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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40화 (40/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40화

글라즈번 교구(3)

“이름.”

“알렉스입니다.”

“나이.”

“열여덟…… 아, 이제 열아홉이군요.”

“쯧! 한창 욕망에 지배당해 한 점의 이성도 찾아보기 어려울 나이로군.”

웅성거리는 소음이 커져갔다.

좁은 방.

아니. 중요한 안건을 논의하는 회의실로 이용되기에 충분히 넓지만, 빼곡히 들어찬 사내들로 인해 강제로 좁아져 버린 방 안에서.

알렉스는 근육질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취조 같은 분위기의 질문세례를 받아야 했다.

“저 순진한 아이를 바깥에 내보내면서, 분명 음흉한 놈팡이 하나쯤은 빌붙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을 하긴 했었지.”

“이래서 얼굴이 좀 반반한 것들은…… 엇? 얼굴은 아니군. 그럼 말발로 꼬드긴 건가?”

“무슨 목적으로 이사벨을 따라온 거지? 신분 상승? 서, 설마 몸을 노리고……!”

“으아악! 저놈을 당장 매달아!”

“화형이다!”

“저기요? 뭔가 오해들을 하신 것 같은데-”

눈을 까뒤집고 길길이 날뛰는 남자들을 보며 알렉스는 진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여기가 팔라딘들의 집회장……? 무슨 조폭 사무실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성기사다운 경건함과 품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어째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는 가운데.

쾅!

회의실의 문을 박차고 화난 얼굴의 이사벨이 뛰어 들어왔다.

“남자들만의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니…… 대체 뭣들 하시는 겁니까! 알렉스 경에게 무례하게 굴지 마십시오!”

“이사벨? 으음, 우리는 그냥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알렉스 경은 저희 교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만한 빛나는 재능을 지닌 분입니다! 중히 쓰여야 할 인재를 모셔왔는데, 어째서 이런 식의 억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겁니까?”

“미래를 이끌…… 두 사람의 미래……?”

“뭐지? 혼약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인가?”

“아아악! 나는 이 결혼 반댈세!”

광란에 빠진 사내들을 뒤로하며, 이사벨은 알렉스의 팔을 붙잡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죄송합니다, 알렉스 경. 잠시 못 본 사이에 선배님들이 조금 이상해진 것 같습니다. 대체 왜들 저러는지…….”

“음…… 외부인을 그리 반기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런! 아무리 선배들이라 해도 꽉 막힌 사고방식으로 알렉스 경을 배척하려 한다면, 제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씩씩거리는 이사벨을 마주하며, 뭐라 말하기가 애매해진 알렉스는 그냥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사실 대충 이해는 갔다.

같은 팔라딘 동료라고는 해도 저들 중 가장 젊은 사람도 30대는 되어 보이니, 아마 다들 이사벨을 어린 동생이나 조카처럼 여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따지면 나를 죄악의 결정체처럼 여길 만한 포지션이긴 한데…….’

어깨를 으쓱이는 알렉스를 이끌고, 이사벨은 소란스러운 회의장을 뒤로하며 어딘가로 향했다.

“선배님들하고는 다음에 다시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알렉스 경. 일단 저희 교구의 성기사단을 이끄는 단장님을 뵈러 가시지요.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이시기도 한 분입니다.”

이사벨의 말에 알렉스는 입가에 머금고 있던 웃음기를 지우고 살짝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직의 수장을 만나는 자리라고 하니,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방금까지 동료가 될지 모를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을 보고 온 탓에, 성기사단장이란 인물은 과연 자신을 보고 어떤 태도를 보일지 걱정스러웠다.

복도를 따라 잠시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은, 고풍스러운 조각으로 장식된 어느 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딱딱.

“들어오시게.”

이사벨이 짧게 노크하자 안으로부터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 안에서, 알렉스는 피로에 찌든 듯 파리한 안색의 중년 사내를 만나볼 수 있었다.

‘푸근하고 인자하다며...? 되게 딱딱하고 깐깐할 것 같은 인상인데.’

“단장님. 순례를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이사벨. 뭔가 엄청난 일에 휘말렸던 모양이더군. 관구에서 직통으로 내려오는 긴급통신은 몇 년 만이라 꽤 당황했었지.”

어지간히 작은 동네가 아니라면 각 도시의 관공서나 신전에는, 마탑에서 제공하는 통신망 설비를 필수적으로 설치해 둔다.

케이트리아에서의 상황은 그곳 영주와 교구장을 통해 그들의 윗선까지 전부 보고가 올라갔을 터.

