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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37화 (37/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37화

지하제단(6)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

반가운 알림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퀘스트 보상이었던 대량의 경험치는, 정말 단어 그대로의 경험치를 퍼부어주었다.

[알렉스 Lv 50]

[잔여 스킬 포인트 5]

다섯 번의 레벨 업.

물론 여태까지도 이 정도의 레벨 업은 몇 번 경험했었기에, 대단한 감격을 느낄 정도의 보상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유저 기준으로 저렙 구간에 속했던 지금까지와 달리, 45레벨 이상은 본격적으로 역할놀이에 재미가 들리는 중렙에 발을 들이는 시점.

보상 한 번에 5번의 레벨 업을 경험할 경험치란 건, 충분히 대량이란 표현을 사용할만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 발악을 해야겠지.’

공간을 가득 채운 음울한 기운이 점점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알렉스는 몸을 돌려 네크로맨서를 바라보았다.

대악마의 파편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암흑교의 수작질을 막아내긴 했지만, 아직 멀쩡히 남아 있는 저 괴물 같은 사령술사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런데.

“끄으으, 으아아악!”

‘응?’

간질 환자라도 된 것처럼 바닥에 엎드려 경련을 일으키는 네크로맨서.

대악마의 힘을 복원하는 일은 사실 암흑교의 장로이자 고위 사령술사인 그에게나 겨우 시도할 수 있는 것이지, 흑마법을 다룬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온전한 대상과 계약을 통해 권능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고작 사체의 일부에서 힘의 편린을 추출해 복구하는 고난이도의 작업.

각종 마법진을 설치해 엄청난 마력을 쏟아붓고 본인의 정신에 쌓아 올린 주문회로와 대악마의 파편을 공명시켜가며, 거의 영혼과 사물을 연결하다시피 하는 깊은 동조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공을 들여가며 준비했던 파편의 손상은, 자연히 네크로맨서의 영적세계에 심각한 훼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기회가?’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야 알 수는 없지만, 알렉스는 네크로맨서에게 무언가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상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다시없을 기회일 것이다.

[실드 차지 Lv 3]

[잔여 스킬 포인트 3]

거의 본능에 가까운 판단으로, 알렉스는 실드 차지에 2개의 포인트를 투자했다.

두 단계가 껑충 뛰어오른 실드 차지의 발동으로, 방패를 앞세운 알렉스의 신형이 기존보다 빨라진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무기가 없긴 하지만…….’

손에 익은 검이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방패 역시 충분히 타격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당장 주변에 마땅한 무기도 없고, 기사들의 장비는 저 멀리에 떨어져 있는 상황.

무기를 주우러 돌아다니기보단, 언제 다시 정신을 차릴지 모르는 적을 빨리 공격하는 것이 낫다.

방패 하나에 의지하여 달려간 알렉스는,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네크로맨서의 머리를 후려쳤다.

뻐억!

“케헥!”

돌진기이긴 해도 공격판정이 붙어 있는 스킬이기에, 그냥 평범하게 휘둘렀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피해가 가해진다.

일반인이었다면 이 일격으로 머리가 터져 버렸을 만한 공격이었으나, 주문회로에 심한 결손이 생긴 와중에도 네크로맨서는 보호마법을 사용해 타격의 피해를 감소시켰다.

“끄…… 개에, 가트으은…….”

네크로맨서가 욕설을 흘리며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저딴 공격은 자신의 배리어 주문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겠지만, 영혼의 반절이 뜯어져 나간 듯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 지금은 충격의 일부를 흘려보내는 조잡한 주문을 외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바닥을 기며 물러난 네크로맨서가 떨리는 지팡이로 알렉스를 가리키며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끼야아악!

밴시의 울부짖음.

듣는 이에게 쇠약의 저주를 거는 주문이었다.

바로 앞에서 터져 나온 귀곡성을 듣고, 알렉스는 몸 어딘가에 구멍이 난 것처럼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크윽!’

적이 가까이 붙어 있으니 디바인 크로스를 한 번 더 쓸 수 있다면, 단숨에 터뜨려 버릴 수 있을 텐데.

