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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26화 (26/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26화

조사대(3)

케이트리아의 지부에 속한 마탑 출신 중, 한 손에 꼽는 실력자로 알려져 있는 중년 마법사 롤랑.

그가 화염 마법을 쏘아내며 전투의 서막을 올렸다.

달리는 말 위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 마법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력의 컨트롤이 미숙하여 조금만 집중력이 흐트러져도 배열에 실수를 하고 마는, 초급 단계의 마법사에겐 불가능한 행위.

그런 건 의식하지 않아도 숨 쉬듯이 주문을 완성시킬 수 있는, 중급 단계의 마법사 중에서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이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롤랑은 후자에 속했다.

마력을 매개체 삼아 지팡이 위에서 타오르던 불덩이가 머리 위로 떠오르더니, 이내 적들을 향해 날아가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엇?’

오크들에게 닿기도 전에 터져 버린 불덩어리를 보며, 알렉스는 순간 마법이 실패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롤랑의 마법은 애초에 공격을 위한 마법이 아니었던 것.

산탄이 퍼지듯 수백 개로 나뉜 작은 불똥이, 선두에서 달려오는 오크 바움 라이더들을 향해 뿌려졌다.

불꽃의 크기가 작아지며 위력이 분산되었기에 오크들에겐 아무런 피해도 없었으나, 그들이 타고 있던 바움은 사정이 달랐다.

훈련을 통해 전략물자로 거듭난 전투마와 달리, 샤먼의 주술효과로 탈것이 된 야생동물인 바움은 기수의 통제보단 자신의 본능에 더 충실하다.

털로 뒤덮인 얼굴에 불똥이 닿으며 뜨거움을 선사하자, 기겁한 바움들이 몸을 뒤틀며 큰 혼란이 일어났다.

무어어어!

급하게 멈춰 서며 날뛰는 바움들로 인해, 대부분의 오크 라이더들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지면에 얼굴을 처박았다.

편자를 박아 넣은 묵직한 말발굽이, 그런 오크들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짓밟고 지나갔다.

간신히 떨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던 몇몇 오크들마저도, 기병대의 돌격에 한순간에 쓸려 버렸다.

“헤이-햐!”

“쭉 밀어붙여!”

앞으로 돌격한 바움 라이더들이 순식간에 전멸했지만, 오크들의 수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무기를 꼬나 쥐고 달려오는 놈들의 수는 어림잡아 세도 조사대보다 두 배 이상 많아 보였다.

“크와악!”

“끄오오웍!”

인간이었다면 기병들의 돌격에 겁을 먹고 흩어지느라 쉬운 사냥감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투지가 강한 몬스터인 오크들은 종족 특유의 배틀 크라이를 내지르며 하나로 똘똘 뭉쳐 조사대의 앞을 막아섰다.

물론 타고난 신체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난 오크들이라 해도 무장의 수준은 많이 부족하기에, 단순한 육탄돌격으로 기병들의 질주를 막아 세울 순 없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오크를 찌르고 짓밟는 동안 기병의 돌파력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느새 조사대는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한 놈씩만 더 맡아라!”

“오크 따위에게 당하는 놈은 지옥훈련이다!”

기본적으로 전사 종족인 오크는 일반 병사들보단 강한 편이긴 하나, 기사들은 물론이고 조사대의 병사들도 오크 한 마리쯤은 맞상대가 가능한 정예들이다.

기병들의 발이 묶이긴 했지만 오크들의 수도 제법 줄어들어, 이제 조사대보다 약간 많은 정도.

포위를 당하긴 했으나 위기라고 느낄 상황은 아니었다.

“끄워어엉!”

“꺼져!”

뼛조각을 군데군데 박아 넣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라붙는 오크에게, 알렉스는 깔끔한 선을 그리는 검격을 꽂아 넣어주었다.

목이 반쯤 떨어진 오크가 핏물을 쏟으며 넘어지는 순간.

“억!?”

평소의 감각대로 내밀었던 검을 회수하던 알렉스는, 자세가 흔들린 탓에 균형을 잃고 말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부족한 기마술로 마상전투를 행하려니 벌어진 실수.

‘이런 썅!’

그래도 바닥에 떨어지는 타이밍에 굳건한 태세를 발동하여, 낙마의 충격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수비자세를 취한다.

