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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7화 (17/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7화

변종 좀비(2)

겉모습은 그냥 비만형 몸매를 가진 좀비로 보였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백작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알렉스는, 다르온을 상대했던 때보다 싸움이 어려울 것을 직감했다.

‘살찐 몸뚱이를 봐서는 백작이 이름난 무인일 것 같진 않은데, 풍기는 기세는 오히려 기사 이상이다. 생긴 것과 다르게 뭔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는 건…… 변종? 정예 몹인가.’

그런 놈들이 있다.

생김새는 특별한 게 없어도 다른 개체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것들.

게임에서 그런 녀석들은 머리 위에 엘리트 몬스터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온다.

‘백작부인을 잡아먹고 그쪽 목걸이의 흑마력까지 흡수한 모양인데. 신체능력만 향상된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특수능력까지?’

“크워어억!”

알렉스가 백작을 살펴보며 수준을 가늠해 보고 있는 사이.

기세등등하게 포효한 백작이 몸을 날리며 이사벨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어딜!”

갑옷을 믿는 것인지 방어를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폴액스를 휘둘러 마주 공격하는 이사벨.

꽈앙!

일격을 교환한 둘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알렉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성법을 통해 괴력을 갖춘 이사벨과 힘이 비등비등해 보이는군. 게다가 방금 도끼날이 목에 닿기 직전에, 순간적으로 피부조직이 변이를 일으켰어.’

피부를 금속처럼 단단하게 경화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역시 짐작한 것처럼 상대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큭! 이 괴물 놈이!”

강한 힘에 밀쳐지다가 겨우 자세를 잡은 이사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성난 음성을 내뱉었다.

부정한 존재를 상대로 뒷걸음질 치게 된 것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그녀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축복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하읏!?”

“……왜 그리 놀라십니까? 축복을 건 겁니다.”

“아, 어떻게…… 으, 아닙니다.”

묘한 반응에 살짝 의아해졌지만, 이내 주의를 돌린 알렉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함께 놈을 상대합시다.”

“후우! 알겠습니다!”

이사벨에 이어 스스로에게도 블레싱을 건 알렉스가, 방패를 앞세우고 신중한 움직임으로 백작을 향해 다가갔다.

혼자 처리하기엔 백작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는지, 이사벨 역시 무작정 달려드는 대신 알렉스와 보조를 맞춰 행동했다.

“캬아아!”

기분이 나쁘다는 듯 고함을 지른 백작이 고개를 휙휙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알렉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사벨보다 알렉스 쪽이 더 손쉬운 먹잇감이라 판단한 듯했다.

‘틀린 선택은 아니지만, 그렇게 티를 내면 내가 기분이 나쁘잖냐.’

백작의 돌진에 맞춰 알렉스도 앞으로 뛰쳐나갔다.

실드 차지.

돌진기를 발동한 알렉스는 충돌의 순간 몸을 비틀며,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했다.

한순간에 강한 부하가 걸린 허리 아래의 관절들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덕분에 우악스럽게 들이닥치는 백작의 손을 피해낼 수 있었다.

‘지금 내 수준으로는 이사벨에게 공격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주공은 이사벨, 보조를 자신이.

상대방이 치명상을 입었을 때 막타를 치는 정도가, 알렉스가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거의 넘어지다시피 하는 자세로, 알렉스는 방패를 휘둘러 백작의 무릎 뒤 오금을 타격했다.

퍽!

한쪽 다리가 접힌 백작이 휘청거리는 순간.

가까이 다가온 이사벨의 폴액스가 백작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까앙!

백작이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아내자, 금속음과 함께 불똥이 튀어 오른다.

“이놈!”

“크라아앗!”

폴액스와 팔을 맞댄 채 이사벨과 백작이 서로를 밀어내기 위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무리한 동작으로 자세가 무너진 알렉스는, 바닥을 굴러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목에 이어 팔로도 피부경화를 사용했어. 하지만 내 공격은 막지 않았다. 어째서?’

그리 위협이 되지 않는 공격이라 막지 않은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능력의 발현에 특정 조건이 필요한 건가?

땅에서 일어나 균형을 잡은 알렉스의 어깨가 뒤로 젖혀진다.

이어서 당긴 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빛을 머금은 롱소드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이사벨을 상대하느라 잠시 발이 묶여 있던 백작이, 알렉스의 공격에 대치를 풀고 옆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찌르기를 완전히 피해내진 못해, 허벅지 부위에 긴 자상을 입고 물러났다.

‘또 막지 않는군.’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던 알렉스는 이사벨을 향해 소리쳤다.

“이사벨 경! 하체를 노려봅시다!”

