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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27화 (27/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27화

어둠의 추종자들

‘공포 상태이상의 효과인 정신 능력치의 대폭 감소. 게임에서는 패널티가 있어도 어찌어찌 싸우는 게 가능하지만, 현실이 된 지금은…….’

겁에 질린 병사들은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워 보이니, 전투가 벌어지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블레싱으로 흑마법의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지만, 내가 돌아다니며 병사들에게 하나하나 스킬을 걸어주는 건 낭비다.’

레벨 높은 사제 클래스라면 광역 상태이상 회복 스킬을 쓰겠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알렉스가 일일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건 괜히 시간과 신성력을 낭비하는 꼴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성기사는 후방보조가 아닌, 앞에 나서서 싸우는 전위직이니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내 쪽으로 오십시오!”

홀리 웨폰을 발동하며 검을 치켜들고 외치자,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빛을 보고 몇몇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병사들의 상태가 이상하오!”

“저 사악한 요술쟁이의 짓이 틀림없겠군!”

“놈을 처단하면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알렉스 경!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니 바로 공격합시다!”

“예루스시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의지력으로 공포를 버텨낸 영주의 기사들과, 알렉스처럼 신성력으로 흑마법에 저항한 이사벨과 사이먼 사제.

‘마법사들은?’

정신방벽이 견고한 마법사라면 이런 계통의 상태이상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주위를 훑어본 알렉스는 바들거리며 떨고 있는 여마법사를 품에 안은 채, 구체의 막으로 몸을 감싼 롤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력 있는 마법사인 롤랑은 공포의 영향을 벗어났지만, 아직 미숙한 탓에 당해버린 제자를 돌보기 위해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씁! 저런 도움도 안 되는 게 마법사랍시고!’

“크흐흐핫! 예루스의 종들이 섞여 있었구나. 대업을 이루는 이 시기에 저런 값진 제물이 굴러들어오다니, 행운도 우리의 편임이 틀림없다.”

모자란 여마법사를 속으로 욕하고 있자니, 알렉스의 신성력을 알아본 어둠사제가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찍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조사대가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인 것도 아닌데, 남은 인원들을 위협이라 느끼지 않는지 태연하기만 한 모습이었다.

‘어둠사제는 직접적인 전투능력이 떨어져 혼자서 싸우는 직종은 아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여유를 부린다는 건…….’

불길함을 느낀 알렉스는 방어 자세를 굳건히 한 채,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일행들을 억누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보다 앞서 나가지 마십시오!”

“알렉스 경?”

“주변을 경계하세요. 뭔가 더 있습니다.”

막 돌격을 외치며 달리려던 기사들의 눈에 살짝 불만의 기색이 어렸지만, 아무도 알렉스의 말을 무시하진 않았다.

평범한 몬스터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달려들었겠지만, 상대가 기이한 요술을 부리는 이교도이니, 팔라딘으로 알고 있는 알렉스의 말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여긴 것.

조사대장인 레스빈조차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지시를 따랐기에, 일행들은 사방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쯧, 제법 신중한 놈이로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나.”

조사대가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히자, 어둠사제가 혀를 차며 지팡이를 높게 들어 올렸다.

그의 몸짓에 따라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갑자기 그림자가 생겨나더니, 인간의 형상들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알렉스는 침중한 얼굴로 새로 등장한 적들을 살펴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심연의 부름까지? 역시 레벨이 제법 높은 녀석이었군.’

심연의 통로를 열어 같은 암흑교도를 소환하는 어둠사제의 능력.

거기에 소환 후 잠깐 동안 대량의 추가 데미지를 주는 기습 판정이 부여되기에, 멋모르고 달려들었더라면 큰 피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

재빨리 눈을 움직여 상대의 전력을 파악했다.

셋, 일곱, 열둘.

레더 아머에 무기 하나씩을 든 경무장 상태.

‘암흑전사? 후우, 그나마 다행이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차에 간신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암흑교의 병사인 암흑전사는 하위계급의 평신도로, 암흑교도 중에선 가장 약체에 속한 직군이다.

