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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15화 (15/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15화

두 명의 성기사(2)

영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까다로울 뿐이지, 고스트는 전투력 자체는 그리 강한 몬스터가 아니다.

홀리 웨폰을 사용할 수 있는 알렉스에겐 그냥 떠다니는 경험치 쪼가리나 마찬가지.

그리고 홀리 웨폰을 쓸 줄 모르는 성기사였던 이사벨은, 약간 심통이 난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제가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처리하는 편이 낫죠.”

옳은 말이었기에 이사벨은 살짝 볼을 부풀렸을 뿐 반박하지 않았다.

‘경험치는 꽤 올랐는데... 에이, 아깝게 레벨 업에는 약간 못 미치네.’

상태창을 살피던 알렉스는 이내 눈을 돌리고 이사벨과 대화를 이어갔다.

“저 목걸이. 아까 이야기했던 마녀 헬리나가 가족들에게 넘긴 것이라더군요.”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 클레인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하자, 유심히 목걸이를 살펴본 이사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것을 벗겨냈다.

흑마력을 방출해 고스트를 발생시켰던 암흑교의 목걸이는 더는 아까 같은 힘을 내뿜진 않았지만, 아직 사악한 기운의 잔재가 미약하게 서려 있었다.

“죄악이 깃든 물건이군요. 보고를 올릴 때 제출해야겠습니다.”

“아마 백작 부부도 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것들도 회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듣기론 백작에게 아들이 둘이라 하던데, 그러면 이런 흉물이 세 개 더 있겠군요.”

“음. 두 개일 겁니다. 차남은 제외해도 되거든요.”

“어째서입니까?”

“차남인 조슈앙과는 잠시 같이 있었기에 아는데…….”

집안의 밥벌레 취급받는다는 말을, 그래도 약간이나마 인연이 있었던 조슈앙의 명예를 위해 최대한 점잖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습니까? 하긴 후계자가 확실히 정해진 상황에서, 다른 자녀들이 겉도는 일은 사실 특별할 것도 없…… 이 안에도 적이 있군요.”

“음. 저도 들었습니다.”

가볍게 잡담을 나누며 수색을 계속 이어가던 두 사람은, 작은 소음이 들려오는 방 앞으로 다가가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으으…… 가, 가려워…….”

“이사벨! 멈춰요!”

알렉스는 몸을 뒤틀며 움직이는 형상을 보자마자 달려드는 이사벨을 제지했다.

휘둘러지던 폴액스가 머리 앞에서 간신히 멈춰 섰다.

“왜 그러십니까?”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알렉스는 이사벨을 잡아당기며 방 안에 있던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조슈앙.”

“그르, 누, 구…….”

“접니다. 알렉스.”

“아, 알렉, 스…… 도, 도와주…….”

알렉스는 다시 마주하게 된 조슈앙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갈라진 피부에서 진물이 나오고 눈빛은 죽어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오며 처리했던 좀비들보단 훨씬 상태가 양호했다.

‘저주가 퍼진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어눌하게나마 아직 정상적인 대화가 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영향을 덜 받은 거야.’

어쩌면 아직까지 한 명도 나오지 못했던 생존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슈앙을 보며 치료의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자니, 이사벨이 조금 차가워진 톤으로 말을 걸어왔다.

“알렉스 경.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이미 늦었어요.”

“아직 늦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이곳 델트시의 신전에 데려간다 해도 치료할 여력이 없을 겁니다. 외성까지 퍼지는 저주를 정화하느라, 사제분들이 전부 투입되어 힘을 소진했으니 말입니다.”

“거기까지 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알렉스는 굼뜬 움직임으로 다가와 옷깃을 붙잡는 조슈앙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사, 살려, 줘, 살려…….”

내민 손에 신성력을 집중한다.

조슈앙과 딱히 대단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머리를 깨고 경험치나 얻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게임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곤 하나 그래도 자신이 성직자인데, 생각나는 방법이 있다면 살리기 위한 시도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걸로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조금 전에 소드 마스터리를 올리려다가 실패하며 남아 있던 포인트 1개를 블레싱 스킬에 투자했다.

[블레싱 Lv 2]

저주를 몰아내는 축복의 힘이 조슈앙을 감쌌다.

“그윽! 으아으.”

고통을 느끼는지 부들거리며 몸을 뒤트는 조슈앙.

이사벨이 매서워진 눈빛으로 무기를 슬쩍 추켜올렸다.

실패하는 건가 싶어 실망하려는 차에.

알렉스는 흐릿했던 조슈앙의 눈동자에 총기가 돌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끄으, 몸이 이상하오…….”

“정신을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단발성 스킬인 블레싱을 몇 번 더 발동한 뒤.

알렉스는 조슈앙의 상태가 호전되었음을 느끼고, 남은 신성력을 치유의 손길로 전환했다.

갈라졌던 피부가 아물며 조슈앙의 형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꽤나 수척한 행색이긴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좀비로 느껴지는 외형은 아니었다.

“내, 내가 살아난 건가?”

바닥에 주저앉은 조슈앙이 명확해진 발음으로 말하며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예루스시여……!”

격한 감정이 담긴 탄성이 옆에서 터져 나왔다.

투구를 벗어든 이사벨이 경악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기축성에 축복과 치유의 힘까지? 도대체 성법을 몇 개나 다루시는 겁니까?”