어쩌면 전신의 피부를 경화시키진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짐작대로라면 이사벨과 함께 놈의 다리를 토막 내서, 기동력을 완전히 상실시킬 수 있다.

아니면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거고.

“하체? 알겠습니다!”

알렉스의 제안에 이사벨의 시선이 백작의 아래로 향한다.

또 한 번 실드 차지를 사용한 알렉스가 백작의 앞으로 뛰어나갔다.

이사벨에게 찬스를 만들어주기 위한 시선 끌기.

그러나 백작은 엘리트 몬스터답게 다른 좀비들보다 지능이 뛰어난지, 동일한 수에 똑같이 당해주진 않았다.

짧게 내지르는 가벼운 공격으로 알렉스를 견제하며, 이사벨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모습.

알렉스보단 이사벨의 공격이 위협적이라는 걸 잘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꾸 그렇게 무시하면 상처받지!’

알렉스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 거리까지 파고들며, 백작의 공격을 유도했다.

계속 소극적인 대치만 하는 양상은 이쪽에게 불리하다.

언데드가 된 백작과 달리, 인간인 두 사람은 체력이 빠질수록 그만큼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캬아아악!”

주위를 맴돌다가 다리에 제법 깊은 자상을 남기는 공격을 가하자, 백작은 흉성을 터뜨리며 알렉스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지능이 남아 있어 유인에 쉽게 넘어오지 않으려 하지만, 상처를 파고드는 신성력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것까진 참지 못했다.

알렉스에게 반응하는 백작의 동작이 커졌다.

후웅!

퉁퉁 부어 비대해진 손바닥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공중을 가른다.

‘한 번이라도 붙잡히면 그대로 끝장날 수도 있어.’

차라리 한 대 맞고 나가떨어지면 다행이지, 혹여나 저 손아귀에 붙들리면 근력의 차이 때문에 빠져나오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방해물이 되어 이사벨도 공격을 가하지 못할 터.

아니, 오히려 그걸 기회 삼아 같이 베어버리겠다는 식으로 공격하려나?

어느 쪽이든 알렉스의 입장에선 환영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바짝 긴장한 알렉스는 최대한 집중하며 자신을 향한 백작의 공격들을 흘려보냈다.

그렇지만 마냥 피하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제대로 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니까.

신중하게 타이밍을 재던 알렉스는, 막 팔을 휘두른 백작의 얼굴을 향해 검을 찔렀다.

하체만 노리다 갑작스레 머리로 다가오는 공격에, 백작은 다급히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 몸을 경화시켰다.

까득.

나름대로 전력을 다한 찌르기였음에도 롱소드는 얼굴을 살짝 긁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쉽지만은 않았다.

‘예상대로인가?’

일정 부위만 경화시키던 아까와 달리, 이번엔 허리 위로 상체 전부의 피부가 딱딱하게 변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백작이 내장까지 경화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아예 하반신을 끊어놓고 아래에서 머리까지 무기를 관통시키는 식으로 끝장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롱소드로는 어렵겠지만, 이사벨의 창이면 충분하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경화를 푼 백작이 괴성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다.

“크워어억!”

거리가 가까운 탓에 피하면서 빠져나오기는 글렀다.

방패를 들어 주먹을 막아선 알렉스는, 강렬한 충격과 함께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끅!?”

시야가 잠시 어두워졌다가 돌아온다.

알렉스는 자신이 벽까지 날아가 부딪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럽게 세구만.’

다르온과 싸우며 손상을 입었던 방패가, 지금의 가드로 박살이 나 팔에서 떨어져 나갔다.

방패를 매달고 있던 팔은 완전히 부러졌는지, 영 좋지 못한 모양새로 꺾여 있다.

‘X발. 조금만 더 위력이 강했으면 뼈가 근육을 찢고 튀어나오는 꼴을 볼 뻔했네.’

치유의 힘을 팔에 집중한 알렉스는 통증을 견디며 앞을 바라보았다.

일시적으로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역할은 다했다.

부아아악!

알렉스는 온몸을 신성력으로 물들인 광휘의 성기사가, 무지막지한 괴력으로 백작에게 일격을 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루스시여!”

폴액스의 자루를 약간 짧게 잡은 이사벨이, 백작의 뒤로 다가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방식으로 공격을 성공시켰다.

널찍한 도끼날이 백작의 가랑이 사이를 파고드는 장면을 목격하며, 알렉스는 입을 쩍 벌린 채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하체를 공격하라고 말해두긴 했지만, 발목이나 무릎 같은 곳을 노리란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검게 죽은 핏물과 살점들이, 다리 사이의 소중한 부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끔찍한 공격이야.’

이중적인 의미에서 성스러운 일격이었으며, 심약한 어른 남성이 보기엔 너무나도 자극적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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