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30화 (30/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30화

전투 준비

조사대는 마지막 개척마을을 조사한 끝에 케이트리아로 복귀했다.

암흑교도들이 최종적으로 머물러 있던 곳이라 그런지, 조사대는 그들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단서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오크들이 도시 인근까지 나타난 것과 방벽 마법을 손상시킨 것. 그게 전부 이단과 연관되어 벌어진 일이란 소리군.”

“그렇습니다. 정황상 이교도들이 사악한 주문으로 몬스터를 조종했으리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개척마을은 완전히 전멸이라. 후우! 손해가 상당하군. 역시 강 너머로 영토를 확장하는 건 무리한 일인가.”

케이트리아 내성 회의장.

조사대로부터 그간의 일을 보고받은 영주 로델론 백작은, 자신의 가신들과 조사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을 불러 모아 앞으로의 일에 대한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이교도들을 척살했지만, 보고대로라면 아직 놈들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했다는 것 같은데.”

“옛! 오크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것도 그렇고, 그들의 주력은 아마 초원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오크의 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영주님. 놈들이 지령을 주고받은 것으로 추측되는 문서가 발견되어, 보고 당시 전해 올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소. 무슨 신전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

마법사 롤랑의 발언에, 로델론 백작은 피곤하다는 듯이 이마 옆을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내 행정관들이 과거의 문서들을 뒤져가며 찾아낸 바로는, 옛날 대삼림까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발족했던 토벌군에서, 언급된 바와 같은 오래된 구조물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있었다네.”

“초원 안쪽에 신전 건물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건 알 수 없네만, 당시의 기록을 봐서는 예루스 님의 성소는 아닐 것이라 추측이 되더군. 아마 지금은 사라진 고대의 신전이겠지.”

“과연! 이단의 신전이 있으니 이교도들이 그리로 모여든 것이군요.”

“문서에 기록된 위치가 현재 오크들이 영역으로 삼고 있는 땅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으니, 결국 자네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

“으음.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오크의 땅에 위치한 신전건물.

그곳을 확인해야만 이 사건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해선 모두가 이견이 없었으나,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가볍게 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도 했다.

지능을 가졌으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인 오크들의 영토에 진입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의 병력이 필요할 것인가.

신전이 위치한 곳이 그나마 오크 영역의 외곽이기에 영지군만으로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긴 하나, 한두 사람의 희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교단 측의 의견을 들어봐야겠군. 몬스터와 결탁한 이교도의 존재는 분명 위협적이지만, 내 병사들만으로 이 위험을 조사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보네.”

백작의 시선이 교단을 대표해 나온 인사들에게로 향했다.

사건의 발단이 이단과 관련이 있음이 알려졌기에, 회의에는 케이트리아의 교구장인 델트리온 주교도 참석해 있는 상황.

“백작께선 염려치 말고 조금 기다려보시지요. 막중한 사안이니만큼 관구로 서신을 전했으니, 추기경 예하께서 왕실과 협의를 거쳐 조만간 필요한 지원을 보내주실 겁니다.”

“허어, 내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주 막대한 지원을 해준 주교께서 하시는 말이라, 퍽이나 신뢰가 가는구려.”

“커흠, 뭘 또 그리 따끔한 말씀을…… 그래도 저희 교단의 팔라딘들이 조사대에서 적지 않은 활약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소속이 이곳 케이트리아 교구가 아니란 말도 들었소.”

“으음…….”

위험하기만 하고 실속은 없는 대단찮은 일이라 여겨 조사대의 파견에 고작 주임사제 하나만을 보냈던 델트리온 주교는, 영주의 핀잔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곤란함을 드러냈다.

일의 경중이 이렇게 일개 교구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무튼, 교단의 지원과 왕실의 군대가 도착하려면 빨라도 한 달은 족히 기다려야 하겠군. 당장 내 선에서 해결하기엔 어려운 문제이니, 이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마치는 수밖에 없겠소.”

어차피 이단과 관련된 일이니만큼 결국 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기에, 굳이 먼저 나서서 아까운 병력을 잃을 순 없다고 판단한 백작이 회의를 마치려던 차였다.

“그렇게 기다려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대번에 사람들이 주목이 쏠렸다.

‘암흑교가 정확히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촌각을 다투는 시간 싸움이야.’

[제한시간 26h 47m]

퀘스트의 설명에 추가된 시간의 한도를 다시 확인한 알렉스는, 백작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오크들과 전쟁을 벌여서라도 그 신전이 위치한 지역을 점령하고, 남은 암흑교의 잔당을 최대한 빠르게 제거해야 합니다.”

“알렉스 경? 물론 이단을 토벌해야 한다는 것에 다른 의견은 없으나, 필요한 준비를-”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늦어도 내일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케이트리아에 유례가 없던 끔찍한 재앙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거침없는 발언에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소린가?”

“그 이교도들이 심심풀이로 거기에 모여 있는 건 아니란 겁니다.”