레벨이 높은 녀석이라 해도 견습기사 이하의 수준일 가능성이 많은 상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싱싱한 제물들이여. 너희의 피로 축제를 벌이도록 해주마.”

“흐흐흐. 두려움의 냄새가 난다.”

“괴롭히는 재미가 있어 보이는 놈들이군.”

어둠사제가 손을 휘젓자, 약에 취한 것처럼 퀭한 인상의 암흑전사들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사이먼 사제를 보호하며 싸우십시오!”

기사들을 향해 외친 알렉스는, 이사벨에게 눈짓을 보내고 적들의 앞을 막아섰다.

‘단순 전투력은 기사들이 더 높겠지만, 지금은 제 힘을 발휘하긴 어려울 거야. 이사벨과 내가 최대한 분전해야 한다.’

의지로 흑마법을 견뎌내기는 했어도, 기사들의 상태는 완전히 정상이라 하기 어렵다.

기사들은 공포를 견디기 위해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했을 테고, 정신과 육체는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분명 적지 않을 영향을 받고 있을 터.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사이먼 사제와 붙어서, 수비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게 그나마 최선일 것이다.

‘사제의 능력이 뛰어났다면 역으로 버프를 두른 채 편하게 싸울 수 있는 건데. 빌어먹을 케이트리아 교구!’

사이먼은 성법을 쓸 줄 안다고 간신히 말할 수 있는, 주임사제의 품계에 있는 성직자다.

주교품의 성직자까진 바라지도 않았으나, 사제품에서 가장 높은 대사제급만 되었어도 전투가 수월했을 텐데.

그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교구 단위에서 해준 지원치고는 수준이 떨어지는 인력인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어둠사제가 또다시 흑마법을 사용했을 때, 가까이 있는 기사들이 휩쓸리지 않도록 막아내 주기를 바라는 것이 그에게 품는 최대의 기대치다.

“신의 품을 벗어난 패륜아들이여. 죽음으로 회개할지어다.”

“크하하! 예루스의 암캐가 잘도 짖어대는구나!”

“이놈!”

발끈하며 땅을 박차는 이사벨과 암흑전사들이 충돌했다.

이어서 알렉스 쪽으로도 네 명의 적들이 다가온다.

‘넷씩 나눠서 세 그룹. 역시 기사들보단 성기사인 우리 쪽을 더 경계하는군.’

열둘 중에 삼 분의 이를 둘이서 상대해야 한다.

그래도 이사벨이라면 충분히 믿을만한 실력자고, 자신의 방어 능력이면 다수를 상대로 버티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 해볼 만했다.

방패로 앞을 가린 채 발톱을 숨긴 맹수처럼, 언제라도 검을 찌를 수 있도록 준비하며 적들을 맞이했다.

“휘유~ 싱싱한 어린놈이군.”

“가시랑 껍질만 치우고 나면 날로 삼켜도 탈이 나지 않겠어. 크흐흐!”

암흑전사들이 끈끈한 시선으로 알렉스를 훑어보며 입맛을 다신다.

“죽이기 전에 제법 즐길 수 있겠어.”

“히히! 난 시체여도 좋아!”

“예루스의 종놈아. 내 불방망이 맛을 보고 나면 절로 개종하여 이 어르신을 신으로 섬기게 될 것이다. 으하하!”

‘이 새끼들이?’

사내놈들이 자신을 두고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모습에, 알렉스는 으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냥 신경을 건드리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음욕을 불태우는 눈빛이라는 걸 알아봤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느껴보게 된 가장 더러운 기분.

“아가리 그만 놀리고 덤벼라, 더러운 새끼들.”

“캬하하! 앙칼지구나!”

“그리 안달 내지 않아도 죽여 달라고 소리를 지를 때까지 상대해 줄 텐데. 흐흣!”