그 때문에 사건의 주역 중 하나인 이사벨이 속한 글라즈번 교구로, 관구의 고위층에서 역으로 연락을 보내왔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전보의 내용은 대체로 이사벨과 동행했다는, 성법을 사용하는 무소속 기사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 내 이야기다.

“거기 앉게나. 글라즈번 교구 성기사단장, 프리츠 로제마이어일세. 자네가 ‘그 알렉스’인가?”

“음.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아마 질문하시는 ‘그 알렉스’는 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너무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관구청에서 진위조사를 위한 파견단을 보낸다고 하던데, 이렇게 본인을 만났으니 직접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지.”

피곤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눈빛만은 형형한 성기사단장은, 알렉스를 향해 진중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정말로 자네가 네크로맨서 케네스를 처치했는가?”

‘케네스…….’

익숙하지 않은 이름에 잠깐 의아했지만, 그러고 보니 암흑교도들과 싸울 때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케네스 님께서 노하시기 전에 어서 처리해!

‘아하, 그게 그 네크로맨서의 이름이었나.’

기억을 떠올린 알렉스는 단장 프리츠의 질문에 긍정을 표했다.

“운이 많이 따라주긴 했지만, 그놈은 제 손으로 확실히 처단했습니다.”

“허헛, 암흑교의 장로를 고작 그만한 전력으로 해치웠다라…… 교단의 고위층과 단장급쯤 되는 실무자들이나 겨우 그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놈이었는데.”

자신의 집무실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던 프리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알렉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줄 수 있겠나?”

“예, 뭐. 어려울 건 없습니다.”

알렉스는 이미 몇 번 설명한 적이 있던 이야기를, 프리츠의 앞에서 또 다시 늘어놓았다.

물론, 어느 정도 자신의 활약을 축소시킨 내용도 있긴 하다.

일행들이 전부 쓰러진 상황에서, 홀로 그 많은 듀라한을 해치우고 적의 수괴까지 잡아냈다는 건 너무 허황되게 들릴 것 같으니.

‘이곳의 성법과 내 스킬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특히 디바인 크로스는 다른 것들에 비해 과하게 격이 다른 기술이란 말이지.’

이제 막 교단에 몸담으며 돌아가는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상황이니, 아직은 성법에 관한 쪽으로는 너무 드러내지 않도록 하면서 조금 분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 케네스가 대삼림의 몬스터를 이용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힘을 불어넣느라 많이 지쳐있던 상황이었음을 강조했다.

“그자도 약해진 티를 내지 않으려 허세를 꽤 부렸던 거지요. 물론 그 정도로도 저희를 전멸시킬 뻔한 무서운 작자였습니다만…… 상대가 방심하던 것도 있고 크게 행운이 따라주며, 여러 우연이 겹쳐 적의 급소를 찌를 수 있었던 겁니다.”

“참 절묘한 타이밍에 놈과 마주했었군. 늙은 괴물의 자만심이 스스로를 죽였다라…….”

이야기가 끝나고 프리츠가 잠시 생각에 잠긴 터라, 집무실 안에는 한동안 고요한 침묵이 맴돌았다.

잠시 뒤.

상념에서 깨어난 프리츠가 주제를 바꾸며 다시 대화가 계속되었다.

“자네가 이사벨과 동행한 이유는 들었네. 워낙 사안의 크기가 달라 묻히긴 했지만, 루미넌 백작가의 일로 보내온 전서를 받아 확실히 기억하고 있으니.”

“아, 네. 그런 일도 있었지요.”

“팔라딘 서임에 대한 추천이라. 물론 이야기의 반만 진실이어도 자격에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네만, 그래도 우리끼리의 검증은 필요하다는 것쯤은 이해해 줄 수 있겠지?”

프리츠의 말에 알렉스는 살짝 앞으로 굽어져 있던 자세를 바로 세우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실력을 보여주게나. 따라오시게.”

집무실을 나서는 프리츠의 뒤를 쫓으며, 알렉스와 이사벨은 조금 전 지나왔던 복도를 다시 되돌아 걸어갔다.

대화 내내 끼어들지 않고 꼿꼿하게 정좌하고 있었던 이사벨이, 알렉스의 귀 옆으로 손을 가져다 대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희가 하는 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전투능력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하게 될 겁니다.”

“저분과 겨뤄야 하는 겁니까?”

“아마 단장님이 직접 나서시진 않을 테고, 선배님들 중에서 몇 분을 골라 대련하는 식일 겁니다.”

아까 그 성난 고릴라 같던 사람들 말인가.

