬을 다 드러내진 않을 생각이지만, 투자 가치가 확실하다는 인상은 심어줘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약간 살기마저 느껴지는 테론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하…… 퍼포먼스를 제법 할 줄 아는 친구로군. 그래도 조금 많이 오버한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검을 뽑지그래?”

“필요해지면 뽑도록 할 테니 노력해 보십시오.”

“흐, 흐흐…… 이거 이사벨에게 미안해지게 생겼네.”

핏줄이 눈에 보일 정도로 얼굴에 힘이 들어간 테론이, 콧김을 푹푹 뿜어대며 투구의 바이저를 내렸다.

이윽고 두 사람이 준비가 되었음을 확인한 프리츠가 대련 시작을 선언했다.

“나의 주 예루스시여. 오늘 한 놈 더 보냅니다아악!”

이를 갈며 외친 테론이 빠른 속도로 알렉스를 향해 돌진했다.

스아악.

칼이라기보단 둔기에 가까운 커다란 양손검이, 알렉스의 쇄골 안쪽을 노리고 대각선으로 휘둘러졌다.

꽈앙!

능숙한 방패술로 공격을 막아낸 알렉스가,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살짝 놀라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릿저릿하네.’

앞서 상대한 길레인보다 나이는 더 젊지만, 힘과 속도는 오히려 그 이상이다.

게다가 많이 단순했던 길레인의 공격과 달리, 체계가 제대로 정립된 고급 검술을 익힌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뭔가 발놀림 하나하나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네. 어디 전통 있는 기사 가문 출신인가?’

한 번 맞부딪쳤을 뿐이지만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꼬리를 말아야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7레벨 실드 마스터리와 맥스 레벨 방어본능이 더해진 알렉스의 가드 능력은, 검술의 마스터가 아닌 이상 쉽게 뚫리지 않을 정도였다.

까앙! 콰그극!

거검과 방패과 충돌하며 금속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절묘하게 각도를 조절하며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내던 알렉스는, 어느 정도 상대의 검술에 익숙해지는 듯하자 천천히 공세에 나섰다.

캉. 키긱.

불꽃 튀기는 강력한 공방이 지속되는 순간 사이로, 맥없는 금속음이 간혹 발생했다.

검과 방패가 부딪치며 간혹 거리가 매우 가까워질 때마다, 알렉스의 주먹이 그의 몸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한 것.

“이 자식이……!”

어차피 갑옷 안으로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고 괜히 다음 방어의 타이밍을 놓칠 수 있기에, 알렉스로서도 꽤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대신 상대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테론의 동작이 점점 거칠어졌다.

‘빈틈!’

과하게 힘이 들어간 공격을 흘려보내며, 알렉스는 방어 일변도의 자세를 버리고 상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팔을 크게 휘둘러 막 방패 끝으로 상대의 머리를 후려치려던 순간.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테론의 자세가 급변했다.

“어딜!”

“윽!?”

양손으로 쥐고 있던 거검이 어느 순간 반으로 갈라졌다.

왼손으로 쥔 검이 다가오는 방패를 쳐내고, 거의 동시에 오른손의 검이 공격으로 전환하며 드러나게 된 알렉스의 빈틈을 노리며 찔러 들어왔다.

카가강!

‘이런 씁! 쌍수검이라고? 성유물의 옵션인가?’

예상치 못한 반격에 꼼짝없이 당할 뻔했으나.

다행히 방어본능이 발동하며, 물리법칙을 무시한 듯한 움직임으로 방패가 되돌아와 공격을 막아냈다.

전력으로 팔을 휘두르던 와중에 무리하게 자세를 바꾼 탓에, 근육과 관절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래도 갑옷의 틈 사이로 칼침 한방을 찔리는 것보다야 낫다.

설마 이런 한 수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허, 그걸 또 막네.”

완벽한 카운터라고 생각했던 테론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뭐 좋아. 바로 끝나면 재미가 없지.”