웃음을 흘리던 암흑전사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거리를 벌리더니, 알렉스를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한명 한명의 수준은 자신보다 높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힘을 합쳐 압박하는 솜씨는, 하루 이틀 합을 맞춰본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겁먹을 필요 없어. 갑옷을 믿고 가장 위력적인 공격만 방패로 받아낸다.’

날카로운 칼과 가시 달린 쇠몽둥이는 판금갑옷의 방어력으로 적당히 커버할 수 있다.

조심해야 할 것은 큼지막한 대형 도끼를 든 상대.

뭉툭한 도끼날은 예리함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미끄러지는 대신 둔기처럼 갑옷을 찌그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의 근력으로 휘두른 냉병기로는 판금갑옷에 치명상을 주긴 힘들지만, 피해가 누적되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깡! 터덩!

“그냥 지금 항복하고 얌전히 속살을 내미는 게 어떠냐?”

뻑! 끼기긱.

“열심히 봉사하면 어쩌면 목숨은 살려줄지도 모르지! 프흐흣!”

사방에서 순차적으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하며, 암흑전사들이 알렉스의 혼을 빼기 위해 계속 입을 털어댔다.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방어에 전념하던 알렉스는, 어느덧 자신이 기다리던 어떤 수치가 최대치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겁쟁이 놈! 언제까지 막기만 할 셈이냐!”

“지금, 새끼야.”

“……뭣?”

방패를 깨부술 듯한 기세로 도끼를 크게 휘두르는 상대를 향해, 알렉스는 한 걸음을 내디디며 팔을 움직였다.

[격노의 응징]

빛살과도 같은 선이 허공에 그어졌다.

현재의 레벨에선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은, 쾌속한 움직임의 검격이었다.

‘나이스. 역시 찍을 가치가 있는 스킬이었군.’

툭.

잘려 나간 도끼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적의 얼굴을 중심으로 비스듬한 혈선이 생겨났다.

반으로 잘린 머리의 윗부분이 먼저 떨어진 도끼의 뒤를 따라 흘러내렸다.

아직 바닥에 쓰러지지도 않은 시체에게서 눈을 돌리고, 알렉스는 나머지 세 명의 적을 보며 다시 방패 뒤로 검을 감췄다.

흠칫하며 놀란 암흑전사들이 입을 꾹 다물고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섰다.

한 놈을 보냈지만, 여전히 베어야 할 놈들이 많다.

알렉스는 실드 차지를 발동하며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반응조차 할 수 없었던 대단한 일격이 뇌리에 박힌 암흑전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과하게 몸을 긴장해 오히려 동작이 더 굼떠졌다.

원래도 개인의 실력은 알렉스보다 높지 않았던 놈들이다.

역으로 두려움에 잡아먹힌 적들은 이전까지처럼 제대로 협공을 하지 못하고, 알렉스에게 하나씩 차례차례 사냥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은은한 빛을 흘리며 움직인 검이 적들의 배를 가르고 목을 베어냈다.

“이런 개 같은, 게흑!”

“개가 네놈들보다 훨씬 낫다. 비료로도 못 쓸 새끼들아.”

마지막 적의 입안에 찌르기를 박아 넣은 알렉스는, 놈의 몸뚱이를 발로 걷어차 검을 뽑아내며 내면의 울림을 주목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렉스 Lv 37]

‘레벨 업, 어서 오고.’

어떤 스킬을 올릴지 고민할 여유까진 없었기에, 알렉스는 내면에서 시선을 돌리고 주변을 살폈다.

기사들은 신체능력이 본래의 기량보다 꽤 감소한 듯 보이지만 그래도 쌓아 올린 수준이 있는 자들답게, 사이먼 사제를 보호하면서도 적들보다 약간 우세해 보이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사벨의 주변엔 시체 세 구가 널브러져 있고, 하나 남은 암흑전사도 곧 폴액스에 머리가 쪼개지기 일보 직전으로 보였다.

‘역시 알아서 잘 싸우네.’

아군의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알렉스는, 홀로 떨어져 있는 어둠사제를 노려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단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고 있는 어둠사제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어디 다른 패가 더 있으면 한번 까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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