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29화
어둠의 추종자들(3)
“공격을 늦추면 안 됩니다!”
아군의 죽음에서 가까스로 시선을 돌린 알렉스가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조지안의 사망은 안타깝지만, 여기서 겁을 먹고 멈춰 버리면 정말 죽도 밥도 되질 않는다.
‘이사벨은 분명 괜찮을 거야…… 후우, 괜찮아야 할 텐데.’
신체강화의 성법으로 몸의 내구성 역시 올라갔을 테니, 트럭에 치인 사람처럼 날아가긴 했어도 당장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태는 아닐 거라 믿었다.
사이먼 사제가 그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슬쩍 보였으니, 지금은 그저 잘 회복되어 일어나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괴물!”
“반드시 복수하겠다!”
전장에서 죽음을 벗 삼아 사는 이들답게, 남은 기사들도 충격에서 바로 벗어나 다시금 공격에 매달린다.
하지만 전위가 다섯에서 셋으로 줄어들었다 보니,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며 기회를 잡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이대로는 곤란한데.’
한 명이라도 추가로 전장에서 이탈하게 되면, 더 이상 전투가 성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격빈도가 줄어든 만큼 상대의 주의를 붙잡아 두기도 어려워졌다.
귓가를 날아다니는 모기마냥 성가시게 달라붙는 전위직들을 공격하는데 집중하던 어둠사제는, 근접전의 위협이 처음보다 많이 줄어들자 슬슬 마법사들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귀찮은 것들!”
‘이런, 보내면 안 돼. 여기서 더 붙잡아 둬야 한다.’
상대의 낌새를 눈치챈 알렉스가 시체골렘의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나마 갖춘 대형마저 무너지면 승리는 물 건너간다고 봐야 한다.
다리에서 바움 라이더들을 저지했을 때처럼, 알렉스는 몸으로 때워보자는 마인드로 적의 움직임을 막아섰다.
‘그래도 내 방어 능력이라면, 한두 번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야.’
[굳건한 태세]
검을 집어넣고 방패를 양손으로 지탱하며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아, 알렉스 경!?”
“무슨 짓을-”
놀란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큼지막한 발바닥이 알렉스의 몸을 짓눌렀다.
“끄으이잌!”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압력 속에서 턱이 부서져라 이를 악물며, 알렉스는 톤 단위의 무게가 내리누르는 부하를 온몸으로 견뎌냈다.
스킬의 효과를 통해 순간적으로 내구력이 증폭되었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이, 이놈이?”
무모함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알렉스는 기어코 시체골렘의 발걸음을 붙잡아 세우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피할 거라 생각하며 시체골렘이 발을 내딛도록 조종했던 어둠사제는, 무심코 다음 걸음을 내딛으려다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지긋지긋한 교단의 버러지들. 잘도 그런 미친 짓을 하는구나! 하지만 그래 봐야 뭐가 달라지지?”
중심을 되찾은 시체골렘이 어둠사제의 통제에 따라 다리 한쪽을 뒤로 젖혔다.
땅에 박힌 듯 버티고 서있는 알렉스를 그대로 걷어차겠다는 내심이 훤히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네 신의 곁으로 보내주마!”
부아아악.
무릎 뒤로 들어 올려졌던 시체골렘의 발끝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알렉스의 몸통을 노리고 다가왔다.
찰나의 순간, 알렉스는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저 발길질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스킬을 풀고 몸을 던져서 피해야 하나?
‘막는다.’
알렉스는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처음의 방어는 조금 막무가내로 시도한 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해야 옳다는 계산이 섰다.
‘더럽게 아프지만 아직은 더 견딜 만해. 내가 잘 버티기만 하면, 저쪽에도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어.’
자신과 충돌한 바움이 오히려 피해를 입고 나가떨어졌듯이.
방어로 인한 힘의 반작용은 그대로 시체골렘의 다리에 가해지는 공격이 되어줄 것이다.
뻐억!
커다란 충돌음이 울렸다.