다행히 가까이 붙어 있던 오크가 없어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진 않았으나, 이런 쪽 팔린 모습을 누가 봤을까 싶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주변을 살피다가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적갈색 로브로 몸을 감싼 여성 마법사.

롤랑과 함께 조사대에 참가한 마탑의 일원으로, 그의 제자라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한 얼굴에 어린 명백한 조소를 보고, 알렉스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망할. 비웃기는.’

말 아래로 내려온 알렉스가 다른 이들보다 상대하기 쉽겠다고 여겼는지, 주변을 맴돌던 오크 세 마리가 동시에 이쪽으로 달려왔다.

튼튼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다는 걸 알기에, 알렉스는 살짝 긴장하며 방어 자세를 굳건히 하고 놈들과 맞붙었다.

뻐걱.

두꺼운 나무곤봉이 방패를 때리며 묵직한 충격을 선사한다.

‘역시 힘이 상당하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슬슬 기사급에 가까운 능력치까지 성장했는데, 상대는 흔한 일개의 오크 전사임에도 근력이 비등비등하게 느껴진다.

기본 신체능력이 확실히 인간보다 우수한 종족이다.

그렇지만 전투는 힘의 우위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 법.

꾸준히 올린 실드 마스터리의 영향으로 능숙한 방패 컨트롤을 선보이며, 알렉스는 오크들의 맹공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차라리 잘되었어. 이참에 새 스킬의 위력도 시험해 보자고.’

세 마리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으니, 격노의 응징 스킬의 발동 수치도 빠르게 쌓일 터.

탄탄한 방어로 협동공격을 버티며 기회를 살피던 알렉스는, 적당한 타이밍이 나오자 곧바로 스킬을 사용하며 진입했다.

‘좋아, 각이다!’

[실드 차지]

오크 한 놈의 몸을 어깨로 들이박은 후 방패로 머리를 후려쳐 넘어뜨린 알렉스는, 옆에서 휘둘러지는 곤봉을 깔끔한 가드로 흘려낸 후 강한 발길질로 적의 무릎을 걷어찼다.

이어서 상대의 자세가 무너져 휘청거리는 동안 재빨리 몸을 돌려, 뒤에서 덮쳐오는 오크의 목에 검을 찔러 넣는다.

쉬익! 끼그극.

검을 뽑아내고 다시 남은 놈들을 상대하려던 차에, 방어 본능이 발동하며 방패가 저절로 움직였다.

‘음?’

날카로운 무언가가 방패 표면을 긁고 지나갔다.

생각보다 빨리 균형을 잡고 그새 공격을 해온 건가 싶었는데, 시선을 돌리니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오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쓰러지는 오크의 너머로 아까 눈을 마주쳤던 여마법사의 모습이 보였다.

로브를 펄럭거리며 이쪽을 향해 지팡이를 내민 자세.

‘바람 계열 마법?’

그녀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일어나 흩날리는 것을 보며,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쯧. 두 마리나 막타를 뺐겼구만.’

막 위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격노의 응징을 사용하려던 참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어버리다니.

살짝 짜증이 나지만 오크 셋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으니, 딴에는 도움을 주려는 행동이긴 했을 거라 생각했다.

‘잠깐.’

그런데 방어 본능이 발동한 걸 봐서는 마법의 범위 안에 자신까지 들어갔다는 소리가 아닌가?

갑옷을 입고 있어서 모르고 맞았어도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떤 경고도 없이 아군까지 휩쓸리는 마법을 날리는 게 정상은 아니다.

고의였다면 욕을 먹어도 싼 행동인데.

불쾌감을 담아 노려보자니, 마법사는 움찔 몸을 떨다가 휙 하고 고개를 돌린다.

‘사과도 없어? 하…….’

이쪽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모습이, 자신이 잘못한 걸 알긴 아는 모양이다.

미안하다고 간단하게 고갯짓이라도 했다면 별말 없이 넘어가려고 했거늘.

‘고의인지 실수인지 모르겠다만, 끝나고 한마디 해둬야겠군.’

불만을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알렉스는 시선을 돌려 전장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전투는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몇몇 병사들과 군마가 부상을 입기는 했으나, 중상자는 한 사람도 생기지 않은 압도적인 승리였다.

“다친 녀석들은 뒤쪽으로 모여라!”

“죽은 척하는 놈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해!”