지원을 기다린다고 이틀도 남지 않은 퀘스트의 시간제한을 넘기면,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기에 알렉스는 케이트리아의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인 로델론 백작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저와 함께 싸우셨던 분들은 이교도가 조종하던 시체골렘을 똑똑히 기억하실 겁니다.”

“으음. 난생처음 보는 끔찍한 괴물이었지.”

“그런 괴물이 도시로 쳐들어왔다면 성벽이 있다 해도 과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을지…….”

“예. 굉장히 위험한 놈이었죠. 그건 고위 사령술사가 만들어낸 언데드 몬스터이고, 필시 백작님이 확인해주신 옛 신전에선 그 사령술사가 무시무시한 흉계를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알렉스의 말에 백작은 인상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뜻인가?”

“딱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집어서 말씀드릴 순 없겠습니다만…… 저희가 해치운 놈보다 더 강력한 상위 언데드의 공세나, 도시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지독한 저주 등을 예상해 볼 순 있겠군요.”

“허어, 그렇게 위험한 존재가 있다면 더더욱 지원을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늦어도 내일까지입니다. 이교도들이 아직 준비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이때 선수를 쳐야 합니다.”

“모레를 넘기면 안 된다? 그에 대한 근거는?”

확증을 요구하는 백작의 말에 알렉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내세울 만한 어떤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다.

타인에게 퀘스트창을 보여줄 방법도 없는 노릇이니.

“개척지에서 처단한 이교도들에게서 유도해낸 정보들을 토대로 판단을 내린 겁니다.”

“다른 이들의 보고에는 없는 이야기군.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겠나?”

안타깝지만 더 자세히 말할 무언가도 딱히 없었다.

몇 마디를 더 보태긴 했으나 알렉스의 발언은 두루뭉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식으로는 백작을 설득시키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나는 잘 모르겠군. 결국 자네의 판단이란 건 거의 감에 의존한 무언가라고 생각되네만. 그런 말만 믿고 내 수백 명의 병사들을 사지가 될지도 모를 곳에 밀어 넣을 순 없는 게 아닌가?”

‘망할. 어쩔 수 없는 건가.’

부정적인 백작의 반응에 알렉스는 한숨을 삼키며 물러났다.

그때,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회의장 안에 울려 퍼졌다.

“저는 알렉스 경의 말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보시오. 같은 팔라딘이라고 편을 들어줄 때가-”

“이단과 관련된 일에서 현장에서 싸운 팔라딘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허어…….”

자신의 말을 잘라먹으며 알렉스를 두둔하고 나선 이사벨을 보며, 백작은 불편한 표정으로 델트리온 주교를 향해 같은 교단 사람끼리 말려보라는 듯이 눈짓을 보냈다.

“크흠. 이사벨 경. 뜻은 알겠으나 명확한 근거가 없이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인-”

“직접 이교도와 전투를 벌인 팔라딘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걸 무시하는 것이 케이트리아 교구의 대응입니까?”

델트리온 주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 정말로 알렉스의 말대로 무언가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곳의 교구장으로서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

델트리온 주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사이,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의견을 내놓았다.

“마이 로드. 제가 감히 판단을 내릴 주체가 되진 못하나, 알렉스 경이 괜히 허튼소리를 할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그는 사악한 괴물에 맞서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운 기사입니다. 저희 기사들이 원래 혀가 매끄럽지 못해 그 뭐시냐, 논리적? 그런 설명은 잘 못 한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조사대에 함께 했던 레스빈과 티오핀.

“알렉스 경은 꽤 젊은 나이이긴 하지만, 이교도들에 대한 해박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명확히 정립되지 않는 설명이라고 해서 그냥 넘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마법사 롤랑의 지지까지 더해진다.

마법사들의 오만함은 백작 역시 잘 알고 있는바.

그들이 타인의 지식수준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는 꽤 드물기에, 백작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다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백작 각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도시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나서 지원이 도착해서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후우…….”

한숨을 내쉬고 나서 한동안 말이 없던 로델론 백작은, 이내 알렉스와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경의 말을 믿어 보도록 하지. 병사들의 생명을 헛되이 날리는 것이 아니라고, 자네도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할 수 있겠나?”

여기까지 질러놓고 책임은 지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기에, 알렉스 역시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합니다. 희생이 불가피하겠지만, 꼭 필요한 싸움이고, 전장의 선두에는 항상 제가 서 있을 것입니다.”

백작은 결국 알렉스의 말을 인정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교단의 성기사와 마탑의 마법사, 휘하의 기사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일 오전.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영지군을 출병시키도록 하겠소. 다들 미리 준비를 해두시오.”

“알겠습니다. 나의 주군이시여.”

“델트리온 주교. 이번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것이라 믿겠소이다.”

“그게, 끄응. 알겠습니다. 최대한 인원을 차출하도록 하지요.”

회의는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모두가 다음 날의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흩어졌고, 영주의 가신 중 행정관들만이 남아 서로를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고작 하룻밤 사이에 영지군의 대부분이 투입되는 운용계획을 수립해야 하다니.

“씨펄…….”

급양 및 보급을 담당하는 행정관이 내뱉은 욕설에, 차마 아무도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하고 한숨만을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