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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33화 (33/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33화

지하제단(2)

“전부 토막을 쳐주마!”

“흐흐! 약해 빠진 것들!”

약물을 잔뜩 맞은 것처럼 핏줄이 불거져 꿈틀거리는 근육질의 육체.

흑마력에 물들어 흰자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검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암흑전사들이 흉악한 기세로 병사들을 몰아쳤다.

조사 활동 당시 만났던 암흑전사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는지, 풍기는 기운 자체가 사뭇 매서운 놈들이다.

이쪽의 병사들도 나름대로 기사 종자 수준의 훈련을 거치고 질 좋은 무장을 갖춘 중장보병들인데, 양 떼 속에 뛰어든 늑대처럼 날뛰는 암흑전사들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기사들이 나선다면 대적하지 못할 것도 없겠으나, 아군의 주력들은 다른 적을 상대하느라 다른 곳을 도울 상황이 아니었다.

“흐윽! 무슨 놈의 힘이!”

“크크큭! 수련이 부족하구나, 이름 모를 기사여.”

“평범한 인간의 육신으로 쌓을 수 있는 경지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할 뿐이지.”

흑색의 갑주로 몸을 감싼 채 투구 사이로 붉은 안광을 내뿜는 두 명의 검은 기사들.

악신에게 영혼을 바친 대가로 초인적인 신체능력과 마기가 물질화된 갑옷을 얻은, 속칭 타락기사라 일컬어지는 자들이었다.

교단의 성기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로, 암흑교의 상급 교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력 전투원이라 할 수 있는 이들.

퍼억!

“끅!”

“그런 알량한 검술 따위론 내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을 것이다.”

“제기랄! 뭐 이런 놈들이!”

“저 갑옷은 대체 뭐야!?”

흑마력으로 갑옷 형상을 유지하는 타락기사의 능력 심연의 갑주.

전력을 다해 공격해도 피격 부위가 조금 일그러지는가 싶다가 다시 원상복구 되어버리니, 기사들은 공략법을 찾지 못하고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반면 상대는 방어력뿐만 아니라 힘과 속도마저도 기사들보다 한 수 위.

아군 기사들 중 가장 지위가 높은 레스빈은 다른 평기사들과 달리 배너렛 나이트(문장 깃발을 소유한 상급 기사)로 임명받은 실력자인데, 그조차도 타락기사를 상대로는 몇 합을 견디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기 바빴다.

로델론 백작의 휘하 기사 다섯이, 타락기사 둘을 상대로 맥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금방 전열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

‘추정 레벨 50 정도? 그래도 저 정도면 비벼볼 만하다.’

물론 그것은 기사들의 뒤에서 사제들을 호위하던, 알렉스와 이사벨이 나서기 전의 이야기다.

“이사벨 경, 한 놈씩 맡아 봅시다!”

“예! 네놈의 상대는 이쪽이다! 더러운 악의 종자야!”

“다른 분들은 무리하지 말고 우리를 보조하며 싸우십시오!”

“크윽! 면목 없군. 부탁하오, 알렉스 경!”

신성력을 발하며 참전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타락기사들은 더욱 흉흉한 안광을 흘리며 위압적인 기세를 흩뿌렸다.

“성기사! 드디어 손맛을 느낄 만한 것들이 나섰군!”

“크하하핫! 네년의 시체를 범하며 허울뿐인 너희들의 신을 조롱해 주마!”

이사벨의 폴액스와 비슷한 폴암 계통의 무기로, 3미터에 달하는 글레이브를 휘두르는 타락기사가 그녀와 맞붙었다.

같은 장병기를 쓰는 모습이 승부욕을 자극했는지, 바로 그쪽으로 달려들어 논의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자연히 남은 다른 타락기사가 알렉스의 상대가 되었다.

이쪽은 굵직한 철퇴에 스파이크가 군데군데 튀어나온, 널리 알려진 명칭으로 모닝스타라 불리는 무기를 사용하는 자였다.

알렉스가 부 무장으로 사용하는 메이스와 비교하면 헤드가 몇 배는 두껍고, 자루의 길이만 1미터가 넘는 우악스러운 형태의 둔기였다.

‘잘못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군.’

육중한 무기이니 속도가 느릴 거라 예상한 알렉스는, 적당히 거리를 조절하며 상대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렸다.

무기를 휘두르고 다시 자세를 잡기까지 틈이 클 것으로 판단되기에, 그때를 노려 빠르게 파고들어 치고 빠질 생각이었다.

부웅.

살 떨리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철퇴가 눈앞을 지나갔다.

‘지금- 읏!?’

계획대로 상대의 품 안으로 뛰어든 알렉스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되돌아오는 철퇴의 모습에 당황하며 방패를 들었다.

뻐억!

“윽…….”

반응이 조금 늦어 가드가 깔끔하지 못할 뻔했는데, 방어 본능의 발동으로 다행히 최대한 힘을 흘리는 각도에 정확히 방패를 가져다 댈 수 있었다.