“알렉스 경. 말에서 내려 싸우신 겁니까?”

조사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상황을 정리하는 기사들 사이로, 오크의 피와 살점으로 갑옷을 데코레이션한 이사벨이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왔다.

본인의 말이 어디에 있나 살피던 알렉스는, 멋쩍은 표정으로 이사벨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아, 네. 땅을 밟고 싸우는 쪽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

“하핫! 방패를 다루는 알렉스 경의 전투 스타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낙마해서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워서 대충 둘러대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흥, 멍청하게 떨어져 놓고선.”

시선을 옮기자 조금 전 아까운 경험치를 뺏어 먹은 여마법사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쓰읍…….’

그렇지 않아도 마법을 함부로 사용한 일로 따질 마음이 있던 알렉스가, 뭐라고 한마디 해주기 위해 그녀에 다가가려던 차였다.

“헙!? 뭐냐!”

“태양이!?”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한순간에 밤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사방에 암흑이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사물의 식별이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스무 걸음 정도만 떨어져도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미묘한 어두움.

‘다크니스 필드? 암흑교의 네임드나 보스급 NPC와 싸울 때 발생하는 현상인데…….’

무언가를 떠올린 알렉스는 어깨를 긴장시키며 살짝 몸을 움츠렸다.

기현상에 놀란 조사대원들이 딱딱하게 얼어붙은 채 주변을 둘러보던 때였다.

마을의 입구 방향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지몽매한 자들아. 잘도 스스로의 묏자리를 찾아왔구나.”

해골로 장식된 기괴한 지팡이를 들고, 산책을 하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남성.

어림잡아도 200여 미터 정도는 떨어져 있는 거리였기에 윤곽조차 알아보기 어려워야 정상이었으나, 남자의 외형은 어둠에 방해를 받지 않는 것처럼 선명하게 조사대원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누구냐?’ 라는 틀에 박힌 질문은 필요 없었다.

이미 인간제단을 목격하며 암흑교에 대한 언급이 나왔었기에, 사람들은 징그러운 지팡이를 든 남성을 사악한 이교도로 인식하고 짙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용서받지 못할 자여!”

알렉스의 곁에 있던 이사벨이 분노를 담은 목소리로 외치며, 누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암흑교도를 향해 말을 달렸다.

그러나 이사벨의 돌진은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타앗!

남성이 지팡이로 땅을 내리찍자 불길한 기운이 넓게 퍼져 나가며, 암흑교 특유의 능력인 흑마법이 발동됐기 때문이었다.

히히힝!

“읏!?”

이사벨을 태운 전투마가 무언가에 놀란 듯 펄쩍 뛰어오르더니, 이내 바들바들 몸을 떨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다.

“어엇!”

“헛! 이거 왜 이래!?”

동일한 광경이 뒤쪽에서도 연달아 펼쳐졌다.

조사대원을 태운 군마들이 하나같이 두려움에 벌벌 떨며 땅 위에 바짝 엎드렸다.

“어둠사제…….”

알렉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게임 때의 지식 덕분에, 남성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암흑교의 여러 직군들 중에서도 성가시기로 손꼽히는 부류.

각종 디버프 스킬로 유저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어둠사제는, 암흑교도들이 등장하는 맵에서 사냥할 때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는 적 1순위이다.

방금 사용한 흑마법은 공포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광역 스킬로, 게임에서도 여러 유저들의 입에서 쌍욕을 내뱉게 만들었던 어둠사제들의 대표능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으으…….”

“뭐, 뭐지? 모, 몸이 무거워!”

“아, 아으윽! 살려 줘!”

공포심에 젖어 무력화된 것은 군마들뿐만이 아니었다.

병사들의 대다수가 흑마법의 영향으로 두려움에 물든 채 몸을 떨었다.

‘엿 같은 상대가 튀어나왔군.’

마음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며, 알렉스는 스스로에게 블레싱 스킬을 사용했다.

몸 안에 신성력을 품고 있기 때문에, 남들과 달리 흑마법이 곧바로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기분 나쁜 어둠의 마력이 파고들 틈을 노리는 것처럼 알렉스의 몸 주변을 맴돌다가, 축복의 성법과 충돌하며 기운을 잃고 흩어졌다.

어둠사제의 흑마법에 완벽하게 저항한 알렉스는 재빨리 시선을 돌려가며 아군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끄응…….”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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