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6화
변종 좀비
대답을 들은 조슈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알렉스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팔에 힘을 주었다.
혹시라도 조슈앙이 용납할 수 없다며 덤비기라도 한다면, 때려눕혀 놔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이사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장식은 무엇입니까?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짓에 시선을 돌리자, 익숙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한 쌍의 엄니.
알렉스가 무구를 얻어내고자 선물이라며 조슈앙에게 떠넘긴 물건이었다.
한데 이사벨의 말대로, 그 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그건 알렉스 경이 선물해 준 마수의 부산물이오만?”
“맞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저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혹시 저기에 뭔가를 하셨습니까?”
“저렇게 올려두고 잠깐 감상했던 것 외에는 딱히……?”
알렉스는 엄니를 향해 다가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암흑교의 표식이 새겨진 헬리나와 클레인의 목걸이처럼, 흑마력이 담겨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
다만 연기를 뿜어내며 뭔가 다른 현상을 일으켰던 그때와 달리, 가공되지 않은 날것이라는 느낌이다.
‘신앙 레벨을 높여서 예민해진 건가? 뭔가 전보다 자연스럽게 흑마력에 대한 분석이 되는 것 같군.’
일단 이 자체로는 위험하다는 감은 들지 않는다.
“안에 흑마력이 깃든 모양이군요. 마수의 부산물이니 악한 기운과 감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아!”
뭔가를 떠올린 알렉스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저주가 퍼질 때 함께 흘러나온 흑마력이, 여기에 일부 흡수된 듯합니다. 어쩌면 조슈앙 공을 치료할 수 있던 것도 그 덕분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이기에 진실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정황상 그런 이유를 갖다 붙이면, 조슈앙이 다른 이들과 달리 저주의 영향을 덜 받은 것이 설명이 되긴 한다.
“과연, 일리가 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추측은 아니었는지, 이사벨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에 따라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엄니와 알렉스를 번갈아보던 조슈앙이,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살아 있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알렉스 경 덕분이로군. 치료도 그리고 저 선물도 말이오.”
알렉스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굳은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던 조슈앙이, 알렉스를 응시하며 재차 말을 꺼냈다.
“형님을 베었다고 하셨나?”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유일한 계승자로군.”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연 조슈앙은 스스로가 한 말에 놀란 것처럼 흠칫하더니, 이내 어색한 표정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백작 내외를 살리든 죽이든 상관하지 않겠소. 치료가 어렵다면 그냥 깔끔하게 처리해 주시오.”
부모를 두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긴 어려운 말투.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다.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물론이오. 알렉스 경도 봤으니 알잖소? 내가 여기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이제 와 말하지만 사실 그럴 만하긴 한 것이, 형님과 난 배다른 형제라오.”
백작가의 민감한 이야기가 조슈앙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색이 고왔던 몰락귀족 가문의 한 소녀를 강제로 끌고 오다시피 취한 백작.
어린 나이에 조슈앙을 출산하며 목숨을 잃고만 산모.
그나마 정식으로 혼례를 치렀기에 가문에 제대로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서자는 아니지만, 조슈앙의 취급은 사실상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외가와 징그러운 벌레를 보듯 대하는 첫째 부인.
백작 역시 욕망에 이끌려 먼저 간 어미를 취했을 뿐, 조슈앙에게 딱히 핏줄의 정을 보이진 않았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구색이란 게 있으니, 적당히 자라는 데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지원만 해주었을 뿐.
고위귀족의 자제치고는 고달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솔직히 이곳은 내가 살 곳이 아니란 생각으로 살아왔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받을 수 있는 게 있다면 기꺼이 받아주어야지. 나에겐 그럴 권리가 있으니 말이오.”
어리숙한 면만 보였던 조슈앙이지만, 제법 냉정하게 계산을 하는 모습을 보니 귀족은 귀족인 모양이다.
“좋습니다. 백작가의 사정이야 어쨌든 그건 제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고,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백작이 조슈앙처럼 괜찮은 상태라면 치료를 시도해 보는 거고, 아니면 머리를 날려 버린다.
알렉스가 고를 선택지는 어차피 그 두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잠시 쉬고 계시죠. 저희는 마저 할 일을 할 테니.”
“혼자 있기는 불안한데…….”
“오는 길에 위험요소는 전부 처리했으니, 여기 있는 게 안전합니다. 게다가 언데드와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게 딱히 유쾌한 일도 아닐 겁니다.”
“후우. 알겠소. 빨리 해결하고 와주시오.”
