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8화
변종 좀비(3)
다리 사이로 파고든 폴액스의 도끼날에 백작의 몸뚱이가 명치 부분까지 찢어졌다.
이사벨이 거칠게 자루를 당겨 무기를 뽑아내자, 백작은 비명을 내지르며 허물어지듯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단 의도한 대로 되긴 했군.’
원래는 다리 쪽 관절을 손상시켜 기동력을 제한할 생각이었는데, 골반 안쪽을 저리 헤집어놓으니 어쨌든 걷지 못하게 된 것은 마찬가지다.
고꾸라진 백작을 보며 이사벨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성공입니다! 알렉스 경의 계획대로 놈을 쓰러뜨렸어요!”
“아뇨, 제 계획은 그렇게 잔혹하지 않았습니다. 절 냉혈한으로 만들지 말아 주시죠.”
“예? 왜 갑자기 그리 정색을 하시고…….”
“아, 아닙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니까 어서 마무리를 짓지요.”
팔을 휘두르며 바닥을 기는 백작을 향해 눈짓을 하자, 이사벨은 알겠다는 듯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폴액스를 치켜세웠다.
꽈드득.
머리를 내리친 도끼날이 경화된 팔에 막혀 밀려났다.
하체가 망가졌기에 더 이상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상반신과 능력은 그대로기에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흥! 굉장히 성가신 능력입니다. 그래도 계속 때리다 보면 언젠간 쪼개지겠지요.”
코웃음을 친 이사벨이 다시금 폴액스를 들어 올렸다.
“경, 잠시만.”
그런 이사벨을 제지하고, 알렉스는 백작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별로 보고 싶은 자리는 아니지만, 찢겨진 상처 부위를 유심히 살펴본 후.
‘상처 크기는 충분하군. 아까 생각한 대로 밑에서부터 무기를 찔러 넣으면 되겠어.’
제자리로 돌아온 알렉스가 이사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래 힘 뺄 필요 없이 단번에 끝내죠.”
“뭔가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시도해 볼 만한 게 있긴 합니다.”
알렉스는 롱소드를 검집에 집어넣고, 이사벨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잠시 무기를 빌립시다.”
“예엣?”
알렉스는 자신이 떠올린 것에 대해 이사벨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백작을 처리하기 위해서 하체의 상처 부위에 무기를 꽂아 넣어, 아래에서 가한 공격이 머리까지 닿도록 만든다.
다만 백작이 가만히 엉덩이를 대줄 리는 없으니, 저항하지 못하게 자세를 고정시키는 순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마침 신성력으로 근력을 증폭시킬 수 있고 훌륭한 갑옷으로 방어력도 갖춘 이사벨이, 정면에서 백작을 잠시 붙잡아 두는 역할에 제격이다.
자연스레 백작의 숨통을 끊는 역할은 알렉스가 맡도록 한다.
“이해하셨습니까?”
“이해는 했지만…… 굳이 무기를 바꾸셔야 합니까?”
“폴액스에 비해 롱소드는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지 않습니까. 끝까지 밀어 넣어도 치명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확실하게 하려면 장병기를 쓰는 것이 좋겠지요.”
반박할 수 없는 말이기에, 이사벨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애병을 넘겨주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알렉스의 제안은 논리적으로 들렸다.
“잘 쓰고 돌려주세요.”
“물론이죠.”
‘조금 지저분한 상태로 돌려주게 되긴 하겠지만.’
준비를 마친 알렉스가 신호를 보내고 백작의 뒤로 돌아갔다.
이어서 신성력으로 몸을 뒤덮은 이사벨이 백작에게 가까이 가, 버둥거리는 팔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캬아악!”
“흐아-앗!”
괴물과 소녀가 힘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알렉스는 넘겨받은 폴액스를 뒤집어서 반대로 들었다.
폴액스의 자루 끝부분은 뾰족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이렇게 잡으면 긴 꼬챙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도끼날과 훅이 달려 걸리는 것이 많은 스피어헤드보다는, 이쪽으로 찌르는 것이 훨씬 수월하게 관통할 수 있을 터.
알렉스는 홀리 웨폰을 발동시키고, 백작의 갈라진 하체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근력만으로 이런 상처를 만들 위력을 내다니. 홀리 웨폰만 쓸 수 있으면 경화도 무시하고 머리를 쪼갤 수 있었겠는데?’
내려치는 공격도 아니고 올려 베기로 사람의 몸을 반쯤 찢어놓다니, 어느 쪽이 더 괴물인지 모르겠다.
치유의 손길이나 블레싱처럼 홀리 웨폰도 타인에게 걸어줄 수 있었다면, 전투는 훨씬 더 빠르게 끝났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이런 식으로 합당하게 막타를 쳐서, 경험치를 꿀꺽할 상황도 만들지 못했겠지.’
타인에게 성속성을 부여하는 그런 종류의 스킬도 존재하긴 하지만, 어차피 홀리 웨폰보다 상위의 스킬이라 아직은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고, 합리적으로 이득을 취할 기회를 챙겼다.
알렉스는 폴액스를 수평으로 세워 백작을 겨누었다.
“백작님. 주사 맞으실 시간입니다.”
가느다란 바늘 대신 2미터짜리 쇠꼬챙이로 찌를 거긴 하지만.
레벨이 오를 것을 기대하며 유쾌해진 기분으로 농담을 내뱉자니, 힘겨루기를 하느라 이를 악물고 있던 이사벨에게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크흠.”