위력이 끝내주는 스킬답게 쿨타임이 길고 신성력의 소모가 막대해, 아쉽게도 당장은 다시 사용할 수가 없는 스킬이다.

[스펠 가드 Lv 3]

[잔여 스킬 포인트 1]

결국. 몸뚱이를 움직여 해결을 봐야하기에, 남은 포인트를 더 사용해 마법저항력을 높였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미래 자체가 없어질 테니, 범용성이나 효율을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야아아- 악!”

늘어난 저항력으로 밴시 크라잉을 견디며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긴 알렉스는, 기어코 네크로맨서에게 달라붙어 방패를 휘둘렀다.

“어, 어째서, 주문의 영향이 이것밖에…….”

시간을 벌어두고 확실히 안전을 챙길 수 있는 튼튼한 방어막을 만들어내려던 네크로맨서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쇠약 상태에서 벗어나 다가오는 알렉스를 보고 기겁하며 구성하던 주문을 대충 완성시켰다.

끼기긱!

방패의 각진 모서리가 네크로맨서의 몸을 덮은 보호의 마법을 긁으며 귀 따가운 마찰음을 만들었다.

“망할! 깨져라악!”

“이, 이런!”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질러대며 연달아 공격을 가하자.

쩌적.

누적되는 피해로 급조한 방어막에 균열이 생겨나는 소리가 들렸다.

‘더 강한 한 방이…… 신성력이 조금만 더 있으면!’

[신앙 Lv 8]

[잔여 스킬 포인트 0]

마지막 남은 포인트를 신앙에 투자해, 바닥을 드러낸 신성력의 회복을 꾀했다.

더 이상 스킬 하나 쓰기도 부족할 정도로 텅 비어 있던 몸속에, 힘의 불씨가 추가로 지펴졌다.

[심판의 일격]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방패가 보호마법을 부수며 네크로맨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커억!”

넘어진 상대의 위로 올라탄 알렉스는 방패를 들어 사정없이 적의 몸을 내리찍었다.

빡! 뻐억!

네크로맨서가 지팡이를 들어 앞을 막으며 새로운 주문을 구성하려 했으나.

뿌득. 으직!

“끄으, 그, 그만!”

악에 받친 알렉스의 마구잡이식 폭력 앞에서, 집중력을 잃은 마력의 배열은 아무런 의미를 갖추지 못하며 흩어졌다.

“죽으라고!”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마치 그런 역할을 맡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된 것처럼, 머릿속으로 오직 쉬지 않고 때려야 한다는 생각만을 품은 채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한참을 들썩이던 알렉스는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방패를 놓쳤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격한 행동에 열중한 탓에 현기증이 온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어지럼증 때문에, 과도한 흥분으로 흐릿했던 정신이 다시 깨어났다.

그제야 가슴팍이 다진 고기처럼 되어 움직임이 멈춘 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허억, 허으, 흐으윽…….”

숨을 크게 몰아쉬며, 알렉스는 멍하니 떠오르는 알림을 주목했다.

퀘스트의 보상과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양의 경험치가 스며들어왔다.

레벨 차이가 굉장히 큰 적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알렉스 Lv 55]

[잔여 스킬 포인트 5]

또다시 5번의 레벨 업.

앞의 것까지 합치면, 짧은 시간 만에 무려 10단계의 성장을 이루었다.

“흐읍, 큭, 프흐흐흑! 콜록! 크흑!”

주체할 수 없이 복받치는 감정과 함께, 웃음인지 울음인지 구별이 가지 않은 소리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겼구나.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느슨해진다.

저벅. 흠칫!

머리를 숙인 채 숨을 헐떡이던 알렉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움찔하며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엇, 이게…….”

“설마 다들 당한 건가?”

“아냐! 저기 기사님이 계신다!”

통로와 이어진 출입구 방향에서, 머뭇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안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병사 몇 명을 들여보낸 모양이었다.

‘X발…… 놀랐잖아…….’

설마 이러고도 더 뭐가 튀어나오나 싶어 심장이 철렁하던 차였다.

‘끝이야. 이제 쉴 수 있다고.’

이런저런 상념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지 다른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만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여기, 도와주십시오.”