살덩어리와 핏물이 여기저기에 비처럼 후드득 쏟아져 내린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고통을 참아가며, 알렉스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예상이 적중했다.’
“어억! 이런 미친!”
무릎 아래가 뜯긴 시체골렘이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넘어진다.
기사들과 함께 수차례 반복한 공격으로 약해진 부위가, 알렉스를 걷어차며 역으로 견디지 못하고 끊어진 것이다.
시체골렘의 손이 바닥을 짚으며, 어둠사제와 결합된 머리 부분이 앞으로 노출된 순간.
타이밍 좋게도 화염의 탄환이 날아들어 놈의 몸통에 정확히 명중했다.
펑!
“끄아아악!”
불꽃에 집어 삼켜진 어둠사제가 화끈한 통증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내질렀다.
다리 하나를 잃고 엎어져 있던 시체골렘이, 한쪽 팔로 상체를 지탱해 세우며 다른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심각한 화상으로 차마 마주 보기 어려운 몰골이 된 어둠사제는, 강렬한 고통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을 보호하고자 시체골렘의 통제에 집중했다.
“감히 내게 이런 고통을…… 끄으윽! 갈가리 찢어 죽여주마!”
“죽는 건 너다.”
“흐억!?”
가까이서 들려온 목소리에 경악한 어둠사제가 무언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목을 꿰뚫고 들어갔다.
“끄르륵…….”
알렉스의 검격이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에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지만, 간신히 잡은 기회를 남은 아군들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며 느긋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알렉스는 더는 못 쓸 만큼 망가진 방패를 내던지고, 확실히 마무리를 짓고자 시체골렘의 몸을 타고 기어올랐다.
피부 여기저기에 돌출된 뼛조각이 있어 붙잡고 오르기에 문제가 없었고, 시체골렘이 엎드린 자세가 되며 체고가 낮아졌기에 꽤 빠르게 등판으로 올라탈 수 있었다.
숨통을 끊는 마지막 일격.
어둠사제 그리고 시체골렘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다.
남은 힘을 쥐어짜 간신히 검을 내질렀던 알렉스는, 검을 뽑을 기력조차 없어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하…… 간신히 잡았다.’
당장에라도 눈을 감고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연달아 떠오르는 알림이 지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 알림이 네 번.
37에서 41레벨로 껑충 뛰어올랐다.
투두둑.
“으윽.”
시체골렘의 거체가 무너져 내리며, 위에 있던 알렉스도 함께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흑마력을 공급하던 술자가 죽으면서, 시체골렘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수한 뼈와 살덩어리들로 분해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
시체골렘이 소멸하며 추가로 또 경험치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두 번의 레벨 업 알림이 떠올랐다.
[알렉스 Lv 43]
[잔여 스킬 포인트 6]
‘그나마 고생한 대가는 챙겨주는군.’
아마 레벨만 놓고 따지면 시체골렘이 어둠사제보다 더 높았을 것 같은데, 소환물에 대한 경험치 판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그에 대해선 그리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한데 깜짝 선물처럼 추가로 경험치가 오른 덕분에, 결과적으로 총 6번의 레벨 업이라는 상당한 보상을 손에 넣었다.
이제는 스킬을 제외한 능력치만으로도, 어엿한 기사로서 전혀 하자가 없는 수준을 지니게 되었다.
“알렉스 경.”
상태창을 살피던 알렉스는 반가운 목소리에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사벨 경.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사악한 이교도를 처치하셨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있는 듯 없는 듯했던 사이먼 사제가 그나마 치료 쪽으로는 쓸 만했는지, 안색이 나쁘지 않아 보이는 이사벨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녀를 시작으로, 주변에 퍼져있던 아군들이 알렉스를 중심으로 뭉쳤다.
“알렉스 경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을 뻔했소.”
“덕분에 이 끔찍한 괴물에게서 승리할 수 있었구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기사들이 오자마자 칭찬의 말을 늘어놓았다.
“영웅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단한 위용이었소. 빨리 힘을 보태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죄드리오.”
