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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41화 (41/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41화

입단 테스트

웅성웅성.

글라즈번 교구 본당 뒤편.

성기사단이 사용하는 연무장에 사람들이 모여, 복작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냈다.

어느 때이건 사건사고가 아예 없을 리가 있겠느냐마는, 농한기에 들어선 겨울은 사람은 물론이고 몬스터조차 거동을 자제하는 계절이기에, 성기사들에게도 외부 활동이 극도로 줄어드는 휴식의 시기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알렉스의 대련 심사에는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수의 팔라딘이 참관하고 있었다.

임무를 위해 바깥을 나돌던 단원들 대부분이 교구로 돌아와 있던 차이고, 외부 인사의 입단 테스트라는 수십 년에 한 번쯤 있을까 말까 한 특별한 케이스였기에.

“이거 어디서 전쟁이라도 난 줄 알겠군.”

“우리 교구의 팔라딘이 이렇게 많았던가?”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작자들이 다 몰려나온 거지.”

몇몇 사람들은 대규모 행사에서도 보기 드문 광경에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딱 죽지 않을 정도로 숨만 붙여 놔!”

“누가 예배당에 가서 치유 쪽에 특화된 사제 분들 좀 데려오지그래?”

“괜찮다. 대련 중에 죽으면 그것도 다 예루스 님의 인도이니.”

대다수의 인원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연무장 한가운데를 응시하고 있었다.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알렉스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전신 스트레칭을 했다.

‘엄청 주목을 받네. 어그로는 제대로 끌었구만.’

도발적인 언행으로 인해 눈도장을 단단히 찍을 기회가 생겼다.

성이라는 글자 하나가 더 붙었을 뿐이지, 성기사들은 여타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무(武)로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자들.

조금 단순한 생각이긴 해도 실력이 확실하다는 인상을 새겨주기만 있다면, 분위기를 반전시켜 이들과의 공동체에 쉽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팔라딘 자체가 쉽게 충원되지 않는 인력이니, 실력파라는 이미지를 한번 잡아두면 두고두고 딴말이 나올 일 없겠지.’

방패의 가죽끈을 단단히 조이고 준비를 마치자, 상대역으로 선정된 팔라딘 한 명이 알렉스의 앞으로 나와 마주 섰다.

“후후. 매번 선택지를 고르면 꽝만 걸리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운이 좋군.”

웃으며 걸어 나오는 마흔 살쯤은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

아무하고나 붙어도 상관없다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한참 시끄럽게 설전을 벌이다가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을 했다는 모양이다.

“글쎄요. 운이 나쁜 편이 맞지 않을까 싶은데.”

“하! 이봐 젊은 친구. 패기 넘치는 모습도 좋지만, 처신 잘하는 게 좋을 거야. 질질 짜도 봐줄 생각이 없거든.”

“훗,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길레인 보이노프다.”

“알렉스. 성은 없습니다.”

서로 적당히 입을 털던 두 사람은, 이내 단장의 신호에 자세를 잡고 섰다.

“상황을 봐서 승부가 거의 정해졌다 싶으면 바로 중단하겠다.”

“우우!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갈 때까지 간 다음에, 교구장님을 모셔 와서 살려내라고 합시다!”

“시끄럽다. 그럼 대련을 시작하겠다.”

단장 프리츠의 선언에,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이 서로의 무기를 겨누며 매서운 분위기를 풍겼다.

알렉스는 길레인이 든 대형 망치를 보며, 그것이 휘둘러졌을 때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나 될지 머릿속으로 가늠해보았다.

‘워해머? 저건 전투용이라기보단 시설파괴용 장비 같은데…….’

저만한 크기와 무게라면 체력소모가 너무 커 비효율적인 무기라 생각되는데, 의외로 성기사들 중에는 그와 비슷한 양손 둔기를 사용하는 자들이 많았다.

분명 게임에서는 성기사의 장비라 하면 칼이나 둔기, 창 등으로 다양하긴 해도, 전부 한손용 무기를 사용하는 게 고정적이었다.

‘성기사=방패’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기보다 방패 쪽이 더 활용 스킬이 많은 주력 장비였기 때문.

‘하지만 여긴 방패를 사용하는 기사는 거의 보이지가 않네.’