묵직한 충격이 방패 너머로 전달되어 팔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저런 중병기를 무슨 회초리 휘두르는 것처럼 이리 가볍게 다루다니, 확실히 신체능력은 저쪽이 훨씬 우위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마냥 손해만 보고 물러나진 않았다.

방어를 하며 밀려나는 순간, 짧게 칼을 뻗어 적의 갑옷을 살짝 긁고 빠져나왔다.

반격이라기엔 미약한 수준이긴 하다.

그러나 타락기사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능력인 심연의 갑주에, 다른 기사들이 전력을 다한 공격했을 때처럼 작은 생채기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했다.

‘역시 속성 우위에서 신성력은 흑마력의 상극이지. 얕은 찌르기였는데도 저 정도라면, 제대로 맞출 때는 내 공격이 충분히 먹혀들어갈 거야.’

알렉스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서로 투구를 쓰고 있어 표정을 제대로 볼 순 없지만, 용케 웃음기를 눈치챈 타락기사가 불쾌함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네 신에게 받은 능력으로 내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 같더냐?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마.”

“글쎄. 아마 제대로 맞아보면 눈물 콧물 질질 짜게 될 텐데?”

“큭! 과연 얼마나 더 까불 수 있는 지 두고 보지.”

“그러던지.”

알렉스는 유효타가 될 수 없는 자잘한 공격으로 상대의 신경을 자극하며, 신중하게 기회를 엿보았다.

대형 둔기를 다루며 한방의 위력이 굉장한 적이지만, 이쪽도 충분히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공격 수단을 가지고 있다.

홀리 웨폰을 검에 씌우는 것만으로는 위력이 조금 부족하겠으나, 이런 상대를 대비해 스킬 포인트를 공격 쪽에 투자해 두지 않았던가.

‘심판의 일격을 처음 사용할 때 최대한의 피해를 뽑아내야 해.’

이쪽의 능력을 모르고 있어 경계심이 옅을 때, 가장 확실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알렉스는 차분하게 상대방이 틈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일대일의 싸움이 아니었기에, 기회는 제법 빠르게 찾아왔다.

물러나 있던 기사들이 알렉스가 타이밍을 재고 있음을 깨닫고, 적의 시선을 끌기 위해 행동한 것.

타락기사의 양옆에서 아군 기사 두 명이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다.

“거북이 같은 놈! 껍데기만 튼튼하면 다냐!”

“그딴 요상한 갑옷만 믿고 날뛰는 걸 실력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런 잡것들이? 방해하지 마라!”

기사들의 외침에 알렉스는 순간 헛웃음이 나오며 살짝 손에 힘이 풀렸다.

전신갑주의 방어력에 기대어 전장에서 날뛰는 게 본인들 기사라는 존재인데, 내로남불처럼 저런 소리를 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바라던 기회가 찾아왔기에, 알렉스는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고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어력이 대단하다 해도 기사 둘의 공격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기에, 타락기사가 철퇴를 휘둘러 그들을 밀쳐내는 사이.

[실드 차지]

신속하게 돌진한 알렉스의 신형이 상대의 품을 파고들었다.

기사들을 쫓아내면서도 알렉스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있진 않았던 타락기사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으며 공격을 가해온다.

“어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철퇴가 머리를 으스러뜨리기 위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알렉스는 방패를 들어 앞을 가렸다.

[굳건한 태세]

“어엇!?”

충돌 직전 스킬을 사용한 덕분에 철퇴에 맞고 한 걸음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 탓에 역으로 자세가 흐트러진 타락기사가 깜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으나, 방패 뒤로 장전된 쇠뇌처럼 준비하고 있던 알렉스의 찌르기가 조금 더 빨랐다.

[심판의 일격]

홀리 웨폰으로 신성한 빛을 발하던 롱소드가, 심판의 일격의 발동으로 추가적인 보정을 받으며 맹렬하게 타올랐다.

금빛에 가까운 색채를 띤 섬광이 타락기사의 가슴을 관통했다.

“커억!”

부정한 속성에 대한 추가 피해와 강렬한 찌르기와 더해지며, 일반적인 판금갑옷보다 더 방호 성능이 뛰어난 심연의 갑주를 꿰뚫을 수 있었다.

상대에게 재차 달려들려던 알렉스는, 잠깐 망설이듯 멈칫하더니 이내 뒤로 물러났다.

원래는 다시 한번 심판의 일격을 사용해 마무리를 지으려 했었으나, 신성력이 의도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

‘이런.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구나.’

알렉스는 상처 부위로 피를 쏟으며 비틀거리는 상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바로 끝장을 보진 못했지만 이만해도 승기는 자신을 향해 확 기울어졌다.

‘신체능력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지만 그래도 베이스는 인간. 치명상을 입고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보스급 몬스터 수준의 고레벨 타락기사라면 거의 불사에 가까운 재생력을 갖추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 이놈…….”

느릿한 동작으로 무기를 들어 올린 타락기사는 예상대로 이전과 같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자 구멍 난 심연의 갑주는 절로 손상이 복구되었지만, 타락기사는 점점 힘을 잃고 움직임이 둔해져 갔다.