“그냥 뭐, 대단찮은 수준입니다.”

“대단치 않다니요! 저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실 것 같은데…….”

“음. 18살이긴 합니다.”

“아! 저보다 겨우 한 살 많으신 거군요.”

정신의 나이는 꽤 차이가 나겠지만, 일단 이곳에서의 육체 나이는 그렇다.

그런데 이사벨은 17살이었구나.

어려 보인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로 어린 나이였다.

‘시대가 이러하니 열대여섯 살 정도만 되어도 성인으로 대우받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린 건 어린 거지.’

한창 감수성이 풍부할 나이에 좀비로 변한 사람들의 머리나 쪼개고 다닌다니, 새삼 흉흉한 세계에 떨어졌다는 자각이 든다.

“최연소 팔라딘이니 다음 세대를 이끌 인재니 하며, 여기저기서 치켜세워준다고 자만심을 품었던 제가 너무도 부끄럽군요. 알렉스 경이야말로 교단의 보물 같은 인재십니다.”

흡사 연예인을 보는 소녀팬 같은 눈빛을 보내오는 이사벨.

하긴 성기사는 일신의 무력을 연마하는 것만도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거기에 성법까지 갖추려면 보통은 빨라도 이십대 중반은 넘어야 하는 편이다.

이 세계에서 18살에 이만큼의 성법을 다루는 건 제법 굉장한 일이긴 하다.

따지고 보면 17살에 팔라딘 서임을 받은 이사벨이야 말로 대단한 천재이지만, 성법에 한해서는 아직 미숙하다보니 알렉스에게 동경심을 느낀 모양이다.

부담스러워진 알렉스는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계속 말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참에 사실을 알려야겠군요. 저는 팔라딘이 아닙니다. 이사벨 경.”

“예? 아, 그렇군요. 그런 뛰어난 재능을 가지셨음에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살피는…….”

“아뇨, 아닙니다.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전 교단의 서품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혼자 지레짐작하게 두고 말하는 것을 미루긴 했지만, 계속 숨길 수는 없기에 슬슬 자신에 대해 밝히기로 했다.

발견된 유일한 생존자인 조슈앙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히 나중으로 미루다가 스스로 이야기하기 전에 딴말이 나오면, 오히려 더 의심과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이사벨이 더듬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그럴, 설마? 어째서요? 뭔가 잘못을 저지르신 겁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기사의 종자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신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조슈앙에게 했던 설명을 그대로 들려준다.

남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충격받은 얼굴이 된 이사벨.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엄숙한 표정으로 성호를 긋고 나서 알렉스의 손을 붙잡았다.

“기적은 신전 안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필시 알렉스 경을 귀하게 쓰고자, 그분께서 선택하시고 은총을 내리신 겁니다.”

“으음. 예, 뭐. 주님의 은혜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와 함께 교구의 본당으로 가시지요. 제 스승님과 선배 팔라딘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분명 알렉스 경이 서임을 받으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겁니다.”

이사벨의 제안에 알렉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정식으로 팔라딘 신분을 획득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이야기다. 내가 가진 신성력에 이상한 점이 있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아무래도 괜찮았던 모양이야.’

평범한 기사는 준귀족으로 취급되긴 하지만 엄연히 귀족들의 아래인 신분이다.

그러나 교단을 등에 업은 성기사는 고위 귀족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신분은 그 자체로 힘이 되니, 정식 팔라딘이 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가진 능력이라곤 게임 속 성기사 스킬뿐인 자신에게, 그보다 더 이상적인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바로 덥석 물 수는 없지.’

아주 작은 불안이나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진 않기에, 알렉스는 이사벨의 제안에 곧장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다.

일단 들었다시피 이사벨은 초임 팔라딘이고, 신체를 강화하는 방식 외에는 다른 성법에 서투른 모양이다.

어쩌면 아직 신성력을 다룸에 있어 능숙하지 못하기에, 알렉스의 신성력에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사벨과 달리 노련한 성기사나 사제라면 반응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거지. 아직 완벽하게 안전을 확신해선 안 되는 거야.’

너무 과한 걱정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선 안 된다고 본다.

일단은 끌리는 제안이니 긍정적으로 여기긴 하겠지만,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는 있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는 당장의 사태부터 완전히 해결하고 나서 하는 편이 맞는 것 같군요.”

“아!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어서 빨리 이 일을 처리하고, 다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어, 저기. 미안하지만 내게 사정을 좀 알려줄 수 없겠소?”

당장 뛰어나가려는 이사벨의 발을, 조슈앙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알렉스는 이사벨과 잠시 시선을 교환하고는, 조슈앙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아아! 누님이 그런…… 우리 영지에 어찌 이런 일이…….”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알게 된 조슈앙은, 머리를 붙잡고 탄식을 터뜨렸다.

“성내에 있던 언데드가 된 사람들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형님 되시는 클레인 공도 방금 막…….”

알렉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조슈앙에게 숨길 수는 없다.

“그리고 백작과 백작부인도 분명 같은 상태일 테니, 이제 그쪽으로 가서 이 사건의 종지부를 찍어야겠지요.

“……지금 내 앞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이오?”

알렉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조슈앙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이내, 단호하게 대답을 내뱉었다.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라면, 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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