이곳에서는 일반 병사 혹은 용병들이나 방패를 목숨 줄처럼 여기지, 기사 계급부터는 사실상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방패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방패를 들기보다는 그냥 판금갑옷의 방어력을 믿고, 리치가 긴 장병기나 한 방의 위력이 강력한 중병기를 선택하는 편이었다.

물론, 가장 많이 쓰이는 무기로는 검이 대세이긴 했다.

무게중심이 자루 쪽에 있어 타격점의 변화를 일으키기 수월하고, 공격속도가 빠르며 적은 힘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무기.

상황에 따라 창이나 둔기 등의 무장을 바꿔가며 사용하긴 하지만, 다른 무기들보다 검이 더 수준 높은 무기라는 평이 기사 계층에서는 지배적이었다.

재미있게도 오히려 그렇다 보니, 성기사들 중에는 무거운 둔기를 사용하는 자들이 가장 많았다.

전투 기술뿐 아니라 성법도 연마하고 꾸준히 교리공부까지 신경 써야 하니, 위력은 준수하면서 상대적으로 다루기 단순하고 숙달이 쉬운 무기를 선호하는 것이다.

‘게임과 현실이 같을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성기사끼리의 PvP하고는 상황이 너무 다르겠군.’

“어이! 신중한 건가, 아니면 겁을 먹고 얼어붙은 건가?”

상대를 살피며 어떤 식의 싸움이 이루어질지 예상해 보고 있자니, 길레인이 대치 상태를 깨고 선공을 시도했다.

과할 정도로 헤드가 커 보이는 대형 망치를 든 길레인은, 쿵쿵거리는 묵직한 발걸음과 함께 달려와 알렉스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공격을 피해내고 바로 드러난 허점을 공략한다…… 라고 하면 말은 쉽겠지만, 상대도 자신의 약점을 모를 리가 없기에 빈틈이 전부 드러날 정도의 풀 스윙을 하진 않았다.

검으로 갑옷 위를 때려봐야 의미 없는 공격이 될 터.

투구 사이의 틈이나 겨드랑이 혹은 사타구니의 연결부를 찔러야 하는데, 길레인은 허점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빠르게 자세를 수습해 쉬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다루는 무기가 그렇기에 싸우는 방식도 단순하지만, 그런 만큼 자신만의 완성도를 가진 전투를 하는 자였다.

“이봐, 그런 식으로는 테스트를 길게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들고 있는 장비들은 그냥 장식인가?”

적당히 회피를 반복하며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고 있자니, 자신을 향한 조롱의 말이 들려왔다.

알렉스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응수했다.

“동료 될 사람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본 것뿐입니다.”

“호오? 도망만 치면서 말은 잘하는군. 그래, 겪어보니까 어떤가?”

“이 정도가 평균이라면, 조금 실망할 것 같군요.”

다시 한번 기름을 끼얹는 발언에, 관전 중이던 성기사들의 열기가 한층 거세졌다.

“길레인! 빨리 저 건방진 자식을 납작하게 만들어 주라고!”

“아, 망치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자기 엄마도 못 알아보고 도망갈 정도로 얼굴을 뭉개놓으란 말이다!”

아니, 성기사가 패드립을?

길길이 날뛰는 관중들의 분위기에, 알렉스는 탄식을 흘리며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파악은 끝났다. 더 물러날 필요는 없겠군.’

길레인의 전투 방식은 기사로서는 충분히 훌륭하고 위력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스킬이라는 사기적인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알렉스에겐,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상대였다.

육중한 한 방?

아무리 무거워도 바움의 돌진을 정면에서 받아내거나, 시체골렘의 발길질을 버텨내는 것만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쾅!

해머가 방패와 충돌하며 묵직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렇지!”

“날려 버리, 어엇!?”

지켜보던 성기사들의 눈이 똥그랗게 커진다.

[굳건한 태세]

2레벨로 올리면서 한층 더 단단해진 방어력.

거기에 7레벨의 실드 마스터리까지 더해졌기에, 충격의 대부분을 흘려보내며 딱히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

마스터리 계열 스킬이 7레벨이면, 이제는 중급을 넘어 고급 단계에 접어드는 수준.

밥 먹고 무기만 휘두르는 기사들이 보편적으로 7레벨 수준의 무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방패술로 7레벨이라면 더는 알렉스보다 가드 테크닉이 뛰어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공격 타입의 성기사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역시 전통적인 게임 속 성기사라고 하면 아무리 때려도 쓰러지지 않는 징그러운 방어 타입이지.’