알렉스는 침착하게 시간을 끌다가 쿨타임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이제는 알고 있어도 막아내지 못할 심판의 일격을 사용해 상대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끄…….”

이번의 검격은 정확히 심장을 관통했기에, 타락기사는 입을 뻐끔거리며 바들거리다가 결국 생명이 다해 축 늘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44]

상당량의 경험치를 얻어 레벨이 하나 올랐다.

전투는 아직 끝이 아니기에, 얻은 포인트는 당장 써먹기 좋은 공격기술에 곧바로 투자했다.

[심판의 일격 Lv 3]

주변을 둘러보자, 아군이 적들을 하나씩 쓰러뜨리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병사들은 어렵게나마 암흑전사들을 상대로 분투를 벌이는 중이고, 롤랑과 코르넬리아는 적의 마법 전력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퍼엉.

“아아악!”

잠깐 지켜보는 사이, 유일한 마법사였던 상대편의 마녀가 폭발에 휩쓸려 몸이 찢겨져 나갔다.

‘이사벨은…… 잘하고 있군.’

남은 타락기사 쪽은 이사벨과 기사들의 합공에 정신을 못 차리며 두들겨 맞고 있었다.

쾅!

“컥! 이, 이런 개 같은 년이!”

“사악한 힘의 유혹에 넘어간 것을 후회하며 죽음으로 죄를 빌도록 하라.”

알렉스처럼 심연의 갑주를 꿰뚫진 못했지만 폴액스를 젓가락처럼 가볍게 휘두르는 이사벨의 괴력은, 타락기사에게 고역을 느끼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알렉스는 곧바로 이사벨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가, 그녀와 싸우고 있던 타락기사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끼기긱.

“쳇.”

후방에서의 기습은 제대로 들어갔으나, 아직 심판의 일격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지 않아 투구 아래의 고지트(목 가리개)를 깨진 못했다.

‘아깝군. 흉갑보다 얇아 벨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으윽!? 이, 이런. 저 멍청한 녀석, 벌써 당했단 말인가!”

알렉스의 합류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동료가 먼저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타락기사는 크게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한 명을 상대할 때도 우세를 점하지 못했던 성기사가 둘로 늘어났으니, 처음 등장할 때 보였던 자신감도 바닥으로 내려앉게 될 수밖에 없었다.

“으럇-!”

“크읏!”

양쪽에 연달아 가해지는 공격에 신경이 분산된 타락기사는, 결국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치명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콰득!

알렉스의 기습을 막긴 했으나 그 탓에 손상이 가 있던 고지트를 깨부수고, 이사벨의 폴액스가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목이 반쯤 잘려 나간 상대는 그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허우적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까비.’

경험치가 들어왔으나 레벨 업까지 가기엔 부족했다.

가장 강력했던 타락기사들은 알렉스와 이사벨이 해치웠고, 졸개인 암흑전사들은 여유가 생긴 기사들이 병사들에게 가세하며 전부 처리되었다.

더 이상 앞길을 막아서는 적은 없었으나, 알렉스는 전투 중일 때보다 더욱 긴장하며 제단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암흑교도.

싸움이 벌어지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다는 듯, 제단 위의 손목을 향해 지팡이를 흔들어대는 노인이 한 사람 있었다.

“이단자여! 당장 역겨운 행위를 중단하고 무릎을 꿇어라!”

이사벨의 외침에 동작을 멈춘 노인이 일행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에 물든 검은 눈동자.

빛조차 빨려 들어가 사라질 것 같은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힘을 잔뜩 쓰느라 피곤한 마당에, 별 같잖은 것들이 다 귀찮게 하는구나.”

갈라진 목소리를 내며 좌중을 둘러본 노인이, 지팡이를 들어 좌에서 우로 허공에 선을 그었다.

주문을 외우거나 수인을 맺는 것도 아닌 단순한 동작이었으나, 알렉스는 전신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마치 산이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광경을 목도한 것처럼, 거대한 무언가의 꿈틀거림을 눈앞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갑작스레 사방에서 퍼져 나온 검은 연기가 일행들을 에워쌌다.

그리고 이내 넓은 공간이었던 주변의 자리가, 수백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해골들로 가득 채워졌다.

“어차피 남은 건 간단한 균형 조절뿐이니…… 잠시 숨을 돌릴 겸 여흥을 즐겨야겠군.”

스켈레톤.

뼈로만 이루어진 언데드 몬스터.

망자의 시체와 영혼을 농락하는 사령술사의 가장 대표적인 소환수다.

‘저놈이 장로라고 불리던 그 네크로맨서…….’

“다들 뭉쳐!”

“병사들은 후미의 인원들을 보호하라!”

다가오는 수많은 해골 병사들을 마주하며, 일행들은 휴식할 새도 없이 다시 전투에 돌입해야 했다.

마지막이지만 가장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을 예감하면서, 알렉스는 호흡을 고르고 자세를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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