쌍검이 춤을 추며 날아온다.

사실 두 손에 검을 드는 것은 오히려 한손검보다 실전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아무래도 쉬이 접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기에 능숙하게 대응하기 힘들다는 장점은 확실하다.

칼이 두 개라고 공격 횟수가 두 배라는 건 게임에서나 통용되는 환상이지만, 좌우 양쪽에서 몰아치는 화려한 공격은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고 반응이 무뎌지게 만들 수는 있다.

다시 방어로 돌아선 알렉스의 방패 위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연속 검격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핫! 이제 슬슬, 흐읍! 다른 모습을, 차앗! 보여줘야 할 텐데?”

“뭐, 그럽시다.”

[실드 차지]

호흡을 조절하며 입을 놀리는 테론을 향해, 수비에 열중하던 알렉스의 몸이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훗! 어림없다!”

멧돼지처럼 부딪혀오는 알렉스의 돌진에, 테론이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경로에서 벗어나려던 순간.

‘신나게 두들겼으니 내 것도 한 대 맞아보시지.’

[격노의 응징]

최대로 쌓아둔 누적피해 수치가 소모되며, 알렉스의 움직임이 한 차례 더 가속했다.

부아악!

앞을 가드하고 있던 방패를 검 대신 휘두른다.

투박한 일격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힘과 속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안색이 확 변한 테론이 다급히 땅을 박찼으나, 공격의 범위에서 완벽하게 몸을 빼지는 못했다.

물러서는 테론의 갑옷 옆구리를 방패 끝이 살짝 긁고 지나갔을 뿐이지만, 균형을 잃은 그는 크게 휘청거리느라 곧장 자세를 바로 하지 못했다.

이어서 그를 따라잡은 알렉스가 자세를 낮추며 다시 한번 방패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스치는 정도가 아니라 정확히 무릎 옆을 때린 탓에, 테론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거, 칼 같은 거 함부로 쪼개고 그러면, 뒤끝이 안 좋은 법입니다.’

알렉스는 마음속으로 소수의 몇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충고를 하며, 방패를 높이 들어 올렸다.

꽈직.

모서리 끝으로 상대의 목을 내리쳤다.

‘쌍검충 컷.’

보호대가 있기에 깊게 파고들어 상처를 내지는 못했지만, 대련 종료를 선언하기엔 충분한 동작이었다.

“그만. 승부는 난 것 같군.”

2연승.

알렉스는 손을 뻗어 쓰러져있던 테론을 일으켜 세워줬다.

“크으…… 대단하군.”

“테론 경도. 아까 반격을 당할 때는 순간 아찔했습니다.”

“뭐 그거야 성유물 덕분이니까 내세우긴 조금 그렇지. 아무튼, 실력은 인정하마. 하지만…… 넘봐도 되는 것은 팔라딘의 자격뿐, 다른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뭐라는 건지.

애초에 서임 때문에 온 거지 다른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닌데.

패배의 충격이 컸는지 횡설수설하는 테론을 내보내고, 알렉스는 열기가 조금 가라앉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솔직히 매번 위험한 적들만 상대하다가 안전한 상황에서 이렇게 실력을 겨루자니, 흥에 겨워서 약간 나댄 게 아닌가 싶기는 하다.

“제법 잘하는데.”

“저 나이에 저 정도 실력이면…… 오히려 이사벨보다 뛰어난 게 아닌가?”

“에이 그건…… 으음, 잘 모르겠네.”

다행히도 알렉스가 보여준 전투가 제법 인상 깊었는지, 성기사들은 대부분 감탄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발 때문에 발끈하던 기세도 꽤 가라앉아, ‘건방지지만 그럴 만한 실력은 있는 놈’이라 평가되는 분위기다.

“상당한 실력이군. 굳이 더 시험할 필요도 없겠어. 대련은 여기서 중단하도록 하겠다.”