자신 같은 스타일의 성기사가 대결하기 버거운 상대는, 한 방이 묵직한 것보다는 날카롭고 빠르게 기술적인 공격을 하는 적이다.

길레인과의 싸움은 애초에 상성부터가 유리했다.

공격 한번 한번이 상당한 체력을 소모하는 중병기의 특성과 누구보다 방어에 자신이 있는 알렉스라는 상대가 결합되자, 길레인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지옥을 맛보았다.

카앙! 쿵!

“으윽! 이, 이 자식. 온몸이 쇳덩이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건가!?”

막는 사람은 아직 멀쩡한데, 때리는 사람이 더 괴롭고 지친다.

질린 얼굴로 해머를 휘두르는 길레인의 공격을 견뎌내며, 알렉스는 밀려나기는커녕 그를 압박하듯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발, 또 한 발.

육중한 중병기를 휘두르는 길레인 쪽이, 오히려 막기만 하고 있는 알렉스에게 밀려나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봐, 저거 혹시…….”

“그래. 성법인 것 같다.”

“저런 식으로 방패에 응용하는 성법은 거의 본적이 없는데…….”

순수하게 신앙 계통의 스킬과 달리 방패술이라고 스킬 트리를 구분해서 칭하긴 하지만, 클래스가 성기사인 알렉스의 스킬들은 전부 신성력의 소모를 필요로 한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신성력을 다루는 성기사들이기에.

전투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상식을 무시하는 듯한 알렉스의 방어능력이, 신성력을 사용함으로 생겨나는 것임을 파악했다.

“신기한 놈일세. 큰소리칠 수준은 되는 것 같군.”

“그냥 이사벨에게 빌붙으러 온 허풍선이는 아니란 말이지?”

“어이어이, 갑자기 인정하는 분위기 뭐냐고! 의외로 괜찮은 동료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선배로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혼쭐을 내줘야 할 것 아니야!”

“그, 그렇지. 길레인! 좀 더 제대로 해보란 말이다!”

성기사들이 감탄 반 낭패 반의 감정을 느끼며 길레인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미 승패는 기울어진 듯했다.

제대로 먹히지 않는 자신의 공격에 조바심을 느낀 길레인은, 점점 과하게 힘을 주며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결국 안정적인 스텐스를 버리자 빈틈이 발생하게 되었고, 방어를 견고히 하고 있던 알렉스는 눈앞에서 발생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실드 차지]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진 방패돌진에 부딪히며, 공격 직후의 자세를 관리하려던 길레인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어 살짝 벌어진 겨드랑이의 틈으로, 알렉스의 찌르기가 파고들었다.

“크윽!?”

심한 부상까지는 아니지만 보호대 사이를 꿰뚫은 공격에,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며 길레인의 망치가 아래로 향했다.

양손으로 다뤄야 하는 중병기이니, 한쪽 팔에 상처를 입고서는 이전과 같은 위력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몇 차례의 합이 이어진 뒤.

결국, 누가 봐도 알렉스에게 상황이 우세해 보였기에, 프리츠가 나서서 대결의 종료를 알렸다.

“제길…….”

“반박은 받지 않겠다.”

“압니다. 제가 완전히 졌습니다.”

첫 대결이 너무 압도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기에, 지켜보던 관중들의 소란이 상당히 커졌다.

“실컷 두들겨 주고 치료한 다음에 다음 대결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다음 상대가 누구였지?”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를 뚫고,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남은 인상이기에, 기억을 되살리느라 알렉스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제법 하는 친구로군. 테론 글로바인이라고 하네. 잘 부탁하지.”

“아아.”

누군가 했더니 이사벨과 함께 오면서 가장 먼저 마주쳤던 그 성기사였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와 함께, 알렉스는 손에 쥔 검을 검집에 꽂았다.

“음? 뭐 격식이라도 따지자는 건가? 우리끼리 있는 자리에선 대충 생략해도 괜찮은데.”

“아뇨. 그게 아니고.”

알렉스는 씩 웃어 보이며 대꾸했다.

“한 명 상대해 보니까, 칼 없어도 할 만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방에서 욕설이 섞인 듯한 소리들이 튀어나오며, 격정적인 하모니를 이루었다.

상당히 효과적인 도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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