살짝 민망해진 알렉스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이내 손에 든 무기를 전력을 다해 찔러 넣었다.
확실히 안쪽의 근육과 내장까지 경화시키는 재주는 없는지, 그리 큰 저항감 없이 쭉쭉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다.
폴액스의 자루가 거체를 깊숙하게 파고들자, 몸부림치며 이사벨에게서 벗어나려던 백작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루미넌 백작의 영주성에서 벌어진 암흑교와 연관된 끔찍한 사건.
그 불온한 흐름의 움직임에 종착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대하던 알림이 떠오른다.
레벨 업 알림은 4번을 연달아 울리고 나서 사라졌다.
[알렉스 Lv 35]
[잔여 스킬 포인트 4]
‘나름 이곳의 보스 몹이라 할 만한 적을 잡았는데, 기사를 해치웠을 때보다 레벨은 오히려 덜 오르는군. 뭐, 이 레벨이면 당연한 거긴 한데.’
경험치 바가 거의 꽉 찬 상태였음에도 레벨 업 4번으로 끝이라 아쉽긴 했지만, 30대 레벨에 진입하고도 몹 하나로 이 정도 경험치를 얻었으면 그래도 상당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알렉스 경. 제 무기를…….”
“아! 여기요. 잘 썼습니다.”
백작의 시체에서 폴액스를 뽑아 든 알렉스는 그대로 이사벨에게로 내밀었다.
“…….”
뱃속을 관통하느라 피와 배설물, 내장 조각 등이 묻은 애병의 손잡이를 바라보며, 이사벨은 굉장히 우울해진 분위기를 풍겼다.
폴액스를 넘겨받은 이사벨은 곧장 백작의 침상으로 다가가, 커튼을 뜯어내고 그것으로 열심히 자루를 닦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스킬창을 띄우고 목록을 살폈다.
새로 얻은 포인트들을 사용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손쉽게 강해질 수 있는 가장 편리하고 확실하게 체감이 되는 방법이기에.
‘검술은 여전히 막혀 있나?’
[소드 마스터리 Lv 6]
‘엇! 되네?’
5레벨에서 제한이 걸렸던 소드 마스터리를 건드리자, 포인트가 소모되며 6레벨로 올라섰다.
정확한 조건은 모르겠지만 숙련도 운운한 것을 봐서는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아야 하는 듯한데, 이번 전투를 치르며 필요한 수준을 충족한 모양이다.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없습니다.]
[숙련도 기준치 충족 미달.]
혹시 몰라 다시 한번 레벨 업을 시도했지만, 7레벨로 오르는 대신 전에 봤던 문구의 알림이 떠오른다.
제한이 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6레벨의 무기술이면 준기사급으로, 칼밥을 먹고 살기에 부족하진 않은 수준이다.
나중에 메인 레벨이 좀 더 높아지고 나면 다시 올릴 수 있나 시도해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알렉스는 남은 포인트를 소모했다.
[실드 마스터리 Lv 5]
[방어 본능 Lv 5(Max)]
필수 스킬이라 생각하고 있는 방패술과 방어본능을 5레벨로 올렸다.
이로써 방어 본능은 레벨 최대치에 도달했다.
마스터 레벨까지 오른 방어 본능은, 인지하지 못한 위기에서 분명 자신을 구원해 줄 수단이 될 것이다.
‘일단 방패를 먼저 구해야겠지만.’
알렉스는 자신의 팔 한쪽을 내려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부러진 팔은 신성력으로 회복했지만, 박살 난 방패는 되돌릴 수가 없기에 비어버린 공간이 굉장히 허전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남은 1포인트는 조금 고민하다가, 새로 해금된 스킬에 투자하기로 했다.
[굳건한 태세 Lv 1]
실드 마스터리가 5레벨이 되며 필요조건을 충족한 방패술 계열 스킬.
게임에서는 방어력을 강화하고 온갖 저항력과 넉백 내성을 높여주는 등, 탱커 포지션이라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액티브 스킬이었다.
‘여기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방어에 특화된 스킬은 배워서 후회하진 않을 것 같으니. 후, 아무튼 이제 끝이군.’
포인트 분배를 마친 알렉스는 0이 되어버린 잔여 포인트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레벨 업을 위해서는 매번 험한 싸움을 해야 하는데, 벌어들인 포인트를 쓰는 건 한순간이다.
“알렉스 경.”
할 일을 마치고 나니 마침 이사벨도 오물을 다 닦아냈는지, 반들반들해진 폴액스를 어깨에 걸치고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상황처리는 다 끝났으니 교구장님께 올릴 보고를 작성하는 일만 남았군요.”
“이사벨 경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위험은 처리했지만, 며칠은 조사가 더 진행될 겁니다. 그동안 교단에서 조슈앙 공의 신변을 보호해야 하니, 그를 데리고 신전으로 가도록 하지요.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 이후에 저와 함께 글라즈번으로 떠나도록 합시다.”
오는 도중에 이야기가 나왔던 대로, 서임을 받은 정식 팔라딘이 되는 길로 인도하겠다는 이사벨.
잠시 생각하던 알렉스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름대로 함께 싸우면 호흡을 맞췄고 이제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었으니, 슬슬 한번 제대로 떠볼 때가 되었다.
“이사벨 경. 제가 신성력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혹시 이상한 점이나 어떤 의문을 느끼지는 않았습니까?”
알렉스의 발언에, 이사벨의 표정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