기운 없는 모습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조슈앙을 뒤로하고, 알렉스는 이사벨과 함께 백작부부를 찾아 나섰다.
* * *
“그가 백작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복도를 걸으며 내뱉어진 이사벨의 말에, 알렉스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음? 어, 물론 조슈앙이 가문에서 천대받던 위치이긴 하지만 상황이-”
“아니오. 그의 문제가 아니라, 교단의 대응에 따라서 어쩌면 백작가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단 뜻입니다.”
백작가의 장녀인 헬리나는 전 세계의 공적인 암흑교의 마녀였고, 도시 하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악한 행위를 저질렀다.
암흑교와 관련된 범죄는 교단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아무리 귀족이 엮인 일이라 해도 엄벌을 요구할 것이다.
백작의 작위면 나름대로 하이로드의 반열에 발을 들인 귀족이긴 하다.
하지만 공작 가문쯤 되는 곳이면 모를까.
이단 범죄에 대해서는 백작 가문쯤은 풍비박산 낼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 현 세상의 유일한 종교로 인정받는 예루스의 교단이다.
‘상황에 따라서 영지가 통으로 날아갈 수도 있겠구나. 쯧!’
어떻게 엮이느냐에 따라서 백작위가 몰수되고 다른 귀족이 영주로 들어설 수도 있다.
백작령 정도면 작은 지역이 아니니, 아마 여러 귀족들이 나눠 먹기 위해 영지가 갈가리 찢겨나가게 될 터.
어쩌면 죄 없는 조슈앙까지 가족이란 이유로 처벌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기껏 살려줬더니 어두컴컴한 미래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를 조슈앙의 사정에, 알렉스는 조금 안타까움을 느끼며 혀를 찼다.
한데 가만히 잘 생각해 보니, 마냥 남의 일로만 여길 게 아닐지도 모른다.
‘교단과 왕실의 판결엔, 일선에서 사건을 해결한 이사벨의 보고가 큰 영향을 끼칠 테고. 일단 나도 그 자리에 한 다리 걸치고 있는 상황이니까…….’
현재 이사벨은 자신에게 꽤 우호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니,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조슈앙의 처우에 어느 정도 입김이 닿을지도 모르겠다.
보고를 사실과 다르게 조작해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조슈앙의 무죄를 입증하고 그의 처우가 나쁘지 않도록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까 짐작한 대로 마수의 부산물 덕분에 조슈앙이 무사했던 거라면, 백작부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언데드가 되어 있겠지.’
사태의 주동자이자 마녀였던 헬리나는 죽었고, 영주로서 책임을 져야할 백작도 이미 죽은 상태라면.
조슈앙이 연대책임을 지지 않게만 해준다면, 백작가문과 영지가 통째로 박살 나는 일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꼴이 났으니 가문을 온전한 상태로 물려받지는 못하겠지만, 조슈앙이 백작위를 계승할 수만 있다면 내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본인의 입으로 덕분에 살았다고 하기도 했으니, 일이 잘 풀리면 자신을 은인으로 여기긴 할 거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귀족을 하나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꽤나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고 이사벨과 잘 이야기해봐야겠군. 물론 괜히 불똥이 튀면 안 되니까, 적당히 찔러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손을 떼야지.’
조슈앙에 대해선 생각할 거리로 남겨두고, 일단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복도를 걷던 두 사람은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백작이나 백작부인의 침실 같군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이사벨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들어간 알렉스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커다란 침상 위에서 몸을 들썩이고 있는 하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누구의 방인지 따질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백작과 백작부인이 함께 있었기에.
다만 예상했던 그림과는 꽤나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르윽! 쩝쩝, 크엑!”
커다란 덩치의 백작이 백작부인을 깔아뭉갠 채 뜯어먹고 있었다.
생김새를 봐서는 둘 다 언데드가 된 것으로 보이는데, 좀비가 좀비를 잡아먹는다니 꽤나 특이한 상황이었다.
“크레엣?”
두 사람의 기척을 느낀 백작 좀비가 피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아무리 부정한 존재가 되었다지만 자신의 부인을 먹다니, 어찌 이런 역겨운 짓을!”
이사벨이 노호성을 터뜨리며 백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아아악!
폴액스가 흉흉한 기세로 반원을 그리며 백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날 끝에 걸리는 것은 침상에 달려 있던 얇은 커튼이 전부였다.
백작은 비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잽싼 움직임으로 이사벨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고는 이내 즐겁다는 듯이 소리를 내 웃기 시작했다.
“크케케케!”
먹이가 알아서 찾아와 주어 기뻐하는 듯한 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