실력에는 제법 자신이 붙었지만, 사람 하나쯤은 가볍게 묻을 듯한 분위기였던지라 조금 쫄리는데.

“테스트를 통과한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으음. 추천으로 올라간 외부인사 서임에 대한 결의는 저도 들은 바가 거의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팔라딘 서임은 교구장 이상의 신분을 갖춘 분들만 자격을 갖추니, 단장님께 무력을 검증받고 나면 윗선에 건의가 올라가게 될 겁니다.”

‘단장이라 해도 독단적으로 성기사를 임명할 순 없는 모양이구나. 흠…… 이미 성법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가산점이 크게 붙기는 하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겠군.’

싸움질 잘하는 모습만 보여준다고 해서 바로 서임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 상대가 정해지면 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세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복도를 쭉 따라 걷던 세 사람은, 처음 알렉스가 붙잡혀 갔던 회의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집무실에서 시간을 제법 보냈을 텐데.

여전히 안쪽에는 성기사들이 모여 있는지,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와, 땀내 난다.’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후끈거리는 열기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물론 기분이 그렇다 해도 따라가지 않을 수는 없기에, 알렉스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프리츠를 쫓아 다시 한번 회의장에 발을 들였다.

“어억! 저 자식이 아직도 안 가고 있잖아!”

“단장님? 그래, 중대한 안건이니 단장님께서 직접 나서신 건가.”

“어떻게 좀 해보십쇼, 단장! 이사벨이 저 어린 사기꾼에게 단단히 속아 넘어간 모양입니다!”

사기꾼이라니 말이 심하네.

이사벨이 자신을 유능한 인재라고 소개했었지만, 아무래도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정숙하라.”

프리츠가 짧게 한 마디를 내뱉자, 날뛰던 성기사들이 순한 양이 되며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내게 주어진 성기사단장의 적법한 권한과 절차에 따라, 기사 알렉스의 팔라딘 임명을 위한 심사를 상부에 정식으로 요청할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선언에, 다들 놀란 얼굴로 한마디씩 내뱉으며 회의장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열아홉 살짜리를 무슨 팔라딘에…….”

“근데 이사벨은 열일곱에 서임을 받았는데?”

“그건 얘기가 다르지! 이사벨은 백년에 한번 나오기도 힘든 재능이잖아!”

“그만! 정숙하라고 했다.”

프리츠가 강한 어조로 말하자, 격하게 반응하던 성기사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표정 가득히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성기사들.

부하들을 쭉 둘러본 프리츠는, 이내 자신의 선언에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물론 그가 우리의 일원으로 함께 할 자격이 있는지를 먼저 알아봐야 하겠지. 교단이 규정하는 악에 맞설 실력이 되는지 확인해야 하니, 함께 테스트를 진행할 지원자를 모집하도록 하겠다.”

프리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먹이를 가져온 어미 새를 향해 목을 뻗는 새끼들처럼, 성기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한다!”

“아니, 나부터!”

“이런 건 실력자가 나서야지! 당연히 내가 맡겠다!”

‘……얼씨구. 아주 난리들 났네.’

헛웃음을 흘리는 알렉스를 향해, 프리츠가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군. 지원자가 너무 많으니 자네에게 선택권을 주도록 하지. 저 중에서 대련을 치를 사람으로, 음... 그래. 세 명 정도 뽑아보겠나?”

프리츠의 말에 성기사들의 시선에 알렉스에게로 쏠린다.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선 알렉스가, 좌우로 고개를 돌려가며 성기사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런데 여자 성기사는 이사벨 말고 더 없는 건가? 여기는 남자들밖에 안 보이네.’

잠깐 딴생각을 떠올리자니, 프리츠가 또다시 몇 마디 말을 보탰다.

“휴식 없이 연달아 대련을 진행할 것이니, 적당히 만만해 보이는 이들로 선택하게.”

“아?”

어째 불길에 기름을 붓는 듯한 발언이다.

누가 제일 약해 보이는지 골라보라는 듯한 프리츠의 말에, 알렉스를 바라보는 성기사들의 얼굴이 한없이 험상궂게 변해갔다.

‘뽑히고 싶어 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길 뽑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느낌인데. 하하, 이거 참 난감하네.’

한층 뜨거워진 열기에 난처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거리던 알렉스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몬스터와의 전투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니니, 조금 호기롭게 자신감을 표출해 보자고 생각하며.

“뭐, 다 한 번씩 붙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알렉스의 말이 떨어지자.

묘하게 후끈거리던 회의장 안으로, 겨울에 걸맞은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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