다 죽어가는 목소리를 내뱉은 알렉스는, 바닥에 누운 채 눈을 감고 병사들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기, 기사님. 다른 분들은 전부, 그 혹시…….”

“아니. 살아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알렉스는,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쓰러져 있는 일행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듀라한의 모진 구타에 정신을 잃고 기절해 있는 사람들.

네크로맨서가 실험을 운운하며 하나같이 생포하도록 지시했기에, 다행히 목숨을 잃거나 심각하게 위태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사망자가 하나도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승리였다.

‘완벽은 X랄이. 또 이따위 퀘스트가 뜨면 그냥 다 포기하고 도망가던가 해야겠다.’

알렉스는 고개를 저으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사실상 운이 따랐을 뿐이지, 결과가 이래도 과정을 보면 이미 한번 전멸을 경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퀘스트라는 건…… 대체 정체가 뭐냐. 날 이곳으로 보낸 누군가가 내리는 지시인 건가?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이 세상이 떨어진 후로 수없이 고민했던 의문을 다시 떠올린다.

여러 가지 가설을 떠올리긴 했었지만, 언제나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던 궁금증들.

환생이나 빙의, 차원이동 같은 그런 이야기들은 만화나 소설로 몇 번 접해봤기에,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황당하긴 해도 ‘이런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게 그냥 어떠한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무슨 초월적인 존재의 농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퀘스트라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긴 찜찜한 목표가 계속 제시되는 것을 보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이리로 보낸 누군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근데 이 정도면 그냥 가서 죽으라고 밀어 넣는 수준이잖아. 정말 어떤 신적인 존재가 있는 거라면 어떤 새끼인지 면상 좀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저, 기사님.”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를 괴롭히고 있자니, 병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알렉스를 불렀다.

“말씀하세요.”

“예, 그…… 문제가 되는 일은 다 해결이 된 겁니까요?”

병사의 질문에 알렉스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일반 병사들은 이번 출정이 무엇 때문에 이루어졌는지조차도 정확히 모른다.

영주가 지시하고 기사들이 명령을 내리기에, 봉급을 받는 군인으로서 시키는 대로 목숨을 바치러 왔을 뿐.

그저 막연히 오크들이 사는 곳에 간다는 것과, 영지에 해를 끼치는 나쁜 무리가 있어 싸워야 한다는 정도가 이들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높으신 분들의 문제가 해결됐으면 이제 안전한 도시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하는 은근한 기대감만이, 병사의 표정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요. 끝났습니다.”

알렉스의 대답에 병사는 헤벌쭉하고 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알렉스는, 그 순박한 얼굴을 마주하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아. 나만 괜히 세상의 고민을 다 짊어지고 있는 기분이군. 그래, 뭐…… 일단 돌아갈까.’

“나는 괜찮으니 가서 다른 사람들을 더 데려오세요. 정리해야 할 것들도 많고, 죽은 사람은 없지만 다들 상태가 좋진 않으니 운반할 인력이 여럿 필요합니다.”

“아, 넷!”

많이 지치긴 했지만 조금 쉬고 나니 그럭저럭 기력이 돌아와 움직일 만했다.

알렉스는 병사들에게 쓰러져 있는 다른 사람들을 챙기라 지시하고, 홀로 떨어져 누워 있는 이사벨에게 다가갔다.

심한 탈진으로 쓰러졌던 이사벨은 안색이 창백하긴 했지만,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 것을 보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끄응차-”

병사들에게 맡겨도 되겠지만 그래도 나가는 김에 자신이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알렉스는 그녀를 품에 안아 들었다.

갑옷의 무게 때문에 제법 무거울 줄 알았는데, 워낙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그리 무게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너무 무리다 싶으면 어쩔 수 없이 병사들의 손을 빌려야 했을 텐데, 이 정도면 충분히 혼자서 들어 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긴 레벨 업을 그렇게 하면서 스텟도 많이 올랐을 테니.’

가슴께에서 흘러나오는 새근거리는 작은 숨소리를 들으며.

알렉스는 다른 이들을 부축하는 병사들과 함께 지하제단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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