“……죄송합니다.”
마법사들 역시 알렉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특히나 제자 쪽은 스승의 발목을 잡은 것과 처음 알렉스를 대하던 태도 때문에, 이쪽으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만하고 자존심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귀족보다 더하다는 마법사에게선 보기 드문 모습이기에, 옆에 있던 기사들은 꽤나 놀란 얼굴이 되었다.
“저치들이 사과하는 광경을 다 볼 줄이야.”
“메이지 롤랑이 마법사들 중에선 대단한 인격자라고 하더니, 소문이 거짓은 아니군.”
두 기사가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에, 알렉스는 어이가 없어 속으로 혀를 찼다.
‘잘못한 점을 사과했다고 인격자 소리를 듣다니. 대체 다른 마법사들은 얼마나 개같이 굴기에 저러는 거지?’
하긴, 제자 쪽의 처음 행동을 보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기는 했다.
“야 이 밥버러지들아! 당장 정렬하지 못해!”
“겁먹고 질질 짜고만 있던 이딴 놈들이 정말 우리 영지의 정예병이란 말이냐!”
주위를 물들이고 있던 어둠이 사라졌기에 두려움에 떨고만 있던 일반대원들도 하나둘 모여들었고, 기사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하들을 통솔했다.
“이제 마을을 수색합시다. 오크들과 사악한 이교도가 함께 있던 곳이니, 뭔가 중요한 게 나올 수도 있겠군.”
더 이상 방해하는 적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조사대는 원래의 목적대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탐색에 착수했다.
“전에 본 것들보다 한층 더 부정한 기운을 흘리는 상징을 가지고 있군요. 분명 이단자들 중에서도 지도부에 속하는 자였을 겁니다!”
죽어 널브러진 어둠사제의 옷을 잡아 찢고, 암흑교의 증표를 회수하며 즐겁다는 듯이 미소 짓는 이사벨.
단서가 되는 물품이 있는지 찾기 위함이라지만 중년의 시체를 발가벗기며 웃는 모습이 조금 보기 그렇기에, 알렉스는 조용히 못 본척하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뭔가 빼먹은 기분이 드는데. 스킬 포인트를 아직 안 찍어서 그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끼던 알렉스가 막 스킬창을 띄우려던 차였다.
[진행 중인 퀘스트에 변동사항이 발생하였습니다.]
‘억!? 맞다, 퀘스트!’
뭘 잊었나 싶었더니 아직 퀘스트 완료의 알림이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변동사항은 또 뭐냐?’
알렉스는 서둘러 퀘스트창을 띄웠다.
[다가오는 멸망의 위기]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둠의 준동을 저지하십시오.]
[제한시간 : 44h 38m]
퀘스트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난데없이 제한시간이 생겨 버렸다.
‘아직 끝이 아니란 말이야?’
알렉스의 표정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그러고 보니 어둠사제가 떠들어댄 것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대업을 운운하고 장로의 권능이 어쨌느니 했던 이야기들.
어디서 무언가 꾸미고 있는 일이 있고, 본인보다 윗줄의 주동자가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그래. 시체골렘을 만들어낼 정도의 고위 네크로맨서. 그놈이 아직 남아 있군.’
그럼 그 어둠의 준동이라는 건 대체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분명 이곳이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개척마을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설마 더 안쪽까지 가야 하는 건가? 확실히 오크가 여기 있었던 것을 봐서는, 암흑교 놈들이 그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긴 한데.’
여기서 계속 안으로 들어가 초원의 심처에 도달하면, 몬스터들의 천국이라는 대삼림의 입구가 나온다.
그리고 그 부근의 땅은 분명히 오크종족의 영역이라고 들었다.
‘설마 거기까지 가서 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 제한시간이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저기서 조사대원들이 수상한 물건을 찾았다며 목청을 높이는 가운데, 알렉스는 한껏 곤란한 심정이 되어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이 처치 곤란한 퀘스트를 어찌하면 좋을지,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