관중들 사이에서 어깨를 돌리며 앞으로 나오려던 마지막 상대가, 단장 프리츠의 말에 멈칫했다.

“아니, 단장!? 그런 게 어딨습니까!”

“불만 있나? 그럼 자네가 단장 하던가.”

딱딱한 얼굴로 내뱉는 프리츠의 말에, 준비를 하던 성기사는 침울한 얼굴이 되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에이.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는데.”

“우리 쪽이 당하기만 했는데 재미는 무슨.”

“아무튼, 저만한 실력이면 특별한 결격사유가 있지 않는 이상 입단은 확정적이군.”

“큭…… 음흉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앞으로 내가 지켜보겠어.”

웅성거리는 성기사들을 뒤로 하고, 알렉스는 따라오라는 듯 눈짓을 보내는 프리츠의 뒤를 쫓았다.

잠시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프리츠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잘하더군.”

“아, 감사합니다.”

잘할 수밖에 없긴 했다.

첫 상대인 길레인은 딱 평기사 정도였고, 두 번째 테론 정도가 그럭저럭 상급기사에 비벼볼 만한 실력이었다.

레벨로 따졌을 때 이미 상급기사 수준에 들어선 알렉스에게는, 그리 난적이라 할 수 없는 상대들.

“검보다 오히려 방패를 더 잘 다루는 것 같던데. 꽤 특이한 케이스라 신기했다네.”

“음. 위험한 일에 자주 휘말려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팔라딘은 누구보다도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지. 승산이 보이지 않는 뻔한 싸움임을 알면서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과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우리 신벌대행자들의 운명일세.”

높낮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잔잔한 어조로, 프리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외부인사에 대한 심사는 교단에서 키워낸 기존 후보생들보다, 더욱 어려운 조건을 들이밀 수밖에 없지. 세 번의 연속대련은 자네의 집중력과 끈기를 확인하고자 함이었는데, 너무 뛰어난 실력을 보여줘서 그럴 필요가 없어져 버렸군.”

“하하…… 자꾸 칭찬을 받으니 부끄럽네요.”

“저 아이가 대단한 인재라고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댄 이유는 잘 알겠네.”

“……아?”

슬쩍 뒤쪽으로 시선을 보내자, 이쪽의 눈치를 살피며 거리를 두고 졸졸 따라오는 이사벨의 모습이 보였다.

“알렉스 경.”

“네.”

프리츠의 부름에 알렉스는 다시 눈길을 돌렸다.

발걸음을 멈춘 프리츠가 알렉스와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실력은 충분하니 마음가짐만 확고히 해주면 좋겠군. 자네는 교단의 규율에 반하는 모든 존재와 맞서,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관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글쎄. 나는 다른 것들보단 내 목숨이 가장 중요한데.

신을 팔아서라도 내가 살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안 될까?

알렉스는 마음속의 울림을 속으로만 남겨두고, 적당히 진지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교단을 배경으로 두고자 했으면 이런 장단은 맞춰줘야 하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자네의 팔라딘 임명에 대해서는 상부에 강력하게 건의하도록 하겠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머지않아 허가가 내려올 걸세.”

“아! 감사합니다.”

“물론 허가를 받았다고 바로 서임식을 치를 수 있는 건 아니네. 교단의 행사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을 테니, 최소한의 교육기간은 거쳐야 하겠지.”

프리츠는 손짓으로 저 뒤에서 기웃거리는 이사벨을 불러들였다.

반색하며 달려오는 이사벨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프리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벨을 붙여줄 테니 당분간 이곳에 지내며 이것저것 배워두도록 하게. 다른 팔라딘들도 나름대로 괜찮은 친구들이니, 어려워하지 말고 두루두루 친분을 다져두게나.”

대부분 저를 별로 안 좋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알렉스는 굳이 머릿속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아직은 임시이긴 하지만, 알렉스는 명확한 소속과 거처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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